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4년 8월 28일

51. 가난일까 빈곤일까?

- 동아시아 장醬문화 속의 한국 장류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기 몇년전부터는 쌀밥에 잘 익은 조선간장을 찬거리 삼아 드시곤 했어. 나이가 들면 화려하고 풍부한 향과 맛보다는 단순하고 깊은 맛에 더 끌리는 편이야.”

귀한 소금을 쓴 잘 익은 조선 간장을 맛본 칠순의 고모가 한말씀 하셨다. 한국의 간장과 이웃 일본, 중국의 간장의 차이에 대해서 내가 설명을 하자, 이어진 일종의 반박조 해석이었다.

나는 요새 중국의 장문화를 조금씩 돌아보고 있는데, 동아시아 지역의 트랜스로컬, 트랜스내셔널한 특성을 살피는데, 지역성과 맛과 생물학적 기본 원리의 보편성을 동시에 겸비한 발효음식인 장이나 향신료가 좋은 사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졸저인 <차이나 리터러시, 2023>에도 말미의 “나가는 글”에 이런 이야기를 조금 써놓았는데, 당시에는 장님이 코끼리 다리 더듬듯, 어설프게 늘어 놓은 이야기들을 이제 좀 제대로 갈무리 하려는 참이다. 마침 한국에 있는 전문가와 장인들이 관심이 있다며 연락을 줬고, 광저우에 있는, 음식 인류학자, 원래 알고 지내던 건강한 먹거리와 농업 종사자들과의 인연이 자연스럽게 중국 내 장 문화 탐색에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를 늘어 놓을 수준으로 상세한 내용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원래 이 공부가 시작된 인연이 그러했듯이, 지금은 한국의 전문가들을 도와 내가 가능한 협력을 하는 수준에서 만족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미주알 고주알 풀어 놓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전에 생각하던 인식의 틀을 바꿔 놓은 깨달음 한가지 만은 털어 놓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상당 부분 동아시아라는 문맥속에서 한국 문화가 가진 특성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에둘러 말하지 않겠다. 그것은 “가난”이다. 한반도의 전통 사회는 특히 남방 연안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경제 문화 발달 지역, 그리고 일본의 대부분의 지역과 비교했을 때, 가난했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땅이 척박해서 농산물의 생산성이 낮았고, 또 하천에서의 연간 유량차를 표시하는 하상 계수 등이 높고, 큰 강의 하구언에 그물망처럼 이어진 작은 하천 중심의 수계가 발달하지 않아, 수운 환경도 나빴다. 즉, 상업이 발달할 수 있는 자연 환경을 갖추지 못했다. 잉여 생산물도 부족하고, 설사 잉여가 발생 해도, 이를 소비중심지인 도시로 운반할 마땅한 운송 수단이 없으니 상업이 발달하기 힘들었다. 예전에는 상업의 발전을 억제한 조선의 “유교탈레반”을 또 다른 이유로 들었겠지만, 지금은 이런 이념이 물리적, 경제적 한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지고 제도화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이웃 일본이나 중국과 다른 한국의 장문화를 살펴보면 부족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 조상들의 노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두가지 측면에서 이를 논증할 수 있다. 물론 전문성이 부족한 주장이라는 것은 감안하고 들어주시기 바란다.

첫째, 한국의 장은 밀을 사용하지 않는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대두를 쪄낸 후 온도를 낮추고, 곡물 상태로 볶은 후에 분쇄한 밀가루를 바른다. 그래서 대두, 소금, 물이라는 단 세가지 원재료를 사용하는 한국과 달리 중요한 부재료(과거에는 몹시 귀했을) 한가지가 추가된다. 콩 단백질에서 아미노산을 추출해 소위 장의 감칠맛을 만들어 주는데, 여기 더해서, 밀가루는 탄수화물의 당화과정을 거쳐 당을 만들어 준다. 이 당은 그 자체로도 간장에 단맛을 더해주지만, 실제로는 간장의 긴 양조과정에서 효모, 유산균 등에 의해서 발효되기 때문에 진짜 단맛을 남기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술이나 커피 등의 발효과정과 마찬가지로 부산물로 에스테르와 알콜등이 형성돼 풍부한 향미를 더해주게 된다. 조선 간장은 이 과정이 없기 때문에, 소금의 짠맛과 대두가 제공하는 감칠맛이 둔중하게 남지만, 밀가루가 남긴 향기나 회감回甘(뒤끝에 느껴지는 아릿한 단맛. 주로 차맛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의 풍성함을 느낄 수는 없다. 물론 콩 자체가 함유한 탄수화물도 같은 효과를 내기는 하지만, 밀가루와 같은 곡물의, 함량이 높은 탄수화물과 비교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내 고모의 반박은 사실 후자의 요소들이 음식의 맛을 내는데 있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설명인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예외적인 사례를 들자면, 대만은 로컬에서 많이 생산되는 검은콩을 이용해서 간장을 만드는데, 이 경우에는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는다. 일본도 지역에 따라 타마리쇼유溜まり醤油라 불리는 대두만을 사용하는 간장이 있다고 한다.

둘째, 한국의 장류는 ‘장가름’이라는 독특한 과정을 통해 원소스one-source 멀티유스multi-use 전략을 시전하고, 따라서 중국, 일본의 간장과 달리 재료를 남김없이 사용한다. 여기서 한국의 간장과 된장을 만드는 과정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장가름이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장을 만드는데 중요한 중간 재료는 메주이다. 즉, 콩을 쪄서 으깬 후, 정방형으로 소성해서 말린 덩어리를 말한다. 콩의 단백질을 분해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곰팡이와 세균이 자라나도록 메주를 띄운 후에, 소금물에 넣어서 본격적으로 장을 만드는 과정이 시작된다. 이렇게 소금물에 담궈서, 50여일이 지난 후, 메주 덩어리를 건져내는데, 이 과정을 장가름이라고 부른다. 이 시점에 건져낸 메주 덩어리는 다시 약간의 간장을 부어 겔 상태로 만든 후 별도의 항아리에 보관한다. 그러면 원래 항아리 속에 남은 액체인 간장은 간장대로 숙성이 되고, 새로운 항아리에 담겨진 된장은 된장대로 숙성이 된다. 심지어 몇년에 걸쳐 양조와 숙성을 거친 후에, 각자 우리 밥상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메주로 간장과 된장을 모두 만들었으니 원소스 멀티유스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의 된장은 이렇게 나눠지지 않는다. 삶아서 띄운 콩이 온전히 간장이 되거나 온전히 된장이 되는 것이다. 특히,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의 된장(대장大醬이라 불린다)은 우선 메주를 만들어 띄운 후, 된장을 만들기 때문에, 조선 된장과 매우 흡사한 과정을 거치지만 역시 장가름은 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강원도의 보리 막장은 장가름을 하지 않고, 보리라는 곡물을 집어 넣는다는 점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된장과 비슷한 면모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간장과 된장의 결정적 차이를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간장은 된장의 ‘엑기스’, 즉 정화精華에 해당한다. 된장의 기원이 후한後漢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매우 오래된 것으로 짐작되는 반면, 간장이 출현한 것은 중국의 송宋나라 시기로 알려져 있다. 실은 간장과 비슷한 조미료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됐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된장 용기에 고인 액즙이었다고 한다(두장청豆醬清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이 액즙이 된장보다 훨씬 진한 감칠맛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액체 형태라서 조미료로 사용하기에도 편리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고, 차츰 된장에서 간장을 추출해내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알아내게 된 것이다. 또 액체상태의 간장은 미생물과 곰팡이가 만든 효소가 좀 더 활발한 대사과정을 거쳐서 다양한 화합물을 생성하도록 돕는다. 된장보다 맛이 더 복잡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중국이나 일본의 간장이라는 것은, 실은 약간의 공정 차이로, 묽은 된장 형태를 띄고 있는 겔 상태에서 간장을 추출해 낸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렇게 간장을 반복적으로 추출해 내고 나면, 감칠맛은 거의 상실하고 소금의 짠맛만을 함유한 발효 콩찌꺼기가 남게 된다. 이는 “저급한 된장”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제대로 추출이 이뤄지고 나면 직접 조미료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한다. 염분이 많아 퇴비로 사용하기도 어렵고, 일부 사료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 정도이다.


그림 1: 중국의 전통 간장 추출은 지금도 대나무 필터인 용수(chouzi篘子)를 사용한다. 간장 항아리의 중심에 고인 액체가 간장이 된다. 용수는 술을 빚을 때도 사용한다 (필자 촬영@揭陽).

그런데, 독특하게도 장가름 과정을 거치는 한국의 간장은 엑기스라기보다는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서 적절히 아미노산을 추출해 낸 액체라고 볼 수 있다. 농담을 조금 보태서 이야기하자면 옛날에 가난하던 시절 군대의 급식으로 제공되던 소고기 무국에 소고기는 부족하고, 무만 잔뜩 들어 있어서, 소가 목욕하고 지나간 물이 아니냐고 비아냥 거리던 우스갯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실은 간장보다, 걸러낸 메주로 만든 된장이 훨씬 진한 맛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은 짐작이 가능하다. 그렇게 보면 조선 간장의 장점은 분명하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버려지는 찌꺼기가 전혀 없다. 간장은 간장대로 된장은 된장대로 사람이 소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점도 명확하다. 같은 양의 콩을 가지고, 간장이나 된장을 온전히 만들어 내는 중국이나 일본의 장에 비해서, 단백질의 양이 부족하고, 아미노산, 즉 감칠맛도 부족하게 될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간장은 급을 나눌 때, 주로 아미노산 함량으로 품질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 기준에 따르자면 조선 간장은 상대적으로 저급하게 평가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된장의 경우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장가름한 된장에 메주를 추가하는 경우를 봤지만, 애초, 장가름이라는 과정이 없다면 불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오래 숙성한 조선 간장이 수분의 증발로 농도가 짙어지면서 아미노산 농도도 함께 높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원재료 농도가 높았다면, 굳이 증발에 기댈 이유가 없다.

정반대로 일본과 이에 영향을 받은 대만의 간장을 만드는 과정에 2차 양조라는 기법이 있다. 염수를 섞는 습식 발효대신, 띄운 콩을 그대로 항아리에 밀봉하여 건식 발효를 시키면, 두시豆豉라는 조미료가 만들어진다. 된장보다 더 역사가 긴 발효음식이다. 지금도 조미료로 사용되지만, 고대 중국에서 장은 귀족만이 먹을 수 있는 고급한 조미료, 두시는 그 자체로 평민들이 즐기는 발효콩 음식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나중에 염수 등을 추가해서 2차 양조과정을 거치면 간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장유醬油라는 중국 간장의 다른 이름은 시유豉油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지금은 지역에 따라서 다른 양념을 섞은 조미간장의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염수대신 간장 자체를 추가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사용되는 콩의 양이 두배가 되기 때문에, 훨씬 아미노산 함량이 많은 고급 간장이 만들어진다.

조선의 간장과 된장이 왜 “가난한 자의 양념”이었는지 이 두가지 논증으로 충분히 설명이 됐는지 모르겠다. 내가 굳이 이 점을 강조한 것은, 이런 공정상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전에 과거 조선 간장과 된장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민족주의 이념에 기반한 설명”을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점에 대해서 과거 도올선생의 시각을 비판하는 가벼운 글을 쓴 적도 있다. 물, 소금, 콩이라는 최소한의 재료와, 숨쉬는 옹기 항아리라는 도구, 그리고 햇볕, 바람이라는 자연환경에 의해서 시간의 흐름을 따라 만들어진 간장과 된장은 분명히 일종의 생태와 영성의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서사를 제공했다. 여기에 장독대라는 신성한 장소, 그리고 조선의 어머니들이 새벽 이슬이 맺힌 장독대에 올라 정안수를 한사발 떠놓고, 두손을 모아 신에게 가호를 비는 모습은, 콩의 발원지이자 하늘을 숭상하는 북방의 샤먼 전통의 기억과 결합돼 민족 신앙의 전통 문화를 뒷받침하는 훌륭한 이미지로 재현됐다. 먹거리와 생명 존중이라는 전통신앙 가치에 생태주의를 덧붙인 현대적 이념으로도 재해석 될 수 있었다.

도올 선생은 제조 방법이나 재료 등이 가장 단순한 조선의 간장과 된장의 특성을 강조하며, 중일의 간장이, 화려하지만 생활의 단순함이나 정신적 요소를 상실한 재간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설명을 했다. 나는 중일의 장류를 낮추어 보는 도올 선생의 시각이 민족주의적이라고 비판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생태주의적, 영적 상상력을 의심해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조선과 중일의 장문화의 차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한 후에는 과연 우리 장문화가 그런 정신적 특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지금의 형태를 갖게 된 것인지 아니면 그냥 가난했던 결과일 뿐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조금 더 결정적인 논증을 더하려 한다. 앞서 설명한대로 조선은 상업이 발달하지 않아서, 장을 모두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술도 마찬가지여서 문자 그대로 가양주家釀酒 전통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경우, 일찍부터 장을 상업적으로, 대규모로 제조하는 소위 장원醬園이 발전해 있었다. 중국의 경우, 특히 명청시기에 남방지역을 중심으로 그 발전상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서, 광저우에는 명나라 초기에 만들어진 중국의 4대 장원중 하나인 치미재致美齋라는 기업이 지금도 존재한다. 이 기업은 과거와 같은 영화를 누리고 있지는 않지만, 신중국 수립후 국영기업으로 살아 남아 여전히 광저우 시내에 구도심지역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수의 오프라인 매장도 가지고 있고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림 2 광저우 구도심에 위치한 치미재致美齋 기업의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지금도 동네 주민들이 “자기 병을 챙겨와 간장을 덜어서 사 갈 (打醬油)” 수 있다 (필자 촬영).

중국 대륙의 1, 2위 간장 기업인 하이티엔海天이나 추방廚邦의 경우도 원래 광둥지역 포산佛山과 중산中山에 있던 장원들이 지역의 장원들을 합병하고 세를 불려가면서 지금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사례이다. 지금은 기계화된 생산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저급한 품질의 산분해 간장을 만들고 있지는 않다. “산분해 간장”은 한국에서 여전히 상당한 규모로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화학조미료이다. 우리는 양조간장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산분해 간장을 상당한 비율로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산분해 간장은 어떤 연유로 우리의 식탁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일제 식민지 근대화 경험과 직접적 연관을 가지고 있다. 애초에 상업화된 적이 없던 한국의 장산업은 일제 식민지 시기에 일본인들의 투자와 기술을 통해 산업화와 현대화라는 변화를 맞게 된다. 그런데 2차대전 전시였기 때문에 물자가 극히 부족했고, 이때 일본인 화학자가 개발한 산분해 간장이 구원투수로 등장하게 된다. 산분해 간장은 염산을 이용해 단백질을 녹여 만든 아미노산 용액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머리카락을 녹여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실제 단백질원은 주로 수입 탈지대두가 사용된다. 여기에 염기를 더해 중화시키고, 다시 색소와 각종 간장맛 향신료, 방부제를 더해서 화학 간장을 만들어 낸다. 어디선가 들었던 비슷한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다. 바로 여전히 한국 주당들의 술자리를 벗하고 있는 희석식 소주와 같은 사연이 아닌가.

지금은 한국 사회가 부유해졌는데 왜 여전히 산분해 간장이 승승장구할까? 아마도 생산자본의 원가 절감과 이윤의 논리, 그리고 값싼 화학 조미료에 이미 입이 길든 소비자들의 요구가 맞아 떨어진 결과일 것이다. 우리는 화살을 일본 식민주의자들에게 돌리지만, 중국의 사례를 보자면, 더 큰 이유는 산업화 자체가 마침 전시를 맞은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서 진행된 우발적 결과로 볼 수도 있다. 만일 식민지 지배 이전에 우리에게 장이나 술을 상업적으로 만드는 전통 기업이 존재했다면, 독립과 전후, 그리고 특히 경제가 크게 발전해서 건강한 먹거리, 제맛을 내는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간장이나 소주를 만드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복원됐을 것이다. 우리는 애초에 그게 없었기 때문에, 산업화 시기의 저급한 식문화가 그대로 관성을 유지했던 것이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전, 우리보다 더 물자가 부족한 시기를 겪었고 심지어 대약진 운동 시기에 수천만명이 아사하는 비극이 발생한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도 산분해 간장이 발을 붙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조금만 더 깊이 살펴보자. 중국에서는 소련의 공업화 기술이 도입돼 지금도 어느 정도 활용되고 있다. 그것은 소금을 사용하지 않고, 온도를 높여서 발효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무염고체 발효 기술이다. 통상 최소 90~180일 정도는 양조를 하는 전통식 간장과 달리, 단 72시간만에 발효를 끝낼 수 있다. 문제는 온도가 너무 높아지면 효모와 유산균 같은 미생물들이 모두 죽어서, 간장 특유의 다양한 향과 풍미를 만들어 낼 수 없고 오히려 탄맛을 갖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타협으로 만들어진 기술은 저염고체 발효 기술이다. 온도를 낮추는 대신, 소금을 어느 정도 집어 넣어서 잡균의 번식을 방지한다. 이런 방식으로 15일 정도의 발효를 거쳐서 간장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 간장만큼의 품질의 제품은 생산할 수 없다. 광둥지역의 간장 기업들이 크게 성공한 것은 이런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햇살이 상대적으로 강한 남방지역, 특히 북회귀선 이남 지역에 거대한 양조 탱크를 만들어서 여전히 180일 정도의 양조를 진행한다. 물론, 항아리와 달리 거대한 양조탱크를 햇볕만으로 가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탱크의 하부를 인공적으로 가열시키는 방법을 취한다고 하는데,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값싼 간장의 대량생산을 위해 전통 장만들기 방법을 기계화, 공업화한후 어쩔 수 없이 향과 맛을 강화하는 첨가제를 넣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국에도 일본의 산분해 간장 기술이 도입된 적이 있다. 하지만, 발암물질이 부산물로 발생하는 문제가 지적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드물지만 지금도 상하이 지역에는 백간장白醬油이라는 제품이 특산처럼 팔리고 있는데 바로 검은색소를 집어 넣지 않은 가향 산분해 아미노산 용액이 바로 그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전통시대에 과연 우리의 장문화가 정말로 영적이고 생태적 삶의 상징으로 기능했었던 것인지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상상이 바로 우리의 “신성한 삶의 방식”을 파괴한 일제 식민주의자들이라는 과도한 비난의 논리로 이어진다. 일본인들이 “너희 조센징들은 반드시 희석식 소주와 산분해 간장을 먹어야 한다”고 우리를 세뇌시킨 것도 아닐 터인데, 어떻게 그랬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림 3: 주강 델타 지역인 중산中山시에 위치한 추방廚邦의 간장 공장. 항아리 대신 거대한 탱크를 이용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강한 햇볕을 쪼이며 180일간 양조를 진행한다. 전통방식을 기계화하면서 규모를 늘리고 대량 생산 체제로 전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필자 촬영).

이야기가 나온 김에 고추장에 대한 오해도 불식할 필요가 있다. 나는 과거 중국의 장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 고추장은 우리 민족에게만 존재하는 매우 특수한 양념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중국에서 흔히 문자 그대로 고추장으로 번역되는 라자오장辣椒醬은 대개 고추가 중심이 되면서 마늘 등의 몇가지 양념을 더하거나, 기껏해야 시큼한 야생 토마토를 추가해 발효한 장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즉, 중국의 라자오장은 콩 단백질 등을 이용한 아미노산의 감칠맛을 베이스로 하는 고추장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장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국 사람도 즐기는 쓰촨四川성 피시엔郫縣 두반장豆瓣醬의 정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서, 내가 큰 오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반장은 대두대신 잠두蠶豆라는 다른 종류의 콩을 사용하고 있지만, 콩단백질을 기반으로 고추라는 향신료를 더했다는 점에서는 우리의 고추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중국에 고추장과 같은 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애초에 잘못된 것이었다. 그리고, 서남 지역을 중심으로 중국 전역에는 지역마다 고추장과 같은 구조를 가진 장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콩단백질을 기반으로 해서 고추를 포함한 다양한 향신료를 섞은 장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고추, 마늘, 파, 생강, 부추 정도의 기본 양념외에 다른 재료를 구하기 힘들었던 조선 반도와 달리, 중국은 일찍부터 지역별로 다양한 향신료를 생산하거나 수입해서 사용해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갖은 향신료를 사용한 장들이 만들어져 왔고 이런 장들은 굳이 고추장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일 뿐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허난河南성에서 만들어진 수박장(시과장西瓜醬)이다. 수박장은 대두를 쪄서 띄운 후에 고추를 포함한 몇가지 향신료를 섞고, 여기에 문자 그대로 수박을 으깨어 넣어서 발효시킨 장이다. 한통에 몇만원씩 하는 고가의 과일 수박을 사용해서 일종의 고추장이나 된장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한국인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그림’이다. 하지만, 수박을 대규모로 재배해서 중국 전역에 값싼 수박을 공급하는 허난성이라면 잉여 생산된 수박을 이용해서 장에 집어 넣는다는 설명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마치 우리의 고추장에 물엿이나, 보리 등의 곡물을 당화시킬 수 있는 엿기름이 함께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냥 수박의 당분과 수분을 재료로 사용하는 것 뿐이다.

조선 간장의 검박하고 단순한 구조가 정신적 요소의 추구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는 내 생각을 뒷받침하는 다른 논거도 있다. 나는 한국 장문화를 발전시키려는 분들이 고문헌에 근거해서 전통적인 “어육장魚肉醬”을 재현하려는 사례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조선간장에 귀한 식재료인 민어, 닭, 소고기 등을 추가해서 동물성 단백질을 함께 발효시키는 실험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당연히 풍미가 증가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미 어지간한 동네 슈퍼마켓에서 홍콩의 장 제조업체인 LEEKumKee李錦記가 대량생산해서 수출하는 XO장이나 굴소스 등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이런 어육장이 어떤 의미를 갖을 수 있는 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단순함의 미식 철학을 추구하면서 조선 간장과 된장의 참맛을 살리는 것이 목표라면, 사실 어육장 실험은 고문헌 재현이나 복원과 같은 단순한 호기심 해소 차원을 넘는 의미를 갖기 힘들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굳이 새로운 맛을 창출하려는 실험정신을 발휘하려 한다면, 같은 영역에서 우리보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중국과 일본이 이미 상업화하거나 상품화시킨 사례를 참고하면 될 일이다. 오히려, 전혀 다른 식문화권의 맛의 요소들을 창의적으로 결합하려는 시도가 더 유효한 방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좀 더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와서 생각을 펼쳐보고 싶다. 내가 한국 전통 장문화의 특성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된 것은, 다음 질문에 답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연 “가난인가 빈곤인가?”라는 질문이다. 가난은 재물이 부족한 상태를 중립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빈곤은 부정적인 의미로 이 상태를 설명한 것이다. 즉, 흔히 우리가 청빈이라고 일컫는 “자발적 가난”은 가능한 선택지이지만, 그 반대편에 서있는 빈곤은 누구나 탈출하고 싶어하는 상황일뿐이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는 공공선을 추구하기 위해 도덕적 의무로 빈곤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면 도와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통 장문화는 “가난의 결과”로 해석해야 할까 아니면 “빈곤의 막장”으로 해석해야 할까? 내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반중&혐중 감정을 해석하기 위해 내가 들었던 몇가지 설명에서 비롯한다. 나는 졸저 <차이나 리터러시>에서 “르상티망”과 “경제적 기회상실의 공포”라는 두가지 이유를 든 적이 있는데, 내 책을 흥미있게 읽었던 몇분에게서 “내 생각에 그보다는~”이라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다. 그분들이 공통적으로 들었던 한국인들의 어떤 문화적 특성은 바로 ‘졸부의식’이었다. 즉, 한국인들이 한국전쟁 이후 지난 70여년간 급격히 경제규모가 성장하고 갑작스럽게 부유해졌기 때문에 이웃 나라 특히, 중국이나 다른 저개발국가과의 관계에서 마치 벼락부자가 된듯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경우에는 전통시대 오랜 기간 그 문화나 경제적 수준을 우러러 보던 처지였기 때문에, 지금은 역전된 위상을 뽑내고 있고, 한편으로는 최근 중국의 부상과 함께 충분히 길지 못했던 상대적 우위를 상실하는 것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을 반중, 혐중 감정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내 입장에서 곤혹스러운 것은 만일 이런 설명이 유효하다면, 우리 전통시대를 가난이라기보다는 빈곤이라고 해석해야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가난한 과거의 상태를 중립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부유하고 풍요로와진 지금의 상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길 것이지, 굳이 과도하게 으스대거나,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못하다고 여겨지는 남을 지나치게 업신여기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오로지 더 부유해지는 것만이 “우리 민족의 지상과제”로 여겨질뿐 “다시 가난해질 수 있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질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은 윤석열 정부하에서 “기술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기후변화 문제나 인구구조 변화 때문에 “구조적”으로 실현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가난과 빈곤의 차이에 대해서 한동안 고민을 해봤다. 빈곤선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관례에 의해서 객관적인 정의들도 존재한다. UN의 밀레니얼 개발 계획 (Millenium Development Goals)등은 인류 대다수의 빈곤을 퇴치하는 것을 구체적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또 2021년에 이미 목표를 달성했다고 선언했던 중국 정부의 부빈(扶貧)계획도 빈곤의 기준이 되는 수치와 조건을 정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통시대의 빈부 상태를 생산력이 현격하게 개선된 현대 사회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렇지 않다면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가난함과 빈곤은 문화적인 해석으로만 의미를 갖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모든 해석은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은 과거 전통 시대의 한국사회의 여러 면모를 “빈곤”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한국인들이 “졸부의식”을 부지불식간에 드러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단한 아이러니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한국의 전통 장문화를 품위있는 가난함으로 판단하고, 심지어 영적, 생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해석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실제로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생각을 의도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된 행동은 생각보다 쉽게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마 무의식적으로 “수치스럽게 여겨지는 과거의 빈곤”을 감추기 위해서 더욱 의식적으로 그것을 ‘가난’으로 포장하거나 심지어 “영적 생태주의 문화”로 미화하려고 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내가 너무 많이 나갔다고 괘씸하게 생각하실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도 동의한다. 굳이 그렇게 해석하지 않으련다.

<빈곤과정, 2022>에 대한 더 깊이있는 통찰을 살펴봄으로써 이런 모순의 근본적 원인을 파악해볼 수도 있다. 인류학자 조문영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그 공간에서 여전히 어떤 학생은 제 가난이 친구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숱한 제도적, 실천적 개입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결핍이란 지워내야 할 불운, 수치, 숙명으로 남았다. 그런 점에서 빈곤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느끼는 빈곤의 감각은 자본주의, 즉 근대의 세계를 사는 우리들에게 숙명적이다. 그렇다면 어떤 답을 나도 여러분도 원할까? 어차피 전근대의 사회와 문화를 경제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일 수 밖에 없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빈곤이나 가난의 실태와도 다르다. 우리가 그것을 “우아한 가난과 영적 생태주의 문화”로 해석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해도 나쁘지 않다. 아니 나는 이것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말 그런 해석과 결단이 필요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 이슈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으며 우리들중 그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과제이다.


그림 4: 인류학자 조문영은 자신이 20년간 관찰하고 참여한 한국과 중국의 빈곤 현장과 <빈곤 인류학> 수업을 진행하는 연세대 강의실을 하나로 엮어서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인 엘리트 학생들이 사방에 편재하는 빈곤을 “자기 부근”의 일부로 수긍(recognition)하게 만든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인류세의 빈곤”으로 생태위기속에서 인간과 ‘비인간 자연’들이 함께 겪는 빈곤 과정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과거 10년간 생태주의나 지속가능한 생활을 선전하는 활동가로서 살아왔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활동가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졌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자로서 더 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어떤 목적이나 이상, 이념 때문이 아니라, 내 생활이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심각한 영향으로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광저우라는 중국의 대도시 근교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내가 사는 동네는 반농반도半農半都의 형태를 띈 도시의 경계지역이다. 이 마을은 도심에서 매우 가깝고 교통도 편리하지만, 한편으로는 절반 정도의 토지가 과수원과 채소밭을 비롯한 농지로 구성돼 있다. 우리 집도 작은 텃밭을 가지고 있지만, 이웃 노령의 원주민들이 키우는 다양하고 신선한 채소들을 언제라도 옆집문을 두드리거나 텃밭 산책길 안부 인사와 함께 사먹을 수 있다. 또, 텃밭 군데 군데 심어진 과수에서 이를테면 제철인 6~7월에 리치 같은 이곳 특산의 열대과일을 손쉽게 사먹을 수도 있다.

그런데 올해는 정말 작황이 좋지 않았다. 유래가 없는 50일 넘는 봄장마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노지재배 채소가 밭에서 썩어버렸고, 과일 나무는 꽃이 떨어지거나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열매를 맺지 못했다. 올해 광저우 근교의 리치는 생산량이 1/10로 줄어들었다. 너무 흔해서 술을 담궜던 그 과일을 그래서 올해는 훨씬 비싼 값을 주고도 제대로 맛보기 어려웠다.

이런 이상 기후는 단지 식생활만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7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우리 마을의 중심지역에는 100년이 넘은 오래된 집들이 즐비한데, 내가 사는 집도 고건축은 아니지만 78년에 지어진 제법 넓은 정원을 가진 아담한 이층 주택이다. 비록 도시의 고층아파트 같은 번득이는 휘황함이나 현대적 편리함은 없지만 정원의 공기와 꽃나무, 각종 식물들, 그리고 이곳을 터전으로 삼는 작은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거나 바라보면서 사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일년전쯤 우리 집을 방문했던 한 한국인 손님이 “아주 단단하게 보이는 오래 된 마을”이라는 적확한 평을 남겨준 일이 있다. 낡고 누추하다는 인상보다는 여유로움과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봄의 긴 장마는 이런 행복한 일상의 기분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피었고, 벽체도 훼손이 심해졌다. 이곳저곳 많이 손봐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 외에 지역 NGO들과 도시농업 프로젝트를 많이 하는 아내도 올해는 가혹한 기후변화를 견딜 수 없는, 마을의 우리 텃밭을 방치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좀 더 민감하게 기후 변화를 느끼는 환경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외부와 격리된 사무실, 주택에 거주하는 도시민들이라고 과연 온전히 안전함을 느낄 수 있을까?


그림 5: 우리 집 정원에 서 있는 수령 60년의 드래곤아이(롱옌龍眼) 나무는 올 여름 열매를 하나도 맺지 못했다. 새벽녘 그 나무위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요즘 현격히 줄어든 것은 그 때문일까? (필자촬영)

다시 장문화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마무리지으려고 한다. 입맛과 글맛을 모두 능숙하게 요리해내는 쉐프 작가 박찬일의 글에는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것이 결국 짠맛이라고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단맛, 신맛, 쓴맛과 같은 다른 미각은 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순수하게 요리 솜씨를 겨룰 때, 간장을 쓰는 것은 반칙이라는 표현도 함께 나온다. 짠맛이 가장 중요한 기본 베이스라면, 또 음식맛에 영향을 끼치는 강력한 맛이 간장의 감칠맛이라는 설명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짠맛과 감칠맛만을 겸비한 조선 간장은 이미 최고의 요리를 만들 필요충분 조건을 다 갖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역시 주관적으로 조선 간장의 완전함을 예찬한다고 해서 크게 허물이 될 것도 없을듯하다.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흔히 왜간장이라고 부르는 일본 간장, 그 중에서도 풍부한 향과 맛을 간직한 지역의 전통 양조 간장들은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사실 현대의 미니멀리즘 미학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K문화가 아니라 J문화의 특정한 스타일이다. 예를 들어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흥미를 끄는 디자인, 특히 무인양품MUJI와 같은 브랜드의 디자인 철학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오늘날 일본뿐 아니라,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특히 크게 환영을 받고 있으며, 과잉한 물질문명에 지친 서구인들을 매료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은하철도의 밤>이라는 동화로 유명한 작가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의 <비에도 지지 않고雨にも負けず>같은 시에도 이런 정서와 사상이 짙게 베어 있다.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초가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 냉해 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현미네홉과 된장과 채소”라는 싯구는 특히 장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소박한 식단이 생활의 필요를 만족시키는데 어려움이 없음을 잘 드러낸다. 그런데, 여기서 특히 맛과 향이 풍부하고 당도가 높기로 유명한 일본쌀과 미소 된장, 그리고 채소의 조합은 겉으로 드러나는 품목의 단순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숨겨진 깊고 풍부한 맛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내가 이렇게 설명하니까, 아내는 이렇게 단촐하지만 압축적 미학을 가진 일본 밥상의 이미지를 화려하고 풍부한 중국요리 밥상 차림과 비교하면서, 확실히 중국인들은 겉으로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할말이 많은 수다스러운 사람들인 것 같다며 웃는다. 아내가 부지불식간에 한국 음식에 대한 평을 생략하는 것을 보니,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 밥상의 자리는 여전히 충분히 언어화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뉴욕타임즈나 뉴요커의 기사로 코리언 푸드에 대한 평이 늘어난다고 해도 잘 해소되지 못하는 부분이다. 만일 미야자와 겐지의 단촐한 밥상을 한국 쌀과 조선 된장, 김치나 나물 반찬 등으로 치환한다면 어떤 느낌을 받게 될까?

특히 짠맛과 감칠맛으로 대변되는 조선 된장과 여기 다양한 향기와 회감이 추가된 일본 미소 된장을 비교한다면 가장 단순한 삶의 질에도 어느 정도 차이가 존재할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도 어차피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어떤 삶의 조건에 처해있느냐에 따라서 필요와 그에 대한 만족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 글의 도입부에 소개했던 내 조부의 경우가 그러하다. 임종을 앞두고 급격하게 체력과 감각이 저하하고 있던 조부에게 어쩌면 짠맛과 감칠맛은 이미 “그것으로 충분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더 풍부하고 다양한 미각적 요소가 더해졌다고 한들, 그게 무슨 의미와 가치를 더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일본이나 중국의 장문화가 가진 다양한 형태의 풍요로움을 예찬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조선 장문화가 가진 단순함과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생태적 완전함을 예찬할 수도 있다. 필요에 따른, 주관적인 만족감의 세계에서 보자면, 장맛의 우열을 따지는 것은 부질 없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우리의 필요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 주어진 환경에서 제한된 자원을 잘 파악하고 아껴서 사용하는 것, 그리고 거기서 만족함을 아는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사족 - 중국어 표현 중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적당히 사용하던 것중에 한가지를 이번에 좀 더 정확히 알게 됐다. “선미鮮味”라는 표현이다. “시엔”발음은 성조에 따라서 짭짤하다는 뜻의 ‘함鹹’(2성)이 될 수도 있고, 신선하다는 ‘선鮮’(1성)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감칠맛을 역시 관행적으로 “시엔웨이鮮味”로 표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여전히 성조에 익숙치 않은 외국인 입장에서는 대체 “짠맛이라는 거야 감칠맛이라는 거야?” 헷갈릴 수도 있지만, 대개는 문맥을 통해서 뜻을 파악할 수 밖에 없다. 음식이 짜다는 설명은 부정적인 뉘앙스인 반면, 감칠맛이 난다는 표현은 대개 음식맛을 칭찬하면서 사용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냥 재료가 신선하다는 뜻인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감칠맛이나 깊은맛이 있다는 표현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비슷한 정도로 애매한 중국어 표현은 “향香”이 있다. 우리는 향을 이야기하면 꽃향기나 과일향기처럼 향기롭다는 문맥에서 많이 사용되는 반면, 중국인들은 음식에 ‘향’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하오샹아好香啊!“ 이것도 그냥 “음식 향이 좋다” 정도로 이해하기 쉬운데, 그보다는 조금 더 미묘하고 복합적인 의미들이 더해진다. 식욕을 돋는 좋은 음식 향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음식의 좋은 맛과 향을 함께 의미하기도 한다. 정확하게 무슨 의미냐고 중국인들에게 물어보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지 못한다. 흔히 매운 맛을 구분할 때, 화자오花椒 등을 많이 써서 얼얼한 쓰촨음식을 마라麻辣로 부르는 반면, 역시 맵기로 유명한 후난湖南 음식을 샹라香辣라고 표현하는데.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맵다는 뜻이냐고 물어보면 머리를 긁적이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내게 설명을 들려주길 원한다면, 지금은 한국인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익숙해져서 마라맛을 사랑하게 됐지만, 과거의 전통적 한국인들의 입맛에는 맵고 짠 후난음식이 더 맞는다고 말하련다. ㅎ







* 참고 자료와 영상

· 한국음식문화사, 박유미 등, 동북아역사재단, 2023
酱和酱油发展简史,谢韩, 中国轻工业出版社, 2018

· 台灣醬油誌, 常常生活文創編輯部,常常生活文創, 2016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박찬일, 푸른숲 출판사, 2012

· 日料的故事,石毛直道, 浙江人民出版社,2018

· 发酵圣经-蔬果 谷物 根茎 豆类, Sandor Ellix Katz, 中信出版,2020
https://www.chinapp.com/best/jiangyou.html 

· 酱油十大品牌排行榜
https://thetomorrow.cargo.site/31

· 동학하기와 민족주의 정서의 때를 벗기
https://www.youtube.com/watch?v=EjNvLv1MMGM

· [도올김용옥] 천天과 지地에 대하여 인人의 책임을 묻다 #간장포럼 10주년 장문화축제 "장,축제가되다"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https://www.youtube.com/watch?v=n5f8gakDs8o

· [도올김용옥] 동경대전 07 콩 물 소금, 간장 된장 고추장, 장독대는 우주의 집합체 - 1863년 12월 10일 수운이 체포되다
https://www.bilibili.com/video/BV1fZ4y1a7XS/?buvid=Y147ED1F4646DCAA40DDAC8B907703046B16&is_story_h5=false&mid=HbSPY7IrFHktyJUZi%2BLvQQ%3D%3D&p=1&plat_id=116&share_from=ugc&share_medium=iphone&share_plat=ios&share_session_id=A54E3F6A-60CD-427F-A7BD-10CA84C15CB8&share_source=GENERIC&share_tag=s_i&spmid=united.player-video-detail.0.0&timestamp=1724728928&unique_k=hnR7HwA&up_id=68566502 河南传统美食西瓜酱的详细做法,手把手教你做出小时候的味道







김유익和&同 青春草堂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을 짝지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한다. 여생의 모토는 “시시한 일을 즐겁게 오래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