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4년 11월 4일

53. ‘충칭重慶모델’은 살아있을까?



사진 출처: Foreign Policy




최근에 좀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서울에서 오신 손님 한분이 집 근처 관광지인 황포군관학교를 참관했는데, 북새통에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 나도 현장에 있었지만 우리 일행을 비롯해서 워낙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작년부터 중국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야 피부로 느끼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체감한 셈이다. 20년전 선전과 베이징에서 경험했던 중국과, 2015년 상하이로 돌아와서 다시 발견한 중국의 커다란 변화중 하나는 치안의 강화와 좀도둑 걱정이 사라진 것이었다. 혼자 외출했을 때 스타벅스 테이블위에 랩탑을 두고 화장실에 갔다 온다든가, 기차역 맥도날드에서 큰 여행가방을 두고 잠시 한눈을 파는 것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돼 좋았다. 이미 7년째 거주중인 우리 동네에서 마실 다닐 때, 어지간하면 대문을 잠그는 법이 없는 나로서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사건이었다.

이분은 참관을 마치고 나서, 소지한 작은 여행가방의 앞주머니가 열려 있는 것을 깨달았는데, 거기 넣어두었던 지갑도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혹시 해서 호텔 방으로 돌아가서 확인했는데, 다른 일행이 일정을 지속하도록 내가 이 분을 모시고 호텔로 왕복했다. 길이 막히는 통에 거리 풍경을 보면서 제법 오래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다. “충칭모델은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나요?” “아~ 보시라이薄熙來의 충칭모델이요?” 나는 당황해서 말끝을 흐렸다.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농촌의 토지 사용권을 거래소에 맡겨 보상을 받고 그만큼 도시의 택지를 개발할 수 있다는 내용이 어렴풋이 기억났지만, 같은 지역이 아니라 연안의 대도시 지역과 내륙의 빈곤한 농촌 지역간에도 거래가 가능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며칠전 읽었던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의 경제학자 란샤오환蘭小歡 교수의 인터뷰 기사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우연히도 그 내용이 다뤄지고 있었다. 중국은 매년 지역별로 상업이나 주거용으로 택지 개발이 가능한 토지 면적에 대한 지표指標가 주어지는데, 난개발을 막고 특히 식량 안보를 위한 절대 농지 면적을 지키려는 목적이 크다. 그런데, 시험적으로 인구와 개발 수요가 적은 서남, 서북의 가난한 농촌 지역과 상하이시와 같은 경제가 발전한 지역간에 이 지표를 거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단다. 이를테면 상하이의 교외 농지를 택지로 초과 개발하는 만큼 그 지표를 간쑤甘肅성에서 돈을 주고 사오면, 간쑤성은 개발이 허용된 농지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충칭모델에서 개별 농민이 자신이 가진 농촌 택지를 농지로 복구해서 사용하는 지표地票는 조금 다른 의미이지만, 이를 시장에서 유통시킨다는 것은 큰 뜻에서는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인터뷰는 이밖에도 여러가지 눈길을 끄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란교수의 표현대로라면 “미국과는 DNA가 다른 중국 경제 발전 모델”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여러 측면에서 해설해 주는 내용이었다.

나는 내친김에 인터뷰에 언급된 그의 저서 《치신사내置身事内》(2021)를 읽었는데 중국 경제 발전 모델의 과거사와 현재에 대해서 비교적 평이하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쳤는데, 이유는 이 책이 바로 ‘충칭모델’을 좀 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보시라이의 실각이후 ‘충칭모델’이라는 표현은 중국내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나중에 이해하게 된 바로는 충칭 모델의 핵심 요소는 국유기업 우량화와 기능의 다각화를 통한 혼합경제 활성화라든가 도농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호구, 주택과 토지와 관련한 경제 개혁 정책들이기 때문이다.

이 ‘중국모델’을 설명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지금 중국 경제가 직면한 여러 문제나 미래에 대한 몇가지 전망에서 출발하는 것이, 주의를 집중하기에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이해하는 바와 같이 ‘중국모델’은 지금 일종의 전환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환은 완만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만일 속도조절에 실패하면 부채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고 란샤오환은 이야기한다.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은 내부적 경제 붕괴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이 전환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단순한 관점의 프레임으로 GDP를 사용하겠다. 중국 정부의 목표는 완만한 GDP 성장을 유지하면서 GDP의 내적 구조를 전환하는 것이다. 중국의 GDP는 투자의 비중이 높고, 내수 소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과잉 투자로 과잉 생산된 제품을 수출로 유지하면서 성장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때문에 외부, 특히 미국과 계속 무역 마찰이 발생하고 있는데, 중국은 한국이나 일본, 대만과 같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세계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 커서 이런 상태가 지속가능하지 않다. 또, 역으로 외부 경제환경 변화가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지나치게 크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미국 등의 선진국처럼 내수가 이를 상당부분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내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가구 소득이 높아져야 하는데, 소득 수준별로 대책이 달라야 하겠지만, 그는 특히 하위 50%에 초점을 맞춘다. 이 계층이야말로 주로 농촌이나 중소도시에 거주하는 “보통의 중국 사람(縣域中國人)”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소득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도시지역, 특히 대도시로의 이주가 불가피하다. 인구가 밀집한 도시지역일수록 일자리도 많고 소득도 높다. 고소득층의 전문직 엘리트들이 아니라도 다양한 서비스 산업이 발전하면서 이들을 훈련시키고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이들이 도시로 이동하려면 호구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교육, 의료, 주거와 같은 사회복리와 후생도 강화돼야 한다. 그래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지방정부의 재정과 중국경제모델 전환점의 주요 요소중 하나인 부동산 문제가 여기서 등장한다. 그 중심에는 과거 20년넘게 유지돼 왔던 지방정부의 개발방식이자 재정충당의 중요한 수입원이었던 ‘토지재정’과 ‘토지금융’이 있다. 더 이상 토지개발에 의지할 수 없다면, 어떤 재정 소득원이 가능할까? 란샤오환은 그 대답으로 국유기업과 국유자산의 활성화를 언급한다. 이 자산들을 더욱 표준화하고 자본화함으로써 시장에서의 유동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야한다는 의미이다.

중국에서 지역별로 국유자산을 관리하는 기관을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국자위國資委)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직접 국유기업들을 관리했다면, 지금은 중간에 자본투자와 자본운영을 하는 플랫폼들을 각기 만들고 이들이 이사회 참여 방식으로 기업과 그 자산을 더 효율적, 전문적으로 관리하게 한다. 국자위는 이 플랫폼들의 실적만 관리하면 된다.

그는 좀더 과감하게 중국 정부가 어떻게 그밖의 공유재로서의 생산요소들을 관리하고 그 수익을 개별 국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지도 설명한다. 앞서 언급한 것이 토지와 국유자산으로써의 자본이었다면, 미래에는 데이터라는 새로운 생산요소가 더해진다. 최근 몇년간 중국 정부가 대형IT 플랫폼 기업들을 압박해서 성취한 것들중의 하나가 바로 이 데이터의 호환과 연계이다. 즉, 표준화 수준을 높이고 거대한 통일 시장을 만들어서 유동성을 높인 셈이다. 데이터가 국유 혹은 공유재로 인식된다면 데이터 사용에 대한 기업 과세가 이뤄질 것이다. 제조업에서 로봇을 이용해서 인력을 대체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생산현장에서 인력 대부분이 사라진다면 데이터와 알고리즘 (즉 AI)그리고 로봇에 과세해서 기본소득 재원으로 삼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디지털 화폐를 이용해서 시중 은행 등의 중개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전 국민의 계좌로 꽂아줄 수 있을 것이다. 금리조정, 양적완화와 같은 통화정책이나 인프라 투자와 같은 재정정책을 통해 늘린 통화가, 최종 소비자인 국민, 특히 소비성향이 강한 하위 50%의 서민들에게 직접 전달되지 못하고, 자산시장에 묶여서 거품을 증가시키는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기술의 구현과 실행에 가장 앞서 있는 것도 중국 정부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다. 중국 정부가 어떤 의미로든 사회주의 국가 이념과 체제를 유지하면서 공유재를 활용한 기업의 생산물과 그 수익에 과감히 과세해서 재분배를 실행하겠다는 의지와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 말이다. 그 정책 기조의 표현이 바로 ‘공동부유’일 것이다. 중국의 체제내 연구자가 기본소득에 대해서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처음봤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AI기술이 발달하고, 이미 무인 택시나 드론 배달이 실생활 현장에 등장한 국가이다. 경기 침체로 실직하거나 사업이 망해서 운전자로 나선 중년 화이트 칼라들이나, 신세대 농민공들을 라이더로 흡수한 긱geek이코노미(零工經濟) 규모가 가장 큰 곳도 중국이다. 만일 이 노동시장이 조만간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이제 미래에 대한 ‘장밋빛 환상’은 거두어 들이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날 차례이다. 이런 ‘중국모델’은 어떻게 등장한 것인가? 가장 중요한 전제 몇가지가 있다. 수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의 정치精緻한 관료제와 마오 시대 삼십년을 지배했던 계획경제 시스템이 그것이다. 전자가 중화문명의 정수중 하나로써 중앙집권적 전제 국가와 함께 중국인의 문화적 유전자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라면, 후자는 중국이 근대화를 위해 선택했던 하나의 방법이다. 그런데 소련의 모델을 따랐던 후자는 실패했다. 실패를 자각한 후 두 국가 모두 개혁개방을 실천했지만, 러시아는 실패했고, 중국은 성공했다. 성패를 가른 중국의 비방은 무엇이었을까?

란샤오환은 자산의 유동화와 시장화에 앞서 공유재에 대한 소유권, 사용권, 경영권을 각기 정의하고 절묘하게 분리한 중국만의 노우하우를 그 이유중 하나로 든다. 잘 아시다시피 중국의 도시 토지 소유권은 국가가 갖고 있고, 농촌의 토지 소유권은 마을 집체集體가 갖는다. 도시에 일자리와 집을 가진 도시민이든, 농촌에 경작용 토지와 택지를 갖고 있는 농민이든 그들은 사용권만을 갖는다. 사용권은 거의 영구적으로 개인에게 귀속되고, 자녀에게 상속도 가능하지만 소유권은 영원히 공유재로 남는다. 농민들은 농사를 짓고 싶지 않을 경우 기업 법인 등에 토지의 경영권을 넘겨줘서 수익배분을 받을 수도 있다. 러시아는 이런 준비 없이 시장화만을 서둘렀기 때문에 한때 대부분의 국유자산이 소수의 신흥 재벌과 범죄 집단에게 넘어갔었던 것이다. 물론 중국에서도 90년대 국유기업들이 구조조정되는 상황에서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특히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심각한 수준으로 사회 질서, 도덕의 열화와 와해현상이 벌어졌지만, 전체적으로는 그 부작용이 관리가능한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중국모델 발전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란샤오환이 중시한 계기는 바로 세제의 개혁이다. 1994년부터 분세分稅제를 시작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세금을 명확한 기준으로 나누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경제 발전도 이뤄지고 동시에 문제도 누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가 왜 이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다뤘는지 이 글의 후반부에 내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보도록 하겠다.

1978년에 선포된 중국의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것은 승포承包제이다. 조금 통속적인 표현으로는 포간包干이 더 많이 쓰인다. 중앙에서 모든 것을 통으로 관리하는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쌈싸듯이(包) 책임과 권한을 함께 각 경제주체들에게 나눠준다는 의미로 풀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래서 승포제를 범주화해서 간단히 설명하는 “농촌에서는 토지를 포간하고, 도시에서는 기업을 포간하고, 정부는 재정을 포간했다”라는 표현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 정부의 포간은 중앙과 지방정부가 장부와 재정을 나누고 각자 자기 살림을 알아서 꾸리게 됐다는 것을 뜻한다.

본격적인 포간이 이뤄진 것은 시험기간인 80년대 초반을 거쳐 93년까지인데, 이때 각 지방정부는 자기 관할의 국유기업과 함께 농촌에 생겨난 향진鄉鎮기업 등 민간 경제가 활성화하면서 엄청난 성장을 이루고, 짭짤한 세수를 얻게 된다. 특히 홍콩 자본가와 화교들의 투자를 받은 광둥성같은 곳은 벼락부자가 됐다. 반면 계획경제 시절 파이를 나눠주던 역할을 하던 중앙정부는 이번엔 지방에서 생색내듯 올리는 잉여 세수에 만족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이 때 지방정부는 중앙으로 올려야 하는 몫을 줄이기 위해, 기업에 불법적인 감세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재정 세입을 줄이고, 대신 다양한 준조세를 통해 이 돈을 다시 거둬들여 딴주머니를 챙기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해 분세제를 입안한 중앙 정부는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각 성을 돌며 성장들을 협박해 동의를 받아내는 방식으로 이를 관철했다고 한다. 중앙이 더 많은 몫을 원하게 된 것은 결국 더 많은 권력을 원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읽히지만, 격차가 많이 나는 지역간 부의 재분배와 전반적인 개혁 추진 비용의 필요, 그리고 군과 같이 지방이 아니라 중앙이 직접 관리하는 국가 기능을 유지하거나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있었다. 핵심은 부가가치세였는데 75%의 세수를 중앙에서 가져갔다. 2002년부터는 원래 지방 정부에 전적으로 남겨뒀던 기업 소득세도 다시 60%를 중앙이 가져가기 시작했다. 이유는 지역별로 세금을 거두기 좋은 상품들, 예를 들어 술, 담배 등을 지역의 기업과 브랜드만 선호하는 관행때문에 전국 통일 시장을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을 여행하다보면 별로 품질에 차이가 없는 값싼 지역 브랜드 맥주를 가는 곳마다 발견할 수 있는데, 이와같은 과거 관행의 유산으로 볼 수도 있다. 지금도 지역간 경쟁에서 과잉 중복 투자가 일어나는 현상에서 비슷한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어지간한 성마다 자기 브랜드를 가진 경쟁력 없는 자동차 제조기업들이 과거에 많이 있었고, 최근에는 다시 수십, 수백개의 전기 자동차 브랜드들이 생겨났다. 어쨌든 지금은 통일된 전국 시장의 존재 때문에 이런 기업들도 예전보다 빠르게 시장에서 도태되고 정리된다.

세제 개혁은 주머니가 얄팍해진 각 지방 정부들이 경쟁적으로 기업을 유치하고 육성해서 더 많은 세수를 얻고,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한 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민생보다는 투자와 생산에 치중하고 나아가 그 규모의 빠른 확대를 중시하는 풍토도 이때부터 형성됐다. 특히 부가가치세는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오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생산자로부터 거둬들이기 때문에 기업의 존재가 더욱 중요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경제 성장 초기에 민생보다 생산에 치중하고 노동보다 기업을 중시하는 것은 어떤 자본주의 시장경제 국가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이긴 하다.

기업유치의 가장 기초가 되는 조건은 바로 공단의 조성을 위한 토지와 인프라였다. 이를 7통通1평平이라고 부른다. 상하수도, 전기, 도로, 통신 등이 통通해야 하고, 공장과 창고를 짓기 위한 토지 기초의 평平탄화 작업도 이뤄져야 한다. 해당 토지가 농지나 택지였다면 사용권이나 경영권을 매입하고, 기존 건물도 철거 해야한다. 그래서 지방정부가 토지를 개발하는 사업을 벌이기 위해서는 재정예산외의 자금이 필요했는데, 중앙 정부에 덜어 주고 남은 세수로는 경상경비 재정에 사용하는 것으로도 빠듯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외 수입으로 토지의 사용권을 기업에 넘겨주는 대가를 받기 시작했고, 또 별도의 융자플랫폼을 만들어서 은행의 대출을 가져왔다. 지금 중국 경제 모델에서 전환되어야할 핵심 요소중 하나로 여겨지는 지방정부의 ‘토지재정’과 ‘토지금융’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지방정부는 법규상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고, 그래서 만들어진 융자플랫폼을 약칭으로 ‘성투城投’라고 부른다. 이런 성투회사는 각급 지방 정부 레벨까지 중국 전역에 수천개가 존재하고 한때 8천여개에 이르기도 했다. 토지개발뿐 아니라, 각종 인프라 단위 프로젝트별로 쪼개어 만들어지기도 했으나 지금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시 통합 정리하는 추세로 2024년 9월 기준 3천여개 정도로 추산된다.

기업유치는 공업화를 의미하는데 토지개발이 도시화도 촉진시켰다. 기업 유치를 위해 공업용 토지를 매우 저렴하게 공급해야했기 때문에 지방 정부가 토지개발로 얻는 이윤은 은행 이자를 갚기에도 버거운 수준이었다. 그래서 상업용, 주택용 토지를 함께 개발해서 민간에 넘겼는데, 수요가 넘치니 공업용에 비해서 몇배나 비싸게 받았다. 중국의 과도하게 비싼 대도시 부동산 가격은 이런 원가 요소와도 관련이 있다. 어쨌든 공업화와 함께 도시로 인구가 몰리기 때문에 도시화는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밖에 없는 일이기도 했다.

1994년부터 시행된 분세제가 자연스럽게 공업화와 도시화를 촉진하고 수출 경제를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했다면 생산 투자과잉, 부동산 거품, 채무 문제를 본격적으로 불러일으킨 것은 2008년 국제 금융위기였다. 80년대의 내수형 향진기업 주도 경제에서 이미 동남부 연안 제조업체들의 수출주도형 경제로 전환된 상태였기 때문에, 해외 수요 감소가 중국내에서도 큰 경제 위기로 작용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4조위안 규모에 달하는 엄청난 재정을 풀었는데, 이중 2조 8천억 위안은 지방정부가 부담했다. 중국은 급한 국내 경제 위기를 넘기고 동시에 “세계 경제의 구원자”라고 미국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렇게 팽창한 통화가 국내적으로 돼지고기 가격 상승 등으로 나타나는 인플레이션에 화들짝 놀라서 신용억제책을 펴기 시작했다. 그런데 2012년부터 정부 규제를 받는 은행장부외에 기록되는 실질적인 대출인 소위 쉐도우 뱅킹shadow banking (은행에서 판매한 신탁상품이 주가 됐다.)이 늘면서 부동산 거품과 부채가 계속 증가했다.

중국 정부가 생산투자 과잉과 부동산 문제 그리고 부채 리스크를 해결하면서 완만한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본격적인 전환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한참 이른 2016년부터라고 한다. 그때부터 부동산 관련해서는 은행 대출을 포함한 신용증가 억제책을 사용해오고 있는데 중국의 금융상품과 이를 운용하는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기 때문에 규제가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중국의 각종 신용상품은 한두개의 노드를 따라 들어가면 결국 은행, 그리고 그 은행을 소유한 정부라는 채권자로 귀결되게 돼 있다. 그리고 외채규모도 매우 적다. 결국 중국의 금융자산과 이를 경제의 어떤 주체에게 신용으로 공여해서 활용하도록 하는가는 정부가 자본을 어디에 분배할 지 결정하는 문제로 볼 수도 있다.

나는 최근에 이 문제를 피부에 와닿게 느낀 적이 있는데, 거래 은행 직원에게 연락을 받게 된 것이 계기였다. 아주 오랜기간 매우 저금리의 예금상품에 넣어둔 약간의 자금이 있었는데, 담당 은행 직원이 이를 보험상품으로 갈아타라고 권유해줬다. 중국의 은행 금리는 중국 정부가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고 반면 지나치게 높은 민간의 저축율을 낮추기 위해 시장금리와 상관없이 정부의 정책 방침에 의해 고의적으로 매우 낮게 유지되고 있다. 팬데믹 이후 부동산 경기 등이 위축되면서 주위에도 직장을 잃은 이들이 프리랜서 보험설계사로 변신해서 금융 상품 판매에 열중하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은행이 조직적으로 그 대열에 가담한 것은 조금 의외였다. 외부의 자금도 아니고 자기 은행 계좌에 넣어둔 돈을 보험회사 상품 계정으로 이동하라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보니 불경기 때문에 민간 기업들이 투자와 대출을 꺼리기 때문에 은행이 자기 계정의 자금을 운용하는 것도 골치거리일 것 같았다. 차리라 훨씬 더 장기투자에 해당하는 보험상품으로 옮겨 타게 하면서 판매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 은행입장에서는 더 이득이 되는 모양이었다. 20여년전 소위 유니버셜universal 뱅킹을 운위하면서 예대마진대신 다양한 금융상품 수수료에서 수익원을 찾던 한국의 은행들이 생각났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역시 국유기업인 이 대형 보험사들은 그럼 이렇게 들어온 장기 자금을 대체 어떻게 운용한다는 말인가? 질문을 던졌더니 은행직원이 간단히 대답했다. “아마 중국 국채에 투자할 거예요.”

그런데 2018년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갈등, 2020년의 코비드와 그 이후의 미중신냉전이 겹치면서 수출규제가 심화되는 가운데 부동산과 부채 문제 해결은 진척이 더디다. 신용 팽창을 억제한 상태에서 수출도 갈수록 제한을 받으니 경기가 냉각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다시 소득과 소비 증가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증시를 포함한 자본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해서 증시가 잠시 과열되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10조위안 가량은 중국 정부가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10년이상 자금을 묶어 둬야, 적절한 금리가 보장되는 보험상품은 일부만 매입하기로 하고 남은 자금은 다시 예금으로 되돌렸는데, 며칠 후 그 은행직원은 내게 다시 전화를 걸어 중국 정부의 새로운 정책과 증시활황을 언급하면서 펀드 투자를 권유했다.

문제해결을 위한 중국 정부의 노력중 하나는 그린 테크놀로지나 AI 등 첨단기술에 대한 지속적이고 과감한 투자이다. 중국은 실리콘 밸리 등에서 볼 수있는 규모가 큰 벤처투자 금융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도 정부가 주도해서 만들어냈다. 즉, 미국 시스템을 모방해서 금융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기술 사모펀드를 만들었고, 여기 전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지방정부와 국유기업들이었던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국유자본투자 기관이 이 시스템을 의미한다. 미국 등이라면 투자자로 연기금과 같은 공적 펀드가 참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하이테크 산업이 기술력을 갖춘 기능공이나 엔지니어들의 소득을 올려준다고 해도 이는 한계가 있다. 더 이상 제조업이 노동자들에게 대규모 일자리를 제공하는 시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앞서 얘기한 대로 하위 50%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자리는 란교수가 제시하는대로 아마도 규모가 작은 민간기업으로서 AI나 로봇이 대체하기 어려운 다양한 종류의 대인 서비스업이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수입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충분히 높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에 대한 요구는 필수적이 된다. 또, 복리후생 강화도 꼭 필요하다. 임대주택 등을 통해서 주거문제도 해결해줘야 안정된 생활이 가능하고, 또 저축율도 낮출 수도 있다. 중국의 도시 청년들도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에 노후 양로문제도 해결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행간을 읽어 보도록 하겠다. 경제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한 내 해석이므로 너무 믿지 않아도 좋다. 란교수는 자신이 중앙 정부에 정책을 제안할만한 입장에 있는 연구자는 아니고 다만 차분히 과거와 현재를 관찰하고 분석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주로 경제 운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정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메커니즘 설명과 함께 어떻게 중국 경제 모델이 변천해왔는지 그 구체적인 역사를 사례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내가 주목한 그의 경제 서사의 서술 방식은 여러 경제 주체나 경제 행위가 서로 어떻게 연계돼 있는지,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중앙 정부 vs 지방 정부, 중국(내수) vs 국외(수출), 소비 vs 투자, 투자 vs 융자, 토지 vs 사람, 민생 vs 투자와 생산 등이 그런 사례이다. 그는 경제 발전의 목표와 과정을 분리해서 봐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를 다른 식으로 풀어 말하자면 구조(structure)안의 행위주체(agent)들이 과정(process)속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변치 않는 것은 장기적 목표일뿐이다. 즉, 경제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그 시점의 필요에 따라서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고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그렇게 진행을 하다보면 발전과 진보가 이뤄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균형이 깨지고,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이를 수정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그러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지만,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균형이 깨지고, 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은 계속 동적으로 변화하는 프로세스이고, 그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과 방법, 제도, 그 주체들의 행위능력도(agency)도 계속 변화할 수 밖에 없다. 외부에서 가져온 것이든, 내부의 과거 경험에서 만들어진 것이든, 총체로서의 ‘답정너’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후의 올바른 해석을 위한 모델로써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투자와 융자에 대한 이야기도 이렇게 설명이 가능하다. 중국은 미국처럼 금융 시장, 특히 직접금융을 실행하는 자본시장이 발달돼 있지 않기 때문에 초기에 정부의 역할, 특히 우리가 관치금융이라고 부르는 은행을 통한 융자의 역할이 클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공유자산, 국유자산의 생산성과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를 잘 표준화해서 민간도 참여하는 시장내의 유동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것이 필수적인 조건이다. 다시 말해서 자본시장을 육성하고 자산을 금융화하는 것인데, 1971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지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자본시장이 1980년대 이후 이렇게 발전한 것이 바로 지금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중요한 측면이다. 좀 과장되게 이해하자면 지금도 구조적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화의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란교수는 그래서 융자를 투자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빠르고 과도한 전환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 올 것이므로 이 과정은 천천히 진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가야 할 길이긴 하지만, 중국의 실정에 맞는 페이스와 방식이 선호된다는 것이다. 무슨말인지 추정해보자면 외국 자본에 대한 개방도 제한적일 것이고, 파생상품과 구조화 상품을 비롯해서 지나치게 복잡해서 규제가 어렵고 레버리지가 높아 투기성이 강한 상품의 판매는 아마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란교수가 DNA의 차이 같은 것이라고 본질주의적인 주장을 펼치면서, 100%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분은 역시 “정부 vs 민간, 나아가서 개인”의 관계이다. 아마도 그것은 정치제도와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경제 모델에 대해 그가 풀어낸 역사적 서사가 중앙과 지방 정부간의 파이 다툼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분세 정책에서 시작된 것처럼, 이 책의 마지막 총정리 부분에서는 개인이 부담하는 소득세가 언급된다. 특히 영미권 사회에서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개인의 소득을 추적하는 것이 엄청나게 많은 노력과 자원을 요구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하면서, 그래서 중국 정부는 여전히 기업을 통해서 세금을 걷는 것을 선호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방식은 미래에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적, 정치적 자유도가 높아져도 개인에게 권한(생산수단의 소유권)과 책임(생산수단을 활용해서 얻은 소득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하는)을 부여하는 것을 중국 정부(즉 공산당)는 선호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경제적 권한은 정치적 권한과도 연결될 수 밖에 없다. 영미식 관점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말하자면 정치적 참여라는 것의 상당부분은 내가 낸 세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서 권리를 주장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로 중국에서 2006년에 농업세가 폐지된 사실을 놓고 본다면, 농민들에게 생산수단의 사용권을 부여하면서도 어차피 시장가격도 낮고 GDP 기여도가 적으니 세금은 내지 않아도 된다는 국가의 시혜에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농민들에게 영원히 참정권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은근한 암시에 분개해야 하는 것인지, 쉽사리 판단하기 어렵다. 란교수는 (지방) 정부의 모델이 ‘생산형’에서 ‘서비스형’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하는데, 물론 제조업에서 복리후생쪽으로 정부의 투자형태를 바꿔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또, 정부나 공공 기관이 주민을 대할 때, 고객을 상대하는 기업 경영 마인드를 필요로 한다는 한국에서도 오랜기간 익숙해진 신자유주의적 서사가 연상되기도 한다. 아마, 정부(중국에서는 공공으로 등치되는)의 절대권력을 상수로 놓고, 최대한 민의를 수렴하는 방법은 서비스형 정부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어수선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충칭모델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충칭모델에는 위에서 설명되지 않은 다른 요소들이 있다. 충칭이라는 도시가 상징하는 특성은 내륙의 거점지역이라는 것이다. 동남부 연해지역 뿐아니라 내륙의 거점지역들을 공업화, 도시화하는 프로젝트, 중국의 지역균형 발전은 란교수와 같이 시장의 힘을 중시하는 상하이의 지식인들이 잘 거론하지 않는 주제이다. 란교수도 내륙 지역, 농촌 지역의 GDP 규모를 키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인구는 순유출되지만 기계화, 규모화로 농업생산성이 높아지고, 생태 관광, 역사 인문 관광이 활성화된다면 자연스럽게 내륙지역과 농촌지역의 1인당 GDP가 올라갈 터이니, 지역간 균형은 GDP 규모가 아니라 1인당 GDP를 목표로 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조언한다.

그렇다고 그가 지정학적 필요에 의한 균형발전 어젠다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일대일로를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대신 과거의 삼선三線개발의 사례를 들어 그 효과를 설명한다. 삼선개발은 중소분쟁이 격화할 당시 전쟁리스크를 감안한 공업기반의 내륙지방, 농촌지역으로의 분산 역사를 말한다. 군수산업(즉, 중공업) 기반 시설뿐 아니라 노동인력, 학교와 연구기관도 함께 이동시켰다. 만일 평화와 번영시대의 경제적 성과라는 단순한 잣대로 이를 보면, 안보리스크 때문에 경제 효율성을 희생시키는 다소 극단적인 행동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란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이 정책이 결과적으로는 훗날 개혁개방 시기에 다른 부수적 효익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내륙의 농촌지역에서도 농민들이 자연스럽게 공업화된 환경을 접하게 됐는데, 이는 농민을 문화적으로 노동자로 재교육시키는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즉, 개혁개방후 내륙을 비롯한 농촌 지역에서 향진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삼선개발 당시 내륙 농촌으로 이동했던 공업기반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90년대 이후 연근해 지역에서 수출형 산업이 급속히 성장할 때, 농촌에서 이미 문화적으로 공업환경에 익숙해진 노동인력, 즉 농민공들이 큰 거부감없이 대도시로 이주할 수 있는 심리적 환경을 만들어 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내륙지역 혹은 농촌지역을 중시하는 충칭모델은 그렇다면 진화하는 ‘중국모델’에서 이런 조연의 역할로만 남아있을까? 그렇지 않다. 서북지역을 기점으로 하는 ‘일로’, 그리고 동남아로 연결되는 서남지역을 출발점의 하나로 삼는 ‘일대’가 모두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의 핵심 거점인 이들 지역에 돗자리를 깔아준다. 마찬가지로 외부의 매체에서는 거의 주목을 하지 않는 ‘향촌진흥 전략’도 여전히 중국 정부의 주요 정책중 하나이다. 광활한 중국 농촌 지역에 대해서 아직도 필요한 인프라 투자가 남아 있다고 주장하는 지식인들이 적지 않다. 여기서 ‘농촌지역’이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는 농업생산지대가 있는 진짜 ‘농촌’과 인구 100만 미만의 중소도시(현성縣城,향진鄉鎮)가 결합된 현역縣域을 의미하는데, 한국적인 해석으로는 오히려 도시와 농촌의 거리가 가까운 ‘지방’이라는 표현이 더 와닿을 수도 있다. 이밖에도 향촌진흥 전략에는 삼농문제에 주목하고 생태문명을 중심으로 하는 농촌과 농업의 발전 계획이 있으며, 그 외연에는 민간이 주도하는 아래로부터의 조직화와 실천을 강조하는 대안흐름인 ‘신농촌건설 운동’과 같이 더욱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원톄쥔같은 활동가형 지식인 참여자도 있다.

충칭모델의 마지막 요소는 사회주의 정체성을 포함한 이념적 프로파간다 강화라고 한다. 마침 최근에 전 오스트레일리아의 총리이자 중국 전문가인 케빈 러드 Kevin Rudd가 ‘시진핑 사상’을 면밀히 분석한 새로운 책을 출간했다. 그에 따르면 시진핑은 여전히 막시즘과 레닌이즘의 견결한 신봉자이고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 역사관속에서 마오와 덩의 시기를 거친 후에 지금이 다시 이념적인 강화가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념은 서구적 근대화의 한 축으로서의 공산주의뿐 아니라 중화문명의 여러 전통에 기반한 사상적 요소로도 뒷받침된다. 이런 사상적 강령을 통해서, 시진핑은 “중국내에서 새롭게 등장한 자본가 계급을 억제해서 부를 적절히 재분배하고,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사회를 와해시킬 가능성을 가진 서구 자본가 계급의 사상적 요소들을 배격하고 있다”. “헌법적 민주주의와 권력분할”을 포함하는 ‘자유민주주의’나 ‘시민사회’, ‘보편가치’, ‘언론의 자유’와 같은 개념들이 그 대표적인 요소들이다. “시진핑과 그의 전략가인 왕후닝은 중국 전통사상의 재건을 통해, 사회를 극심한 진영간 대립으로 몰아넣고, 허무주의와 소비주의의 만연속에 스스로 와해되어가는 현대 서구사회의 사상적 요소들이 중국 사회를 이런 혼란으로 몰아넣지 못하도록 방파제를 구축할 것이다”.

케빈 러드의 설명에 어디까지 동의하든지 상관없이, 시진핑의 중국은 충칭모델을 완벽하게 계승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보시라이를 “실패한 시진핑(没上台的习近平)” 혹은 시진핑을 “성공한 보시라이”라고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적절한 비유인 것 같다.

지금은 상하이 푸단대학교에 재직하는 란교수는 80년생으로 가난하고 편벽한 내몽골의 작은 마을에서 자라났다고 한다. 물론 학창시절 이후로는 베이징, 상하이, 선전, 우한, 다리엔 등과 같은 중국의 여러 대도시에서 생활했을 뿐아니라 미국에서 7년가까이 유학 생활을 보내기도 했다. 그가 《치신사내置身事内》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2년가까이 지방정부의 기업유치 전략을 컨설팅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인데, 이 과정에서 지방 정부 공무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은 중국 정부가 경제활동의 내부 참여자로 임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역시 82년생인 LSE(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JIN Keyu金刻羽 교수를 떠올렸는데 그는 중앙정부 재정부 장관 출신인 아버지를 가지고 있고,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뉴욕의 투자은행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런던에 머물며 “중국 모델”을 서방세계에 설명하는 일을 하고 있다. ’홍색귀족’인 진커위가 주로 자신이 가진 베이징 중앙 정부 네트워크와 서구의 최상급 엘리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이해하는 “중국모델”과 ‘평민’ 출신으로 지방정부와 협업하는 경험을 축적한 란샤오환이 이해하고 설명하는 “중국 모델”에는 어떤 미세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또 한가지, 현대 중국이 겪어야 했던 급진적 이념의 시대, 즉 마오시기를 경험해보지 못했고, 그 이후 전환기에 벌어졌던 천안문 사태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이들 80허우 지식인들이, 중국과 서구 사회를 모두 살아보고 현재시점으로 관찰할 수 있는 입장에서, ‘충칭모델’ 특히 마지막 요소인 프로파간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그 답이야 어찌됐든 아마도 10년이 더 지난후, 아마도 미국과 중국의 GDP 총량이 비슷해진 이후의 중국을 이끄는 것은 이미 50대에 접어들었을 이들 80허우 엘리트들일 것이다.







참고자료와 영상


· ‘충칭모델’의 등장과 성과, ‘중국모델’의 혁신의 관점에서 본 함의, 이홍규,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3호

· 专访兰小欢: 影响中国经济要点很多, 先从收入增长谈起 | 文化纵横 https://mp.weixin.qq.com/s/MGEIMXtbM2sE0Xs9-fioZA

· 《置身事内, 中国政府与经济发展》 兰小欢,上海人民出版社, 2021

· China’s real intent behind its stimulus inflection
https://www.ft.com/content/008443cd-bb44-4b4f-b60e-17894fdba221

· “消费能力严重外流”, 我看透中国经济乏力的直接动因 | 文化纵横
https://mp.weixin.qq.com/s/oXF3QWPKV9_X9pYrjXjs5A

· 大资本垄断农业政策资源,普通人创业是否还有出路?【温言铁语】
https://www.youtube.com/watch?v=8NuMYV-F0dE

· The Red Threads Of Xi’s China
https://www.noemamag.com/the-red-threads-of-xis-china/ 

· "On Xi Jinping: How Xi’s Marxist Nationalism Is Shaping China and the World" by Dr. Kevin Rudd AC
https://www.youtube.com/watch?v=aGq-A6Ap8oI&t=67s

· 没有上台的习近平:薄熙来是如何失败的?
https://www.youtube.com/watch?v=zsOYK-sb3Qo 

· What makes the Chinese economic model special? A conversation with Keyu Jin
https://www.youtube.com/watch?v=zPoF7LQ3lmM







김유익글읽고, 영상물 보고, 이곳 저곳 쏘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쓴다. 중국인 아내와 광저우 근교의 오래 된 마을에 살면서 주강 델타의 역사와 현재를 공부하고 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국경을 넘나들며 살아봤던 여러 지역과 동네의 정체성을 가진 채 경계인으로 살고 있다. 이국 땅에 정주하고 있지만 어머니의 고향인 남도의 정체성에도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