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5년 3월 11일
55. <강릉산신제>라 부르면 안 될까?

“한국도 춘절을 지내는 거죠?” 올해도 어김없이 똑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중국인들은 춘절 전날인 제석에 가족 친지들이 함께 모여 거하게 식사를 한다. 결혼 5년차이고 이미 다섯번째 참석하는 것인데도 같은 질문을 하는 처가의 친척 어르신이 있다. 나쁜 의도는 없다. 몇달만에 보는 것이라 의례적인 인사치레일뿐이다.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끼리 “점심 먹었어요?” 묻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올해는 나도 좀 단호하게 대답했다. “한국도 설을 쇠긴 하지만 별 의미는 없어요. 그냥 공휴일일뿐입니다.” 그리고 길게 설명을 덧붙였다. “춘절(설)이라는 것은 농경사회의 생활 습속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요. 한국은 이미 도시화가 진행된지 오래인지라, 설이 사람들의 생활속에서 큰 의미를 갖기 힘든 것 같습니다. 양력 1월 1일이야말로 한해의 시작과 끝을 가름하는 시점이지요. 또 가부장적 대가족 제도에 기반한 문화적 관습도 거의 사라지기 직전이예요. 긴 연휴라 가족모임을 갖는대신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아요. 2천년대 들어서부터 흔하게 볼 수 있게 된 명절풍경입니다. 중국사람들도 몇년전부터는 이런 선택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던데요.”
예전 같으면, “한국에도 설이 있어요. 우리도 음력 절기를 사용합니다.”라고 짧게 답변하고 말았을 터인데 올해는 이런 퉁명스러운 답변을 준비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연초 우연히 본 중국 뉴스가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중국은 올해 춘절의 전통문화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했는데, 한국인들이 또 투덜거리지 않겠냐고 비아냥거리는 인터넷 논객들이 좀 있었다. 중국인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불편했지만,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위의 답변에 모두 담지 못한 속내는 다음과 같았다. “우리에게 설이 있기도 하고, 원래 그 습속이 중국에서 유래한 것도 맞지만, 시대가 바뀌어서 이제 우리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당신들하고 원조 다툼을 해야할 이유가 우리에겐 없다고요. 이제 속이 시원한가요?”
아내는 조경학과 교수이지만 학교에서 무형문화재와 관련한 과목도 가르친다. 중국의 조경학에는 전통 정원의 경관이나 고건축 분야가 포함돼 있고, 이 지식 영역은 전통 의례나 장인들의 기술과 연관돼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내의 동료나 친구들중에 중국에서는 비유非遺(비물질문화유산)라 불리는 무형문화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들이 많다보니 가끔식 이런 질문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 정부는 문화유산 관리와 등재에 아주 열성적인 것 같아요. 특히 그 단오절은….”
몇번 이런 질문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 한중관계 문제에 대해서 친절하게 그리고 열심히 장광설을 풀었다. 사실은 어떤 오해가 있는지 왜 이렇게 문제가 복잡해진 것인지.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단호하게 답변을 했다. “제가 이 문제를 다루는 한국 공무원이라면 UNESCO에 명칭 수정신청을 할 거예요. <단오제> 대신, 차라리 <강릉산신제>로 불러달라고요. 이렇게 이름을 바꾸면 더 이상 논란이 없을 터인데 말이죠. 강릉단오제는 중국 남방의 단오절과는 별 관계가 없어요. 그냥 음력 5월5일에 거행될 뿐이죠. 강릉이라는 한 지방도시의 신령들을 모시고 굿을 하는 날입니다.” 아내도 옆에서 거든다. “제가 무형문화제 과목을 가르칠 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단오제와 관련해서 보고서를 쓴 학생이 있었어요. 조사를 해보니, 중국에서의 단오절 유래도 밝히고 있지만, 실제 내용적으로는 강릉 지역의 설화, 풍습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어서 중국의 단오절과 겹치는 내용이 없더라고 하더군요. 작년에 남편과 함께 강릉에 갔을 때, 단오와 관련한 사당들도 찾아가봤습니다. 실제로 무당들이 자신을 찾은 고객들을 위해 가벼운 굿을 하고 있더라고요.”
아마 강릉단오제의 내용을 잘 모르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도 같은 오해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졸저 <차이나 리터러시>에 단오와 관련한 한국인들의 오해를 거론한 적이 있다. 내가 사는 광둥성에서는 단오절이 무척이나 중요할뿐더러 이를 기념하는 특유의 풍습들이 적지 않은데, 한국인들이 이를 알게 되면 꽤 놀랄 것이고, 중국인들이 왜 그렇게 흥분하는지 이해할 거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를 본 한 지인이 좀 더 결정적인 제보를 해줬다. 사실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라는 것이다. 요는 한국의 강릉 단오제는 지역의 산신제이고, 중국의 단오절과 정말로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강릉에 여행을 간 김에 두눈으로 이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고, 아내도 함께 산신각을 찾았다.
그렇게 오랜 기간 양국간에 문제가 되고 있는데도. 99%의 중국인도 한국인도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내용을 알고 보면, 강릉단오제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애초에 한중간에 문제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안이었던 것이다. 나는 왜 이런 사실이 한국이나 중국 양국 모두에서 언론, 문화, 학술, 외교채널 등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크게 거론되지 않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지금 얘기한 것처럼, 중국에서 문화유산을 제법 전문적으로, 학술적으로 다루는 이들조차 이 사실을 모르고 여전히 한국 사람들에게 가볍게나마 시비를 거는 실정이니 말이다. 그래서 차라리 우리가 이름을 바꾸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강릉 산신제가 <강릉단오제>로 불리든, <강릉굿판대축제>로 불리든 이를 가장 중시할 강릉현지 주민들에게 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 것인가?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이 무척 나이브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런 갈등이 기인한 문제의 근원은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왜 이렇게 전통문화 종주권에 집착할까? 혹자는 중국 정부의 과도한 애국주의 선동때문이라고 이야기할지 모른다. 내가 보기엔 반만 맞는 말이다. 중국인들이 자기네 전통문화를 아끼고,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야 그들의 문제이고, 이런 문제가 왜 하필이면 한국과 중국사이에만 이렇게 민감해진 것일까? 예를 들어 베트남도 중국과 조선반도만큼 특수한 역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고, 중국에서 유래해서 중국과 공유하는 전통문화가 한국만큼 많은데도 말이다.
중국인들이 전통문화 종주권을 가지고 한국에 시비를 걸게 된 것은 지적재산권 문제와 더 연관성이 깊다. 그 동기가 주로 한국인들이 중국의 산업과 문화를 바라보면서 ‘짝퉁’이라고 비웃은 것에 대한 반격이기 때문이다. 과거 중국에서 몇차례에 걸쳐 한류가 크게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고, 한국인들은 이를 크게 기뻐하면서, 한편으로는 중국의 대중문화수준을 크게 얕잡아봤다. 실제로 중국 대중문화계는 10여년간의 한류의 영향때문에 한국의 대중문화를 무분별하게 모방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중국에 대한 우월감에 젖어있던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에게 크게 모멸감을 주는 방식으로 이를 비웃었는데, 반격의 기회를 노리던 중국인들에게 가장 손쉬운 저격 대상은 한국의 전통문화였던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한복과 한푸논쟁인데, 구체적으로 명의 것을 모방한 조선 관료들의 복색이 문제가 됐다. 이밖에도 한국의 전통문화와 관련한 많은 요소들은 확실히 중국의 것을 약간만 변용한 것도 적지 않아서 (예) 전통매듭) 중국의 종주권 주장에 반박을 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 하지만 어떤 요소들은 인류공통의 유산에 가까워 그 기원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수 밖에 없다. 김치와 파오차이 논쟁이 그러한데, 절임 채소, 발효 채소라는 것은 원래 전세계 어느 지역에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인들 대다수도 다진 마늘을 엄청나게 집어 넣고, 맵지 않고 색깔만 붉게 고운 한국식 김치를 중국의 지역별로도 많이 다른 자기네 파오차이와 혼동하지 않는다. 어쨌든 전통문화와 관련한 중국인들의 과도한 지적재산권 주장은 문화유산 지정과 같은 영역으로 확장돼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낳고 있다.
왜냐하면 문화유산, 특히 세계문화유산 지정은 지금 중국이나 한국 사회가 경쟁적으로 다루는 것과 다른 목적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우선 원론적으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의미 자체는 특정 민족이나 국가가 아니라 인류가 공유해야 하는 훌륭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기리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문화유산에 대해서 배타적으로 독점성을 주장하는 국가가 있다면, 굳이 UNESCO에서 이를 보호하고 관리해야 할 이유가 없다.
두번째로 문화유산지정이라는 제도는 대개 사회, 문화의 변화와 시장의 압력속에서 파괴되는 유적이나 도태되는 기예를 보존하고자 하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상업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고,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지적재산권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것이다. 그래서 중국 길림성의 돌솥비빔밥 무형문화재 등록은 굉장히 희극적인 일이다. 한국 언론은 이 문제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서 분노를 쏟아냈는데, 나는 조금 다른 식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돌솥비빔밥 무형문화재 등록이 한국 언론의 눈에 띄게 된 계기는 중국의 한 비빔밥 프랜차이즈 업체가 팬데믹과 불황을 계기로 큰 호황을 누린 사실이다. 이 업체의 마케팅 포인트 중 하나가 돌솥비빔밥이 길림성의 조선족 무형문화재로 등록됐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업체의 성공비결은 무형문화재 등재사실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불경기속에 값싼 메뉴를 신속하게 위생적으로 제공한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업체는 또, 팬데믹 기간중에 많아진 상가의 공실을 찾아 낮은 임대료로 입점을 하며 공격적으로 점포를 늘릴 수 있었다.
이 기업과 연변이 위치한 길림성 무형문화재 등록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애당초 한국이든 중국이든 단골 인기 메뉴로써 시장에서 매우 각광을 받고 있는 레시피라면 무형문화재로 등록돼야 할 기예의 기준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전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조 논란이 관건이라면 무형문화재가 아니라 상표등록이나 특허로 다뤄지는 것이 합당하다. 우리가 굳이 문제 제기를 하려면 이 점을 파고들며 항의를 하는 것이 맞다. 조선족도 한민족의 일부이고, 그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그리고 한민족 문화를 변용한 어떤 특정한 기예를 보존하고 싶어서 이를 중국내 지역의 무형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인들이 비빔밥 문제에 핏대를 올린 심층적 동기도 그래서 사실은 경제적 이권과 더 관련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물러나고 있는 마당에, 중국에 거주하던 한국인들도 점차 중국을 떠나게 된 것은 이미 10여년 가까운 대세이다. 한국인이 직접 경영하는 한식당의 숫자도 크게 줄었다. 그래서 한국인과 언론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식당이 아닌 중국의 한족 혹은 조선족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비빔밥이 많이 팔리고 대박이 난사실이 내심 못마땅한 것이다. 마치 한국인들이 누렸어야할 경제적 이익을 중국인들이 도둑질한 것처럼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언론에서 주목을 받기 전에 이 소식을 전하던 한 중국 경제 관련 블로거의 글에서 이런 정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졸저 <차이나 리터러시>에서 한국인들 중 특히 청년들이 갖게된 반중, 혐중 감정의 저변에는 중국 경제의 성장과 이에 따라서 한국 경제가 겪게 될 산업경쟁력 상실, 이에 따른 불안감이 크다고 설명한 바 있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불거졌던 한복과 김치 논쟁은 특히 한국이 현재 그리고 미래의 주요 산업으로 여기는 ‘문화산업’에 대한 알레고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만일 중국이 제조업과 첨단기술을 넘어 문화산업 영역까지 강국으로 성장한다면 한국에게 남은 밥그릇, 특히 청년 세대에게 어떤 밥그릇이 남게 될지 모르니, 공포감에 빠지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작년에는 <블랙미스 우콩wukong>이라는 게임이 중국에서 출시돼 큰 화제가 됐는데, 한국 게임이 중국시장에서 밀려난 것은 이미 오래 된 일이고, <겐신原神>은 한국을 포함한 해외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중국에서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까지 중국의 전통서사에 기반해 출시된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2025년 춘절에 개봉돼 중국내에서 엄청난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느어자哪吒2>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마침 거의 같은 시점에 개봉된 한국 애니메이션 <퇴마록>과 은근히 비교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작화수준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다. 인력이든, 비용이든, 기술이든, ‘다이다이 맞대응’은 불가능하다. 공포심과 두려움은 분노와 공격성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진화를 통해 만들어진 예외가 없는 행동양식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공포감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더 이상 한국의 짝퉁 모방국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 더 이상 일본의 짝퉁 모방국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고, 그에 앞서 일본이 미국의 짝퉁 모방국이었던 시절을 한참 전에 졸업한 것과도 마찬가지이다. 산업의 발전, 기술의 발전, 문화의 트렌드 모두 끊임없이 유동한다. 우리는 자꾸 “예전의 그 일본이 아니라며” 헐뜯고 싶어 안달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뿐이다. 그렇게 일본이 못살게 됐다면 일본이 몇년째 관광객으로 미어터지면서 오버투어리즘을 걱정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K-문화가 우리의 기대처럼 J-문화를 압도한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시진핑 체제가 싫다고 중국을 탈출하는 중국 중상류층, 엘리트들의 상당수가 일본으로 이민을 간 것은 무슨 이유때문일까? 이곳을 찾는 이들이 단기적으로든 중장기적으로든 일본은 문화적으로 체험하기도 좋고 살기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그런 나라가 우리보다 뒤쳐졌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어떤 기준으로 우열을 가리기 때문일까? 얼마전 한국의 일인당 GDP가 일본을 앞질렀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지금 한국이 놓인 내란사태때문에 느끼는 절체절명의 위기감 때문이겠지만, 실은 한국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GDP가 오른 큰 이유중의 하나가 물가 상승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 경제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가계소득과 소비도 줄어들고 있는데, 물가가 올랐으니 살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런데 그 결과로 일인당 GDP가 상승한 것 때문에 기뻐한다면 이런 변태적 자학도 없을 것이다. 이 수치는 작년 연말의 환율변동도 적용되지 않은 것이라고 하니, 사실 다시 떨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정답은 일본의 위치가 하락했다기보다는 우리의 위치가 상향조정된 것뿐이다. 같은 의미에서 중국의 위치가 상향조정된다고 우리가 꼭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비록 중국산업의 전방위적 상승 기세가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나름의 길을 찾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자연스런 변화를 오랜 기간 내가 피부로 느낀 몇가지 문화의 예를 들어서 설명해보고 싶다.
나는 광둥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곳의 대표적인 전통 공연 형태인 라이언댄스를 좋아한다. 무사舞獅, 성사醒獅라고 불리는 광둥 혹은 중국 남방지역의 라이언댄스는 화려한 복장과 기예가 흥겹기도 하고 그래서 주로 명절이나 각종 경축행사에 펼쳐진다. 또, 마을 커뮤니티 문화와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어서 단오절에 활약하는 드래곤보트와 함께 마을단위 동호회도 꽤 많이 조직돼 있다. 이런 중국 남방 문화의 특성은 남방계 주민들의 이민사와도 연관이 깊어서, 말레이지아나 싱가폴 같은 지역에도 같은 화인 커뮤니티 동호회 문화가 발전해 있다. 중국은 작년 여름에 남방 라이언댄스를 말레이지아와 함께 공동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하기도 했다.
조금 아쉬운 건 상업문화로 크게 발전해 있지 않다보니 전문 공연단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사는 광저우를 찾는 손님들에게 가끔 이런 공연을 보여주고 싶어도, 그럴 기회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광저우 배후 도시라고도 할 수 있는 포산지역에서 내가 우연히 마주친 전문적인 공연 영상과 사진을 공유했더니 한국의 사자탈춤도 소박하지만 나름의 흥취와 예술성이 돋보인다고 말씀하신 분이 계셨다.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또 우연히 문화유산청이 올린 한국사자 탈춤과 인기댄서 아이키의 콜라보 영상이 올라온 것을 보고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실 형식미만으로 따지면 한국의 사자탈춤은 훨씬 소박하고 토속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화려한 광둥지역 라이언 댄스와 비교하자면 제3자의 눈길을 끌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되니까, 전통적인 광둥 라이언댄스보다 훨씬 재미있게 보인다. 이걸보면서 나는 지금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한국음식도 광둥요리, 즉 칸토니즈 푸드cantonese food와 비교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칸토니즈 푸드가 일찍부터 세계적인 각광을 받게 된 것은 결국 부의 창출과 이에 따른 사람과 문화의 유동때문이었다. 현지 음식인류학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래된 광둥음식은 지금처럼 화려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주강의 상류중 하나인 서강西江지역에 가보면 원형적인 광둥요리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기름기도 많고 짜고 매운 조미료 사용도 과도한 특성을 가지고 있단다. 보다 소박한 서민형 음식이었다는 이야기이다.
홍콩을 포함한 광둥지역은 20세기초를 전후한 청말과 민국시기에 중국과 세계를 잇는 무역항으로서 엄청난 부를 쌓았고, 이때 다양한 재료, 레시피, 조미료 등을 받아들여 화려한 칸토니즈 푸드를 만들어 내게 된다. 또, 상인과 쉐프들이 상하이 지역으로 가서 광둥요리가 인기를 얻기도 하고, 많은 광둥지역 사람들이 북미를 포함한 전세계로 퍼져나가서 차이나 타운을 형성한다. 이런 이민 흐름은 20세기 말과 21세기에도 홍콩인들의 이주를 통해서 이어지고 있으니, 칸토니즈 푸드가 일찍부터 세계적인 각광을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는 한국음식이 지금 같은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내가 아는 소박하고 토속적인 한국음식이 21세기 들어서 특히 최근 5~10년간 다양한 파인다이닝으로 태어나거나 고급 혹은 대중적인 퓨전음식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위에서 설명한 환경적 요소가 자연스럽게 가져온 변화라는 느낌을 받게 됐다. 뉴욕타임스의 음식평론란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한식퓨전 레시피나 뉴욕에 새로 개점했다는 “부대찌게 식당” 이야기 같은 소식이 그런 추정을 돕는다.
광둥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는 주로 주강델타지역에서 유래한 칸토니즈 푸드와는 결이 다른 광둥지역내의 차오샨 음식과 비교하면 더 생생한 설명이 가능하다. 차오샨 음식은 묘하게도 한국 음식과 공통점이 많아서 한국인들의 입맞에 잘맞는 측면이 있다. 과도한 조미료가 사용되지 않은 신선하고 다양한 해산물 요리, 발효음식과 조미료, 소고기 요리, 하얀쌀죽에 곁들여 먹는 짭짤한 절임반찬이 그러하다. 경우에 따라서 칸토니즈 푸드보다 차오샨 음식이 더 각광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 지역은 근대 이전까지 무척 가난했고, 많은 이민자들이 외지에 나와서 사업을 하고 큰 부를 일군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세계적인 화인 재벌중에 차오샨 사람이 적지 않다. 홍콩 최고의 부호인 리카싱이 대표격이다. 이 지역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쌀죽과 절임반찬이 발달한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니 예전에는 가난했기 때문에 이렇게 허기를 다스리는 방법이 발달하지 않았겠냐고 짐작한다. 한국의 게장과 비슷한 현지 음식이나 신선한 해산물 요리도 어민들이 배위에서 가공이 덜된 음식을 잠시 저장해서 간편하게 먹는 습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차오샨 음식이 근현대에 일군 부를 바탕으로 지금 칸토니즈 푸드 못지않게 인기를 끌게 되는 과정이 한국음식이 세계화되는 과정과 시점상으로도 더 일치하는 것 같다.

하얀 쌀죽에 결들여 먹는 차오샨 음식. 각종 절임과 장아찌 반찬, 간단히 익힌 생선요리, 익히지 않고 조미료를 버무려 생으로 먹는 패각류 등이 있어서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매우 익숙하다.
중국에서도 꽤 많은 힙스터들이 즐겨봤다는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같은 프로그램도 그 방증이 된다. 원형의 한국음식 이상으로 다양한 지역의 요리 요소들과의 혼종, 그리고 그 과정을 엔터테인먼트로 만드는 능력때문에 새로운 한국음식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이런 세계적 트렌드와 싱크되지 못한 중국인들이 한국음식 별거 없지 않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릴 때, 대놓고 반박을 하기보다는 이런 방법으로 설명을 한다. 칸토니즈 푸드가 50~100여년전에 겪은 경험을 한식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그리고 중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흑백요리사>를 설명하면서 마침표를 찍으면, 별다른 불평을 하지못하고 부드럽게 화제가 전환된다. 예를 들어 청소년이나 대학생인 자기 자녀들이 K-문화를 무척 좋아한다는 고백을 듣게 된다.
라이언댄스로 돌아와서 한국문화의 현대적 재해석의 가능성을 들자면, 또 다른 설명들이 가능하다. 사실 한국 사자탈춤은 “한국탈춤”이라는 제목의 일부로 이미 세계문화유산에 등재가 돼있다. 그런데 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일부 중국 혹은 화인 네티즌들이 광둥 라이언댄스의 세계문화유산 신청 소식을 전하면서 이를 비아냥거린다. 그런데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이들의 이런 비아냥이 앞에서 내가 설명한 것처럼,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한 본질적 혹은 사회적 의미를 전혀 읽지 못하는 무지와 게으름에서 비롯함을 알 수 있다.
한국탈춤의 등재내용을 살펴보면, 그 형식미 이상으로 풍자극으로서의 역사와 사회적 의미가 중시된다. 신분계급사회에서 평민과 하층민들이 어떻게 귀족들을 조롱하고 풍자하며 나름의 저항의식을 표현했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광둥 라이언댄스에도 그런 사회적 의미가 없지 않다. 이들의 기예는 주강델타, 특히 포산佛山지역의 공연극 집단 그리고 무예나 비밀결사문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무예는 청말의 지역적 민란에 실제로 사용됐고 그래서 황실정부에 의해서 수십년간 공연(정확히는 베이징 오페라의 광둥버전격인 월극粵劇)이 금지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내가 검색한 바로는 중국과 말레이지아 정부는 이런 사실을 라이언댄스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두 정부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라서 이런 점을 감추려고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근대이전의 일이고 왕조정부에 대한 반란이기 때문에 중국사회에서도 언급이 금지되거나 꺼려지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중국남방사회와 동남아시아 화인간의 문화적 융합이 더 강조됐을 뿐이다. 어쨌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문화의 재해석과 중국남방문화의 재해석에 선별된 요소들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어차피 클릭수와 어그로를 끌기 위해서 게으르고 질낮은 품평을 하는 일부 중국인과 화인 네티즌의 불평에 자극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들에게 반응하는 것은 같은 수준을 가진 한국의 일부 네티즌들 정도일 것이다.
나는 오히려 관련 내용을 검색하다가 더 재미있는 영상을 발견했다. 중국의 라이언댄스는 남방과 북방식이 확연히 다른데, 북방식은 한국의 사자탈춤과 훨씬 비슷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어느 정도 한국 사자탈춤의 유래가 중국의 북방 문화와 관련이 있지 않은지 짐작가능하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베트남에도 자체적인 라이언 댄스가 있고, 화인문화와 연관이 없지않겠지만, 광둥식과 100% 싱크로나이즈 된 말레이지아 차이나 타운의 라이언댄스와는 확연히 다른 특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작년에 후난湖南성에서 열린 전국 대학생 라이언댄스 대회의 한 팀이 북방식 라이언댄스를 공연하면서 로제의 《아파트》에 맞춘 안무를 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아마츄어 댄스팀인지라 아이키와 같은 화려함은 찾아볼 수 없지만 그 나름의 흥미있는 공연이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누가 누구를 베낀다면서 논쟁을 벌이는 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이런 빛나고 흥겨운 순간을 통해서 잘 드러난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 것 같다. 이제 결론을 맺자. 최근 몇년간 대중문화의 발전 양상을 봐도 한국과 중국의 방식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한국은 상당 부분 서구의 것을 수용하고 해체된 전통 문화 요소들을 그위에서 재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우리 조상들이 동도서기東道西器를 주장하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오히려 서도동기의 느낌조차 들 정도이다. 아니 그런 구분이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 특히 청년들이 만들어 내는 문화에서 그런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이미 21세기의 한국 청년들은 매우 서구화된 환경에서 자라나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여전히 중체서용中體西用을 고집한다. 중화문명을 끝까지 안고가며 중국을 현대화시키겠다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중국 모두 누구의 방법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다. 화혼양재和魂洋才를 이야기하던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각자 자기가 처한 환경과 맥락에 따라서 상호참조하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사실에 대한 담담한 인정과 즐기는 마음일뿐이다. 선의의 경쟁과 발전은 이런 자세에서 더 쉽게 이뤄질 것이다. 이제 필요이상 남과 비교하며 자기를 높이거나 낮출 이유가 없다. 그건 애면글면 남을 올려다보며 쫓아가기 바빴던 20세기의 우리 구닥다리 세대들이 안고가면 될 철지난 행동양식이다.
참고자료와 영상
- 강릉단오제
https://www.youtube.com/shorts/uaG_PQt73SI
- 중국의 한식당은 어디로 갔을까? 미춘반판으로 보는 중국외식산업
https://m.blog.naver.com/chinabiz24/223557298746
- China and Malaysia join forces to catapult lion dance onto Unesco cultural heritage list
https://www.scmp.com/news/china/diplomacy/article/3275662/china-and-malaysia-join-forces-catapult-lion-dance-unesco-cultural-heritage-list
- [4k] TALCHUM, The Mask DanceㅣBongsan Talchum - Aiki
https://www.youtube.com/watch?v=LqPlpOLEd7k
- Talchum, mask dance drama in the Republic of Korea
https://ich.unesco.org/en/RL/talchum-mask-dance-drama-in-the-republic-of-korea-01742
- 第十二场北狮决赛
https://www.youtube.com/watch?v=WJ_XI8kOHjk&feature=youtu.be
- 动新闻|舞狮爱跳APT 中国青年逗笑全场
https://www.youtube.com/watch?v=us_T65kY7tA&feature=youtu.be
- Lion Dance Royale Vietnam
https://www.youtube.com/watch?v=9VgU17T-u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