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운주의 생명의 경계에게
2023년 12월 17일
6. 세상 모든 나방들에게
사진작가 효원 @hy0cean
안녕 나방아.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쓰는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어. 전부터 나비의 서사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너희까지 관심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거든. 너희를 좋아하는 친구와 산을 종종 함께 오르며 자연스레 사랑하게 되었어. 낮에 바위에서 날개를 펼쳐둔 채 잠든 너희 모습을 귀신같이 찾아 조용히 찍는 친구를 보며 몇 번을 감탄했던지. 이 초상사진은 내 친구가 찍은 너희의 모습이야. 예쁘지. 자다가 우리의 발길에 잠이 깬 듯 비몽사몽 날아다니는 너희를 보면 웃음이 나더라. 물론 낮에 깨어있는 너희를 보기도 하고 말이야. 어느 순간부터 너희에게 관심이 가 찾아보기 시작했어.
분류학[1]에서 나비와 너희는 같은 종이더라. 우리가 과학 교과서에서 잠시나마 배운 종-속-과-목-강-문-계 분류법을 세운 린네가 너희와 나비를 크게 분류하지 않았지. 주로 낮에 활동하는지, 밤에 활동하는지, 변태 과정이 애벌레-번데기-성체 인지, 애벌레-고치-성체 인지에 따라 모호하게 나뉘지만 모든 나비목 생명이 지구에서 발견된 종수만 해도 15,000~20,000여 종이라고 해. 인간이 이 수많은 생명들을 ‘나비목’이라고 분류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큰 아틀란티스 나방과 이름 없는 나무. 마리 시빌라 메리안 삽화, 출처 : Wikiart
시공간은 1600년대의 독일로 거슬러 올라가.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라는 사람이 있었지. 그이는 13살에 근처 양잠소에서 누에의 알을 얻어 키우기 시작해. 당시에 벌레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어서, 지금 우리에게 당연한 너희와 나비의 변태 과정도 알려지지 않았어. 썩은 흙에서 태어나는 악마의 생물로 간주되었지.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어. 별나고 수상한 짓을 조금만 해도 마녀로 오해받는 암흑 시기여서, 2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재판에서 마녀몰이로 처형됐었다고 해. 약초로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는 여성도 화형을 당할 뻔했으니, 메리안의 벌레 사랑도 목숨을 건 관심이었을지 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벌레에 대한 그이의 열정은 불탔지. 애벌레가 나비로 변태하는 과정을 관찰하며 새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워 꽃과 곤충들을 끊임없이 그렸어. 더 나아가, 베트남의 수리남에 가 살인적인 더위에서, 열대 곤충에 대한 세밀화를 계속해서 그렸지. 끝끝내 ‘수리남 곤충의 변태’라는 책을 내고, 걸작이 되었어. 그 뒤, 메리안은 수리남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어.
그이의 모든 연구 자료들은 18세기 후반 린네의 식물과 동물 종 분류 토대가 되었다고 해. 메리안은 삶 동안 세 권의 책을 통해, 186종의 나비와 나방을 비롯해 개구리‧두꺼비와 같은 양서류와 파충류의 [1]생활사를 꼼꼼히 기록했지. 이 기록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과학적인 자연발생설을 뒤엎을 만큼의 업적이었어. 하지만 같은 현장연구자였던 다윈이나 린네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어. 여성이었으니까. 실제로 수리남에 가려고 경비를 마련할 때,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지원비를 요청했지만 나이 많은 여성이란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했었대. 그이는 어떻게든 돈을 갚겠다는 약속으로 수리남에 갔던 거야. 메리안은 꿋꿋이 온몸으로 돌아다니는 현장 연구자이자, 자신이 연구한 곤충들을 자신만의 독보적인 그림들로 직접 그려내는 아름다운 과학 삽화가였어.
그이의 삶이 너와 닮아 보였어. 밤의 꽃가루받이 매개자인 너희는 낮에 활동하는 곤충들이 방문하지 않았던 식물의 수분을 하고 있다며? 도시 지역의 농작물, 꽃, 나무의 매개 수분 중 3할 정도를 너희가 담당하고, 꿀벌보다 더 효과적으로 꽃가루를 옮긴다고 들었어. 수분을 하는 종의 수도 꿀벌보다 너희가 10배는 많고 말이야. 우리가 좋아하는 토마토와 감자의 수분도 돕는 게 정말 고마웠어. 종종 토끼풀에 매달려있는 너희도 이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 이런 너희가 지난 50년 동안 33% 감소했지만, 기후위기 의제에서 꿀벌만큼이나 주목받지 못해 안타까워. 최초의 나비가 1억 1400만 년 전 북미 중서부 지역에서 발견됐고 너희에게서 분리된 후손이라 밝혀졌는데, ‘나비목’이라는 단어도 여전히 사용되고 말이야. 요즘 도시는 꿀벌이나 나비 등 주간 활동 곤충들이 좋아하는 식물로 덮이고 있잖아.
반면 너희는 불에 달려드는 모습 때문에 조롱이나 혐오를 받으니, 생계를 위협받는 서러움을 안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저 살아가는 너의 날개가 날이 갈수록 달라 보이더라. 너를 참 몰랐어. 인간은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좇는 태도를 보고 ‘불나방처럼 달려든다’는 표현을 많이 해. 가로수에 몸이 타도록 붙어있는 너희 행동이 이해가 안 갔어.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을 빗대 ‘네가 불나방이냐’ 놀리기도 했지. 문득 너희가 왜 빛으로 달려들까 궁금해졌어. 자기 몸이 타는 줄 알고 다가간 걸까? 누구든 죽기 직전이면, 죽음으로부터 피하기 마련일 텐데. 무서울 텐데.
너희의 몸은 사람과 같이 크지가 않아서, 중력을 자연스레 느끼지 못하고 빛의 밝기에 따라 위아래를 인식한다는 걸 알게 됐어. 대부분 야행성인 너희에게 달은 방향을 알려주는 항해키라서, 본능적으로 빛을 향해 가는 거라고. 길가에 하얀 가로등들이 너희의 광원에 대한 거리차를 교란시키고 소용돌이처럼 빨려들게 만들어 자살비행을 하게 만든단 논문들을 봤거든. 동시에, 도심의 나방들 중 일부를 24시간 빛을 켜둔 환경에서 키우면 자살비행을 하는 너희의 수가 30% 정도 감소하겠지만, 그만큼 너희에게 의지하는 꽃들은 수분을 덜 하게 될 거라는 연구도 함께.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어. 나비의 작은 날갯짓처럼 미세한 변화, 작은 차이, 사소한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나 파장으로 이어지게 되는 현상을 빗대는 말이야. 무심코 밤 활동을 위해 켜는 불빛들이 정말 이 지구에 ‘나비효과’를 미친다는 말, 확 실감이 났어.
다양한 몸의 이야기들이 내 시야를 넓혀주며 자연이 뭘까 자꾸 고민하게 돼. 우리가 얘기하는 자연이 얼마나 분절되어있었는지 느껴. 자연은 그저 무언가를 내어주는 무대 같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명 역동성이 만드는 영향들이라는 걸 알게 될 때마다 내 행동으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 두려움과 동시에 궁금해져. 나 지금 공포감이 스멀스멀 올라와. 너희 앞에서 자꾸 죄인이 되는 것만 같아서. 사람인 내가 밤의 편리한 생활을 당연히 누리는 것만큼 책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낯설고 불편한 순간이라서. 나는 내가 무심코 켜는 불빛이 너희를 혼란스럽게 하고, 죽음에 내몰 거라곤 생각을 못 했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결책을 가지지 못해서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
죄책감과 벌은 생명력이 없다는 말을 되새기게 돼. 자꾸 외면하고 싶고, 그 끝엔 부정밖에 없을 거란 감각을, 어떻게 하면 같이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자리로 바꿔 보고 싶어. 사람은 너희와 달리, 대부분 낮에 활동을 하고 밤에 잠을 자는 동물이야. 우린 몸의 패턴이 상극이어서, 애당초 서로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각자의 욕망이 서로의 몸을 해하기 가장 쉬운 관계들이라 느껴져. 사람들이 너희를 싫어하는 이유엔중 하나가, 날개의 인편 때문이라 했어, 너희 날개의 가루가 나비보다 많고, 때때로 그 분들이 알러지나 독 반응을 유발하잖아. 그렇다고 너희의 무기가, 우리가 너희 서식지를 파괴하는 정도와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 어쩌면 우린 모두 생태 사회 공동망 안에 있다는 감각을 가지고, 서로 마주할 일이 없을만한 공간에서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각자의 삶을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사는 게 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그러기엔 사람의 활동 영역이 너희를 착취하는 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걸 알아.
인간인 내가, 어떤 몸의 주기를 가지고 있는지 잘 느끼는 게 가장 서로를 위한 길이란 생각이 들어. 도시에 살며 밝은 불들에 계속해서 노출되면 나도 내 몸 주기를 알기 어려워지거든. 이 자리에서 내 분수와 위치를 알도록 하는 것, 지금의 나에게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내가 사는 곳에서 인간이 만든 구조물들이 누군가를 배제한다는 것을 폭로하는 것,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이라 느껴. 도시와 나방. 너희들. 이제는 뗄 수 없게 된 이 관계에서 네가 혐오의 대상만이 되지 않도록 네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기 바라. 그리고 내 결핍으로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도록 내가 나를 하루하루 잘 돌볼 수 있길. 그런 마음으로 편지를 마무리해.
2023.12.15
운주 씀
운주 씀
[참고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1363
- 미심, 2020. 12. 7.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mjeong&logNo=222152164875
-김선지, 2020.10. https://brunch.co.kr/@sjkim138/4
-이상현 기자, “간 꽃가루 매개자, 나방을 구하는 것은 꿀벌을 구하는 것만큼 중요할 수 있다.”, 제주환경일보, 2023.12.05.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273314
- 오주환 기자. “풀지 못한 난제… ‘불에 날아드는 나방’ 비밀 풀렸다”. 국민일보. 2023.04.14. https://m.kmib.co.kr/view.asp?arcid=0018192897
- David Lees, Alberto Zilli. “Moths: A Complete Guide To Biology And Behavior”, Smithsonian Books(2019)
[1] 분류학 : 생물학의 여러 분야로부터 증거를 수집하여 분류군 간의 유연관계를 진화학, 분계학적으로 규명하며 계통을 추적하는 것
[2] 알-유생-성체 등 까지의 모습과 서식지, 생활 등을 관찰해 기록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