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2년 7월 28일

6. 21세기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2020년 출간 이후로 저탄소 생활에 대한 강연을 다양한 대상으로 종종 하고 있다. 여러 대상을 두고 강연들을 소화하다보니 연령대에 따라 그 안에서도 특정 관심 분야가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예를 들면 3040 직장인들은 1-2인 가구로써 낭비 없는 소비와 간소한 살림법과 동시에 무해한 유희와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을 궁금해했고, 4050 주부들은 대체로 가계를 줄이는 친환경 살림법과 식생활에 관심이 많았으며, 청소년들은 비건과 지속가능한 패션, 나아가 교내에서 친구들과 할수 있는 정화활동 등을 궁금해했다.

지난 달, 한 도서관에 강연을 하러 갔다. 신청자들의 연령대를 파악하고 나는 일상 속 탄소와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실천법에 대한 내용을 준비해갔다. 부쩍 더워진 날씨에 오프라인 강연을 신청한 대부분의 인원이 온라인 수강으로 전환을 하여, 실제로 강연장에는 소수의 인원이 모였다. 그 중 유독 눈에 띄던 이들이 있었으니 한 엄마와 남매였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던 아이 둘은 약 2시간 넘게 진행되는 다소 긴 시간에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질문과 말들을 쏟아냈다.

초등학교 6학년, 4학년이었다. 그들의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앞으로가 많이 걱정되니?”

그러자 4학년 동생이 말했다. “저는요, 가끔 미래를 생각하면 무서워서 죽고싶다는 생각을 종종해요.” 뒤이어 오빠가 말했다. “어른들은 왜 우리가 살아가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성장에만 욕심을 부리는 거에요? 다들 위기라고 말하는데 사실상 아무것도 안하고 있잖아요. 집 앞에만 봐도 택배 스티로폼 박스들이 가득있어요. 직접 장바구니 들고 가서 사면 되잖아요. 다들 우리 걱정은 안하나봐요. 왜 이렇게 이기적인거에요?”

나는 연신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 당장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력한 개인일 뿐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아이들의 엄마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선생님, 우리 애들이 유난히 기후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저런 질문을 많이 하네요. 집에서도 기후 문제를 두고 가족끼리 토론을 자주 하거든요. 오늘 누리호가 발사되었잖아요. 아이들이 누리호 발사되는 장면을 보고 ‘우와’하는 탄성이 아닌 ‘탄소 어떻게 해’ 라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니 슬프더라고요.”

아이들의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대의 참상은 보다 끔찍했다. 절규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마치 어른 대표가 된 양 부끄러웠다.

사실 이런 경우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해, 한 남고에 갔을 때에는 모든 강연이 끝나고 한 학생이 내게 뚜벅뚜벅 걸어와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작가님, 제가 어디에 여쭤봐야할지 몰라서요. 책 쓰시고 강연 준비하시면서 기후위기 관련해서 공부 많이 하셨죠? 솔직히 말해주세요. 진심으로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전 책을 보고 기사를 찾아볼수록 우리한테 희망을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어서요.”

머리로 생각이야 했지만 실제로 아이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심장이 철렁한다. 그들의 눈엔 우리 세대를 향한 원망이 담겨있고, 나는 매번 당당할 수 없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런 감정들을 자주 느끼곤 한다. 대개는 엄마의 살림을 보며 느낀다. 새지 말라고 비닐을 이중 삼중으로 싸준 반찬, 식사 후에 마시는 믹스커피, 식탁을 닦는 물티슈와 같은 것들 말이다.

플라스틱 일회용품이 보급되기 시작되었다는 20세기 초. 당시 “쓰고 버리세요!” 슬로건을 내건 일회용기들이 가정에 속속들이 보급됨으로써 여성들이 집안일로부터 해방되었고 자연스레 경제활동, 사회활동이 높아지며 여권이 신장되는데 큰 몫을 했다고 한다. 그런 영향 때문일까? 나의 엄마는 처음 내가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보따리 장수처럼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거나, 소창행주를 삶아 재사용하거나, 보리차를 끓여 먹는 등의 수고로운 모습을 볼 때면 “왜 그렇게 촌스럽게 살아! 좀 세련되게 좀 살아라, 세련되게. 그렇게 알뜰하게 살림하면 어디가서도 너만 고생해.” 라며 딸의 몸이 고될까 아쉬운 소리를 하시곤 했다.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종종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의 편리한 생활방식을 볼 때면 어쩐지 원망스러운 마음이 올라올 때가 있었다.

내가 나의 부모 사이에서 느꼈듯, 나와 아이들 사이에 새로운 빈부격차가 자리했음을 알 수있었다. 지금만 봐도 일회용컵 보증제가 도입되며 내가 누렸던 쓰고 버리는 편리함을 누리기 어려울 것이고, 저렴한 항공을 타고 다른 나라로 이동해 견문을 넓힐 기회 또한 제한적일 것이다. 최소 나의 20대는 비행기를 타는 부끄러움 없이 오히려 당당하게 해외를 다닐 수 있었다. 게다가 저렴한 항공권에 가끔은 국내보다 국외로 떠나는 것이 더 나은 날도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 탄소세를 기본으로 끌어안고 살아갈 아이들이 그런 혜택을 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세대간 빈부격차가 점점 커질 것이다.

세대간 불평등 뿐만 아니라 나라간, 지역간 불평등 또한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패스트 패션으로 하여금 우리는 플라스틱 소재의 저렴한 옷들을 자주 구입할 수 있다. 유행이 빠른만큼 옷은 더 자주, 많이 생산되며, 버려질 때에는 대부분 옷이 기능을 다했다기보다는 유행이 지나서, 혹은 질려서라는 이유 등으로 쉽게 버려지곤 한다. 헌 옷 수거함에 버리며 새 주인을 찾아가길 바라지만, 사실상 그 옷들의 대부분은 가난한 나라들로 전가되고, 그 또한 주인을 찾지 못해 어딘가에 매립되거나 바다로 흘려지거나 혹은 태워지며 그 지역주민들을 괴롭힌다.

기후 문제를 가만히 생각하다보면 삶 자체가 참으로 불평등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 시대, 국가, 문화. 그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이 그저 주어진 것들이다. 전 지구적 입장에서 추위와 더위를 걱정하지 않고, 안전한 집이 있고 먹고 사는 일에 큰 걱정 없음만 생각해도 나는 무척 유리한 조건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구 절반의 인구가 교육과 보건 그리고 식량 안보의 문제를 겪는 오늘 날,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는 다는 것은 분명 이 시대의 ‘노블리스’ 라는 반증이다.

나를 포함한 21세기의 부자들의 책임과 도덕적 소양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21세기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어야 하는가? 나는 무엇보다 연민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려온 그 ‘세련된 것’들과, ‘미리 앞당겨서 써버린 자원’들에 대해 책임을 가지며, 기꺼이 나누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효율과 결과 지향, 무한 경쟁, 물질 만능적 관습이 지구와 사람들을 병들게 했다. 이 사고와 삶의 방식들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나는 나의 윗 세대들이 그들이 알고있는 지혜로운 삶의 방식과 가치있는 것들을 우리 세대에게 정성껏 나누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음 세대들과 공유하며 멋진 문화로써 재창조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그 과정은 결코 과거로 후퇴하거나 욕망을 참고 견디는 억척스러운 삶의 방식이 아니라, 과정 전체가 즐겁고 행복한 삶 그리고 가치있으며 지속가능한 삶으로 여겨지기를 바란다.

비록 옆 사람보다 내가 가진 것이 적은 것처럼 느껴지고, 부족하게 느껴지고 도태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엄연한 착각이다. 아는 얼굴이 아닌 모르는 얼굴을 기억해야 한다. 더 이상 아이들이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를 떠올리며 좌절하지 않도록, 내가 쾌적하기 위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의 생활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1세기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나라는 존재가 누려왔던 혜택들을 기억하며 책임감을 가지고 기꺼이 새로운 변혁을 선택하는 것이다. 지속가능성과 저탄소의 기준으로 소비 패턴과 삶의 방식을 바꾸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부터 그러한 산업에 투자하고 성장시키는 것. 나아가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를 건강한 사회와 지구를 위해 공헌하는 것 등. 이렇게 21세기 부자로서 그 품위와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출처 : https://ar.pinterest.com/pin/258534834852224979/


신지혜
요가를 수련하고 나누는 일과 더불어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건강한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모토로 친환경 라이프를 제안하는 웰니스 커뮤니티 를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잔디에 누워 땅의 온기를 수용하며 구름을 관찰하는 일, 신선한 채소와 과일의 촉감을 느끼고 맛보는 일을 좋아합니다. 사람과 자연의 연결성을 탐구하고, 사이좋게 공존하기 위한 지속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