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2년 2월 4일

6. Divide and talk, ‘중국인'은 이제 잊어라, ‘지역의 사람’과 만나자 (2)  


- 70허우 인류학자, 중국의 신세대 향신 샹뱌오項飆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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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이 즐겨하는 표현중에 合久必分, 分久必合라는 말이 있다. “합쳐서 오래 되면 반드시 나눠지고, 나눠져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합쳐진다.” 중국이 역사상 '통일과 분열’을 거듭해온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다. 푸단대학의 원로 역사지리학자 거졘숑葛劍雄 교수의 동 제목 저서가 중국 역사의 이런 측면을 잘 정리한다. 그는 중국인구사, 이민사의 대가이다. 여기서 이민은 근대 이후의 해외 이민이 아니라, 중국 대륙내에서 민족들이 수천년간 이동해온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국가의 통일과 분열은 단순히 정치체제의 변화뿐 아니라, 이에 수반하는 사람들의 이동과 융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이동은 당연히 문화의 전파와 물자의 이동을 수반한다. 물론 이것은 역사 시대 이후의 사료를 근거로 하고 있는데, 지금은 고고학, 유전생물학, 언어학 등의 방법을 동원해서 역사 이전의 민족 이동에 대해서도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중국의 지배적인 국가 이념인 대일통大一統은 진시황의 천하통일이후 실증적인 이유 때문에 절대선으로 간주되온 것이 아니라 중앙권력의 필요에 의해 이데올로기로써 유지돼 왔다. 실제 통일 제국을 유지한 시기는 절반에 한참 못미치고, 분열된 상황이 잦은 내전이나 외침을 불러와 백성들의 평화로운 삶을 지키기 어려웠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통일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추가적 비용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 환경이 좋은 지역은 생산력을 바탕으로 부유함을 누릴 수 있었다. 특히 분열이 극심한 춘추전국시기와 5.4운동을 전후한 민국시기 같은 역사적 상황에서 다양한 사상이 만개하고 활발한 토론이 진행됐다. 반대로 통일 제국이 표준을 강요할 때는 학문과 언론의 자유가 억압됐다. 그래서 청조말기, 중화민국이 수립되기전이나 그 후 상당기간, 중일전쟁이 발생하기전까지는 성단위로 정을 포함한 정, 군사력이 독립된 각자의 성정부를 세우고, 이를 미국이나 독일 같은 형태의 합중국, 연방국을 만들자는 聯省自治 연성자치 논의와 통일국가를 주장하는 이들간의 갈등이 지속됐다. 청년시절 이런 주장을 하던 마오쩌뚱은 나중에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와 일본, 그리고 자신의 공산당이 중국을 삼국으로 분할하는 구상도 밝힌 적이 있다. 중국인들의 정체성과 의식안에 통일과 분열, 그리고 중앙과 지방이라는 대립되는 개념이 혼재될 수 밖에 없는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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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샤오퉁의 중화민족다원일체론은 현실적으로 통일국가라는 현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균형을 잡아보자는 인데, 비유하자면 낭떠러지에서 외줄타기를 하는데, 앞과 뒤에 각기 호랑이와 사자가 으르렁거리는 형국이다. 다양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앞으로 빠르게 전진하면 비한화된 소수민족이나, 한족이 중심이 되더라도 보다 다원적인 정체성을 갖게 된 지역들의 독립을 용인해야 할 수도 있고, 일체성을 강조하면서 뒷걸음질치다 보면, 민족의 문화적 동일성을 강조하는 중화민족주의로 후퇴할 수 있다. 유연하지 못한 중화민족주의는 결국 한족중심주의로 수렴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비한화된 소수민족들을 장기적으로는 한화시킬 수 밖에 없다는 역사적 결론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변강지역의 발전정책들은 과거 내륙의 한족 거주지역에서도 상당히 강압적으로 진행되던 농촌의 인구정책이나 개발정책과 맞물리며, 서방의 주장과 같은 소수민족탄압정책, 심지어 민족말살정책(genocide)으로 춰지기도 한다. 록 과장된 측면이 있다해도, 상당한 수준의 인권탄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과거에는 이런 비극적인 일들이 무지와 망각속에서 혹은 냉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용인됐겠지만, 지금과 같은 보편적 인권에 대한 요구가 국제적 규범으로 자리잡은 세계에서 중국의 특수한 상황만을 내세우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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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샤오퉁을 계승하는 중국 출신의 인류학자 샹뱌오 교수는 중국의 이러한 동적인 균형 상태를 각 성이라는 강철판을 사슬로 역어 놓은 거대한 구조물로 설명한다 (샹뱌오, “방법으로서의 자기”). 외부나 내부의 충격이 왔을 때, 판들이 움직이며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사진1) 샹뱌오 옥스포드 인류학과 교수, 막스플랑크 인류학 연구소 디렉터. 베이징대학 학부에 재학하던 시기에 시작한 필드스터디를 6년간 지속하며 완성한 그의 민족지는 중국 민간사회의 가능성을 검토한 석사학위 논문으로 정리 됐는데, 단번에 중국 인문학계의 고전으로 인정받게 됐다.

“ 학자들이 이런 면에서 책임이 큽니다. 항상 국가와 관련된 큰일만 논해서는 안됩니다. 구체적인 작은 일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전국에 수천명, 수만명의 향신이 필요합니다. 만일 그들이 체계적으로 지역의 목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 될것입니다. 지방의 목소리는 다원성을 강조하게 되고 이를 통해서 중국의 장기적인 안정이 가능한 기초를 다질 수 있습니다. 중국과 같은 이런 거대한 국가는 장기적인 안정을 원합니다. 그런데 이런 안정은 하나의 거대하고 단단한 강철판이 아니라, 강철 현수교로 이어진 여러개의 판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한쪽이 느슨해지면, 다른 한쪽이 솟아오릅니다. 이렇게 유연하게 반응하는 일종의 유기체가 됩니다. 이런 형국이 타파된 후에야 지방사회문화가 자주성을 갖추게 됩니다. 경제와 상층설계의 통일성을 갖을 수 있고, 그래야만 결합이 가능합니다. 만일 지방사회가 문화적인 이런 자치를 갖지 못하면 모두 중심으로 모여들어 미어터지게 됩니다. 굉장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저의 지역에 대한 인식은 상당부분 페이선생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중국실증연구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중국에 왜 대일통이 가능했는지 설명한 것입니다. 대일통은 단단한 강괴형 구조의 결합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환경이 변했습니다. 오늘날 중국은 강대한 통일국가를 이뤘죠. 확실히 강한 중심부가 필요합니다. 자원의 재분배 문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상하이와 티벳의 관계에서 서로 도울 수 있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문화와 사회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경제와 시장이 통일되려면, 자원문제에 있어서 행정의 역량을 통해서 2차분배를 해야 합니다. 또 군대 세수입 문제가 있고, 그래서 느슨하게 처리할 수 없습니다. 두번째 변화는 글로벌라이제이션입니다. 자치는 폐쇄형 자치가 아닙니다. 모든 지역에 작은 중심을 형성하고 자원을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온몸에 분포된 혈자리가 있고 이게 모두 연결된 것과 같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사고해야 합니다.”

그는 이런 동적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정치)경제와 시장의 통일성과 함께 문화와 (국가와 구별되는 민간)사회의 다원성과 자율성을 중시한다. 지역의 문화적 다원성을 만들어 내는 역할은 마치 과거의 향신과 같은 지역의 지식인인에게 부여된다. 한국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과거제에 기반한 군현제를 통해 강한 중앙바라기 문화를 만들어 왔다. 한국에서 지방이 문자 그대로 소멸하고, 서울 지역의 부동산 문제가 민주당 집권연장의 발목을 잡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청년들이 분노하는 현상도 이런 중앙 집중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한국이 서울공화국이 되는 것과, 중국이 베이징, 상하이 공화국이 되는 것은 그 집중도와 스케일의 차이가 다르다. 폐해의 정도도 그만큼 심각할 것이다중국은 2021년에 자연인구 증가율이 이미 0.03%수준인 50만명으로 떨어졌다. 2~3년내에, 빠르면 올해부터 한국처럼 절대 인구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측된다. 또, 둥베이 3성은 심각한 수준으로 지방소멸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90년대 후반 중국은 한국의 IMF 베일아웃 위기와 비슷하게 국영기업의 대규모 도산과 정리해고사태를 겪었는데, 그 충격의 강도는 한국에 못지 않았다. 중국 시민들이 놀라운 속도로 신자유주의 사회에 적응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이 둥베이 지역이나 남쪽의 장시江西성같은 곳이고, 이 지역들은 이후에 대규모 농업을 제외하고 국영기업을 대체할만한 민영기업위주의 경제구조를 만들어 내는데 실패했다.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이 중심부로 진입하려는 욕망이 아주 강합니다. 당연히 이런 욕망은 능동성을 극대화하기에 좋습니다. 하지만 뒤틀린 욕망이 되기 십상이죠. 그리고 일단 중심부에 진입하면 많은 사람들이 부패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이유가 오로지 중심에 진입하기 위해서일 뿐이고, 자기를 키워온 땅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모두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렇게 원칙과 도리가 없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이 생활속에서 갖는 원칙은 추상적인 이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건 당연히 유가의 사상이긴 합니다만, 나름의 일리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만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나 생활세계와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으면, 기회주의자가 되기 십상입니다. 타인은 모두 이용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게 되죠. 학계에서는 그렇습니다. 관료사회에서는 더욱 명확하고요, 비즈니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회사의 한명의 직원으로서, 학교의 학생으로서, 모두 성도省會로 가기를 열망하고, 베이징으로 진입하고 싶어합니다. 뿌리를 내린다는 개념이 없으면, 자신의 위치도 찾지 못합니다. 주체성이 없으니 모두 도구가 되고 맙니다. 중심부가 너무 강한 것은 사실은 매우 위험합니다."

"중국역사상 강대한 중심부는 상당부분 이런 중심주의의 내면화과정에 의존해왔습니다. 모든 지역이 자기가 작은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비교적 안정적입니다. 그리고 상징적 의미로 이걸 모아서 만든 것이 바로 ‘대일통’사상입니다. 하지만 다시 이런 생각에 골몰해서 위로 기어 오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태도가 자기 삶에는 이점이 전혀 없다고 느낍니다. 사실 중심부는 대부분의 주변부의 일에 관여하려하지 않습니다. 지방은 상당히 강한 자주권을 부여 받고 이런 부드러운 개방적 관계를 유지합니다. 오늘날 ‘지방'의 문화적 의미가 정말로 퇴색해버렸습니다. 지방에 박물관을 만들고, 여행을 하고 이런 일들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변'과 ‘중심의 관계를 잘 설정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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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전의 글에서 중국-유럽  혹은 중국-미국의 대안역사 상상을 제안해 본 이유는 중국을 조금 더 중립적으로 바라보자는 뜻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을 중국이라는 국가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도 한국을 유럽전체와 직접 비교하거나 미국이라는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와 비교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구를 비롯한 여러 규모의 지표에서 유럽과 미국을 능가하는 중국이라는 초거대 국가는 이상하게도 단순한 비교나 평가의 대상이 된다. 아무래도 아주 오랜기간 이웃으로 존재해와서, 너무 친숙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최근의 여러가지 상황때문에 부정적인 뉘앙스로 대하게 되는 중국국가와 중국사람을 나눠서 봐야 한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교의 대상으로서 ‘중국사람’이라는 범주를 정의하는 것은 더욱 난제이다. 과연 어떤 평균적인 중국사람이 14억 인구를 대표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어느지역, 어느정도 숫자의 중국인들이 ‘중국사람'이라는 거대한 그룹을 대표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정량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개인적인 만남이나 단편적인 정보에 의존해서 중국과 중국사람에 대해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앞에서 설명한 내용을 통해, 이런 인지부조화가 단순히 우리의 착시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바로 “강력한 중앙의 통일 담론과 이와 연동된 중화민족, 중국인의 정체성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중국과 중국사람이라는 단일한 실체의 존재감을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스테레오타입 형성의 원죄는 중국 정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송시기에 외세와의 경쟁속에 한족중심주의가 형성된 것을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현대적 민족주의는 근대국가의 형성과정에서 외세, 특히 일본의 침략과 맞서면서 빠르게 형성된 것이다. 

중국 윈난성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에서 성장한 베네딕트 앤더슨이 설명하는 동남아시아 화교의 화인華人으로서의 정체성 형성과정은 더욱 흥미롭다. 동남아시아 화교의 상당수를 점하는 남방계 중국인들, 즉 광둥, 푸졘, 하이난성 등 출신들은 원래 중국이라는 국가보다 자신의 출신지, 고향에 대한 정체성이 훨씬 강한 사람들이다. 이들 지역은 모두 언어가 다를 뿐 아니라 이 지역에 퍼져서 거주하는 객가客家인이나 광둥에 속하는 챠오샨潮汕사람들, 흔히 호키엔이라 불리지만 실은 푸졘福建에서도 남부의 일부 지역인 민閩南출신들은 그 지역 방언을 구사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아 이들은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10여개 가까운 언어군의 복합집단이다. 그런데, 외부집단에서 이들을 중국인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그들도 자신을 화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영어로 Chinese라 통칭되는 현대 중국인 혹은 화인의 정체성은 외부와 내부의 필요에 따라서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사진2) 화교들은 중국 남부의 다양한 지역에서 동남아로 이주했다 (소스: Global Markets - Local Consequences: The Migration of Labour in Southeast Asia Since the Mid-Nineteenth Century.)

이런 중국인 혹은 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갖는 인위적이고 문화적인 성격은 독립을 주장하는 홍콩이나 타이완의 급진적인 청년세대를 보면 더욱 깊이 실감할 수 있다. 나는 2019년의 홍콩사태가 벌어지기 이전에 이들이 중화인민공화국, 즉 PRC 국적에 반대할 뿐, 중국인 혹은 화인이라는 호칭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최근 이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자신들의 조상이 기원한 대륙과의 문화적 연관성을 드러내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테면 타이완 방언의 주류인 대륙방언 민난화閩南話보다는 타이위台語, 즉 타이완말이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화인이나 차이니즈보다는 타이완사람台灣人나 홍콩사람香港人의 정체성이 더 우선된다. PRC로부터의 정치적 압력이 적은 동남아시아 화교들이 여전히 자신을 화인으로 내세우는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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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시민들, 즉 대륙중국인들의 통일적 정체성은 단순히 정부의 선무공작에 의한 이념교육과 이를 실행하는 강력한 행정력에 의해서만 형성된 것은 아니다. 근대의 네이션 형성에 혁혁한 공언을 세운 출판기술, 미디어와 교육제도만큼이나 당대에는 인터넷과 모바일 미디어 환경이 빛의 속도로 통일적이고 집중된 여론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여기엔 중국 정부의 게이트키핑이 전제가 된다. 중국 정부가 원하지 않는 여론은 걸러지거나 힘을 받지 못한다. 

현대중국은 문화경제적 차원에서 두세개의 레이어Layer로 구성돼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간단히 도시와 촌을 분리해서 볼 수도 있다. 나는 이를 조금 더 세분화해서 중앙을 의미하는 1선도시들, 두번째 레이어로 지역의 중심을 의미하는 각 성의 수도나 그 하위 행정구역 시의 중심인 2~3선 도시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소도시와 한국의 군청 혹은 읍면소재지 등에 해당하는 현성縣城과 향진鄉鎮을 중심으로 하는 촌지역을 묶는 세단계로 분류다. 가장 발언권이 많은 지역은 당연히 베이징, 상하이, 션전과 광저우라는 상주인구가 2천만에 가까운 초대형 1선도시들인데, 특히 이 지역에 거주하는 젊은 문화소비계층은 정보와 문화의 유통측면에서 해외와 적지 않게 동기화 돼 있다. 2선도시들 중 인구가 천만명 전후이고, 문화와 상업이 매우 발달한 곳들은 신新1선도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10개가 넘는 이런 도시들을 다시 1선도시와 묶어서 생각해보면, 중국내의 도시문화와 여론을 형성하는 지역의 인구, 즉 첫번째 레이어에 속하는 사람의 수는 거칠게 말해서 14억중 1~2억 정도로 볼 수도 있다. 이는 단순히 숫자로만 보면 10%전후에 해당하기 때문에 다수는 아니지만중앙의 담론권력을 가진 엘리트, 중산층, 도시민들은 대부분 이에 속하므로 결국 여론 형성의 향배를 결정하게 된다.  

사진3) 현재 중국 15개의 도시가 신1선으로 분류된다.

최근 한국과 중국의 민족주의 감정 충돌의 원인이 된 한복이나 김치논쟁 등은 인터넷이 발원지인데, 어쩌면 한국인 청소년과 청년들이 인터넷 게임 등을 통해서 매우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소수의 중국인들은 첫번째 레이어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여론’은 매우 파편적이고, 선정적이다. 마치 한국의 인터넷 댓글, 유튜버나 이를 보도하는 미디어의 행태와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중국인에게 이런 문제들은 관심밖의 사안이다. 인터넷에서 양국의 직접적인 민족주의 충돌은 매우 격렬해 보이지만, 중국 정부가 의도하지 않는한 중국내에서 여론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수준은 아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여론은 두번째나 세번째 레이어로 그다지 의미있게 전달될 수 없다. 그들의 생활과 별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내의 반중감정에 비교해 봤을 때, 중국내에 뚜렷한 반한기류가 생겨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반대로 중국 정부가 문제를 삼고자 하는 내용은 전체 레이어로 불처럼 확산돼 나간다. 사드배치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는, 거의 모든 중국인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돼 미국에 대한 반감을 품고, 미국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한 한국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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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주의 그리고 중국인들의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중국 보통 사람의 언설이든, 혹은 고명한 지식인의 언설이든 아주 빈번하게 사용되는 중화문명 5천년의 전통“이라는 클리쉐이가 있다. 이런 말은 알게 모르게 나같은 외국인을 긴장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런 표현들은 사실 나름의 진실성이 있다. 중국의 3천년 역사와 5천년 문명사라는 시간 스케일은 상당수준 공인된 정확성을 갖기 때문이다. 반면 기술된 역사나 고고학적 사료라는 실증적인 관점에서 평가하자면 한민족 반만년 역사라는 과장된 표현이나 소위 민족사학자들이 환인, 단군과 같은 신화를 역사의 차원으로 끌어들이려는 집요한 시도 등은, 한국의 국뽕수위가 중국보다 덜하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국뽕을 넘어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만일 한국인으로서 내가 한국의 역사와 정체성을 전체적으로 긍정하는 편이라면, ‘한국국가의 이익이 타국과의 관계에서 드러나거나 그 이미지가 비교될 때 느끼게 되는, 팔이 안으로 굽는 정서에서 아주 자유로울 수 있을까좌파 무정부주의자나 리버럴한 국제주의자정도를 예외로 하고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K-열풍이 간단히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괜찮고 중국인들은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그래서 만일 이를 긍정한다면, 보통 중국인은 중화문명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터이니 이 사람은 천상 중화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차이가 있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 손가락질을 받느냐 아니냐일뿐이다.

이는 중국과 한국이 반식민지나 식민지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서구사회와 달리 민족주의를 긍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역사적 맥락 때문이다. 근대의 네이션 스테이트 모델중에서 영미의 제국주의자들은 세계가 자신들의 앞마당인 천상 국제주의자들일 수 밖에 없었고, 독일이나 일본은 민족주의에 기반한 파시스트가 돼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이렇게 민족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이제는 저항적 민족주의 단계를 벗어나, 민족주의라는 사다리를 걷어차야 한다고 십수년전부터 지식인들이 이야기해왔다. 한국은 지난 2년간 공식적으로 국내외가 인정하는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했는데, 그러니 한국의 민족주의는 이제 서서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특히 가해자 일본과 피해자 한국의 2원적 대립구조 의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한국의 우파가 구사하는 시대착오적인 일본 찬양은 무시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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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 민족주의를 졸업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느냐는 질문도 유효하다. 중국은 질적인 차원의 선진국이 될 때까지는 아직 30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지만, 앞으로 10년 이내에 양적인 측면에서 미국을 앞지르리라는 예상도 있고, 이미 G2 국가로 등극해 세계의 질서를 만들어 가는 위치에 놓여 있다. 중국은 미국이 대표하는 서구세계와의 격렬한 대립속에 여전히 내부적 단결을 위해 민족주의 이념을 활용할 수 밖에 없지만, 동시에 외부에는 일국 관점을 벗어난 보편성을 주장해야 하는 모순적 위치에 놓여있다. 지식청년 세대로 불리는 윗세대의 중국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학파’, ‘중국담론을 만들고 싶어했고, 이를 서구의 보편주의에 맞서는 동아시아 담론으로 확장하려 했다. 일본인들이 오래전에 시도했던 일이다. 하지만 샹뱌오 교수는 중국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한 거대한 일반이론을 만들려고 애쓰기 보다는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자고 주장한다. 

“민족주의 정서가 움직일 때, 우선 이게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세계국면, 권력관계에서 출발해서 사고하는지 아니면 종족 아이덴티티로 사고하는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종족 아이덴티티를 들어 중국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제 생각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만일 미국의 패권에 대항하기 위한 각도라면, 일정한 합리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실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저는 중국의 사회주의혁명이 실은 민족주의와 국제주의가 긴밀하게 결합된 결과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사회주의는 세계성을 내포합니다. 관방의 이런 규정에 마오쩌뚱이 가장 큰 공헌을 했습니다. 신중국을 수립한 것 때문이 아니라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세계성에 공헌했습니다. 현재 그를 민족주의자로 부릅니다. 중국에는 수많은 민족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장타이옌, 쑨 등이 처음에는 만주족을 배척했습니다. 그후에 공화주의, 사회주의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모두가 세계구도안에서 위치를 찾았습니다. 민족을 어디에서 선을 그을 것인가는 매우 동적인 과정입니다. 하늘에서 주어진 범주가 아닙니다. 지금 많은 민족주의 정서는 민족주의 노선을 절대화하고 역사적으로 민족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사상의 투쟁과 자신의 협애한 이해를 결합시킵니다. 그래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분위기에 휘말려듭니다. 하나의 출구이지만 수많은 디테일이 숨어 있습니다. 만일 오늘 기분이 개운치 않다면, 민족주의를 통해 사정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우리가 먼저 마주앉아 왜 기분이 나쁜지 철저히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민족주의는 대체 어느 정도로 당신의 이런 문제를 해석해주고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저도 원래는 ‘중국학파’ 같은 의제를 논했습니다만. 지금 와서는 계획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이유는 중국이 이런 글로벌라이제이션 상황속에서 굴기해서 중국의 특수성을 들어 세계에 보편성을 말하는 것이 견강부회로 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자신의 구체적 문제를 먼저 분명하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 하지만 거시적 세계관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자신의 위치를 지구의 한구석 먼 주변부에 위치시키고 그 자리를 명확하게 합니다. 이게 사실은 전세계의 담론입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저는 현재 ‘중국학파’라는 말에 다소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60년대 우리는 이렇게 했습니다 혹은 16세기에는 그렇게 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시공을 초월한 비교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꼭 그렇게 일관된 하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비교적 안정된 중국서술이 있다고 칩시다. 이런 중국서술이 오늘날의 상황에 대해서 일종의 해석력을 생산할 수 있거나 참고가능한 것일까요? 제 생각엔 당연히 아마 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순수하게 역사편찬의 각도로 보기 때문에, 영토범위도 바뀌지 않았고, 인적구성도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일 실제 문제의 각도로 본다면, 직관적으로 대답하건데, 저는 이런 하나의 일관성있는 서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의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태도는 민족주의를 졸업할 때가 된 우리들에게도 참고가 된다. 다만, 당대의 중국인들중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고 내면화할 수 있을지, 그리고 한국인의 경우는 또 어떠한지 회의적이기는 하다. 

“저는 중국인입니다. 이건 특별히 자랑스럽다거나 자랑스럽지 않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이 문화권안에서 태어났고, 제가 원저우溫州사람인 것과 마찬가지로 제가 중국에서 7~80년대 남방의 중소도시에서 태어난 것처럼 운명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백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씹어삼켜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의 정체성은 매우 분명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정체성과는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정체성을 인정하면, 수호해야할 어떤 가치들이 있고, 어떤 일정한 행위규칙을 준수해야 하고, 일정한 문화적 기질을 계승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제게는 이런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익和&同 青春草堂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을 짝지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한다. 여생의 모토는 “시시한일을 즐겁게 오래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