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3년 7월 1일

6. Set me free  

– 서구적 평화의 한계



출처: Pinterest, PixLovers




평화학은 2차세계대전 이후 활발하게 연구되었다. 이는 국제관계학의 한 부분으로 시작하여 심리학, 정치학 등 다양한 학문을 어우르며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폭력과 갈등전환으로, 학문적인 것과 더불어 앞서 이야기한 연결성 작업과 같은 실제 현장에서 다룰 수 있는 방법에도 집중한다. 따라서 이는 실천적 학문의 성격을 가지며, 평화학자는 대부분 연구를 함과 동시에 분쟁현장에서 갈등 조정 및 중재를 맡는 활동가의 역할을 한다.

세계의 각종 분쟁현장에는 UN이나 NGO와 함께 활동하는 평화학자들이 있다. 그들은 Head의 협상을 진행하는 동시에 현장 활동가들과 함께 분쟁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케어하고 개인적, 문화적, 구조적 폭력의 상황을 분석하여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을 연결하는 일을 한다. 다시 말해 인종, 계급, 언어 등을 넘나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껏 이러한 일은 주로 서구 백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자주 자신들의 배경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파악했다. 그 결과 종종 그들의 행동과 태도는 이미 발생된 분쟁을 악화시키거나 그 지역 사람들의 상처를 곯게 했다.

어떠한 사건을 평화적으로 접근하여 폭력과 죽음의 고리를 끊는 것은 이상만 가지고 되지 않는다. 특히나 여러 상황이 오랜 시간에 걸쳐 얽힌 현실의 갈등은 생각만으로 전환하기 어렵다. 평화학은 이러한 문제를 현실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지만 앞서 말했듯 서구적 배경으로 인해 아직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이에 서구에서 시작된 평화학의 현실적 한계를 살펴보려 한다.

평화학의 주요한 의제들은 서구 남성 철학자들에 의해 시작되고 진행되었다. 평화학자들은 잘 알려진 임마누엘 칸트, 존 로크, 토마스 홉스, 카를 마르크스 등의 사상에서 평화적 측면을 가져와 현대 평화학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는 페미니즘이나 생태적 측면 등 지금 세대에서 주목하고 있는 많은 면에서 결여된 것이 많기에 다양한 점에서 비판을 받지만, 한편으로 인권과 정의 등 현대 서구 철학이 만든 평화적 개념들로 인해 단단한 입지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평화학은 학문적 기반을 가진지 얼마 되지 않은 신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서구적 철학을 토대로 하여 자리를 잡았지만, 그 역시 아주 오랜 서구의 사고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진다. 현장에서의 연구를 통해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토착적 문화나 개념을 수용하며 그 저변을 넓혀가고 있지만, 대다수 연구자들의 배경이 서구에서 왔다는 점에서 기존 학문과 비슷한 전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UN을 중심으로 평화학과 평화 의제가 전개되었기 때문에 갈등 전환 또는 분쟁 조정을 하는 평화학자 대다수가 UN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 역시 큰 한계이다. UN은 주로 국가 중심적 소극적 평화에 기반한 활동을 하기에 평화에 대한 여러 논의를 펼치는 것에 제약이 있다. 이에 퀴어 이론, 생태 이론, 페미니즘 이론 등 다양한 통합적 이론들과 함께 하며 그 한계를 보완하고 있지만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지속되며 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각국이 군비를 비축하고, 전쟁을 대비하는 상황에서 평화학의 역할을 고민해본다. 서구에서 발원된 평화학은 유럽과 북미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그 토대로 비롯된 한계를 지닌다. 그로 인해 아시아와 남미 등 다양한 지역의 철학과 영성을 가지고 오고 있지만, 서구적 철학이 “자유의 이념 속에서 타자적 주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홀로주체성”[1]이 깔려 있다는 측면에서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이 시점에서 전쟁의 위험 아래 있는 한국은 평화학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한국에는 평화학을 연구하는 대학이 (거의) 없다. 그나마도 국제개발학을 중심으로 하거나 정치학과 경제학을 연구한 학자들이 국제 정치나 경제의 차원에서 평화를 접근한다. 한국을 기반으로 평화적 접근을 통한 갈등 전환이 절실한 시기다. 국가나 국제 기구가 아닌 다양한 주체들이 한국에서 우리의 토대를 가지고 (평화적) 사회 디자인을 활발히 연구하길 바란다. 그 연구들이 한국 평화학의 시작이 되어 서구적 평화학의 한계를 너머 전쟁 가능성이 아닌 평화 가능성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1] 김상봉, 『서로 주체성의 이념』, 도서출판 길, 2007, 21쪽.






이희연오스트리아에서 평화학을 연구하고 있다. 폭력과 죽음의 고리를 정치생태 안에서 해석하고, 평화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또한, 현재 플루리버스와 가이아 이론을 한국의 동학과 연결하여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