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3년 5월 25일

7. 태괘(泰卦)와 비괘(否卦) 하늘과 땅이 만나(만나지 않아)






태/비(泰/否) 앞에 자리한 소축/리(小畜/履)는 미묘현통(微妙玄通)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지만 어떤 위기의 시간이 되면 기꺼이 자기에게 주어진 사회적 과제를 실현하고 적당한 시점에 물러납니다.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고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납니다.
그들은 때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소축/리의 노력으로 이제 우리 앞에는 아주 큰 위험은 없습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재창조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괘와 비괘는 이 시간에 다른 길을 걷는 두 사람을 보여줍니다.
소축/리가 비워준 이 빈 자리에 태가 먼저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지천태(地天泰)는 우주를 이해하는 또 다른 눈 하나를 열어 줍니다.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과 반대입니다.
지금까지 살지 않았던 방식, 새로운 가능성에 눈뜰 때 보이는 세상입니다.

노자는 이 현상의 의미를 바로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자리잡고, 유연하고 약한 것은 위에 자리잡는다.(强大處下 柔弱處上) 로 읽었습니다.
공자님은 우리 안에는 군자와 소인이 있는데 군자의 마음은 자라나고 소인의 마음은 줄어든다로 읽었습니다.
설명하는 방식은 조금씩 달라도 결국 같은 이야기입니다.
동아시아의 성인들이 꿈꾼 세상은 지천태의 사회입니다.
수운 선생님은 이 내용을 시천주(侍天主)라고 읽었고, 지천태의 삶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은 ‘모시는 사람들, 시민(侍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꿈꾸고 이루어 내는 세계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보국안민, 국태민안(輔國安民, 國泰民安)은 지천태의 유토피아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공자님이 이야기하신 ‘군자와 소인’이 어느 한 쪽이 우세하지 않습니다.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적당히 이기적이고 동시에 적당히 이타적입니다.
오랜 시간 이 둘은 대립하는 구조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다른 눈이 열렸습니다.
이기적인 것을 꼭 나쁘게 보지 않는 인식입니다.
자기 보호이기도 하고, 자기 존중이기도 합니다.
이타성도 꼭 다 좋은 것만으로 보지 않습니다.
자기를 잃을 위험에 대해서 경계해야 하기도 합니다.
우리 안의 군자와 소인은 서로 수렴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안의 양면성이기도 합니다.

지천태의 유토피아는 천지비의 디스토피아를 불러옵니다.
천지비(天地否)는 말 그대로입니다.
하늘은 하늘인 위에 있고, 땅은 땅이 있는 아래에 있습니다.
이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는 하늘과 땅이 가진 마음의 방향입니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지켜낼 수 없습니다. 흔히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라고 말하는 현상이 실현되는 모습입니다. 우리 마음은 가만 놔두면 늘 해오던 방식대로 움직이고 결국 하늘과 땅이 만나지 못하듯이 사회는 분열되고 그 빈 자리에 억압, 독재, 자본 독점이 자리잡게 됩니다.
태/비는 이 두 의식 세계의 긴장 관계를 보여줍니다.
내용을 보면 태(泰)에서 비(否)로 진행되는 과정의 백래쉬(backlash) 현상이 보입니다.
동아시아의 성인들은 이 현상을 ‘무왕불복(無往不復, 쫓아낸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 물극필반(物極必反, 하나의 현상이 갈 때까지 가면 반동이 시작된다)’으로 표현합니다.
인간 안에 있는 양면성 의식을 정확히 읽어 냅니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지금 내가 하는 일의 결과가 좋을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내가 꿈꾸는 좋은 삶이 어느 한 쪽에서 저항적 퇴행, 백래쉬의 길을 열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현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 하나를 꼽으라면 페미니즘입니다.
우리 안의 남성과 여성을 깊이 읽지 않으면 페미니즘의 성공은 남성주의의 강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대 남성의 백래쉬 현상인 ‘이대남’입니다.

저는 2022년을 예측하면서 천지비의 기운이 움직이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하늘과 땅이 만나지 않듯이 사회 전체가 분열하게 되고 문화 전쟁이 격화하게 된다고 읽었습니다. 예측대로 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는 한국 선거에서 문화 전쟁 개념이 처음 시작된 선거로 기억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표적인 공약이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입니다.
사회는 기존의 지역 감정, 세대 갈등, 이데올로기 대립에 이어 문화 전쟁까지 겹치면서 격렬하게 분열했습니다. 내전 상태에 가까운 심리적 고통을 겪은 분들이 많습니다.
천지비의 기운이 사회를 덮고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눈앞에서 지켜본 경험입니다. 디스토피아의 천지비에서 주역은 이런 상황을 읽는 눈 하나를 더 열어줍니다.
‘뽕나무 뿌리가 서로 엉켜있는 계우포상(繫于苞桑)’입니다.
땅 위에 있는 나무의 가지들은 서로 만나지 않습니다. 서로 따로 따로 뻗어 갑니다.
천지비, 분리된 세상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땅 속을 보면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무의 뿌리들은 서로 엉켜 있습니다. 땅 속 세계는 거대한 연결망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나무의 연결망(wood wide web)’ 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과 다른 세계 하나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지천태가 저항적 퇴행, 백래쉬를 불러온다면 천지비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연결망이 생겨납니다. 천지비가 가진 궁극의 비전은 새로운 연결망의 구축, 계우포상(繫于苞桑)입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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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태(地天泰)

小往大來 吉 亨.
태 소왕대래 길 형

작은 것(음-작고 부드럽고 억압받던 것)들이 땅처럼 아래에 자리잡지 않고 위로 올라가서 존중받는다. 큰 것(양-강하고 지배하던 것)들이 하늘처럼 위에 있지 않고 아래로 내려와 시민들의 삶을 지지하고 모신다.(侍民, 强大處下 柔弱處上)

彖曰 泰小往大來吉亨 則是天地交而萬物通也 上下交而其志同也.
단왈 태소왕대래길형  즉시천지교이만물통야 상하교이 기지동야.
內陽而外陰 內健而外順 內君子而外小人. 君子道長 小人道消也.
내양이외음 내건이외순 내군자이외소인.  군자도장 소이도소야.

음과 양이 오고가는 것은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 만물이 소통하듯이 위에 있던 지도자들과 하래에 자리한 민중들이 서로 만나 마음이 하나되는 것이다.
아래의 안(內)에는 양이 자리 잡고 있고 굳건하게 사회를 배려하는 군자의 마음을 쓴다.
위의 바깥(外)은 음이 자리 잡고 있고 순하고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이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은 자라나고, 자기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마음은 줄어든다. 

象曰 天地交泰 后以 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
상왈 천지교태 후이 재성천지지도 보상천지지의 이좌우민.

하늘과 땅이 만나 평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이상적인 삶을 현실에 맞게 기획하고, 이쪽과 저쪽 양쪽의 입장을 서로 보완해서 조화를 이루어 간다. (輔國安民, 國泰民安)

1. 初九 拔茅茹 其彙征 吉.
   초구 발모여 이기휘정 길
   象曰 拔茅征吉 志在外也.
   상왈 발모정길 지재외야

덩어리로 뭉쳐서 자라는 띠풀을 뽑았다.
우리도 이 띠풀처럼 힘을 모아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자.

2. 九二 包荒 用馮河 不遐遺 朋亡 得尙于中行.
   구이 포황 용빙하 불하유 붕망 득상우중행
   象曰 包荒得尙于中行 以光大也.
   상왈 포황득상우중행 이광대야

거칠고 더럽다고 해서 버리지 않는다.
나는 그가 누구라도 그의 존재를 존중하고 품어 안겠다. 재난을 겪는 사람들이 있으면 거친 물살 속이라도 뛰어들어 그를 구하겠다. 이해 관계에 따라 가까운 벗들만 보살피지 않고 누구라도 소외시키지 않고 환대하겠다. 마음에 하늘님을 모시고 모두를 품어 안겠다, 나의 길은 사랑의 빛으로 가득하다.   

3. 九三 无平不陂 无往不復. 艱貞 无咎 勿恤其孚.于食有福.
   구삼 무평불피 무왕불복. 간정 무구  물휼기부 우식유복
   象曰 无往不復 天地際也.
   상왈 무왕불복 천지제야

비탈없는 평지는 없다. 그들은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 어렵지만 겁나지 않다. 나는 내가 살아 남을 근거지, 나를 보호할 기반과 진지를 잃지 않을 것이다. 무왕불복(無往不復), 백래쉬(backlash), 저항적 퇴행이 일어나는 이유는 하늘과 땅이 서로 마주보듯이 세상은 좋은 일 나쁜 일이 서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4. 六四 翩翩 不富以其鄰 不戒以孚.
   육사 편편 불부이 기린 불계이부
   象曰 翩翩不富 皆失實也. 不戒以孚 中心願也.
   상왈 편편불부 개실실야. 불계이부 중심원야.

하늘 높이 줄지어 나는 새들처럼, 나는 가난한 이웃들 곁으로 날아간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지 않고 믿고 받아들인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었다.

5. 六五 帝乙歸妹 以祉 元吉.
   육오 제을귀매 이지 원길
   象曰 以祉元吉 中以行願也.
   상왈 이지원길 중이행원야

상나라의 제을 임금님이 누이 동생을 이웃인 주나라의 희창(姬昌)에게 시집보낸다.
이 결혼은 하늘의 축복이다. 제을 임금은 이웃한 모든 나라와 평화롭게 지내고 싶어했다.
국태민안(國泰民安)의 평화는 자기를 낮춰 상대를 받아들이는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6. 上六 城復于隍 勿用師 自邑告命 貞 吝.
   상육 성복우황 물용사 자읍고명 정 길
   象曰 城復于隍 其命 亂也.
   상왈 성복우황 기명 난야

성이 무너져 내렸다. 저항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전쟁을 중지한다고 시민들에게 알린다.
우리는 오랫동안 평화를 누렸고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었다. 이런 반동은 오래 전 육삼(六三)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12. ☰☷

천지비(天地否)


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 (大往小來 不利君子貞)
비지비인. 불리군자정 대왕소래.

나쁜 놈 전성시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때가 아니다. 하늘은 위로 가고, 땅은 아래로 가듯이 힘을 가진 그들의 욕망은 하늘 위로만 가고, 우리의 소원은 갈 곳을 잃고 땅으로 돌아온다.

彖曰 否之匪人不利君子貞大往小來 則是天地不交而萬物不通也. 上下不交而天下无邦也.
단왈 비지비인불리군자정대왕소래  시즉천지불교이만물불통야. 상하불교이천하무방야.
內陰而外陽 內柔而外剛 內小人而外君子. 小人道長 君子道消也.
내음이외양 내유이외강 내소인이외군자.  소인도장 궁자도소야.

비의 상황은 하늘과 땅이 만나지 않아 만물이 소통하지 않는다. 사회의 아래와 위가 서로 만나지 않는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여성들에게는 마치 나라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게 나라냐.
아래에 있는 안(內)에는 음이 자리잡고 있고 유약하고 나 뿐인 마음이다.
위에 있는 바깥(外)은 양이 자리잡고 있고 강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다.
비의 상황에서는 자기 잇속을 챙기는 마음이 커져나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은 줄어든다.

象曰 天地不交 否 君子以 儉德辟難 不可榮以祿.
상왈 천지불교 비 군자이 검덕피난 불가영이록

하늘은 하늘대로 땅은 땅대로 자기 길을 가서 서로 만나지 않는다.
지금은 내가 할 일이 없다. 어떤 점에서는 위험할 수도 있어서 몸과 마음을 숨긴다. 좋은 일을 해서 명예를 얻고 역할이 주어지는 것을 생각하지 않겠다.

1. 初六 拔茅茹其彙 貞 吉 亨.
   초육 발모여 이기휘 정 길 형
   象曰 拔茅貞吉 志在君也.
   상왈 발모여길 지재군야

덩어리진 띠풀을 뽑았다.
나쁜 놈들이 득세한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분노하지 말자.
띠풀처럼 모인 우리의 힘으로 새로운 지도자를 찾고 길러내자.

2. 六二 包承 小人 吉 大人 否 亨.
   육이 포승 소인 길 대인 비 형
   象曰 大人否亨 不亂羣也.
   상왈 대인비형 불난군야

이런 시대를 품어 안고 받아들인다. 퇴행적 사회 변화가 일어난 이유가 있다.
그들은 자기들 세상에 온 것처럼 즐기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기다린다. 집단을 만들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지 않겠다. 

3. 六三 包羞(羞恥).
   육삼 포수
   象曰 包羞 位不當也.
   상왈 포수 위부당야.

사는 게 수치스럽다.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다. 이건 사람이 산다고 할 수 없다.

4. 九四 有命 无咎 疇離祉.
   구사 유명 무구 주리지
   象曰 有命无咎 志行也.
   상왈 유명무구 지행야

비의 시대를 부른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성찰한 우리에게 생각하지도 못한 어떤 기회, 선물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우리는 뜻을 모아 함께 뭉쳤고 저항했다. 하늘이 우릴 도우셨다.

5. 九五 休否 大人吉 其亡其亡 繫于也桑.
   구오 휴비 대인길 기망기망 계우포상
   象曰 大人之吉 位正當也.
   상왈 대인지길 위정당야

끝났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서야 할 자리에 서 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상황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다시 무너질 것 같은 위기 의식이 우리를 묶고 있다. 하늘과 땅이 따로 가더라도 땅 아래에서 우리는 뽕나무 뿌리처럼(wood wide web) 서로 연결한다. 깊이 뿌리내리고 뿌리와 뿌리를 이어서 버텨낸다.

6. 上九 傾否 先否後喜.
   상구 경비 선비후희
   象曰 否終則傾 何可長也.
   상왈 비종즉경 하가장야

기울고 뒤집혔다. 처음엔 온 세상이 다 막히는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웃는다.
하늘과 땅이 만나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나!








김재형
빛살 김재형 이화서원 대표. 전남 곡성에서 이화서원이라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 공부한다. 고전 읽는 것을 즐기고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시로 읽는 주역',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동학의 천지마음', '동학편지' 를 책으로 냈다. 꾸준히 고전 강의를 열어 시민들과 직접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