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운주의 생명의 경계에게

2023년 1월 2일

7. 유성생식을 하지 않는 지의에게






안녕, 지의야

산책을 하다 보면 널 어디서나 볼 수 있어. 거리의 가로수들, 산속의 우거진 나무들과 바위, 콘크리트, 오랫동안 버려져 방치된 슬리퍼에서도 널 볼 수 있어. 지의(地衣). ‘땅의 옷’이라는 이름답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너. 하지만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널 지그시 보다 보면 세상에 내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 동시에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무의식에 새기는지도.

요즘 그림을 그리고 있어. 비인간 동물과 너희와 나를 포함한, 다양한 몸들의 흐름을 잘 보고 싶었거든. 집 근처 학원에서 크로키와 드로잉을 주로 배워. 선생님께선 내가 스케치해놓은 크로키를 보시더니,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물의 정면을 그리려는 버릇이 있다고 말해주셨어. 그래서 크로키를 할 땐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으면 오히려 더 잘 그릴 수 있다고 하셨지. 처음엔 이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몇몇 그림을 더 그려보고 이해하게 됐어. 내가 그린 그림은 한 손으로 자신의 몸을 들어올리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남자였는데, 묘하게 어색한 거야. 왜 그럴까? 둘을 찬찬히 비교하며 살펴보니 사진보다 그림의 머리가 훨씬 작았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내 머리에서 관념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비율이 읽혔어. 선생님께선 그림 피드백을 또 주셨지. 각도에 따른 신체의 덩어리들이 뒤틀릴 때, 그리는 사물의 외곽선을 주시하라 하셨어. 보통 그림을 그리다 보면 경계선 안의 형태에만 집중하게 되는데, 몸선 밖을 살피며 환기시켜 주면 더 정확한 공간감을 구사할 수 있다고.


사진 출처 : pinterest

얼마 뒤 나는 요가를 하는, 살집이 있는 흑인 여성의 정면 자세를 그려보기 시작했어. 평소 5분이면 잡는 동세와 형태인데, 15분이 넘게 걸렸어. 완성하고 보니 여전히 어색해 보였지. 내 주위엔 비만 혐오로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이 있었어. 이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다양한 몸들에 내 시선이 크게 머물러 있지 않았단 걸 알 수 있었어. 무엇이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쳐다보지 않게 만들었을까. 내 안 깊숙이 자리한 욕망을 느꼈지. 선호하는 몸, 살찌지 않은 근육질 정상 신체에 대한 갈망. 주시하지 않던 몸의 외곽선에 있는 것들. 하얀 종이에 선을 그릴 때, 수많은 사회적 기표들이 선의 안팎에 함께 그어지고 있었어.

사진 출처 : pinterest

‘몸의 외곽을 보다’. 이 말이 아직도 머리에서 맴돌아. 트랜스젠더인지 아닌지 오래도록 고민했었어. 종종 거울 앞에 서서 내 몸을 뚫어져라 보던 버릇은 젠더퀴어[2]란 단어를 알게 되며 사그라들었지. 더 이상 성별 이분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크나큰 해방감을 느꼈거든. 하지만 ‘젠더[3]’라는 단어가 내 삶의 터전에 뿌리내리진 못하더라. 나는 혼자 있으면 체구가 좋은 머리가 짧은 여성, 탈코르셋 페미니스트쯤으로 패싱[4]되기도 했지만(숏컷 관리가 얼마나 힘든데 이건 좀 억울하달까) 또 여자인 친구와 팔짱을 끼고 걸어가면 당연하다는 듯 남성으로 인식되기도 했어. 신체와 공간에 따라 다양하게 읽히던 내 몸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스스로와 화해한다 해서 모든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았어. 단지 할 수 있는 게 좀더 늘었지. ‘일반적’이게 보이지 않는 신체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의 말에 좀더 여유롭게 맞받아칠 수 있었고, 나를 좀더 잘 설명할 수 있게 됐어. 여전히 신체에 쌓인 서러운 역사들은 일상에서 불쑥불쑥 올라와. ‘여성적’이라 불릴 만한 신체의 일부를 느낄 때도, 가슴이 티가 날 때도. 언젠가부터 신체를 혐오하는 감정과 싸우기보다, 내가 ‘여성성’ 그 자체를 싫어한 배경에 무엇이 있었을까 고민했어. 그렇게 돌린 시선에 너희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너희는 곰팡이(진균)[5]와 조류[6]의 공생체지. 곰팡이는 물질을 분해하고 필수 미네랄과 영양소를 분리할 수 있어. 조류는 광합성을 하며 에너지로 사용할 당을 생산할 수 있고. 최근 퀴어 이론들을 보면 생태와 연관된 연구들이 많은데, 일부 사람들은 너희가 ‘퀴어’한 존재라고 하더라. 물론 이 말이 너희의 몸을 제대로 밝혀낸 초기부터 나온 건 아냐. 너희가 언제부터 관심을 받게 되었는지, 어떻게 성소수자와 한 맥락을 나누는 주장들이 나왔는지 알아보려 인간의 역사를 톺아보려고 해. 18세기 식물 분류학의 창시자인 린네는 너희를 “식물계의 가난한 농민들”이라고 불렀어. 이때까지 너희는 원시 이끼나 특이한 곰팡이 정도로 치부되며 하등식물로 분류됐지.

1869년 스위스 식물학자 시몬 슈벤데너는 너희가 식물이 아닌, 곰팡이와 조류의 기생 유기체라는 주장을 했어. 대부분 학자들은 슈벤데너의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어. 당시는 생명들이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로서 존재하고, 각 개체에 우월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거든. 이 주장은 사회적으로 큰 파급을 일으켰어. 대중들은 두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을 ‘슈벤데너주의자’ 라고 조롱했지. 진화에서 경쟁이 아닌 ‘공생’을 중요하게 여기는 학자들도 슈벤데너주의자로 멸시받았어. 100년이 흘러서야 너희는 공생체로서의 신체를 인간들에게 제대로 환영받을 수 있었어. 일방적인 기생의 형태보다 기생부터 공생까지의 관계 스펙트럼을 가지는 유기체란 주장이 강해졌지.

유성생식을 하지 않는 너희가 100년간 무시받은 이유가 뭘까. 1860년, 파스퇴르의 저온살균법이 개발되었던 때였어. 가부장제 경쟁사회에 ‘박멸의 대상’에 지나지 않던 미생물들의 존재가 도전장을 던진 것으로 받아들여진 건 아니었을까. 파스퇴르는 프랑스 혁명 때 왕을 살해한 군중을 비난했고 그때 그는 군중을 미생물에 비유하며 “박테리아더러 우리의 신체를 점령하도록 한다면 우리는 공격자와 구별할 수 없는 곪은 박테리아 덩어리로 분해되고 말 것이다” 라고 했으니까. 앞서 언급했던 린네의 말도 마찬가지였을거야. 왜 너희를 굳이 가난한 농민으로 비유했을까. 뿐만 아냐. 슈벤데너의 주장을 들은 영국의 박물학자인 제임스 크롬비도 너희와 관련된 유명한 비하 발언을 했지. “유용하고 기분 좋은 기생(혹은 공생)은 있을 수가 없다. 포로로 잡힌 조류 처녀와 폭군적인 균류 주인 사이의 부자연스러운 결합이라니.” 미생물과의 경쟁이 아닌 동주, 더군다나 하등한 미생물끼리의 협력은 그 시대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어.

너희의 몸을 이해하는 것은 삶의 이유가 생식을 통한 종 보전적 순환만이 아니라는 점, 자연의 생성과 분해의 순환 속에 우리도 일부로서 공생한다는 걸 알아차리는 과정이었어. 살아남기 위한 스트레스 속에 유성생식을 하지 않는 두 유기체가 결합하며 서로 얽히고 겹쳐져 하나의 단일 존재처럼 보이게 된 너희. 다양한 고립을 겪은 끝에 퀴어 공동체를 고민하며 산책하다가 너희를 만난 나.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고 생각해. 나와 비슷한 생각이 많은지, 최근 퀴어와 땅의 연관성을 균류를 통해 고찰하는 생태학자, 동물의 퀴어한 성생활을 연구하며 연구하는 학자들의 책들이 눈에 띄더라. 애나 로웬하웁트 칭의 『세계 끝의 버섯』 이라던가, 1900년대 말에 나왔던 브루스 베게밀의 『생물학적 풍요 : 성적다양성과 섹슈얼리티의 과학』도 번역되어 있어 놀랐어.

너희는 자연의 천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땅에 붙어 이끼, 초본과 목본이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들었어. 비교적 깨끗한 대기에서 살지만, 어떤 식으로든 유연하게 결합을 하는 덕분에 극한의 환경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너희. 오래된 문화재, 기와, 헌신짝, 너덜너덜한 플라스틱 조각에서도 가끔 너희를 발견하면 베시시 웃음이 나와. 나는 아직 내 뿌리를 잘 찾지 못하겠어. 그래서 움켜쥐는 것에 집착하곤 해. 너희의 광물 구성은 땅보다 대기와 더 비슷하지? 뿌리에 의존하는 대신 공기로 영양분을 흡수하잖아. 너희를 보며 나도 지구에 함께 살아있음을 느껴. 너희를 포함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당기고 끌리면서. 표면에 달라붙어 있다 느끼더라도. 머무름을 느끼게 해준 너희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곰팡이학자 멀드셰이크의 말로 편지를 마무리하려 해.

“지의류는 유기체가 생태계로 풀려나고 생태계가 유기체로 응축하는 곳입니다. 전체와 파편의 사이사이를 깜빡입니다.”



2024.01.01.

운주 씀





[참고 자료]

- 톰 웨이크퍼드(전방욱 옮김),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 해나무(2004)
- Microbial Actors in the Evolutionary Drama, Lynn Margulis, BioScience(2003) Volume 53, Issue 2, Pages 179–180,
- David Griffiths, “Queer Theory for Lichens”, 'York University Libraries'(2015.10)
- Field Notes by Jess, 2023.2.18., https://fieldnotesbyjess.substack.com/p/lichen-embodies-the-queer-experience



[1] 지의 : 녹조류, 혹은 남조류(시아노박테리아])가 균류(주로 자낭균류)와 공생하는 복합 유기체. 지의류의 구조, 생리, 그리고 생화학 기능은 격리 집단인 균류와 조류와는 많이 다르다. 지의류는 북극의 툰드라, 사막, 바닷가에 있는 돌, 유독한 화산암 더미와 같은 극한 환경에서도 자라며, 또한 열대우림이나 온대 지방의 나뭇잎 혹은 가지, 벽이나 묘비 같은 바위에 기착하여 자라기도 한다. 지구상 여러 곳에 퍼져있는 강인한 장수 생물이지만, 외부 환경 변화에 약해, 과학자들이 오존층의 손상 정도나 금속의 오염도를 산정하기 위해 지의류를 이용하기도 한다. 일상에선 물감, 향수, 민간 약품을 제조할 때 이용된다.
[2] 젠더퀴어 : 젠더를 남성과 여성 둘로만 분류하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Gender binary)과 시스젠더 규범성에 벗어난 성 정체성을 가지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로, 그러한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다.
[3] 젠더 : 사회적 성(社會的 性)은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단어로 특정되고 구분되는 특성 전반을 뜻한다. 단어가 쓰이는 맥락에 따라 해당 특성에는 생물학적 성별 (남성, 여성 또는 간성 등의 상태) 또는 성별 기반 사회구성체 (성 역할 등), 성정체성 등이 포함된다.
[4] 패싱 : 어떤 사람의 외적 모습이 사회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성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
[5] 진균 : 곰팡이, 효모, 버섯 등을 포함하는 미생물군을 말하며 균류라고 합니다. 몸이 균사로 되어 있고 포자로 번식하며, 엽록소가 없어 기생생활을 함.
[6] 조류(algae) : 수중에서 생활하며 동화 색소를 가지고 독립 영양 생활을 하는 생물의 총칭. 주로 광합성 작용을 통해 영양분을 얻음.







운주 경계에 선 사람들을 늘 만나고 싶어한다. 완전함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연습 중.

︎ uoonju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