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2년 3월 18일
7. 스즈카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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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카 투어에 참가했다.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오전오후엔 스즈카 커뮤니티의 여러 기구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저녁엔 그날 느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촘촘하게 이어졌다.
스즈카팜
팜(farm)부터 탐방에 나섰다. 팜은 어머니도시락 가게와 함께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운영하는 주요 직장이다. 전체 흐름을 정하고 실행하는 3명의 운영진과 수확과 출하를 담당하는 10여 명의 커뮤니티 멤버들이 구성원이다. 10여 년의 우여곡절 끝에 자리잡은 팜의 겉모습은 일반적인 소규모 농업법인이지만 커뮤니티가 추구하는 사회의 한 단면을 구현해가고 있다.
이윤 창출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 아닌, 회사를 위한 직원이 아닌, 사람을 움직이기 위한 규율이나 탓이 없는, 그런 분위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생산된 먹거리가 지역사회와 커뮤니티에 공급된다. 직장의 목적을 살피는 미팅이 수시로 진행되고, 일주일씩 진행하는 코스에 가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의 성장을 우선에 두고, 직장 역시도 수단이 아니라 사회 실현의 장이 되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허브와 조이
이어서 허브를 탐방했다. 허브는 스즈카 커뮤니티의 뼈대를 이룬다.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것들을 배분하고, 커뮤니티의 경제를 관리한다. SCS(스즈카 컬쳐 스테이션)이라는 커뮤니티 공간과 조이(JOY)라는 커뮤니티의 매점도 운영한다. 조이에는 각종 먹거리와 일상용품이 있어 코어멤버들이 돈을 내지 않고 이용한다. 커뮤니티 소식을 150여 명에게 메일로 발송하기에 커뮤니티 구성원을 150명 정도라고 이야기하지만 가입 원서를 쓰는게 아니니 구성원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없다. 그러나 코어멤버라고 하는 약 50여 명의 사람들이 스즈카 커뮤니티의 근간을 이루는데, 한마디로 한가족 같은 사람들이자 각자가 바라는 사회를 실현해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코어멤버는 일터에서 얻은 수입 중 남는 부분을 허브를 통해 모아 SCS운영 등 여러 경비를 충당하기도 하고 필요한 기구나 사람에게 나눈다. 아무래도 돈이 민감한 부분이다보니 질문이 쏟아진다.
“멤버중에 적게 기여했는데 많이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나요? 유지가 안될거 같은데.”
“허브와 상의해가며 적절하게 배분합니다.”
여기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던질 법한 질문과 속시원치 않은 답이 이어진다. 나도 처음 방문했을 땐 같은 질문을 했었더랬다. 그러나 질문의 전제를 살펴보지 않으면 아무리 대답을 들어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질문은 계약관계가 전제가 되어 묻고, 답은 가족 같은 관계에서 나온다. 그래서 마치 ‘부모가 벌어온 돈을 자식이 기여도 안하고 쓰면 그 가족이 파탄날텐데 그땐 어떻게 하나요?’ 하는 질문에 가까울 듯 하다. 가족관계에서는 자식이 학비를 많이 쓴다고 해서 가족관계가 깨지진 않는다. 물론 요즘 세상에 가족관계라고 해서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아직까진 이를 대체할 마땅한 단어를 찾기도 어렵다. 질문과 답이 이어진다.
“가족끼리도 어려운데 50여 명이 그렇게 된다는 건 스즈카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가능한 일일까요?”
“부부도 원래는 모르던 사이였지만 부부가 되었다 생각하니 친해지지 않나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의견이 다를 때가 있을텐데 중재는 어떻게 하나요? 코어멤버에 나쁜 사람이 들어올 수도 있지 않나요?”
“이야기를 나누는 건 말하는 것보다 상대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코어멤버가 됩니다. 의욕이나 능력이 아니라 마음상태가 그런 사람이 코어멤버가 되는 것입니다. 커뮤니티를 처음 시작할 때는 의욕이 높은 사람들이 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이 많았지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구조나 시스템 역시 사람의 마음이 반영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집은 멋지지만 차가운 관계와 가난하지만 따뜻한 관계가 있다면 후자에 해당되겠네요.“
“그런 마음상태, 친한 상태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일반적으로 그런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은 좀처럼 없지 않나요?”
“그래서 여기서도 허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허브가 커뮤니티 구성원들을 살피며 말을 걸기도 하고 먼저 물어와 주기도 합니다. 허브와 이야기하면서 차근차근 구성원들끼리의 친함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스쿨을 통해 친함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서로 봐주는 것에 의해 경계심이 사라지고 마음을 열게 됩니다.”
“가족끼리도 미운 감정이 드는데, 그럴 땐 어찌하나요?”
“미운 감정이 드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사이로 가고 싶은가이겠지요. 드러난 감정을 두고 어떻게 할 것인가도 있겠지만, 본심에서는 앞으로 어떤 사이로 나아가고 싶은가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6,70대 어르신들이 자분자분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정곡을 찌른다. 게다가 신선하다. 질문에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다. 생각해두었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자신을 살핀 사람들이 이 순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듯했다.
체리슈
체리슈 미팅으로 이어졌다. 체리슈 멤버로, 두 명의 자녀가 있는 쥰나와 사토미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체리슈는 어린이집을 뜻하는데, 현재 10명 정도의 아이들과 이를 지원하는 30여 명의 사람들이 있다. 형태는 공동육아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지만 내용은 꽤나 신선하다. 여기서도 질문이 이어진다.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운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요? 예를들면 아이들이 버릇없이 굴때 그대로 두나요?”
“예의를 가르치는게 아니라 원래 사람에게는 상대를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요. 예의를 가르치는 것은 이쪽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생각을 가르치거나 강요하는 것은 안하고 있어요.”
“보통 아이가 다른 아이의 장난감을 가지고 가려고 하면 주변에서 어른들이 안돼! 하며 못가져가게 하는데 여기선 어떻게 하나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가져간 아이의 상태는 어떤가 보고, 가지고 놀던 아이는 어떤가 하고 봅니다. 돌려주기도 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도 하고, 자리를 분리하기도 하지만 ‘안돼’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바라는 것이 뭔가 하고 상대를 봅니다. 어른이 좋다 나쁘다를 정해두고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전해지니, 무엇을 전하고 있는가를 계속 살피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맞추며 운영된다고 보면 되나요?”
“아이를 존중하는 것과 아이에게 맞춘다는 건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원하는 걸 다 들어주게 되면 아이의 내면에는 그게 당연한 상태가 되어 오히려 점점 더 불만족의 상태로 되는 거 같습니다. 사람을 들을 수 있게 되면 그것이 아이의 만족으로 이어지겠지요.”
“사과를 먹는 어린아이를 보면 목에 걸릴까봐 불안해요. 그래서 둬야할지 뺏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내가 헤깔리면 아이도 헤깔린다고 생각해요. 말만 전달되는게 아니라 불안도 전달된다고 생각해요. 사과를 안 먹이고 싶다는건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는건데 그걸 분명히 아는가, 그것을 전하고 있는가. 내가 그 부분을 아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내가 주체적으로 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이곳과 다른 어린이집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글쎄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해, 고맙다고 말해. 같이 써야지’ 같은 말을 안하고 있어요. 아이가 하고 싶은걸 아이가 꺼내고 있는가. 그걸 듣기 전에 ‘이렇게 해’ 라든지 같은, 어른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피면서 해가고 있어요. 친절한 아이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들어주고, 아이가 만족하게 되면 자연스레 올라오는게 아닐까 생각해요.”
꽤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처음에는 대답에 집중하다 점점 질문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질문 속에 전제가 있다.
‘예의없는 아이’는 아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렇게 보는 어른의 생각이다. ‘예의없는 아이를 어떻게 하나요?’라고 질문한 이는 아이를 예의있게 만드는 방법이 궁금한데, 돌려주는 이는 지금 자신이 아이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답하니 듣는 사람은 뜬금없다 느낄 법한 이야기도 다반사로 오간다. 그러나 전제를 점검하지 않고서는 들을 수가 없다. 자기 생각과 맞는건 받아들이고, 생각과 다른건 튕겨내 버린다. 결국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기 생각을 강화하게 된다.
투어에 참가한 한 일본인 할머니가 남긴 이야기가 오늘 체리슈 대담을 요약하는 듯했다.
‘아이는 어른이 생각하는대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하는대로 자란다.’
오늘의 감상을 보태 덧붙여보자면, ‘아이는 어른의 마음상태대로 자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살펴볼 꺼리가 많은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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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는 돈벌 궁리로 바빴다. 직장생활하며 주식으로 일확천금을 꿈꾸었으나 실패했다. 대신 돈벌고 싶은 욕구의 바닥에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30대는 친구들과 우동사라는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10년 동안 커뮤니티를 주제로 다양한 실험을 하였다. 주변 사람들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 40대에 들어서 다음 10년을 그리고 있다. 볼음도라는 섬을 오가며 농사짓고, 새로운 관계망 실험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환경으로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살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