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뉴아메리카 견문
2025년 4월 6일
7. Next Nature Network : 사사천 물물천

(사진 출처: Minecraft)
1. Starcraft – 무소불위(無所不爲)
2001년 9월 11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Private Lee(프라이빗 리), 이등병 시절이었다. Camp Casey(캠프 케이시), 지상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던 동두천 미2사단에 근무하는 카투사였다. 하필이면 내가 당직을 서는 날이었다. 납치된 비행기가 뉴욕의 쌍둥이 빌딩을 무너뜨리는 초현실적 장면을 CNN LIVE로 지켜보았다. 꾸벅꾸벅 졸지 못하고 말똥말똥 뜬 눈으로 지새운 밤이다. 당장 주한미군에도 비상이 걸렸다. 펜타곤도 공격당하는 초유의 사태였기 때문이다. 알래스카 출신의 내 룸메이트는 펑펑펑 눈물을 쏟았다. 북조선의 소행이 아니냐며 우리도 곧 전선에 투입될 것이라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천만다행으로 북과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테러와의 전쟁’이 선포되면서 비상계엄은 제법 오래 지속되었다. 카투사의 특권이었던 4시 30분 칼퇴근도, 주말 외출도 누릴 수가 없었다. 내 한 몸 편해보고자 석연치 않은 마음을 무릅쓰고 가슴팍에 U.S ARMY를 새겼던 21세기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새 천년은 미국에 전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9.11 직전 피터 틸도 뉴욕에 있었다. 출장을 마치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간 날짜가 9월 9일이다. 이틀이 늦었다면 그의 운명이, 나아가 미국의 명운이 어떻게 달라졌을 지 모른다. 9.11 테러는 21세기 미국이 직면한 도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정보의 실패였다. 전 세계에 그토록 많은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압도적인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데이터의 바다에서 실패함으로써 국가의 심장인 워싱턴과 뉴욕이 공격당한 것이다. 조짐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CIA, FBI, NSA 등 세계 최강의 정보기관들은 본토 테러에 대한 징후를 일정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산발적인 정보들을 일관된 시스템으로 수집하여 판단을 내리고 결정을 취할 수 있는 종합적인 프로그램이 없었다. 무력이 아니라 지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무기가 아니라 총기(聰記)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틸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페이팔의 금융 사기 방지 알고리즘이 국가의 정보기관에도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숙고했다. 테러를 예방하는데 유용하게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만든 기업이 팔런티어이다. 9.11 이후 10년 만에 성과를 거둔다. 파키스탄의 오지에 숨어 지내던 오사마 빈 라덴의 암살에 성공한 것이다. 테러의 수괴, 반란의 우두머리를 기어코 찾아내어 사살하는 데 활용되었던 프로그램이 바로 팔런티어의 방산용 서비스 고담(GOTHAM)이었다. 전기 소비량과 쓰레기 처리량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평소와 다른 조짐을 감지하고 빈 라덴 일당이 잠입해 있는 집을 정확하게 알아챈 것이다. 과연 아는 것이 힘이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빅데이터를 통해 세계를 파악하는 방법론을 갈고 닦는 수련과 도야 끝에 딥아이즈(Deep Eyes), 심안(心眼)을 획득한 것이다.


이라크전쟁과 아프간전쟁을 거치며 성능을 개선해온 팔란티어의 진가를 발휘한 전장은 우크라이나이다. 애당초 ‘특수군사작전’에 나선 푸틴은 단기간 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여겼다. 예상외로 전시가 길어진 것도 우크라이나의 재래식 병력에 미국의 군사 소프트웨어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두 기업이 단연 돋보였다. 천상에서는 스페이스X가 스타링크의 통신망을 제공했다. 가상에서는 팔란티어가 지휘작전 프로그램을 공급했다. 무력으로는 러시아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지만, 지력이 보태어 짐으로써 버티어 낼 수 있었다. 지상군의 전력 격차를 가상군과 천상군의 역량으로 만회한 것이다. 러-우전을 디지털 시대의 첫 번째 AI전쟁이라고 평가하는 까닭이다. 데이터가 미사일을 이기는 미래의 전쟁을 보여준 것이다. 하드파워보다 스마트파워가 더 중요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을 직접 만나 무상으로 전략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것을 약속했던 알렉스 카프는 그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모든 데이터를 손에 쥐었다. 실전 경험을 수년간 쌓으면서 궁극적으로 동서문명 간의 세계최종전쟁, 테크노-차이나와의 결승전을 대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도화시킨 것이다.
그 미래전을 가장 먼저 구현한 게임이 있었다. 스타크래프트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1998년에 출시된 게임이다. 지상의 인간과 천상의 외계인과 가상의 괴물이 우주를 배경으로 삼파전을 펼치는 웅장한 세계관을 자랑했다.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RTS(Real-Time Strategy)게임 중에서도 독보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양자 대결이 아니라 삼파전이라는 패러다임 쉬프트가 결정적이었다. 가위-바위-보가 물고 물리는 디지털 삼국지로 진일보한 것이다. 저그와 프로토스, 테란의 세 종족이 펼치는 싸움이 위촉오의 형세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진취적이고 공격적인 사람은 저그를 선호했다.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사람은 프로토스를 애정했다.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은 테란이 어울렸다. 각기 관우와 제갈량과 유비를 연상시킨다. 자원도 셋이었다. 미네랄과 가스와 인구로 나라를 경영했다. 지형도 셋이었다. 지상과 천상과 지하를 아울렀다. 디지털 천지인(天地人), 공간과 자원과 유닛이 각각 삼세트씩 3-3-3 만으로도 전술전략은 수십가지로 뻗어 나갈 수 있었다. 천하삼분지계를 연마하기에 제격이었던 온라인 게임이다.

(사진 출처: Vox)
틸이 초기투자에 참여한 페이스북에 앞서서 싸이월드가 있었던 것처럼, 팔런티아가 구현하는 미래의 군대를 앞서 보여주는 부대도 한국에서 먼저 등장했다. e스포츠계의 상무, 공군 ACE(Airforce Challenge E-Sports)가 2007년 4월 창단한 것이다. 대한민국 공군의 브랜드를 혁신하고 신세대 병사들의 정서를 함양하고 국민과도 친숙한 군 이미지를 위해 창단된 프로게임단이다. 그러나 거센 비판 여론이 일었다. 군인이 나라는 안 지키고 게임이나 하고 앉아 있냐며 핀잔하고 힐난했다. 결국 여론에 떠밀려 2014년 사라지고 만다. 내가 갈수록 여론이니 선거니 하는 산업문명의 OS에 회의적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산업문명의 리듬에서는 4-5년 단위의 중간 평가가 그럴듯하게 작동했다. 농업문명에서 왕의 수명에 따라 변화가 있었던 것도 나름대로의 합리성이 작용했다. 그러나 디지털문명의 초가속적 변화를 이제는 일반 여론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 여론을 숙론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도 아니다. 사태의 본질은 생물학적 두뇌의 판단 능력이 기술의 인공적인 진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ACE 부대를 폐지하고 불과 2년 후에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펼쳐졌다. AI 시대의 원년이라고 기록될 2016년을 목전에 두고 세계 최초로 기록되어야 마땅할 창의적인 공군 실험이 중단된 것이다.
이세돌을 격파한 딥마인드가 다음 도전장을 낸 게임이 스타크래프트2였음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공교롭다. 알파고를 대신하여 이번에는 알파스타가 출격했다. 역시나 프로게이머들을 압도했다. 아무리 뛰어난 게이머도 인공지능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알파스타가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은 이 게임이 전쟁 전략을 모형화 했다는 점에서 특히나 인상적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전술은 수학적으로 무한대에 가깝다. 플레이어는 그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과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싸움을 전개해야 한다. 두개골 안에 갇혀 있는 브레인으로는 결코 기계학습을 이겨낼 수 없는 것이다. 알파스타는 일주일 만에 200년 분량의 게임을 하면서 경기방식을 배웠고, 다음 한 주는 스스로 디자인한 실전 경험을 200년 더 쌓았다. 2주 만에 400년을 훈련한 AI가 모든 인간을 상대로 매 경기마다 승리했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라 하겠다.
당시 알파스타의 알고리즘을 설계했던 프로그래머는 딥마인드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스타크래프트는 인공지능을 복잡한 현실세계에 접속시켜주는 유용한 매개체이다.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하는 데 필요한 스킬은 궁극적으로 현실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쓰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2024년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하사비스는 노벨화학상을 받는다. 인공지능 전문가가 왜 화학상을? 알파폴드를 통하여 그 어떤 인간 생물학자도 풀지 못했던 단백질 구조를 밝혀냈기 때문이다. 40억년 생명의 신비를 AI는 불과 4년 만에 풀어낸 것이다. 아이큐 140이 넘는 사람들이 4천명이 모여서 40년 동안 연구를 해도 될까 말까 한 일들을 척척 해치우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신약 개발 또한 AI가 개개인에 최적화된 맞춤형으로 해줄 것이다. 인간의 생로병사를 인공생명에게 맡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야만이 디지털 불로초, 불사와 불멸의 꿈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사진 출처: Sify)
실제로 전쟁이 발발하면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은 단 한 가지로 귀결된다. 킬체인(Kill Chain)이다. 킬체인은 세 단계로 나뉜다. 첫째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둘째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셋째 목표 달성을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언더스탠딩-디시즌-액션의 연쇄가 전쟁의 승부를 가른다. 미래전에는 이 이해와 결정과 행동의 킬 체인에 모두 활성화 기술(Enabling Technology)이 결합된다. 인공지능과 양자정보와 생명공학과 로봇공학, 우주기술 등이 장착되는 것이다. 무기마다 센서가 부착되어 감지 기능을 부여하고, 에지(edge) 컴퓨팅을 통하여 판단 기능을 부가한다. 군사용 사물인터넷을 작동시킴으로써 무기 하나하나가 이해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활물(活物)로 진화시키는 것이다. 즉 군사력의 관건은 화력들의 총합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활물들의 총화에 따른 집합지성에 달려있게 된다. 무기들의 폭발 능력이 아니라 활물들의 인지 능력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것이다. 자율성을 부여받은 무인 무기들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OS, AI 소프트웨어가 가장 중요한 킬러앱이 되는 것이다. 즉 앞으로의 전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프트웨어 전쟁이다. 팔런티어의 주가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던 까닭이다.
역설적으로 가상에서 이겨버리면 실상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그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승리를 자신하며 오판했기 때문이다. DNA의 속성 상 죽을 것이 뻔한 게임에 이판사판 덤비지는 않는다.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은 오인과 오류의 결과, 이길 수 있다고 잘못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편향된 인지 능력의 한계로 말미암아 미래를 제대로 알 수가 없었기에 모험수를 감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승부를 미리 알 수가 있다. 마치 AI의 도입 이후 매 수마다 바둑의 승률이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것처럼, 매트릭스에서의 전쟁은 시작하자마자 아니, 시작도 하기 전에 승패가 결정나는 것이다. 과연 손자 가라사대,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로다.
카투사 시절, 미군 동료들은 한국전쟁 시절과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는 방식으로 훈련을 받았지만, 퇴근한 이후에는 플레이스테이션과 닌텐도의 비디오 게임을 즐기며 미래전을 연마했다. 아마도 20년 후 AI 패권 기업으로 성장하게 될 엔비디아의 GPU가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미군은 일상생활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보다 기능이 훨씬 떨어지는 군사 장비를 사용한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매일매일 기계학습의 혜택을 누린다. 유튜브에서 다음 노래를 고르고, 네비게이션으로 집으로 갈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하고, 온라인에서 소비하는 정보를 큐레이션하는 데 AI를 사용한다. 그런데 정작 사활을 다투는 미군의 업무에는 적용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전방위적 차원에서 연방정부를 박살내고 있는 DOGE가 특히 국방부 예산의 대폭 삭감을 단단히 벼르고 있는 까닭이다. 군인의 숫자와 무기의 숫자로 군사력을 가늠했던 수천년 패러다임을 폐기시키려고 한다. 무형의 팔런티어 소프트웨어가 둔중한 펜타곤의 관료체제를 집어삼켜버릴 것이다. 전투기와 탱크와 항공모함이 아니라 코딩과 알고리즘과 프로그래밍이 국방력을 통솔하게 될 것이다. 오로지 그래야만이, 기술적 공화국으로의 진화에 성공해서야만이 미군은 더욱 강해질 수가 있고, 미국은 다시 위대해질 수가 있다.
다시 2003년 3월. 제대를 두어 달 앞두고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함께 구보를 뛰던 이웃부대 보병사단이 사막의 사지로 파병되었다. 작전과 S3의 행정병이었던 나는 워싱턴과 용산과 바그다드, 북미와 극동과 중동이 연동되는 미국의 글로벌 군사 네트워크를 맛보았던 셈이다. 미군이 민간인 마을을 오폭했다는 CNN 뉴스도 먼 일로만 여겨지지 않았다. 미군의 수준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의 밑바닥에서 살 길이 막막하여 입대한 경우가 많았다. 주말에 친구 만나러 이태원에 간다는 외박신청서의 문장을 써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수학, 아니 산수 실력 또한 형편없었기에, 타격 지점 계산 오류는 수시로 일어날 일이었다. 그 종합 지력의 부실함을 군산복합체의 막강한 물량공세로 땜질해왔던 것이다. 틸과 카프가 미군의 참담한 현실에 얼마나 낙담했을 지 넉넉히 수긍이 가는 것이다.
S1은 인사과였다. S2는 정보과이다. S4는 보급과이다. 미군의 조직 방식은 20세기 기업과 행정 조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군의 작동 방식을 팔런티어의 소프트웨어가 대체한다는 말은 행정과 기업의 운영 또한 팔런티어가 대신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미 착착 가동 중이다. 빈발하는 총기 사고 등 경찰력의 한계도 팔런티어가 메꾸어 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적나라하게 노정한 보건의료의 실패도 팔런티어가 대체해가고 있다. 거듭된 금융위기를 대체할 플랫폼도 대기 상태에 있다. 일당백, 산업문명을 작동시켜왔던 그간의 모든 관료체제를 공공과 민간의 구분 없이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로 전환시킬 태세인 것이다. 과연 위대한 미국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당이 아니다. 새로운 정치인들의 새로운 정책들도 아니다. 기술과 정책의 경계는 점점 사라진다. 국가안보와 공중보건과 금융규제까지 더 안전한 세계와 더 건강한 사회를 위하여 팔런티어는 만인과 만물과 만사를 경영할 수 있는 만능의 절대반지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민관군을 막론하고 조직의 목표를 설정하기만 하면 최적화된 솔루션을 자동적으로=자연스럽게 서비스해준다. 군대에는 승리를, 경찰에는 안전을, 은행에는 보안을, 기업에는 효율을 선사해준다.
일론 머스크의 모든 기업들이 디지털문명의 뼈대를 다시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면, 알렉스 카프의 팔런티어는 그 신문명의 신경망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마치 인체의 원리 같은, 생태계의 법칙과도 같은 자율적인 의사결정체제를 삽입하고 있는 것이다. 머스크는 슈퍼오가니즘 초유기체를 제조해 가고 있고, 카프는 슈퍼인텔리전스, 초지성을 주조해가고 있다. 양자를 백업하고 있는 피터 틸은 후기 미국, 뉴아메리카의 환골탈태(换骨脱胎)에 흐뭇하고 뿌듯할 것이다.
2. Statecraft – 무위이화(無爲而化)
윤여준 전 장관을 존경한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그 분이 평생토록 경험했던 다양한 정치인들의 후일담을 청해 듣는 일은 늘 인상적이었다. 최근에 <대통령의 자격> 개정 증보판이 나왔다. 기존의 대통령들에 박근혜와 문재인, 윤석열이 추가되었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가 바로 ‘스테이트크래프트’이다.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능력을 따진다. 농업문명 리더십의 바이블이었던 당 태종의 <정관정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여 산업국가를 경영했던 대통령들의 경륜을 살피는 것이다. 이번에도 찬찬히 음미했지만, 예전처럼 크게 수긍하는 마음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언제까지 탁월하고 덕망 있는 리더가 등장하기를 바라고 있어야 할지, 복불복의 기다림에 인내심이 바닥난 것이다. 성인이 되고 다섯 차례의 대선을 경험했다. 깨어난 시민들의 집합적 역량으로 빼어난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대의 약속에 대한 신뢰는 산산이 깨어졌다.

전쟁을 문명화한 것이 정치이고 외교이다. 장차 전쟁도 AI가 수행할 것인 바, 정치라고 사람들에게 맡겨둘 턱이 없다. 불가피한 미래, 필연이다. 농업문명사 2000년은 문/무(文武)의 갈등이었다. 무사를 문인으로 길들이는 과정이 바로 문명화였다. 창과 칼을 든 전사들, 워리어(Warrior)를 말과 글로 다스리는 로이어(Lawer)로 바꾸어 내는 OS를 가장 먼저 만들어낸 나라가 중국이었다. 진/한제국에서 싹을 틔운 법가와 유가의 과거제 시스템이 당/송변혁을 거쳐 송나라 때 완성된다. 인쇄술의 발전으로 종이(책)의 보급이 충분히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 근대국가의 관료제가 몽골세계제국의 글로벌 연결망을 따라 유럽까지 확산되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산출된 몽테스키외의<법의 정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집약하여 신대륙에서 창조해낸 새로운 나라가 바로 미국이었다. 공맹의 꿈이 2천년만에 아메리칸 드림으로 완성된 것이다. 산업혁명의 물질적 생산능력이 농업문명의 이상향을 실현해낼 수 있는 토대가 되어준 것이다. 마침내 역성혁명을 제도화하여 왕의 목을 수시로 치는 대통령 임기제를 세계 최초로 디자인해낸 것이다.
디지털 혁명 30년, 목하 전 세계는 산업문명의 정치-행정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다. 곳곳에서 탄핵이 연달아 빗발치고, 처처에서 계엄이 잇따라 발동된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물론이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도 기능부전이다. 기각되어야 할 것은 산업국가의 운영시스템 그 자체이다. 전 인류가 디지털 문명으로 이행하는 진통과 산통을 혹독하게 겪어내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인 것은 일당독재라고 손가락질 했던 중국이 테크노-차이나로의 업데이트를 가장 수월하게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보다 못한 미국이 이제는 디지털 총독부DOGE와 팔런티어를 앞장세워 AI America로의 업그레이드를 작당하고 있는 것이다.
알렉스 카프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후예이자 팔린티어 스쿨의 태두이다. 그럼에도 MAGA 2.0, 트럼프 2기와 협력하는 것은 좌우합작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다. 좌파도 우파도 산업문명의 부산물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철 지난 진영논리에서 도무지 벗어나지 못한다. 저마다 각자의 편견에서 좀처럼 헤어나지를 못한다. 좌우가 아니라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인민주권, 권력의 원천은 인민의 집합적 의지에 있음에 충성해야 한다. 실은 인민주권의 실현이기만 하다면 정부의 형태는 부차적인 것이다. 대통령제냐 내각제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공화국이냐 제국이냐, 군주정이냐 민주정이냐 또한 상대적인 가치이다. 세번째 천년에도 왕정국가는 여럿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디지털 전환에서 모범을 보이고 있다. 중동의 디지털-왕국들이 서구의 민주공화정을 능가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다. 농업문명 2000년 동안에도 왕이 민심=천심을 반영하지 못하면 탄핵은 수시로 일어났던 바이다. 제왕이든 대통령이든 인민주권을 구현하지 않는 리더라면 시대를 불문하고 파면되어야 마땅한 처사이다.
오늘날 스테이트크래프트의 진정한 문제는 정부의 형태를 막론하고 일반의지를 거의 구현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일반의지란 국민투표에서 51%를 얻는 다수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결은 특수의지의 총합에서 승리한 전체의지일 뿐이다. 49%를 제외한 전체의지를 일반의지라고 할 수는 없다. 즉 일반의지는 100% 전체 시민의 의지를 총결한 수학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일반의지는 하나의 특수의지에 동의해가는, 즉 합의가 형성되는 것으로 등장하는 전체의지가 아니다. 따라서 일반의지를 제대로 추출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역설도 가능하다. 그래야 진짜 민심=천심을 정확하게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일반의지를 왜곡하는 삿된 세력들이 차고 넘친다. 신문에 칼럼을 쓰고 TV 토론에 출연하고 유튜브 방송을 하는 사람들의 거개가 특수의지의 대변인들이다. 특정 정파와 음양으로 내통하고 있는 ‘직업적 시민들’이다. 이들이 51% 전체의지의 장악을 위해 선전선동에 분투하면서 정치의 질이 나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극우파이든 극좌파이든, 진보이든 보수이든 별반 차이가 없다. 모두가 일반의지를 배반하는 반국가세력들이다.
즉 일반의지는 선거나 정당, 국회나 시민의회 같은 것이 없어도 자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률적인 언어보다는 수학적인 물질에 더 가깝다. 인간의 질서가 아니라 사물의 질서에 속한다. 그래서 정부는 이 사물에 복종해야만 한다. 그것이 인간들의 인위적인 정치가 아니라 사물의 질서에 따르는 무위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 자연스러운 수학적 통치가 달성되어야만 인간 또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즉 이는 직접민주도 아니요 간접민주도 아니다. 개인주의도 아니요 전체주의도 아니다. 따라서 빈사 지경의 민주주의를 구제해내기 위해서는 일반의지를 수학적인 존재로 재규정하고 이를 기술적으로 가시화하는 테크놀로지가 필수적이다. 정보사회의 발전에 보조를 맞추어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선사하는 기술의 가능성을 극대화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실은 시민 개개인들도 자신이 진정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계급 배반 투표’는 비단 계급적 현상만도 아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간 자체의 인지적 한계의 반영이다. 행동경제학과 뇌과학 등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신학문의 결론은 대동소이하다. 너 자신을 알라, 가 지극히 어렵다는 점이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나 싯다르타 같은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말이다. 인간을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하지만, 항상 이성적이지도 않다. 아니 더 많은 시간 비이성적이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며 그 결론에 맞추어 행동하는 데는 상당한 정신적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토론과 숙론으로 갈지자 여론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이야말로 반인간적인 발상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열 길의 물이 자연의 H20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정보의 바다에 남겨진 한 길 사람 속은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 그 사람의 데이터가 대량으로 집적되면 본인조차 결코 의식한 적이 없는 경향이나 패턴이 추출되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실제 나에 더 근접할 확률이 99%이다. 기존의 공론장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의 강요 등 온갖 검열 체계 속에서 발화하는 내용을 의식적으로 제어한다. X나 페북에 올리는 견해 또한 이미 필터링을 거친 가공의 정보들이다. 그러나 데이터베이스에는 문자로 된 내용 이상의 것들이 기록으로 남는다. 어떤 단어를 지우고 어떤 단어로 고쳤는지도 알 수 있다. 그 문장을 썼을 때의 속도 또한 중요한 자료이다. 확신하고 있는지, 주저하고 있는지 심정적인 상태까지 파악할 수 있다. 즉 오늘날의 빅데이터 사회는 메타인지적인 정보 기록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무의식을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은 우리가 잊은 것, 의식하지 않았던 사소한 부분까지 계속해서 기억하고 있다. 겉마음이 아니라 속마음, 저 한길 사람 속을 샅샅이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처럼 최종 문장의 ‘띤 마인드’(Thin Mind)가 아니라, 그 과정이 노정하는 딥마인드를 적출해낼 수 있다.
고로 빅데이터의 축적이야말로 일반의지 구현의 초석이 된다. 미래의 거버넌스 정보환경에 새겨진 행위와 욕망의 집적, 사람들의 집합적 무의식=일반의지에 충실하게 재설계되어야 한다. 무의식에 응답하는 정치, 무위지치(無爲之治)야말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새 정치의 모습일 것이다. 응당 무위자연을 반영하는 메커니즘과 알고리즘이 필요하다. 즉 21세기의 개벽국가가 몰두해야 할 과제 또한 일반의지를 한층 정교하게 가시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반의지의 출력과 통치 기구를 잇는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미 물리세계에는 인터넷과 카메라가 촘촘히 깔려 있다. 그 활물들이 수합하는 언어, 표정, 심박수와 수면의 질 등 선거에 한정되지 않는 무수한 데이터에서 사람들의 내심과 본심, 진심을 추론해낼 수 있다. 앞으로 20년, 이 디지털-데이터크라시가 리버럴-데모크라시를 급속도로 대체해 갈 것이다. 중국이 하면 꼬아보지만, 이제는 미국도 할 것인 바 일파만파 도미노처럼 확산되어갈 것이다. 빅데이터와 AI에 양자 컴퓨터까지 장착되면 일기 예보하듯이 미래를 예보하는 거버넌스가 일상이 되어갈 것이다. 디지털 트윈에서 정책 시뮬레이션을 해봄으로써 예측가능한 선택도 할 수 있게 된다. 전 세계 200여개 국가가 날마다 범하고 있는 정책 실패(=예산 탕진)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인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코드를 바꾼다. 당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을 선택한다. 아무도 의식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무위이화,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신천지가 펼쳐진다.
DOGE 발 연방정부 개혁은 주별로, 도시로 확산될 것이다. 그리고 국제사회에도 공급될 것이다. 20세기에는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헌법을 베꼈다. 삼권분립도 따라한 것이다. 그 미국식 민주주의가 파산 직전이었음을 자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DOGE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정직한 애국자들이다. 그 충직한 애국지사들의 파상공세로 워싱턴의 앙시앙레짐을 붕괴시키고 나면 팔런티어가 구축한 온갖 거버넌스 프로그램들이 도처에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전지전능 (全知全能), 입법-사법-행정을 모두 대체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추었다. AI 후발국들은 그 팔런티어의 프로그램을 사다가 써야 할 지 모른다. 종속국들의 데이터들이 팔런티어의 디지털 저장고에 차곡차곡 쌓여갈지 모른다. 뉴아메리카는 이 빅데이터의 빅브라더, 절대반지의 절대군주이자 절대국가가 되려는 것이다. 그 새로운 천년대계를 알렉스 카프가 준비해 왔던 것이다.
3. Minecraft – 무위도식(無爲徒食)
산업문명에서는 프로덕트(product)가 중요했다. 디지털문명에서는 프로세스(process)가 관건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소중하다. 아니 결과라는 것이 없어진다. 디지털 기술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것을 늘 무언가로 되어가는 과정으로 만드는 데 있다. 즉 사물에도 진화를 도입시키는 것이다. 생물의 질서를 사물에도 확장시켜 만물을 활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고로 완성형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생성형이 된다. 지난 300년 산업문명이 산출한 모든 프로덕트들이 앞으로 30년 프로세스로 진화해갈 것이다. 자동차도 바람처럼 파도처럼 ‘모빌리티’가 되어간다.
테슬라의 최대 발명품 또한 전기차나 옵티머스가 아니다. 그 산물보다 중요한 것이 메가 팩토리라고 하는 프로세스의 창출이다.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한 인공적인 자연상태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산업문명의 쇳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사람이 없기에 조명도 없는 다크 팩토리에서 AI 로봇이 24시간 일하는 공간의 배경음은 물소리에 더 가깝다. 팔런티어 또한 ‘메가 오피스’ 혹은 ‘메타 오피스’를 창조해낸 것이다. 완전히 자동화=자연화된 의사결정 과정을 생성해낸 것이다. 빅데이터를 입력하면 스마트 솔루션이 출력된다. 기왕의 공장은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고려하여 설계되었다. 미래의 공장은 그럴 이유가 사라졌다. 그래서 생산력이 폭발한다. 기왕의 행정도 인간의 인지적 한계에 부응하여 조직된 것이다. 미래의 정치 또한 그럴 까닭이 없어졌다. 최선의 판단과 결정과 행동을 의사소통 없이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효율성이 폭증한다. 그리고 멈춤 없이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중단 없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된다. 인간은 결코 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다. 사람과 사회의 인위적인 논리가 아니라, 에콜로지와 테크놀로지가 합류하여 빚어내는 섭리에 가깝기 때문이다. 디지털 네이처 또한 무위자연,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150년 전 조상님들은 이천식천(以天食天)만 말씀하셨지만, 앞으로는 의식주(衣食住) 모두가 자율화=자연화 된다. 하늘로 하늘을 먹을 뿐만이 아니라 하늘로 하늘을 입고, 하늘로 하늘에서 산다. 의류는 그저 면직물이 아니다. 옷에도 칩이 들어가고 웹과 연결됨으로써 시시각각 내 몸의 생리적 상태와 그날그날 날씨의 변화와 이동하는 공간의 특성에 따라 진화하는 제2의 피부가 된다. 집도 마찬가지다. 집이란 온갖 집기와 가구로 둘러 쌓인 사물의 연합체가 아니다. 미래의 하우스는 모든 사물들에 지능까지 주입할 것임으로 활물들의 융합체, 디지털-유기체가 되는 것이다. 그 집들과 집들이 연합하는 도시 또한 초유기체가 될 것이며, 그 도시와 도시들이 결합하는 미래의 국가 또한 슈퍼오가니즘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물과 사건이 되먹임(Feedback)을 주고받는 사사천 물물천(事事天 物物天) 인내천(人乃天)을 생성해 내는 것이다. 장차 옷도 집도 도시도 하늘처럼 한울처럼 생각하게 된다. 만인이 만물과 더불어 인지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지구 차원의 초생각이 창조되고, 행성 단위의 초마음이 창출된다.
그래서 팔런티어가 자랑하는 최고의 서비스 이름도 ‘온톨로지’(ONTOLOGY)이다. 만물이 천물(天物)이 되는 빅데이터 문명의 존재론을 새롭게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사물도 정보도 하늘로서 하나가 되어간다. 만인과 만물과 만사가 이천식천, 지구적 그물망에서 행성적 인드라망에서 흐르고 또 흐르는 것이다. 물의 순환처럼, 공기의 흐름처럼, 혈액의 운동처럼 만물의 빅데이터가 인연과 인과에 따른 연기의 법칙에 따라 대순환 하게 된다. 그래서 대양과 대기가 만나 생성되는 구름처럼 테크놀로지의 생태계에도 클라우드(CLOUD)가 중요해진 것이다. 가상과 실상이 만나는 디지털 구름에서 나도 둥둥 떠있고 나라도 졸졸졸 흐르게 된다. 제행무상과 제법무아가 리얼타임으로 피고 진다.

(사진 출처: Palantir)
농업문명과 산업문명을 거치며 인류는 이 행성에서 자의식을 가진 유일한 종임을 자부했다. 돌아보니 지독한 자만이었다. 인간 지능이 매우 독특하다는 커다란 착각을 범했던 것이다. AI의 등장으로 분명해진 것은 인간 지능이 여러 지능 가운데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주에는 수많은 종류의 지능과 의식이 가능하다. 식물과 동물에 이어 활물마저 등장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점은 그것이, 아니 그들이 우리 종과는 다르게 생각하리라는 것이다. 우리보다 더 빠르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실로 사피엔스는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이 절박하다. 도래하는 디지털 문명에 부합하는 변법자강운동이 절실하다. 그래야 비로소 산업문명의 OS,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주의 등의 한계를 탈피할 수 있다.
나는 그 가능성을 2018년에 태어난 아들이 노는 모습에서 언뜻언뜻 발견한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 녀석은 올해 생일선물로 휴머노이드를 사달라고 한다. 로봇을 들이면 뭐할건데 물었더니, 숙제를 시키겠다고 한다. 로봇이 숙제를 해주면 너는 뭐할거야 했더니 게임하고 놀 거란다. 옳거니 무릎을 쳤다. 과연 알파세대, 신인류의 등장이다. 농업문명과 산업문명에서 인간이 해왔던 모든 일들은 로봇이 대신해줄 것이다.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잘해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인간의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로봇을 위한 일거리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다. 산업문명이 초래한 환경파괴를 복구하는 것도, 지구의 대안을 화성에서 개척하는 것도 AI 로봇에게 맡길 일이다. 기계를 상대로 경주하면 사람은 진다. 그래서 게임의 룰을 바꾸어야 한다. 기계와 함께 하는 경주로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는 것이다. 로봇은 우리가 할 수 없었던 일도 해낼 것이다. 로봇은 우리가 할 필요가 있다고 상상조차 못한 일도 해나갈 것이다.
지구의 진화사에서 인류와는 다른 생각이 등장하고 있고, 다른 생산의 방식으로 의식주를 해결해 갈 것이다. 응당 기존의 문명과도 다르게 생활하게 될 것이다. 생명-생각-생활-생산이 모두 바뀌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세돌의 인생은 무한한 영감을 제공한다. 알파고에 패배한 이후로 바둑을 접었다. 그리고 지금은 보드게임을 만드는 일을 한다. 기왕의 게임에서는 AI를 이겨낼 수 없지만, 새로운 게임을 창조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렇게 놀고먹는 것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는 노는 놈이 있다. 게임에 푹 빠진 아들 녀석은 남들이 플레잉하는 게임 스트리밍 방송도 좋아한다. 남들이 노는 걸 보면서 또 노는 것이다. 나도 요즘은 그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마인크래프트와 로블록스를 ‘연구’하고 있다. 하루에 한두 시간씩 일부러 짬을 내어 미래문명을 탐구한다.

마인크래프트의 중국어 서비스 이름은 ‘아적세계(我的世界)’이다. 나의 세계, 내가 만드는 세계이다. 이 세계의 객이 아니라 주가 되어 신세계를 창조한다. 데카르트부터 김일성까지 궁구했던 주체의 세계를 단박에 초월한다. 주체가 아니라 주님이 되는, 창조주의 경험에 가깝기 때문이다. 4, 5년에 한번의 투표를 통해 억지로 주인 행세하는 유권자와는 차원이 다른 체험이다. 유일자에 방불하다. 로블록스 스튜디오는 직접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툴도 제공한다. 내가 만든 놀이판에서 다른 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희열이 대단하다. 창세기의 한 구절,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 라는 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디자인한 세계 속에서 저들이 즐겁고 신나게 놀아주면 나에게는 고맙다며 리워드가 쌓이게 된다. 놀고먹기=Play to Earn, 선물경제와 보람경제가 가상세계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신명나는 신시(神市)가 아니던가.
스무 살이 넘어서야 바깥 세계를 쏘다녔던 아빠에 견주어 너는 이런 시절부터 드넓은 세상을 경험하라고 태어난 지 백일 되던 날 여권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상하이와 항저우를 시작으로 동서로는 영국부터 일본까지, 남북으로는 시베리아부터 오세아니아까지 데리고 다녔다. 그런데 왠걸, 디지털 세계는 리얼 월드보다 훨씬 더 크고 깊고 웅장하고 심오했다. 심지어 이 가상계는 무한한 신세계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다세계와 다중우주가 모니터 너머에 이미 있던 것이다. 그 풍요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멋진 천상계에서 나야말로 신출내기, 새내기였다. 절로 겸허한 마음으로 디지털 문명을 유랑하노라면 어쩐지 원시 시대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마저 인다. 나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디지털 네이처의 복합단지를 돌아다니면서 수렵 채집인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문명의 파수꾼인 아카데미의 지식인들은 디지털문명의 질주에 감시사회를 우려한다.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는 자유주의적 신념을 발설한다. 그러나 그 또한 고작 200년짜리 관념일 뿐이다. 사생활 또한 근대의 기획물이다. 2만년이 넘도록 인류는 모든 행동이 공개되고 눈에 띄며 아무런 비밀도 없는 씨족과 부족 생활을 영위했다. 인간의 마음은 끊임없는 공동 감시와 함께 진화해 온 것이다. 상호 감시야말로 우리의 자연상태이다. 불과 백년 전만해도 이웃집 숟가락 숫자까지 알고 지냈다. 인류는 긴긴 세월 동안 그런 감시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서로를 끊임없이 추적하는 디지털 문명에 반발하는 움직임 또한 자연스럽게 사라져갈 것이다. 오늘의 중국인들이 그러하듯이, 내일의 미국인들도 데이터의 흔적이 추적 가능한 미래형 원시사회에 편안하게 적응해갈 것이다.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열매를 따먹으면서 즐겁게 노닐 것이다.
저 기술의 생태계가 도대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몰라도 하등 상관이 없다. 인간은 지금도 자연의 생태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 하물며 우주에 관해서는 무지투성이, 암흑상태이다. 그러함에도 우주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세계에 감사함을 표하며 자연에서 행복감을 누린다. 무지의 자연과 미지의 우주로부터 은혜를 향유하며 잘 살아가는 것이다. 1.5kg, 인간의 두뇌는 무척이나 작다. 계산 속도도 무진장 느리다. 작동하는 기간도 길어야 100년 남짓이다. 애당초 이런 결함이 많은 계산기가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리가 없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가 창출하는 미래의 자연, 넥스트 네이처 네트워크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돌고 돌아 과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진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과대포장이 유난히도 극심했던 르네상스 이래 계몽령 시대를 성찰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아닌 것들에 대한 태고의 경탄과 경외를 회복해갈 것이다. 이것이 전정 ‘오래된 미래’이다. 산업문명의 대안으로 농업문명에 ‘생태문명’이라는 억지를 씌우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우주생명문명으로 성큼성큼 나아감으로써 테크노-에덴동산을 창조하는 것이다.
4. Soulcraft – 원시반본(原始返本)
여기까지 라면 새 책을 집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알렉스 카프가 절차탁마한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출중하다 한들 디지털문명의 스탠다드는 결국 중국에서 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2년 전 <테크노 차이나> 작업을 하면서 확신했었고, 올해부터는 딥시크 쇼크 이래 확인해가고 있다. 다만 산업문명의 제왕이었던 미국 또한 순순히 패권을 이양하지 않고 전심전력으로 구체제를 개벽해보려는 시도가 일어났기에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메리카 퍼스트, 미국과 동맹국 간의 균열은 갈수록 커질 것이고, 미국과 유럽 사이도 나날이 소원해져 갈 것이다. 서방세계(THE WEST)가 지리적으로도 이념적으로도 축소되거나 해체되어가는 판국에 팔런티어의 판로가 크게 늘어날 것 같지도 않다. 반면에 14억으로 훈련한 중국의 소프트웨어는 일대일로를 타고 글로벌 사우스 곳곳으로 확산되기에 유리할 것이다. 2050년 백억 인구를 기준으로 치자면 중국이 40% 이상의 빅데이터를 쥐게 될 것 같고, 미국은 25%에도 미치지 못할 것 같다. 2049년 신중국 백주년에는 미중간의 격차가 확연히 벌어질 것이고, 2076년 미국 삼백주년에는 50개 주가 연합한 형태의 미합중국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건 정말로 새로운 미국이다, 라며 연재를 결심한 것은 4번 타자, JD 밴스 때문이다. 이 1984년생 부통령이야말로 설계자 피터 틸, 선봉장 일론 머스크, 수호신 알렉스 카프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뉴아메리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틸이 작전을 짜고(Planning), 일론이 제작(Engineering)을 하고, 카프가 운영(Programming)을 한다면, JD 밴스는 무릎을 꿇고 기도(Praying)를 올린다. 딱 10년 전 <유라시아 견문> 작업을 하면서 확인했던 탈세속화=재영성화의 메가트렌드를 신대륙에서도 구현할 신세대 정치인이다. 미국조차 재영성화의 물결에 합류할 것이라고는 당시에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심지어 밴스는 프로테스탄트가 아니라 가톨릭으로, 신교에서 구교로 개종까지 했다. 회개하고 회심하여 복지국가 너머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복음국가를 궁리하는 것이다. 팔런티어가 모티브를 따온 <반지의 제왕>을 집필했던 톨킨 역시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음을 고려하면 더욱이 흥미롭다. 프랑크푸르트학파와 교토학파가 계몽과 이성을 반성하고 있었던 바로 그 1939년에 톨킨은 <반지원정대> 제1권을 완성했다. 모더니즘의 사생아들,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와 자유주의의 파탄에 직면하여 유구한 전통을 옹호하고 웅숭깊은 영혼을 옹위하며 교황의 회칙으로 경영되는 ‘오래된 미래’의 판타지를 써내려 갔던 것이다.
즉 산업문명국가 미국을 개벽하려는 방향은 이중적이다. 한쪽은 수학=테크놀로지라는 물질개벽으로 민주주의를 대체하려고 한다. 다른 한쪽은 신학=띠올로지(Theology)라는 정신개벽으로 자유주의를 대신하려고 한다. 1999년 12월 31일, 푸틴의 등장 이래 유라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전개되었던 포스트-리버럴리즘의 물결이 마침내 아메리카의 본진에까지 당도한 것이다. 1999년 푸틴은 47세였다. 2025년 밴스는 41세이다. 4년 후 45세에 대통령이 되면 푸틴보다 더 어린 나이에 국정을 책임지게 된다. 밴스도 푸틴처럼 30년 가까이 국가의 방향을 주조해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적어도 한 세대는 다스려야 시대정신이라 할만하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동로마제국을 계승하여 21세기의 러시아를 동방정교대국으로 재건했다. JD 밴스는 21세기의 미국에서 서로마제국을 재생시키고 가톨릭대국을 부활시키고자 할까? 머지않아 바티칸에서 새로이 등장할 교황과 함께 쌍두마차가 되어 성속합작, 고금합작에 나설 것인가? 과연 신대륙의 밴스가 구대륙의 푸틴처럼, 에르도안처럼, 시진핑처럼, 모디처럼 계몽을 격몽으로 맞받아치는 대반전의 시대에 합류할까? 자유-민주-공화국 올드아메리카를 뒤로 하고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디지털-기독교-제국으로서 뉴아메리카의 향배를 쥐고 있는 인물이 바로 JD 밴스이다. 자유와 평등과 우애를 물리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앞세우고자 하는 미국판 원시반본의 신기수, 밴스를 살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