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운주의 생명의 경계에게

2024년 1월 23일

8. 당신의 초상들(1) - 경계진 일상의 고라니에게

- ‘이름보다 오래된’ - 문선희 低를 읽고






안녕 고라니야

너희는 인간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로 사람들에게 회자되곤 해. 17살 즈음이었나. 지루하던 수업 시간, 창밖을 보다 우연히 운동장을 한바퀴 뛰놀고 가던 널 처음 봤었어. 그 뒤 시골에서, 산에서 종종 너희의 울음을 듣거나, 오밀조밀한 똥을 볼 수 있었어. 가덕도에서는 처음 너와 대면했는데 동행하던 개 때문에 너는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갔지. 사람들이 너를 그려내는 언어들은 뭘까. 궁금해서 사회의 숫자가 말해주는 너희와,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너희의 모습을 찾아보다가 나는 겁이 덜컥 났어. 이번 글을 쓰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서. 이건 도저히 편지가 아니라, 그저 스스로를 위한 이기적인 글 한 편이 완성될 게 뻔히 보여서. 그래도 써보려고. 어차피 그동안 모든 생명에 대한 편지들이 나 자신에게 쓰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나는 편지를 통해서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려 노력하게 돼. 우리 언어가 달라서 다행이다. 섀도 복싱 같은 이 괴상하고 기이한 편지가 네가 아닌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래. 그래서 사람들이 입과 숫자로 말하는 너희를 편지로 그려보려 해.   

“고라니 얼굴 근육은 사람만큼 발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개 무표정하게 보이는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것은 아니에요. 계류장에서 본 새끼 고라니들 성격은 다양했어요. 잘 안기는 아이, 경계심이 강한 아이…”

“뿔 대신 송곳니를 가진 사슴과 동물은 고라니밖에 없어요. 검치와 같은 송곳니를 가져서 고대형 사슴이라고 불러요. 이 초식동물이 어떻게 육식동물의 이를 가지게 됐을까요. 낭만적이게 들리지만, 독보적인 만큼 유전자 다양성이 떨어져요.”

“전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고라니 포획과 구조를 동시에 하는데, 죽은 모습을 봤을 때 머리가 하얘졌죠. 텅 비어버린 눈과 빳빳하게 굳은 몸…”

“고라니 교미 시기는 12월 한 달 정도라서, 이때 송곳니를 가진 수컷들이 밤중에 순찰을 돌면서 암컷을 찾아요. 교미는 잠깐이고, 이내 각자 영역 생활을 하죠. 원래 홀로 살아가는 동물이에요. 새끼 고라니들만 다음 해에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 1년 동안만 어미 곁에 머물죠. 새끼는 1시간이면 혼자 일어서요. 아기 고라니는 소리를 내지 않아요. 살아남기 위해서.”

“고라니들을 보고 싶어서 구조센터를 다니기 시작했죠. 생명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고 구석에 조용히 앉아 한참 땅을 봤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암컷고라니)가 몸을 움찔대더군요. 겁을 먹은 걸까. 겁을 주려는 걸까. 그러다 돌연 눈을 가늘게 치켜떴어요. 접신을 하듯 흰자위만 보이더라구요. 다른 인격이라도 된 듯 쭉 찢어진 눈으로 쏘아보며 들이받듯 코앞까지 다가오다가 또 이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달아났어요. 이걸 몇 차례나 반복했죠. 처음에는 기이하게 행동하는 우리가 무서웠고, 나중에는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우리를 집어삼킨 불안과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져서 저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흘렀어요.”

“지난 10년간 200여 마리의 고라니를 만났어요. 고라니 초상화를 50여점 찍었고, 야생에서 혹은 계류장에서 고라니를 만나 눈을 마주칠 때 내 논리나 이해의 범위를 초월한 존재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죠.”

사랑과 연민의 시선들.

“맹수의 송곳니를 가지면 뭐해. 겁이 저렇게 많은데. 고라니는 예민해서 활동영역이 좁아요. 은신처에서 50~500미터 반경 내에서만 움직이지. 고정된 잠자리를 만드는 건 아니지만 갈대 같은 풀숲에 은신처를 만들어서 되돌아와. 예전보다 고라니들이 많아졌어. 새벽에 주로 사냥 나가는데, 2시간에 한 마리씩 잡히고 그래.”

“사냥하다 보믄 물가나 농경지서 자주 보이지.. 뒷다리가 앞다리보다 길고 엉덩이가 높은데 목도 짧아. 노루나 사슴은 날렵하고 늠름한데 얘넨 왜 이래 옹졸해 보이나 몰라. 털이 두꺼워서 더 그래. 겁도 많고 예민해가지고.”

“고라니는 새끼를 낳아놓고도 지 새끼랑 같이 있질 않어. 새끼들을 한자리에 모아두지도 않고. 돌팍 밑이나 풀 숲 속에 감춰 놓고 자신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외적의 접근을 살피다가 안전한 틈을 타서 젖을 먹이고 또 떨어져. 새끼도 지살라고 울고 보채는 일 잘 없고 삐-삐 소리만 낸다. 토끼처럼 한 자리에 안 머물고 도망다니면 안 잡힐텐데 항상 제자리에 와서 쉬고 자다가 잡혀버려.”

매섭고 냉정한 권력의 시선들.

“아니, 저 새끼들이 허구헌 날 사과 꽃눈을 처먹어. 똥을 갈기고 가는데 화가 나. 안나.”

“고라니들 못 오게 밭 가생이에 토마토랑 들깨를 심었지. 목초액도 뿌려두고.”

“임마들이 그래 다 와서 작물 먹었드나? 잘 잡았네.”

경쟁자의 시선들.

“야, 고라니 우는 소리 들어봤어? 난 군대에서 처음 고라니 소리 들었을 때 누가 소리 지르는 건줄 알았어. *나 무서워.”

“그냥 움푹 패인 도로를 밟은 건 줄 알았어. 차 앞에 새끼고라니가 끼여있을 줄 몰랐지. 안 쳐본 사람은 모를거야. 주유소 사장님이 처음 고라니 시체 끼였다고 말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데..”

“이게 동물만 위험한 게 아니에요. 치인 동물이 그 자리에 있으면 피하려다 2차 사고도 많이 일어나죠. 우리 운전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동물이 도로에 누워있어서는 안 돼요."

각자의 입장과 이해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시선들. 다소 무심함이 섞인 듯한 시선들.

너희의 모습은 참 많이 분열되어 있더라. 같은 언어를 섞지 못한단 이유로 외곽으로, 변방으로, 경계로 밀려나 인간이 대는 입만큼 삶의 터전이 절단나는 너희를 숫자로 풀면 또 어떤 모습들이 나올까.

정확한 숫자는 산정할 수 없지만 야생동물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약 45만 마리가 산다고 추정되는 너희. 세계적으로 IUCN 멸종 위기종이지만 우리나라에 밀집된 덕에 환경부 유해 야생조수로 등록되어 있는 아이러니한 너희. 생태계가 단순해지며 포식자가 거의 없어 수는 늘었지만, 먹이와 서식지가 갈수록 부족해지며 농가로 내려온 거지? 사람들은 이에 물음을 던졌어.

“농작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질문은 빠르게 바뀌었지.

“누가 희생될 것인가?”

너희들의 목에 현상금이 걸리기 시작했어. 이 현상금은 지자체마다, 기관마다 조금씩 금액이 다르지만 야금야금 올라갔지. 너희의 목숨값은 2만원에서 높으면 5만원 사이였어. 2015년 이후, 너희가 농작물을 먹어치워 발생하는 금액보다 현상금 지급액이 더 커진지는 오래지만 관행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어. 농민들에게는 피해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사냥꾼들에게 현상금 포상이 주어지는 이상한 시스템 속에서 3분마다 한 목숨(命)이 날아가는 너희.

2022년 기준 한국 야생동물 로드킬 1위로 한 해 적어도 6만 마리 이상은 목숨을 잃을 거라는 너희. 가뜩이나 물을 끼고 있는 평야와 산지가 도로, 골프장, 장례식장 등등으로 줄어들어 머물 집이 부족해지는데, 명분 있는 포상 사냥으로 더더욱 내몰렸지. 구글 이미지를 검색해보면 너희가 로드킬 당한 사람들의 글과 사진을 정말 많이 찾아볼 수 있었어. 한 수의사가 너희에게 GPS 장치를 붙여 관찰한 동태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어. 구조된 이후, 산까지 다시 가려면 5번의 도로를 지나야했던 너. 한 도로 한 도로 건널 때마다 며칠 동안 길 앞을 빙빙 돌며 망설인 너는 60일 동안의 노고 끝에 5번째 도로에서 죽었다고 했어. 산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출처: 위키디피아

사회에서 느껴진, 인간이 너희를 바라보는 시선은 ‘무관심’이었어. 여기에 너희가 우리를 바라보는 얼굴은 핏대가 서는 분노이지 않을까. 그저 막연히 상상했어. 구제 사업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부정 수급도 여러 번 문제 삼아지니 사냥한 너희의 꼬리와 귀를 제출하라는 규정까지 생겨났었어. 구제사업에 대한 실태를 적다가 나는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할지 몰라 아득해졌어. 평소 내 손바닥 한 뼘의 길이 정도만 체감하고 사는 나는, 몇 만에 달하는 너희의 죽음을 마주하니 실감이 안 나기도 하고, 그저 숫자로만 보이며 감정의 분열이 일어났어. 아마도 너의 눈을 오래도록 볼 일이 있었다면 나는 다르게 느낄까? 네 살을 파고드는 총알의 화끈거림과 죽음의 공포를 내가 조금이나마 체감했다면, 쉬고 먹을 곳, 잘 곳이 없어 시속 7,80km/h의 차가 지나다니는 길을 목숨 걸고 지나는 일을 내가 경험해봤다면 네 숫자들이 와닿을까? 인간의 언어를 쓰는 내가 너희에게 이 편지를 전할 수 없어 나는 마음 한구석 안도하며 이 글을 적고 있는 거겠지. 너희 중 이 편지를 전해 받을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어떤 심정일까. 어느 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다른 고라니들을 떠올릴까. 나라면 인간에게 분노가 치밀다 못해 손발이 떨리고 들이받아버릴 텐데.

유일무이한 너희 집 동아시아, 그중 대부분이 살고 있을 ‘한국’이란 땅에서 너를 바라보는 숫자들이 먹먹해서 네 사진들을 한참이나 봤어. 변명이지만, 함께 나누는 지구에서 내 이익을 나눠야 하는 경쟁자를 대하는 건 늘 어려워. 특히나 나보다 약한 경쟁자를 찍어누르고 싶은 오만함과 적개심을 잠재우는 일은 더더욱. 그래도 이게 맞는 걸까. 이게 최선일까. 경쟁자를 그저 해하고 내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게 나에게도 좋은 일일까. 이 ‘유해동물 구제 사업’의 역사는 어디서부터일까. 유해동물 구제 사업의 시작은  조선시대에서부터 시작되어 일제강점기에 ‘해수구제사업’을 명분으로 한 트로피 사냥이 유행했대. 이때 늑대, 표범, 범 등이 절멸에 이르렀어. 구제 관행이 대물림되어 멧돼지, 너희 고라니, 이제 가마우지, 큰부리까마귀들에게도 번져나가고 있더라. 여기와 관련해서 너희의 구조 작업, 보전에 대해선 다음 편지에서 이어가 보려고 해.

P.S. 얼마 전 ‘이름보다 오래된’이란 문선희 작가님의 책을 읽었어. 너희 초상 사진 50점이 있었지. 애정은 참 오묘하게 번져나가지. 너희 사진을 하나하나 유심히 보며 이 편지를 써. 무사했으면.


2024.01.23.

운주 씀






[자료 출처]

- 문선희, “이름보다 오래된-문명과 야생의 경계에서 기록한 고라니의 초상”, 가망서사(2023)
- 자연과 사냥, “고라니의 생태”, http://www.gohunting.co.kr/life/living/deer.htm
- 신남식 교수, “[더오래]유해동물로 찍힌 고라니 알고보니 국제적 보호종”, 중앙일보, 2020.12.30,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958117#home
-김재호, “[김재호의 생태에세이] 멸종위기 고라니는 왜 유해동물이 되었나”, BRIC, 2018.09.19.
https://www.ibric.org/bric/trend/bio-series.do?mode=series_view&newsArticleNo=8831253&articleNo=8882737&beforeMode=latest_list#!/list






운주 경계에 선 사람들을 늘 만나고 싶어한다. 완전함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연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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