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3년 8월 16일
8. 죽음의 정동

죽음을 연구하는 것은 생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엇으로 인해 죽는지, 생명이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앎으로써 삶을 살리고자 함이다. 국제정치 차원에서 아직도 많은 국가들이 전쟁을 겪고 있고, 한국 역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놓여있다. 그 말은 매순간 혐오와 적대감과 같은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수많은 죽음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태적 차원에서 환경오염과 그로 인한 직접·간접적 폭력 역시 죽음의 주요 원인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우울과 두려움, 분노와 자기 표현의 부재 등은 스스로를 곯게 한다. 이처럼 우리의 현실에는 죽음을 유발하는 여러 요소가 곳곳에 존재한다.
최근 뉴스를 보면 온갖 폭력과 죽음이 가득하다. 타인을 해치거나 죽음으로 몰아가거나 직접 죽이는 행위가 매일 뉴스를 통해 나온다. 사람들은 이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잠시 갖다가 두려움에 빠진다. 두려움은 자신의 안위와 주변의 안전과 더 나아가 국가의 안보를 걱정하게 하고, 존재에 대한 불안을 심는다. 나의 삶이 유지될지에 대한 불안함과 타인에 대한 신뢰의 불안은 함께 증가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은 더 날이 선채 경계심이 증폭된다.
슬프게도 각종 죽음은 인간에 의해서만 발생되지 않는다. 물론, 최근 인류세 담론이나 여러 분야의 연구에 따르면 생태계의 현상 역시 인간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지만, 그러한 원인과 별개로 폭우와 폭염 등 생태계의 변화는 인간을 더 이상 지구에 머무를 수 없게 만든다. 인간이 지구에 살 수 있는 조건이 사라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조건의 변화에 의해 위와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불안과 경계를 높여간다. 마음 속의 부정적 감정(emotion)과 정동(affect)이 쌓이는 것이다.
자본주의로 인한 경쟁주의와 성장주의로 이미 여유를 잃은 사람들은 점차 자신의 시야가 좁아지는 것을 인식하기 힘들어진다. 그리고 좁아진 틈에서 타인과 사회를 향한 분노 또는 자기 자신을 향한 자책을 키워간다. 결과적으로 이는 외부와 내부를 향한 폭력성을 증가시킨다. 사회의 범죄율과 자살율이 비례 관계에 있는 이유다. 폭력에 무딘 사회는 공동체를 해체하고, 개개인을 분리시킨다. 이는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떨어트림으로 타자화와 고립, 혐오가 일어나게 한다.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면 국가는 군사화를 가속한다. 보호를 명목으로 군대를 증강하고, 일상에 배치한다. 사람들이 서로의 상호작용과 협력을 통한 안전망을 형성하는 것이 아닌 국가의 폭력적 시스템 안에서 통제된다. 문제는 이러한 통제를 안전에 대한 비용이라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에 이른다. 사람들이 폭력을 내면화하고, 폭력이 더 커지는 것에 무지하며, 이와 같은 현상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폭력에 의한 죽음은 점점 많아진다.
무서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잔인성을 목격했다는 사실이 그러한 잔인성을 중단시키지는 못했고,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파괴 행위를 알았다는 사실이 국가의 중요성을 감소시키지는 못했다”[i]는 것이다. 오히려 기억에 대한 사회적·개인적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개인의 기억은 편향적이고 더 폭력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폭력은 집단화되면서 집단 광기와 같은 현상을 보인다. 집단 광기로 번진 폭력은 국가의 전쟁의 가능성을 높이고, 적대시된 타인의 죽음을 긍정하게 한다.
이는 단지 인간의 죽음에 국한되지 않는다. 생명의 죽음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전쟁이 벌어지면 대규모 인간학살인 제노사이드와 생태학살인 에코사이드가 함께 일어난다. 각종 화학 무기와 장비는 그 지역의 생태를 파괴하고, 어떤 생명도 살아나지 못하게 만든다. 반대로 잘 알려진 미공군의 베트남 전쟁 당시 제초제 살포처럼 사람을 죽이기 위해 생태학살이 일어나기도 한다. 생명에 대한 감각이 사라진 사회는 평화가 말살된 사회라고 봐도 무방하다.
죽음은 폭력의 특이점과 같다. 작은 폭력의 순간들이 집약되어 죽음을 만들어낸다. 현재 한국 사회는 크고 작은 폭력들이 무수히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폭력으로 인한 죽음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폭력의 방향성을 바꾸고 긍정적 정동을 일으키지 않는 한 이 사회의 죽음은 점차 심각해지고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i] 허버트 허시, 강성현 옮김. 「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 책세상, 2009, 3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