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김혜정의 마음놓고 마음챙김

2023년 12월 22일

8. 고통의 활용법






인간은 남의 뒤통수는 쉽게 볼 수 있으나, 자기 뒤통수는 보지 못한다. 눈이 앞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남의 뒤통수를 분석하고 판단하는데 골몰한다. 그들 중에 남들보다 시력이 좋은 이들은 남의 뒤통수를 훌륭하게 관찰해냈다는 공로로 명예를 얻기도 하고, 돈을 벌기도 한다. 그런데 드물게 자기 뒤통수를 보려고 시도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 뒤통수를 보는 일은 인간 신체 구조가 지닌 로직에 반하는데도 말이다.

수행은 단언컨대 인간 본성에 역행하는 일이다. 생의 흐름대로 편안하게 살면 이기심과 욕망만 늘어난다. 그에 따라 고통도 늘어난다. 행복해지려면 흐름을 역행하려는 강력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수행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을 한없이 추락하게 하는 중력에 저항해 자기 무게와 싸우는 일이다. 생의 법칙에 역행하려는 이 힘, 자기 뒤통수를 줄기차게 확인하려 하는 이 힘은 어디서 생기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다른 질문을 하나 던져 보자. 우리 몸의 중심은 어디일까? 뇌일까? 심장일까? 얼굴일까? 모두 아니다. 우리 몸의 중심은 아픈 곳이다. 자신의 실제 발 사이즈보다 작은 신발을 신어서 발에 물집이 생겼다면 걸을 때마다 아픈 발이 의식된다. 간밤에 잘못된 자세로 잠을 자서 등이 결렸다면 종일 아픈 등이 의식된다. 마음은 언제나 아픈 곳으로 향한다.

생의 세찬 흐름에 역행하겠다는 발심을 한 이들은 작든 크든 인간의 실존적 고통에 대한 통렬한 인식을 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몸에서 생생한 고통이 느껴지면, 외부로 산만하게 뻗쳐있던 의식이 내부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데 한가하게 남의 뒤통수에 꽂혀있는 머리핀을 비평하고 있을 순 없다. 우리가 숙명적으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결코 기뻐할 일이 못 되지만, 고통을 잘만 활용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 고통을 겪지 않은 이가 어디 있으랴?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통을 겪는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고사하고, 마음의 환영이 만들어낸 온갖 종류의 번뇌가 야기하는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런데 고통은 양가적이다. 고통이 반드시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고통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자신의 고통을 목도한 후 자기에게 고통을 주었다고 상정한 이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갈기고 싶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이처럼 고통이 수행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필요조건이다. 숭고한 인격은 고통 없이 결코 나올 수 없다.

자기 뒤통수를 보는 일 역시 고통스럽다. 예쁘게 치장한 얼굴만 자기인 줄 알다가 베개에 심하게 눌린 뒷머리도 자기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 얼마나 창피하겠는가. 마음의 스펙트럼은 너무나 방대해서, 한 사람 안에서 위대한 특성과 비루한 특성은 늘 동시에 발견된다. 일례로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살아생전에 간질 발작을 종종 겪었다고 한다. 간질은 뇌 신경세포가 과도하게 흥분 혹은 억제되어 몸이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경련을 일으키거나, 의식을 잃게 되는 증상이다.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는 간질 발작이 올 때마다 이 발작으로 인해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체험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간질 발작과 신비 체험처럼, 한 인간 안에는 서로 모순되는 듯 보이나 사실은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극단이 공존한다. 이 모순을 견디는 것 자체가 괴로움일 수 있다. 자기 안의 매혹과 혐오 사이에 놓인 심연을 바라보는 것. 사실은 매혹과 혐오가 한가지 사물의 빛과 그림자였음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사람을 숭고하게 만든다.

마음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도 한정되어 있다. 마음이 늘 남의 뒤통수를 분석하고, 저 뒤통수를 어떻게 바꿔볼까 고민하는데 시간을 할애하다 보면 정작 자기를 보는데 할애할 힘도, 시간도 남아나지 않게 된다. 물론 자기 뒤통수를 보는 일은 남의 뒤통수를 보는 일보다 어렵다. 그러나 수십 배는 가치 있는 일이다. 시간을 아껴 써야 한다. 시간을 가치 있는 일에 써야 한다. 고통의 가장 훌륭한 활용법은 행복해지는 일에 밑거름으로 쓰는 것이다. 우선 그간 남의 뒤통수에 두었던 시선부터 거둬보자.






김혜정차와 명상을 좋아하는 김혜정입니다. 수행자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제가 행복해지고자 걸어온 수행 여정을 여러분과 글로 나누고 싶습니다. 10년차 요가강사이며, 미얀마 쉐우민에서 처음 위빠사나 명상에 입문했습니다. 그 후로는 주로 고엔카의 수행법을 따라 위빠사나 명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