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뉴아메리카 견문
2025년 4월 27일
8. 돌아온 탕자 : Technology와 Theology

(사진 출처: The Economic Times)
1. 회심 – 수신제가
1984년생이다. 1979년과 1989년 사이에 태어났다. 1979년 중국은 개혁개방을 시작했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소련과의 경쟁,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속 빈 강정, 안으로는 곪아가고 있었다. 탈냉전은 밴스가 태어난 오하이오주에서는 탈산업화를 의미했다. 냉전기만해도 제법 먹고 살만한 곳이었다. 철강회사 ARMCO Steel이 미들타운의 경제적 중추였다. ARMCO는 American Rolling Mill Company의 약자이다. 산업문명의 핵심인 제철산업의 요람으로 애팔래치아 주민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했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제공하는 자부심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가족들을 건사하는 가장들은 퇴근 후에도 회사 로고가 박힌 작업복을 자랑스럽게 입은 채 치맥을 곁들여 야구와 농구를 즐겼고,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 열심히 뒷바라지를 했다. 근면-자조-협동으로 중산층이 될 수 있었던 산업 역꾼들의 새마을이었던 것이다. 애사심이 충만했고, 애국심도 넘쳐흘렀다. 그러나 1990년대 이래 새마을은 활기를 잃고 만다. 외국으로 떠난 공장 지대에는 슬슬 녹이 슬기 시작했다. JD 밴스는 바로 그 불운한 이행기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의 표본이었다.
산업의 쇠퇴는 곧장 가족의 붕괴로 이어졌다. 밴스의 부모도 이른 나이에 이혼한다. 어머니는 평생 약물과 알코올, 마약 중독에 시달렸다. 모성애, 무조건적이고 전폭적인 사랑을 엄마로부터 받아본 적이 없다. 제대로 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것이다. 엄마는 아들을 보살피기 보다는 새 남자들을 찾아 다녔다. 회전문 인사처럼 다섯 명의 새아빠를 경험한다. 아버지다운 아버지도 경험한 적이 없다. 엄마 곁에 잠시 머물다 금방 떠나버리는 무책임한 사내들을 차례차례 지켜보았을 뿐이다. 밤마다 이어지는 고함소리와 가구 부수기 등 격렬한 부부싸움은 밴스의 유년기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이집 저집 전전하며 구성원이 매번 바뀌는 가정 또한 좀처럼 편안하지 못했다. 늘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정신적인 결핍감과 정서적인 상실감은 곧장 신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체중이 급격히 불어났고, 자주 복통을 호소했다. 몸도 허물어져 갔고 마음도 무너져 내린 것이다.
핵가족이었다면 핵분열 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밴스의 주변에는 대가족이 건재했다는 점이다. 애팔래치아 특유의 대가족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누이와 이모와 삼촌과 사촌이 저마다 일정한 역할을 해주었고, 그 중에서도 단연 가장 소중한 사람은 외할머니였다. 굳세어라 금순아 처럼 그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근면하고 성실하며 회복력이 튼튼한 할머니가 곁을 지켜주었다. 엄마를 떠나 외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비로소 따뜻하고 포근한 가정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일정한 집에서 동일한 가족과 사는 평범한 일상을 마침내 누리게 된 것이다. 비록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소박한 살림살이 가운데서도 우리 강아지 손주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과 지지를 보내주셨다. 그제야 정서적으로 안정되면서 학업에도 집중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진로를 계획하고 미래에 대한 꿈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SAT(수학능력평가시험) 성적도 제법 훌륭했다. 필요한 것은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이었다.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다. 해병대에 입대하기로 한다.
가난했던 고로 4년이나 복무한다. 그러나 군대는 돈 이상의 것을 선사했다. 규율 잡힌 일상을 학습한 것이다. 인격적으로 전혀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는 시기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법, 침대를 가지런히 정돈하는 법, 월급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법 등 그동안 부모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반듯한 생활습관을 갖추게 되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2마일을 달리는 것부터가 새로운 인생의 출발이었다.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탄탄한 근육만큼이나 단단한 자신감도 불어났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으며 생겼던 상실감과 우울증을 차츰차츰 극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체적으로 강건해지면서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졌다. 무언가를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아니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자기 자신을 믿기 시작한 것이다. 군대수첩 또한 유용한 수단이 되어주었다. 하루하루 일과를 세우고 그날그날을 되돌아보는 습관이 들었고, 주간과 월간, 1년을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방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밴스 자신이 스스로를 리더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JD는 해병대를 통하여 효과적인 리더십을 배우게 되었다. 리더는 잦은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솔선수범함으로써 존경을 얻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존중을 보이는 것임을 익힐 수 있었다. 고향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상이한 개인들을 공동의 목표 아래 응집력 있게 단결시키는 군대 특유의 원리를 학습하게 된 것이다. 마침 2001년 9.11테러와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애국심이 한창 고양되었던 시절이다. 이라크의 최전선에 파병된 해병대로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또한 장착하게 된 것이다.
제대한 이후 밴스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의 학업 성적은 탁월했다. 알바 셋을 뛰면서도 빡빡한 수업 일정을 소화했건만 아침이면 동 트는 해를 바라보며 조깅을 하면서 미래를 향해 박차고 달려 나갔다. 다음 번 목표도 뚜렷하게 세웠다. 고향을 떠나 미국의 중심부로 진입하고자 했다. 중서부 내륙의 러스트벨트를 벗어나 동부나 서부의 해안도시로 진출하고자 한 것이다. 일일신 우일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결국 예일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하게 된다.
마침내 입성한 아이비리그는 애팔래치아 촌놈에게는 일견 할리우드 같은 곳이었다. 네오 고딕 양식 건축물의 웅장함과 학교의 유서 깊은 역사가 경외감을 더했다. 토니 블레어 같은 세계적인 젊은 리더들이 캠퍼스에서 강연을 하면 엄청난 군중들이 학교로 몰려들었다. 예일대 로스쿨은 역대 대통령과 국무장관, 대법원 판사 등을 여럿 배출한 교육 기관이었다. 미국의 리더십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곳이다. 예일대 로스쿨에서 보내는 나날들이 초현실적인 판타지 같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깊은 소외감도 느꼈다. 자신이 나고 자란 세계와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명문대학답게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역설하고 있었지만, 학교 친구들은 전혀 다양하지 못했다. 노동계급 출신은 무척 드물었으며, 해병대를 퇴역한 군인 출신은 더더욱 적었다. 군대 4년 동안 아껴 모았던 월급을 부모로부터 생활비로 지급받는 상층부 친구들이 훨씬 더 많았다. 예외적인 특권층들의 아성이었던 것이다. 아웃사이더, 흙수저 출신의 촌뜨기라는 자괴감이 일었다. 아무리 노오력을 한들 메워질 수 없는 격차가 현저해 보였다. 먹는 것부터 입는 것까지 아비투스가 너무나 달랐다.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만찬과 사교는 어색하고 불편하여 고역이기만 했다. 밴스는 사회를 좌-우로 보지 않고 상-하로 보기 시작했다. 내부자들의 네트워크로 작동하는 견고한 엘리트 세계, 딥스테이트를 발견한 것이다.
그나마 밴스가 정신줄 놓지 않고 아이비리그를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훗날 배우자가 되는 우샤를 만났기 때문이다. 2013년 토론 동아리에서 ‘미국 백인의 사회적 쇠락’이란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사귀게 되었다. 불과 1년 후 2014년에 결혼한다. 그만큼 홀딱 반했다. 무엇보다 우샤로 인하여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된다. 우샤는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장인은 공학자였고 장모는 생물학자였는데, 두 분 모두 독실한 힌두교 신자였다. 그들이 훌륭한 부모 역할을 하는데 종교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미국 백인의 사회적 쇠락’을 몸소 경험했던 남편을 위해 심리 상담을 주선한 것도 우샤였다.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밴스는 신체적인 불안을 느꼈다. 부모의 별거와 이혼, 중독과 폭력 등 충격적인 사건의 연속이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적인 상처를 남겼던 것이다.
버림받는 것, 모욕당한 것, 폭력을 목격한 것, 중독 속에서 자란 것, 끊임없는 불안정을 경험하는 것 등 JD의 어린 시절은 러스트벨트 노동계급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유년기 이러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사람들은 뇌 화학이 근본적으로 뒤바뀐다. 다시 험난한 상황을 직면하면 당시의 트라우마가 재차 발현되곤 한다. 즉 만성적인 불안증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소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심리적으로 영구적인 악순환을 야기할 수 있었다. 불안세대와 분노세대 등 세대적이고 계급적인 사회심리 현상이었던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JD는 우샤를 통해 탈출구를 발견한다. 그녀의 가정은 가족 간의 사랑과 헌신과 소통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오손도손 서로 아끼고 보살피고 노력하는 우샤네 모습은 JD가 자라면서 겪었던 비난과 다툼의 악순환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는 그녀를 통하여 다른 종류의 인간 관계, 상호 존중에 기초한 관계의 가능성을 보았다. 조바심과 초조함이 아니라 인내심과 평정심 또한 기를 수 있었다. 현모양처와 더불어 세 명의 자식을 키우며 한 번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던 아버지 역할도 원만하게 수행하게 된다. 즉 밴스와 우샤의 결합은 예일대 로스쿨 출신 엘리트들 간의 흔한 결합에 그치지 않았다. 백인 노동계급과 유색인 중산층의 결합이었고, 애팔래치아 토박이와 캘리포니아의 인도계 이민자의 융합이었으며, 기독교 가정과 힌두교 가정의 만남이기도 했다. 계급과 지역과 문화와 종교라고 하는 21세기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과제가 한 가족 안에 녹아 들었던 것이다. 해병대를 통해 규율 잡힌 리더십을 익힌 밴스는 결혼을 하고 가족을 꾸리면서 조화로운 리더십도 키우게 되었다.
2. 회고 – 금의환양
리더는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미래를 선지하고 선점하는 자가 리더이다. 2011년 밴스는 일생일대의 리더, 인생의 멘토를 만나게 된다. 피터 틸이 예일대학교에 강연하러 온 것이다. 특별한 기대 없이 참가한 자리였지만,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순간이었다. 틸은 예일대 로스쿨로 상징되는 엘리트의 세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회적 성공과 인생의 목적에 대한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지위 경쟁에 매몰되어 있는 미국의 엘리트 문화가 국가 전체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음을 역설했다. 더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지만, 공허하고 무의미한 인생으로 청춘을 허비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 세상을 실제로 바꿀 수 있는 원대한 꿈을 꾸고 도전하라고 부추켰다.

(사진 출처: USA Today)
밴스는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그토록 기어오르고자 했던 신분상승과 입신양명의 꿈에 죽비를 내리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로스쿨을 나와 법조계에 취직하고 싶었는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되물어 볼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틸의 격정적인 강연은 밴스가 추구했던 성공에 대한 집착이 그 어떠한 숭고한 목적과도 무관하다는 진실을 직시하게 해주었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을 위하여 한평생을 살아갈 것인가, 숙고하게 되었다. 살아남기, 생존에 급급하여 차마 던지지 못했던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다. 틸이 대학을 때려치우고 창업을 권하는 운동을 펼쳤던 것처럼, 밴스 또한 자신이 추구해왔던 법률가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변호사가 되는 것은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타인의 욕망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었을 뿐이다.
밴스는 틸을 따라 서부로 이주한다. 동부의 엘리트 세계를 떠나서 서부의 혁신가들과 조우한다. 실리콘벨리에 당도한 것이다. 느즈막이 테크놀로지 기업을 창업할 수는 없었다. 그 대신 틸의 조언에 따라 테크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 캐피털리스트가 될 수는 있었다. JD는 틸이 공동 설립한 벤처 캐피털 회사인 미스릴 캐피털(Mithril Capital) 매니지먼트에 합류한다. 미스릴은 혁신적인 기술과 미래 산업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회사였다. 미스릴에서 다양한 투자 경험을 쌓은 밴스는 테크 산업의 운영 방식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무엇보다 모험을 감수하는 리스크-테이킹(risk-taking)의 가치를 배울 수 있었다. 로스쿨의 법률가들은 늘 과거의 일을 다루기에 위험을 감내하지도 않고, 현상 유지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 법조계의 문화와 실리콘벨리의 문화는 천양지차였던 것이다. 테크 창업가들은 커리어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실험하고 도전하고 혁신하는 정신이 DNA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마인드셋이 전혀 다른 종자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시에 벨리의 한계도 인지할 수 있었다. 중단 없는 기술 혁신으로 추동되는 신세계였지만 정작 미국의 실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애팔래치아에서 경험했던 사회적 과제와 동떨어진 서비스들을 개발하면서 막대한 부와 영향력을 쌓아가는 벨리에 깊은 아쉬움을 느꼈다. 벨리의 창업가 정신은 경탄스러웠지만, 그들이 개발해내는 서비스에는 비판적이었던 것이다. 그 위대한 테크놀로지를 통하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투자업계의 용어를 빌면 ‘임팩트 투자’에 눈을 뜬 것이다. 기술을 통하여, 투자를 통하여 사람의 문제를, 사회의 난제를 해결하는 임팩트를 창출하고 싶어졌다. 기술을 통한 정치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여기서도 틸은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밴스에게 테크놀로지의 세계만 알려준 것이 아니다. 띠올로지(Theology), 신학으로 이끈 것 역시 피터 틸이다. 탈산업화의 문제를 테크놀로지로 보충하는 것만이 아니라, 탈세속화의 대안을 기독교에서 구하는 착상 또한 틸의 팁에서 비롯된 것이다. 틸은 빼어난 기술 사상가였을 뿐만이 아니라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특히 스탠포드 대학에서 가르쳤던 르네 지라르를 평생의 스승으로 모셨던 바이다. 2015년 지라르가 눈을 감았을 때 곡진한 추도사를 낭독한 이도 틸이었다. 지라르를 사사하며 기독교에 열린 태도를 보이는 틸의 모습은 JD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특히 인간의 욕망은 타인의 욕구에 의해 형성된다는 지라르의 ‘모방적 경쟁’(미메시스) 개념은 JD가 예일대에서 느꼈던 압박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JD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희생양 만들기에 대한 지라르의 탐구였다. 지라르는 인류 문명이 희생양에 대한 폭력 행위를 통해 통합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로지 기독교에서 만큼은 이러한 양상이 역전된다. 궁극적인 희생양인 그리스도는 무죄로 드러나 인류가 집단적 죄책감에 직면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기독교를 인간의 결점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경향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한 것은 JD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남 탓하며 타자와 외부를 비난하는 것에서 내적인 책임으로 전환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르네 지라르는 1923년 프랑스 아비뇽에서 성탄절 날 태어났다. 그래서 그의 본명에는 성탄절을 의미하는 ‘노엘’이 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 혹은 하나님에 의해 사랑받았다라는 의미의 테오필레(Theophile)가 붙어 있기도 하다. 지라르는 2005년 ‘불멸의 40인’으로 불리는 프랑스 지식인의 최고 명예인 아카데미 프랑세즈 종신회원에 만장일치로 선임되었다. ‘기독교의 헤겔’로 평가되기도 하고, ‘인문학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라르는 자기 연구를 총망라해서 <문화의 기원>(Les Origines de la Culture)이란 제목으로 출판했다. 명명백백 다윈의 <종의 기원>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의 다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지라르는 지적인 회심과 종교적 회심 끝에 1959년 부활절에 기독교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이론을 통해 세속화된 인문학계를 다시금 유대-기독교 전통으로 회귀시키려고 애썼던 거목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대학에 만연한 상대주의의 독재를 비판하고, 기독교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다. 대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아무 말 대잔치가 끝나고 나면, 결국 교회의 복음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영성의 르네상스를 예언했던 것이다.
우샤를 만나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틸을 만나서 테크놀로지와 띠올로지, 기술신학(Techno-Theology)이라는 세계관을 완성한 밴스는 2013년부터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는 <힐빌리의 노래>를 집필한다. 완성까지 3년이나 걸렸지만 틸의 조언과 우샤의 지지로 출판에 이를 수 있었다. 2013년 초고를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여전히 분노의 어조가 없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엄마에 대한 원망이 가득 담겼다. 그러나 자신의 이야기를 미국 사회의 좀 더 넓은 지평에서 재조망하는 시야를 확보하면서 관점 또한 한층 심화되었다. 그래서 정치적 좌우를 넘어서 폭넓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고 깊은 반향을 일으켰다. 뉴욕타임즈는 ‘동정심 많고 분별력 있는 사회학적 분석’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곧장 전국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넷플릭스 영화로도 제작되면서 밴스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마침 2016년 대선 국면에 출간되었기에, 그의 책은 왜 백인 노동자들이 트럼프에 열광하는지에 대한 간접적인 대답이 되어주었다.

셀럽으로서 발언권이 생긴 밴스는 공화당과 민주당을 포함한 정치경제적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30대 논객의 등장으로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에서 주도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입지를 굳혀갔다. 마침내 2022년 직접 정치에 뛰어든다. 고향 오하이오주를 대표하여 미국 상원의원에 출마한 것이다. 그의 선거 캠페인은 문화적 보수주의와 경제적 민중주의의 결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문화 전쟁은 곧 계급 전쟁이다"라고 주장한 JD의 자유주의 비판은 진보적 이데올로기가 미국 중산층과 노동계급의 가치를 침식하고 있다는 그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보통의 정치인처럼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심리학과 신학 등 ‘영혼을 돌보는 정치’(soulcraft)가 미국에 절실함을 누구보다 앞장서 주창했다는 점이다. ‘영혼 정치’를 내세우는 밀레니얼 세대 정치인의 등장으로 새로운 공화당의 정체성도 한층 또렷해지게 되었다. 구민주당이 여전한 세속화 세력의 보루라고 한다면, 신공화당은 새로운 탈세속화 운동의 거점이다. 실제로 JD 밴스는 2016년 책 출간과 2022년 상원의원 출마 사이, 2019년에 세례를 받는다. 신교에서 구교로, 기독교의 근본으로, 가톨릭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세례명은 더더욱 의미심장하다. ‘아우구스티누스’였다.
3. 회개 – 지상천국
언뜻 출세가도를 달려온 인물이다. 비록 어린 시절은 불우했으나, 해병대로 예일대로 실리콘벨리로,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에서 38세에 상원의원에 당선되기까지 아메리칸 드림의 화신이라고 할만하다. 21세기에도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음을 몸소 입증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39세에는 부통령 후보로 지목된다. 러스트벨트의 노동자계급 출신을 부통령으로 삼음으로써 신공화당은 다시 한번 인민정당, 민중정당으로 변모했음을 만천하에 공인했다.
밴스는 지난해 7월 공화당 전국대회의 지명수락 연설에서 본인의 역할을 정확하게 언명했다. 미국의 지배계급(ruling class)에 대한 반대편에 자신을 위치시켰다.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을 직격했다. 밴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바이든이라는 직업 정치가(career politician)가 북미자유무역협졍(NAFTA)을 지지하여 수많은 직장을 멕시코로 보내 버렸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바이든이라는 지배계급 정치인이 중국에 유리한 무역협정을 체결하여 미국 제조업을 이전시킴으로써 중산층의 고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그 바이든이 파멸적인 이라크 침공을 상원의원으로서 지지했었다. 그 각각의 과정에서 일자리는 해외로 유출되었고, 자신과 같은 가난한 집 아이들은 전쟁터로 보내져야 했다. 그 무책임한 지배계급들의 전횡으로 가족과 공동체가 무참하게 파괴된 것을 직접 경험한 정치가가 이제 미국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했음을 선포한 것이다. 80년대에 태어난 30대 리더로서 세대교체와 시대교체의 상징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는 데뷰 무대였다.
그러나 계급투쟁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복지국가만으로는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지난 세기 소련이 이미 보여주었다. 밴스가 정치 입문 직전에 개종을 했고 세례명을 아우구스티누스로 삼았음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기독교 사상사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과 <신국론>으로 대표되는 위대한 교부였다. <고백록> 또한 <힐빌리의 노래>처럼 자서전 형태를 취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생애를 고해성사 하듯이 대화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모든 것을 밝힌다. 회심 이전의 방탕했던 청년 시절과 지적, 종교적 고뇌를 비롯하여 새로운 신앙 생활의 영적 열매, 묵상과 기도에 이르기까지 본인이 겪은 내적 체험을 절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회심은 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회심은 긴 항해 끝에 만나는 항구와도 같다. 하나님의 섭리와 조우한 그곳에서는 은총으로 태어나는 기적을 맛보고 경축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서 핵심은 사랑이다. 자유도 평등도 아니고, 오직 사랑만이 하나님의 지고한 가르침이다. 계몽을 넘어서는 계시가 여기에 있다. 그는 줄곧 하느님을 영원하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묘사한다. 그 사랑은 최고의 선이요 최상의 아름다움이다. 늦게야 사랑한, 이토록 오랜, 이토록 새로운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분의 자비로운 사랑을 바라고 간청하고 찬미하는 그는 그지없이 놀라운 선물에 감사하고 찬양한다. 인생길에서 마주하는 걱정과 안심, 눈물과 기쁨, 침묵과 외침은 이 영적 여정에 장단을 맞추고, 하느님을 사랑하고픈 내적 인간의 포옹에서 샘솟는 기도에 음정과 박자와 음색을 더해준다.
<신국론>은 인간들이 합의한 헌법이 아니라, 은총과 사랑의 대헌장이 구현되는 하나님의 도성을 노래한다. 인류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가는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장엄한 교향곡이다. 지상의 도성은 선과 악, 의인과 악인, 자신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대립으로 묘사된다. 섭리의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천상 도성으로 인도하시고자 지상 도성에서 내적으로 활동하신다. 천상 도성에서는 진리가 승리요, 거룩함이 품위이며, 평화가 행복이요, 생명이 영원이다. 하느님의 도성은 구세주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있다. 이 길을 벗어나서는 아무도 해방되지 못했고 지금도 해방되지 못하며 앞으로도 해방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는 인간이 가야 할 목적지가 되고, 인간이신 그리스도는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이 된다. 반면, 인간의 도성은 하느님께 대한 극단적 반항이 상징적으로 의인화된 마귀를 그 중심으로 삼는다. 교만이 겸손에 맞서고, 지배가 순명에 맞서며, 쾌락과 배타적 자기애가 모든 이를 향한 사랑과 선에 맞선다. 두 도성은 지금 몸으로는 뒤섞여 있고 영으로는 구분되어 있지만, 훗날 심판의 날에는 몸으로도 분리될 것이다.
신국론에 빗대어 보자면 미국은 인간의 도성의 전형이었다. 자유주의라는 이름의 교만한 자기애가 번성하고 번창한 땅이었다. 짧게는 밴스가 경험했던 지난 40년의 신자유주의 시대가 그러하고, 길게는 미국사 250년이 통째로 그러했으며, 더 나아가서는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이래 계몽주의 500년이 모두 하나님의 도성을 거부하고 지상의 도성을 만들어보고자 했던 아담과 이브의 실험이었다. 21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로서 JD 밴스는 그 역사적 실험에 종언을 고하고자 한다. 그가 태어나고 5년 후에 선포된 ‘역사의 종언’처럼 자유주의로 인류의 역사가 마감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만 역사를 개척할 수 있다고 자만했던 ‘빛의 혁명’ 500년사에 마침표를 찍고자 하는 것이다. 개인적 차원의 회심을 넘어서 정치적인 회개와 문명적 수준에서의 개과천선을 도모하는 인물인 것이다.
특히 가톨릭 현대사상의 통합주의와 상통하는 바가 크다. 스스로 통합주의자라고 말한 바도 있다. 가톨릭 통합주의는 자유주의로 운영되었던 현대 사회에 결핍되어 있는 도덕적 기반과 좋은 삶의 목적 의식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찰한 결과물이다. 마치 중세 초기 아일랜드 수도사들이 로마 제국의 붕괴에 맞서 기독교 학문과 문화를 보존했던 것처럼, 이 새로운 가톨릭은 쇠퇴하는 서구 사회의 혼돈 속에서 신앙과 질서의 보루로서 성장해 왔다. 이 새로운 가톨릭 공동체는 자유주의 사회의 원자화되고 이기적인 개인들과는 대조적으로, 신앙과 소명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들인다. 대가족, 홈스쿨링, 전통 보존에 대한 집중은 가톨릭 통합주의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가화만사성, 가족을 "가정 교회"로 중심에 두는 삶으로의 회귀를 요구한다. 이렇게 새롭게 탄생한 가톨릭 통합주의 국가는 자멸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 등 자유주의 국가 이후에 등장할 22세기의 미래국가이자 개벽국가로서 부활과 재림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통합주의의 비전 속에서는 대학과 교회의 위상도 역전된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파편적인 지식들은 장차 모두 AI로 대체될 것이다. 오로지 교회가 가르치는 하느님의 복음이야말로 인간을 감동시키고 감화시킬 수 있다. 시민들의 개념도 바뀌어 갈 것이다. 자유로운 개인(市民)들이 아니라, ‘모시는 사람들’(侍民)이 된다. 국가는 이 하나님을 모시는 사람들의 영적 안녕을 지향해야 한다. 자유주의처럼 네 멋대로 살아라,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가 아니다. 인간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대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실 이 시스템은 중세 시대 내내 번성하며 궁극적 진리에 대한 공통된 이해로 결속된 응집력 있는 문명을 형성했었다. 세속국가는 300년 버티기도 어렵지만, 중세의 문명은 동/서로마를 막론하고 천년 국가를 달성했었다. 실리콘벨리의 기술주의자들이 ‘암흑계몽’을 내세우며 절대군주가 지배하는 신중세형 도시자치를 염원하는 것과 흡사하게도, 가톨릭의 통합주의자들도 신앙을 국가 단위로 쪼갠데 이어서 그 일국 안에서도 좌우파가 난립하던 500년의 춘추전국시대를 평정하고 교황이 훈시하는 서방세계의 대일통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2025년, 21세기 하고도 사반세기를 통과하면서 인간의 이성만이 사회를 질서 지을 수 있다는 계몽주의의 주장은 순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개인을 모든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열의에 사로잡힌 자유주의는 도덕적, 영적 가치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이러한 가치 없이는 사회가 지속될 수가 없다. 모든 현대인들은 영혼이 아프다. 의학의 초가속적 발달에도 불구하고 정신병이 제1의 질환이 되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가톨릭 통합주의가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통합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의 단위는 가족이다. 오늘날 자유주의 사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가족의 붕괴는 단순히 문화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도덕적 문제이다. 통합주의 국가는 안정적인 가정을 육성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앞으로 교육이란 더 이상 직업의 준비가 아니게 된다. 초중등, 대학에서 배우는 직업 교육 또한 장차 사라지고 말 것이다. AI와 로봇이 농업문명과 산업문명이 산출한 모든 일들을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일이란 일어나는 것, 일깨우는 것, 깨어나는 것이 된다. 인간이 배워야 하는 것도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된다. 가정생활의 의무와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책임부터 배우는 것이다. 개인의 성공이나 성취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형제와 자매로서 자녀로서 살아가는 소학과 가학이 핵심 강령이 된다. 나아가 신앙 기반 사회의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즉 교육 과정이란 영성의 훈련, 도덕의 도야에 뿌리를 두게 될 것이다. 하느님과 가족과 사회에 대한 의무를 이해하고 이행하는 전인적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인권의 폭주는 절제될 것이고, 인격의 함양이 강조될 것이다.

고로 JD밴스가 뿌리를 두고 있는 가톨릭의 지적 전통은 계몽주의와 자유주의, 공화주의에 바탕하고 형성된 미국의 헌법과도 어긋나는 지점이 없지 않다. 2026년, 건국 250주년을 목전에 두고 미국사의 거대한 변곡점을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JD 밴스인 것이다. 그는 30대 초중반 실리콘벨리에서 테크놀로지의 세계를 학습(學習)했고, 30대 중후반 가톨릭 성당에서 띠올로지의 미래를 각습(覺習)했다. 인간의 학습은 기계학습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인간에게 남아 있는 소임이 학습이 아니라 각습이라는 것도 체험을 통하여 익히고 있다. 민주주의의 거듭된 오작동을 수학=테크놀로지로 대체하고, 자유주의의 치명적인 오류를 신학=띠올로지로 치유하고자 하는 정녕 신문명을 탐색하는 신세대 정치인인 것이다.
기술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DOGE에 몰려 있고, 영혼에 목마른 자들은 MAGA에 결집되어 있다. 마가와 도지 사이에도 간극이 없지 않다. 트럼프 1.0과 트럼프 2.0 세력 간에 내연하고 있는 잠재적 갈등을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키맨도 밴스일 것이다. 당장은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기술패권전쟁에 이목이 집중되어 있지만, 그 이상으로 주시해야 할 대목이 바로 대서양을 마주보고 미국과 (서)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탈자유주의의 물결이다. 비단 미국사 250년 만이 아니라, 서방문명 500년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계몽령 이래 반천년의 실험을 되물리고 되돌리는 대서양의 대반전을 조직적으로 준비해온 세력들이 있던 것이다.
마침 전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시면서 그의 장례식에 세계시민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공교롭게도 그 분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인물이 바로 JD 밴스였다. 그것도 하필이면 이스터(Easter) ‘부활절’이기도 했다. 이 점이 바로 중요하다. 우리는 이미 부활절에 맞춤하여 바티칸을 방문하는 미국의 유력 정치인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부활절에 교황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눔으로써 밴스의 미래에 근사한 새로운 서사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마치 테크노-차이나로 질주하는 신중국이 대당제국으로부터 거듭 영감을 구하는 것처럼, 바티칸과 로마제국의 유산은 여전히 뉴아메리카의 진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좌-우와 진보-보수가 아니라 이 땅을 지상의 천국으로, 하나님의 나라처럼 만들고 싶어했던 상승의 정치,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정치(Original Politics)의 기운이 미국에 지펴지고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The Guardian)
‘미국을 다시 성스럽게’(Make America Sacred Again), 기술의 지정학에 못지않은 영혼의 지정학을 살펴볼 차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