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9. 겸(謙)䷎ / 예(豫)䷏
- 노겸(勞謙)과 유예(由豫)
그러나, 자기 억압과 자기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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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의 괘 중에서 대유괘는 하늘에 떠 있는 태양처럼 빛나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밝은 빛은 물질적인 풍요를 경험하게 합니다.
동인과 대유를 거치며 사회에는 빛과 밝음, 아름다움이 차고 넘칩니다.
이런 풍요를 창조해 낸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은 이제부터 살아야 할 자신의 삶을 새로운 눈으로 관찰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삶에는 늘 양면성이 있어서 대유의 풍요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림자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늘 선망해왔던 북유럽 사회도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풍요와 복지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자를 자각하는 사람, 자신의 안에서 어떤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에게 겸(謙)이라는 마음이 선물처럼 찾아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부족한 것에 더해서 세상이 조금 더 평등하고 안전해지게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산처럼 높은 자신들의 재산과 명예, 지혜를 땅에 쏟아 버리는 것처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裒多益寡 稱物平施)
그가 살아간 이 새로운 삶의 방식은 그에게 삶의 성숙이라는 선물을 줍니다.
종이에 싼 향처럼 그는 자신의 삶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鳴謙) 자연스럽게 그는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교사가 됩니다.
그의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勞謙君子 萬民服也)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이지만 그는 숨겨진 엄지 손가락처럼(撝謙)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완벽함에서 시작합니다.
겸(謙)은 누가 봐도 완전한 사람입니다. 그는 점점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게 됩니다.
어떤 때는 내면의 성찰을 통해 겸(謙)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시선을 감당해야 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의 낮아지고 낮아지는 마음에서 이제는 낮아져야만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 집니다. 그는 이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자기 안에 억눌러 둔 어떤 감정과 싸우게 됩니다.
오래된 이 감정은 어느 순간 폭발할 것 같기도 합니다.
겸(謙)에게 단순히 자기를 낮추고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게 사는 걸 넘어선 새로운 감정 하나가 더 있어야 하는 시간입니다.
겸괘 2번과 6번은 같은 명겸(鳴謙)이지만 이 둘은 정반대의 의미를 가집니다.
2번의 명겸(鳴謙)이 종이에 향을 쌌지만 그 향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면 6번의 명겸(鳴謙)은 글자 모양 그대로 새가 지저귀듯이 자기 잘난 것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을 합니다.
한문에서 한 글자에 정반대 의미를 담는 양면성의 의식 세계는 깊은 통찰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다르게 보는 현상이 깊은 눈으로 보면 같은 감정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겸의 마음이 길을 잃을 때 겸 안에 가진 산과 같은 힘은 방향을 찾지 못하고 폭력성을 띠기도 합니다.
겸괘는 성리학의 품성을 설명하는 상징같은 마음이어서 성리학자들은 겸손의 마음을 수련했지만 그들이 마음의 길을 잃었을 때 터져 나온 분노는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기도 합니다.
예괘(豫卦)는 겸이 가진 힘에서 폭력적인 부분을 제어해서 세상에 적절한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입니다.
예괘는 마음이 가는 길을 미리 예측(豫測)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즐거움(樂)과 기쁨으로 그려갑니다.
예는 겸의 산처럼 큰 힘을 음악과 예술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축제라는 방식으로 세상에 드러냅니다.
예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雷出地奮 豫. 作樂崇德)
예술가의 삶을 사는 예괘는 사는 게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기쁨을 위해 살지만 삶은 늘 가난과 긴장,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기다림을 견뎌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겸에서 자신을 벽으로 몰아 넣었던 자기 억압을 극복해야 합니다.(鳴豫 志窮)
하고 싶은 모든 말을 다하고 표현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표현해 봐야 합니다.
겸이라는 틀에 갇혀서 자기를 억압했던 감정의 찌꺼기를 폭발시키듯이 터트리는 시간입니다. (雷出地奮)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과 안내자를 만나면 그는 안정을 찾게 됩니다.
예괘의 핵심 키워드는 4번의 유예(由豫)입니다.
겸괘의 핵심 키워드는 3번 노겸(勞謙)입니다.
겸괘의 3번과 예괘의 4번은 둘 다 나머지 음을 다 품어 안는 하나의 양입니다.
주역은 이렇게 나머지는 다 양인데 음이 하나 있는 경우, 나머지는 다 음인데 양이 하나 있는 경우에 그 자리에서 힘이 모이거나 소통이 일어나거나, 핵심 가치가 자리잡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유예(由豫)는 정말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를 지탱하는 깊은 삶의 철학이 있습니다.
유예의 자유로움은 노겸(勞謙)의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에게 쉽게 다가오는 사람 중에는 비틀즈의 존 레논이 생각납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음악인이면서 동시에 평화 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괘의 자유로움과 안정감은 2번과 4번 외에는 없습니다.
예술가의 삶은 기본적으로 불안정하고 불안합니다.
겸이 자기를 억합한다면 예는 자기를 파괴하고 병들게 합니다.
그는 간신히 살아남습니다.
예는 자기 삶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이 성찰의 결과는 다음 이야기 수괘(隨卦)과 고괘(蠱卦)에서 이어집니다.
15. ☷☶ 謙 지산겸 地山謙 |
謙 亨 君子有終.
겸 형 군자유종
겸손, 나는 이 마음을 놓지 않고 살겠다.
彖曰 謙亨 天道下濟而光明 地道卑而上行.
단왈 겸형 천도하제이광명 지도비이상행
天道 虧盈而益謙. 地道 變盈而流謙. 鬼神 害盈而福謙. 人道 惡盈而好謙.
천도 휴영이익겸. 지도 변영이유겸. 귀신 해영이복겸. 인도 오영이호겸
謙 尊而光 卑而不可踰 君子之終也.
겸 존이광 비이불가유 군자지종야.
하늘의 마음은 그 빛이 아래로 흐른다. 땅의 마음은 낮은 곳에서 위로 오른다.
그래서 하늘은 가득 찬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것에 더하고, 땅은 가득 찬 것을 변화시켜 낮은 곳으로 흐르게 하고,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쳐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을 주고, 사람은 가득 찬 것을 싫어하고 겸손한 사람을 좋아한다.
겸손함은 귀한 이들을 더 빛나게 하고, 낮은 사람들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한다.
나는 내가 사는 동안 겸손함을 놓지 않고 살겠다.
象日 地中有山 謙 君子以 裒多益寡 稱物平施.
상왈 지중유산 겸 군자이 부다익과 칭물평시
땅 아래에 산이 있는 것처럼 나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것에 더해서 공평해 지도록 돕겠다.
1. 初六 謙謙君子 用涉大川 吉.
초육 겸겸군자 용섭대천 길.
象曰 謙謙君子 卑以自牧(養)也.
상왈 겸겸군자 비이자목야
많이 가졌던 자리에서 낮고 낮은 곳으로 간다. 나는 강을 건너 새로운 세계로 들어갔다.
내 발로 걸어서 세상의 낮은 곳으로 갔는데 그 곳에서 오히려 나는 나를 돌볼 수 있었고 참 기쁨을 찾을 수 있었다.
육이 명겸 정 길
象曰 鳴謙貞吉 中心得也.
상왈 명겸정길 중심득야
겸손은 내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나를 낮추지만 내 삶의 향기는 퍼져나간다.
3. 九三 勞謙 君子有終 吉.
구삼 노겸 군자유종 길
象曰 勞謙君子 萬民服也.
상왈 노겸군자 만민복야
노력하고 애써서 많은 일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런 성과는 내 것이 아니다. 함께 한 많은 이들의 덕분이다. ‘덕분에’ 라고 말하는 노겸(勞謙)의 마음은 많은 사람을 모은다.
4. 六四 无不利撝謙.
육사 무불리휘겸
象曰 无不利撝謙 不違則也.
상왈 무불리휘겸 불위칙야
숨겨진 엄지손가락처럼, 내가 베풀고 나눈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했기에 하늘의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
5. 六五 不富以其鄰 利用侵伐 无不利.
육오 불부이기린 이용침벌 무불리
象曰 利用侵伐 征不服也.
상왈 이용침벌 정불복야
그는 그가 가진 것을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지 않는다. 나는 그가 싫다. 그런 놈은 혼을 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왜 그의 모습을 그냥 봐줄 수 없을까?)
6. 上六 鳴謙 利用行師 征邑國.
상육 명겸 이용행사 정읍국
象曰 鳴謙 志未得也 可用行師 征邑國也.
상왈 명겸 지미득야 가용행사 정읍국야
나는 지금 겸괘의 끝자락에 서 있다. 나를 낮추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지금 나는 새가 지저귀듯이 떠벌린다. 내가 가진 힘과 군대를 숨기지 못하고 잘 난 체 하는 작은 나라를 제압한다.
16. ☳☷ 豫 |
豫 利建侯行師.
예 이건후행사
우리는 적절한 자리에 바른 지도자와 안내자를 세우고, 필요할 때 힘을 쓰고 군대를 움직이는 일을 한다. 이런 일을 할 때 큰 코끼리처럼(豫) 크고 여유롭게 볼 수 있어 미리 예측(豫測)할 수 있다.
彖曰 豫 剛應而志行 順以動豫. 豫順以動故 天地 如之 而況建侯行師乎.
단왈 예 강응이지행 순이동예. 예순이동고 천지 여지 이황건후행사호.
天地以順動 故日月不過而四時不忒. 聖人以順動 則刑罰淸而民服. 豫之時義 大矣哉.
천지이순동 고일월불과이사시불특. 성인이순동 즉형벌청이민복. 예지시의 대의재.
네 번째 하나의 양(陽)은 강한 힘을 가지고 터져 나오는 감정을 조절하고 안내한다. 나머지 다섯 개의 음(陰)은 이 양과 서로 호응하며 예(豫)의 마음, 기쁨을 실현한다. 그래서 예(豫)는 서로 호응하며 순리대로 움직인다. 하늘과 땅도 예의 마음을 따르는데, 지도자를 세우고 군대를 움직이는 일은 힘을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당연히 순리를 따라야 하지 않겠나?
하늘과 땅이 순리를 따르기에 해와 달도 어긋나지 않고 사계절이 순환의 질서를 따라서 돌아간다. 우리가 이렇게 순리를 따른다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적절함을 넘어설 때 형벌을 내리더라도 시민들은 예측할 수 있어서 받아들이고 복종한다.
예(豫)의 기쁨이 크구나!
象曰 雷出地奮 豫. 先王以 作樂崇德 殷薦之上帝 以配祖考.
상왈 뇌출지분 예. 선왕이 작락숭덕 은천지상제 이배조고.
우레 같은 강한 힘이 땅에서 분출되어 솟아나는 것처럼.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힘들이 터져 나와 음악을 만들어 하늘의 은혜에 감사하고 조상에게 제사드린다.
우리가 만든 음악은 우리의 거친 에너지를 아름답게 조율한 결과이다.
1. 初六 鳴豫 凶.
초육 명예 흉
象曰 初六鳴豫 志窮 凶也.
상왈 초육명예 지궁 흉야
겸괘의 상육 명겸(鳴謙)에 이어 명예(鳴豫)로 시작한다.
지금 내 마음은 벽에 갇힌 것처럼 막혀 있다.
명예(鳴豫)의 안내를 따라 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 (獨樂)
2. 六二 介于石 不終日 貞 吉.
육이 개우석 부종일 정 길.
象曰 不終日貞吉 以中正也.
상왈 부종일정길 이중정야.
나는 바위처럼 흔들림이 없다. 이 마음은 하루에 끝나지 않고 오래 이어진다. 내 마음은 중심이 바르게 자리 잡아 중정(中正)하다.
삶의 기쁨은 이런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기반으로 움터난다.
3. 六三 盱豫 悔 遲 有悔.
육삼 우예 회 지 유회.
象曰 盱豫有悔 位不當也.
상왈 우예유회 위부당야.
내가 서 있는 자리는 불안정하다. 누구에게라도 붙어야 한다. 그렇게 눈웃음치며(盱) 구걸하듯이 얻은 기쁨은 즐겁지 않았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4. 九四 由豫 大有得 勿疑 朋 盍簪.
구사 유예 대유득 물의 붕 합잠
象曰 由豫大有得 志大行也.
상왈 유예대유득 지대행야.
내 안에서 기쁨이 터져 나온다.(自由) 나의 기쁨은 수 많은 일들을 일으킨다.
이렇게 일어나는 일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내 기쁨의 의미를 의심하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의미가 있다.
여러 친구들이 찾아오고 나는 흩어진 머리카락을 모으는 비녀처럼 친구들의 마음을 모았다. 우리는 함께 있을 때 정말 기쁘고, 힘을 모아 성공하고 싶다.
5. 六五 貞 疾 恒不死.
육오 정 질 항불사.
象曰 六五貞疾 乘剛也 恒不死 中未亡也.
상왈 육오정질 승강야 항불사 중미망야.
사는 일이 아프고 불안하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힘에 눌린다. 불안해서 향락(享樂)에 탐닉하며 나를 돌보지 않았다.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어느 선은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6. 上六 冥豫 成 有渝 无咎.
상육 명예 성 유유 무구
象曰 冥豫在上 何可長也.
상왈 명예재상 하가장야.
‘어두운 행복’ 쾌락(快樂)의 끝을 추구했다. 이런 삶은 오래 갈 수 없다.
겸괘(謙卦)에서부터 키워온 내면의 힘이 이런 나를 볼 수 있게 했고 나는 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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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살 김재형 이화서원 대표. 전남 곡성에서 이화서원이라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 공부한다. 고전 읽는 것을 즐기고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시로 읽는 주역',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동학의 천지마음', '동학편지' 를 책으로 냈다. 꾸준히 고전 강의를 열어 시민들과 직접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