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운주의 생명의 경계에게
2024년 2월 13일
9. 한국수(韓國獸) 호랑이에게
ⓒ세계 자연 기금
고라니에게 마저 남은 말들을 써내려 가다 완성하지 못하고 너에게 시선을 돌렸어. 이제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너에게 안부를 묻지 못하겠네. 시베리아 어딘가에 있을, 너와 DNA가 같은 아무르 호랑이를 상상해. 일생동안 내 생활에서 너를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어서,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쓰게 될 거라곤 상상을 못 했어. 처음 이 글들을 계획할 땐 내 주변, 내가 보고 경험했던 동물들을 묘사하려 했으니까. 가뜩이나 혼잣말을 하는 듯한 이 편지들이 조금이라도 직접 관계짓지 못한 존재들에게 쓰면 너무 공허할 것 같았거든. 그런데 유해동물 구제 사업이란 이름으로 벌어지는 사냥의 역사를 찾다가 좀 쓰고 싶어졌어. 네가 이 사업의 그 시초더라. ‘해수 구제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시대에 너희를 체계적으로 잡기 시작하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생긴 사업이라고 해.
우리는 대부분 너희를 책으로만 배웠어. 직접 볼 일이 동물원이 아니고서야 없고, 평소 한국의 상징 동물로 사용되는 모습을 많이 보니까. 사람들은 대부분 너희가 깊은 산 속에서 사는 ‘산군’인 줄 알 거야. 나도 그런 줄만 알았어. 생각보다 너희는 습지나 물가 주변까지 잘 내려와 있다며? 사슴, 고라니, 멧돼지, 표범 등이 물가에 자주 살다보니 너희가 사냥을 하려면 물가가 안성맞춤이라면서. 인간의 농지 개간이 늘어나며 너희와 사람들이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더라. 벌목이 많아지며 먹을거리가 줄어든 너희가 마굿간의 말들을 잡아먹거나, 궁 안이나 집으로 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잡아먹는 일이 허다했다지. ‘개구멍’이란 말의 유래도 너희가 많이 살던 진도에서 나온 말인데, 개가 숨을 구멍이란 뜻이래. 가정집에 수시로 오던 너희가 마당에서 개를 잡아먹는 일이 없도록 말이야.
호환[1]으로 인한 인명 피해, 재산 피해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국가 문제가 되다보니 너희 호랑이 사냥 전문 군인 ‘착호군’과 관리 ‘착호갑사’가 생겨나며 체계적인 국가 시스템과 법이 촘촘히 들어섰다고 해. 하지만 국가의 이념과 생태관에 따라 호환 예방 차원으로 너희를 모두 죽일 생각은 없었대. 너희를 그리는 그림에선 두려움과 동경이 늘 동시에 묻어났지. 이후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 일본 총독부가 이 착호 시스템을 보고 ‘해수 구제 사업’을 펼쳤는데 이때 너희를 보이는 대로 잡았다더라. 그 덕분에 18세기 이후 늑대가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단 말이 있어. 하지만 늑대도 해수 구제 사업에서 대규모 살상 사태를 겪고 현재 우리나라의 최상위 포식자는 담비래. 일본이 펼친 ‘해수 구제 사업’은 인간에게 해로운 동물을 말살시킨다는 명분 하에 벌어진 무자비한 트로피 사냥이었다더라. 우리나라의 진도와 남해는 이미 너를 사냥하는 유명한 터가 되어 일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양 국가에서도 너희를 죽이러 왔었대. 이때 너희뿐만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새, 토끼, 사슴, 늑대, 곰, 표범 가릴 것 없이 모두 잡혔다더라. 덕분에 우리나라 생태계 상위 포식자들이 점점 절멸하며 인간 주민들과 비인간 주민들의 연결고리가 크게 끊어졌겠지.
‘사냥’은 국가의 생태 이념과 맞닿아있구나. 역사를 보면 사냥은 국가의 종교 및 군사 활동과 빼놓을 수 없는 활동이었다는 걸 너를 통해 실감해. 학창 시절 배우던 국사 교과서에서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 중 지맥 및 수맥에 말뚝을 박아놓는 일, 서식하는 비인간 동물들을 모두 죽이는 일 등이 그저 민간신앙에 맞닿아있는 종교적 행위인 줄 알았어. 그 함의가 무엇인지 조금씩 피부로 느끼는 거 같아. 조선시대 초기 민속화에서 그려지던 너는 비교적 무서웠는데 사냥이 활발했던 후기에 접어들며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닮아가더라. 조롱, 풍자의 아이콘으로 해학적으로도 사용되고 말이야. 지금은 국가의 상징으로만 남아있는, 유니콘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널 보며 조금 씁쓸했어. 직접적으로 볼 수 없는 만큼, 잘 모르는 만큼 너희에 대한 감정이 정말 공허하더라. ‘용맹한 호랑이의 땅’, 너희를 국가의 모습에 빗대어 소비하지만 너희를 모르는 우리. 상징에 의미가 있을까. 너희 탈을 쓴 우리 모습만 남았겠지. 내가 사는 땅과 어떻게 멀어져 있는지 실감이 났어.
너희가 단순히 해수 구제 사업만으로 한반도 땅에서 없어진 건 아니라고 했어. 한국 전쟁으로 한반도 허리가 절단되며 너희의 집이 더 줄어들었을 거라고 하더라. 겹겹이 이어져 있는 산맥과 수맥이 도로 건설, 전쟁, 수로 건설 등으로 끊어지고 생태가 파편이 되면 생존하는 데에 제일 큰 면적의 땅이 필요한 최상위 포식자들이 가장 열악한 환경에 놓인다고 해. 또 생태계가 작아질수록 먹이 사슬들이 켜켜이 무너져 내린다고 하더라. 포식자가 없어진 덕분에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초식 및 소형 동물들도 곧 먹이 부족으로 인가를 향하고, 이에 불편해진 인간들이 합법적인 사냥을 하며 점점 열악한 환경에 놓인다고. 생태계가 점점 이렇게 균형을 잃을수록 그 힘을 잃고 작아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대. 너희와의 관계가 끊어지며 어떻게 절멸되었는지 무관심해진 우리가 너희를 이 땅의 동물로 가져갈 수 있을까?
질문을 끝으로 편지를 마무리 하려 해.
2024.02.08
운주 씀
운주 씀
[참고자료]
- 김동진(2017). 조선의 생태환경사. 푸른역사, p.25-74
- 조홍섭, “한국호랑이는 언제, 왜 사라졌을까?”, 한겨레, 2009.12.29.,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396050.html
- 남종영, “호랑이는 사냥꾼보다 농사꾼이 더 무서웠다”, 한겨레, 2016.01.08.,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725419.html
[1] 호환 : 호랑이에게 당하는 화(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