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뉴아메리카 견문

2025년 5월 4일

9. 디지털 로마제국 : MEGA-WEST와 META-WEST





(사진 출처: Prime Matters)
 
1. 탈세속주의

작년 7월 JD 밴스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자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POLITICO)는 밴스에게 영향을 준 7명의 사상가들에 대한 특집 기사를 발표한다. 그간에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지만, 39세 부통령 후보의 등장과 함께 이들의 세계관이 장차 미국의 향방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 신세기의 신주류, 마침내 부상한 뉴아메리카의 뉴페이스들에는 이미 이 책에서 언급한 이들도 여럿 등장한다.

첫째는 뭐니뭐니 해도 피터 틸이다. 지난 15년간 밴스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대부(代父)이다. 낳아준 아버지보다 키워준 아버지가 훨씬 더 중요했다. 실리콘벨리에서 양성하여 워싱턴으로 투입된 틸의 사도들이 앞으로 15년 뉴아메리카를 주도해 갈 것임이 틀림없다. ‘파운더스 펀드’(Founders Fund)라는 사명 그대로 피터 틸의 마지막 벤처 투자가 정부를 접수하여 미국을 개조하고 이 세계를 재창조하는 신천지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틸의 정치적 견해는 복합적이지만 내 식으로 요약해 보자면 셋으로 압축할 수 있다. 문화적으로는 자유주의를 탈피한다. 정치적으로는 관료주의를 타파한다. 문명적으로는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초가속화함으로써 디지털국가로 미국을 재건한다. 완전히 자동화된 거버넌스로 작동하는 AI 국가를 통하여 21세기의 천하를 평정하고,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는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나신 이래 첫 번째 천년은 말씀으로 유럽을 축복했다. 두 번째 천년은 인쇄술을 통하여 지상의 온 대륙을 구원했다. 세 번째 밀레니엄은 디지털 복음서와 함께 은하계 온누리로 은총을 베풀려는 것이다. 

틸의 충신이라고 할 수 있는 커티스 야빈 또한 밴스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꼽힌다. 틸의 주선으로 야빈과 밴스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야빈은 계몽주의 이래 진보라는 발상 자체를 가장 급진적으로 거부하는 신반동주의 운동의 리더이다. 정부-대학-언론에 똬리를 틀고 있는 세속적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과두정치를 타도하기 위해서 스타트업 CEO를 본뜬 군주적 리더십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마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악성 코드를 디버깅(프로그램의 오류를 찾아내어 수정하는 과정) 하듯이 미국의 입법-사법-행정 체제를 디버깅하자는 것이다. 입법부는 갈수록 아수라판이 되어가고, 사법부는 편향과 편중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행정부는 비효율성과 비생산성의 극치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틸과 야빈이 구축한 ‘스타트업 미래국가’라는 비전은 DOGE를 통하여 관료국가를 해체하는 초유의 실험을 하고 있다.

가톨릭으로의 회심을 이끈 르네 지라르도 빠뜨릴 수 없겠다. 밴스는 지라르의 희생양 개념을 응용하여 키보드 워리어들이 맹활약하는 온라인 공론장의 조롱과 조소의 문화를 성찰한다. 마태복음 가라사대, 남 눈의 티끌만 나무라고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 하셨건만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내로남불’이 만연한 것이다. 상대방을 낙인 찍고 나락으로 보내 버리는 디지털 마녀사냥을 심히 우려한다. 또 다른 가톨릭 계열 지식인으로는 노트르담 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패트릭 드닌이 중요하다. 국내에도 번역되어 있는 <자유주의는 왜 실패했는가>를 2018년에 출간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출처: Merion West)

자유주의는 정치의 토대를 ‘높은 것’에 대한 염원에서 ‘낮은 것’으로 끌어내리고 말았다. 덕성을 함양하려던 고대와 중세의 리더십 트레이닝이 거부된 것이다. 유덕한 이보다는 유능한 이를 찾고, 유능한 자보다는 유명한 자들이 득세한다. 그래서 불과 500년 만에 5000년 인류의 유산을 소진시키고 말았다. 목적을 상실한 무의미한 삶을 양산함으로써 가족, 이웃, 공동체, 종교,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적 유대가 허물어지고 있다. 자연의 고갈만큼이나 인간의 도덕적 자제력도 떨어지고 만 것이다. 본디 자유란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 마음 가는 대로 해도 하늘의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경지(從心所欲不踰矩)에 이르는 것이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욕구와 갈망을 다스림으로써 욕망의 노예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자유롭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자유주의는 자유를 오독하고 모독함으로써 자연을 거스르고 만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드닌은 2023년에 <체제 전환>(Regime Change)까지 출간한다. 그간에는 미국이 외국의 독재정권에 개입하여 ‘민주정부’를 이식하는 것을 레짐 체인지라고 했었다. 거꾸로 이제는 미국의 체제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적 가치 증진에 기반하여 미국을 탈세속주의 질서로 대체하는 영적 혁명의 로드맵을 그려낸 것이다. 밴스는 가톨릭 대학교에서 열린 <체제 전환> 출판 기념회에 직접 참석하여 패널 토론에 나서기도 했다. 자신을 ‘탈자유주의 우파’라며 바이든/해리스 정부가 상징하는 글로벌-리버럴-진보파와의 차별성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바로 그 이듬해 밴스가 부통령 후보로 지목이 되자 드닌은 ‘그는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가족에게 헌신하고 친구와 이웃에게 다정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진정한 애국자’라며 밴스의 정치적 장래에 대한 크나큰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JD야말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를 구현하는 성왕(聖王)의 위엄으로서, 구원과 구국과 구세의 도구가 될지 몰랐다.

국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저널리스트 소랍 아마리(Sohrab Ahmari) 또한 밴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세속적인 이란계 가문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하여 급진 좌파인 트로츠키주의자가 되었다가 끝내 가톨릭으로 개종한 지식인이다. 자본주의의 첨병이라고 할 수 있는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논설위원까지 했지만, 노동계급 친화적인 노선으로 수정하였다. 그래서 농담조로 자신을 ‘생명을 존중하는 뉴딜주의자’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가톨릭의 생명사상에 노동계급 중심성을 결합했다는 의미이다. 경제적 진보와 문화적 보수를 융합하여 워싱턴의 양대 기득권에 도전하는 신생 미디어 <컴팩트 매거진>(Compactmag.com)을 창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이면서도 문화적으로는 진보를 과시하며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미국판 ‘강남 좌파’들을 겨냥한다. 

정통 기독교 작가이자 보수파 논객인 로드 드레허(Rod Dreher)도 있다. 그는 자유분방한 히피와 같은 반문화(反文化)가 아니라 기독교에 기반한 경건하고 거룩한 카운터컬쳐를 도모한다. 흥청망청 과시적인 소비문화가 아니라 기도하고 묵상하며 피정을 통해 영혼을 정화하는 수도원의 규칙을 복원하자고 제안한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2017년의 저서 <베네딕트 옵션>(The Benedict Option)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드레허는 2016년 밴스의 <힐빌리의 노래>를 자신이 읽은 최고의 책이라고 칭찬했으며, 이에 화답이라고 하듯 밴스는 다음해 출간된 드레허의 저작에 호의적인 추천사를 실어주었다. 그 후 드레허는 헝가리에 주로 머물면서 빅토르 오르반 정부에 조언하는 고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9년 오하이오에서 열린 밴스의 가톨릭 세례식에 함께 참석한 지인 또한 드레허였다.


(출처: Vanity Fair)

피터 틸부터 로드 드레허까지가 개인들이라면, 유일하게 조직으로 언급된 곳은 클레어몬트 연구소(Claremont Institute)이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CI는 2016년부터 트럼프를 지지하는 중추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2020년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한 트럼프의 변호사 존 이스트먼 같은 학자들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CI의 사상적 뿌리는 레오 스트라우스이다. 미국 동부의 스트라우스학파가 ‘네오콘’을 형성했다면, 이들은 서부의 스트라우스학파로서 네오콘 이후의 새로운 보수파-신전통주의-를 지향한다. 네오콘들이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연거푸 일으켰던 반면에, 이 서부의 신전통파들은 America First, 불간섭주의와 미국 고립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밴스는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CI 연구진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이 연구소가 주최하는 행사에서도 여러 차례 연설을 하기도 했다. CI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지금은 아예 밴스의 사진이 메인으로 걸려있을 정도이다. 특히 2024년 7월 19일에 올린 메시지가 상징적이다. “클레이몬트, 워싱턴에 가다”(Claremont Goes to Washington)라는 제목으로 밴스의 백악관 입성을 예언하고 축복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몇 주가 롤러코스터였다고 말하는 것은 절제된 표현입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 암살 시도는 우리를 공포와 분노에 떨게 했지만, 동시에 결연한 의지를 갖게 했습니다. 그런데 J.D. 밴스 상원의원이 그의 러닝메이트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는 환호했습니다. 클레어몬트 연구소에게는 참으로 기쁜 순간입니다. 밴스 상원의원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CI의 <미국적 삶의 방식> 센터는 미국의 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해 놀라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분석과 통찰력은 상원의원으로서 제가 하는 일에 매우 소중한 자원이 됩니다.

실제로 밴스의 부통령실에는 CI 출신의 참모들이 적지 않다. 밴스를 막후 지원하는 싱크탱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 대선이 단순히 트럼프 2.0이 아니라 미국 2.0, 뉴아메리카의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든 시점부터, 나 또한 CI의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있다. 공화당 편의 해리티지 재단이나 민주당 쪽의 브루킹스연구소 등 기왕의 싱크탱크만 파악해서는 미국의 미래를 추적할 수 없는 시절이 된 것이다. CI에서 북리뷰를 하는 온라인 저널을 읽고 “아메리칸 마인드”(American Mind)라는 팟캐스트도 종종 듣는다. 최대한 JD 밴스의 머리 속으로 들어가 그의 생각과 가까이 동기화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 7명의 개인/조직에다가 폴리티코에서 언급하지 않은 단체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FT이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지<Financial Times>가 아니라 미국의 영성 조직 <FIRST THINGS>이다. “첫 번째 것”이라기 보다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의역해야 더 어울릴 법하다. CI가 서부의 스트라우스학파를 상징한다면, FT는 동부와 서부의 연합을 표방하는 가톨릭 논단이다. 가장 유명한 문서가 2019년 3월에 발표한 <죽은 컨센서스에 대항하여>(Against the Dead Consensus)이다.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변되는 기존의 보수주의, 즉 구공화당이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자유무역과 작은 정부 등을 비판한다. The First Things, 가족의 안정과 공동체의 연대라는 사람 살이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방기했다는 것이다. 이 성명에는 15명의 지식인들이 서명했는데, 앞서 거론한 페트릭 드닌, 소랍 아라미, 로드 드레허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신전통주의자들’이라고 불리기를 선호한다.

FT에 의하면 20세기의 보수주의는 우익의 전체주의를 물리치고 좌익의 공산주의를 뿌리치며 인간의 존엄을 지켜낸 크나큰 공로가 있었다. 그러나 자유주의와 흡사하게도 개인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전통적 가치를 충분히 배려하지 못한 치명적인 한계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 여섯 가지 방침을 신전통주의의 핵심 강령으로 삼는다.

첫째, 우리는 개인의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는 영혼 없는 사회에 반대한다.
둘째, 우리는 미국 인민의 편에 선다.
셋째, 우리는 인간의 존엄에 대하여 타협하는 어떠한 시도도 거부한다.
넷째, 우리는 자유주의의 전제와 독재에 대해서도 저항한다
다섯째, 우리는 노동자를 위해 일하는 나라를 원한다.
여섯째, 우리는 조국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1번과 3번은 가족, 신앙, 공동체의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다. 종교적 보수로서 익숙한 내용들이다. 2번과 5번이 색다르다. 미국의 기층대중, 인민과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세력으로 새로운 보수주의를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과 진보파를 외부세력=이민자에 친화적인 정파로 위치시키고, 자신들은 본토의 토박이 미국인들을 대변하는 것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6번은 자유주의라는 보편주의의 폭정이 전 세계를 획일화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미국조차 무국적 듣보잡의 나라로 만들고 있음을 역설하는 내용이다. 국경 없는 세계라는 유토피아적 세계화에 반대하면서 미국다운 미국, 정통이자 적통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새로운 국가주의를 표방하는 것이다.

2. 탈자유주의

드닌의 <실패>가 출판된 2018년, 뉴아메리카의 풍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책이 두 권 더 출간된다. 우선은 10월에 나온 터커 칼슨의 <바보들의 배>(Ship of Fools)이다. 부제는 ‘이기적 지배계급들은 어떻게 미국을 혁명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는가’이다. 칼슨은 폭스TV의 진행자였을 만큼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신전통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보수 세력을 상징하는 저널리스트라고 하겠다. 1969년생인 그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사춘기를 보냈던 1980년대의 미국은 꽤나 평등한 나라였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는 기회의 나라이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탈냉전과 세계화의 바람이 몰아치기가 무섭게 빈부 격차는 급격히 확대되었다. 그가 의아해 마지 않는 것은 중산층의 쇠퇴를 말하며 선거에 나와야 마땅할 민주당의 성격마저 돌변했다는 점이다. 상위 10%의 기득권에 포획된 민주당은 다문화주의와 PC주의 등 정체성 정치의 자유주의적 수사를 구사하면서 진보정당의 면모를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칼슨이 구공화당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공화당이야말로 이라크전쟁부터 아프간전쟁에 이르기까지 어리석은 대외개입을 주도했던 네오콘의 아성이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시장경제를 과도하게 중시하는 기존의 보수파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2019년 1월 2일 방송한 <모놀로그>가 상징적이다. FOX에서 퇴사한 이후 자신이 홀로 진행하는 1인 방송에서 평소보다도 훨씬 긴 시간을 할애하여 ‘시장원리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심각한 빈부격차로 사회의 근간인 가족이 붕괴되어 가고 있음을 목놓아 역설했다. 마약의 남용 등 절망적인 사회 분위기가 심화되고 있음에도 기층 민중의 곤경은 아랑곳도 없이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확대하자거나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한가한 소리만 늘어놓는 먹물들을 비판한다. 제발 교조적인 ‘작은 정부’ 타령일 랑 그만두고, 가족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후원할 수 있는 가부장적 정부를 되돌려 놓으라고 읍소하는 것이다. 이혼이 증가하고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고독사가 확대되는 것이야 말로 “1989년 체제”의 실패를 웅변한다. 이는 자유의 증대가 아니라 자연의 위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인류학적 위기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2018년 9월에는 <국가주의의 미덕>(The Virtue of Nationalism)도 출간된다. 이스라엘계 미국인 정치학자이자 종교학자인 요람 하조니(Yoram Hazony)의 저작이다. 아홉 명의 자녀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거주하는 하조니는 유대교-기독교의 전통을 계승하여 샬렘(Shalem)이라는 이름을 딴 연구소와 출판사, 대학을 잇따라 설립한다. 그 또한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주류세력들, 네오콘과 네오리버럴이 주도했던 신세계질서를 현대적인 제국주의라고 성토한다. 민족주의를 반역이라며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은 근 3-40년이다. 그 이전에는 독립운동과 민족자결에 기초한 신생국가들의 신민족주의 바람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그리고 미국은 100년 전 윌슨 대통령이 14개조 선언을 하면서 그 민족주의 물결의 물꼬를 텄던 나라였다. 그러나 1990년 아버지 부시 정부가 신세계질서 수립을 선포한 이래, 세계주의의 물결이 지구촌을 휩쓸게 된다. 세계은행과 IMF와 유럽연합 등 아무런 대표성이 없는 국제기구들이 세계질서를 주도해 가면서 국가의 주권을 약화시켜 갔던 것이다. 그 ‘세계화의 덫’에 빠진 나라는 비단 제3세계만이 아니었으니, 2008년 미국 또한 세계금융위기의 수령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2016년 트럼프의 당선과 영국의 브렉시트로 인하여 전 세계 인민들이 탈세계화를 소망하고 있음을 증명했던 것이다.


(출처: Wikipedia)

세계화주의자(Globalist)들은 시장이 중요하다며 공장을 중국과 아시아로 이전했지만, 탈세계화주의자(Nationalist)들은 추상적인 시장보다는 구체적인 공장이, 일자리가 중요하다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야 노동계급을 보호할 수 있고 그래야 가족을 건사하고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 시장은 공장이 미국에 있든, 중국이나 베트남에 있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장의 역할이 아니다. 시장은 가장 싼 생산 방법을 찾을 뿐이다. 그러나 정부는 달라야 한다. 정부는 공장이 자국에 있어야 함을 신경 써야만 한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국민의 살림살이를 확실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과 공장과 교회야말로 생활의 근간이다.

2018년 본인의 비전을 발신하는 책을 발표한 하조니는 2019년 1월 <에드먼드 버크 재단>(Edmund Burke Foundation)을 설립하여 의장을 맡는다. 버크는 18세기말 가장 일찍이 전통주의와 공동체주의에 기반해서 프랑스혁명의 폭주를 비판적으로 성찰했던 사상가이다. 그 상징적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같은 해 7월에는 워싱턴 DC에서 성대한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이례적으로 500명이 넘는 신전통파 지식인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은 것이다. 일명 국가보수주의 회의(National Conservatism Conference)였다. 글로벌리즘에 맞서 내셔널리즘을 내세우고, 진보주의와 자유주의, 세속주의에 맞서서 오래된 영성의 가치를 앞세운 것이다. 여기에는 피터 틸부터 터커 칼슨, 페트릭 드닌 등 21세기 신공화당의 신전통주의로 합류하고 있는 스타급 인플루언서들도 총집결했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어린 주인공으로서 참여한 인물이 바로 JD 밴스였을 것이다. 아직 정치에 입문하기 전이었던 밴스는 이 첫번째 회합에서 <자유지상주의를 넘어서>라는 제목의 연설을 한다. 얼핏 사회주의자인 민주당 좌파 버니 샌더스의 연설인가 싶을 정도로 강도 높게 미국식 시장경제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밴스는 2021년과 2022년, 그리고 2024년에도 연단에 오르면서 국가보수주의 컨퍼런스의 간판이 되어갔다. 네오콘을 대체하는 네트콘(NATCON)의 대표 선수로 급부상한 것이다. 신공화당의 신기수이자 뉴아메리카의 뉴웨이브를 선도하는 뉴아이콘으로 승승장구했다.     

(출처: ABC News)

네오콘은 미국에만 그쳤지만, 네트콘 대회는 미국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다. 2020년에는 로마에서, 2022년에는 브뤼셀에서, 2023년에는 런던에서 개최되는 등 대서양을 지중해로 삼아 유럽과 미국에서 동시다발적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만 탈자유주의 국가로 전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유럽을 포함한 서방문명 전체를 탈자유주의 세계질서로 반전시키려는 것이다. 이들과 뜻을 함께 하고 있는 유럽의 주요 정치인으로는 이탈리아의 멜로니 총리,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 폴란드의 모라비에츠키 전 총리를 열거한다. 이들은 공히 UN와 EU, 세계무역기구와 국제사법기구 등 자국에서 중요한 권한을 빼앗아 가거나,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국제기구의 관료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하나같이 ‘유럽을 다시 성스럽게’, 종교에 기초한 규칙과 질서, 전통적 가치를 옹호한다. 18세기 후반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혁명이 긴밀히 연동되어 대서양을 계몽의 바다로 만들어 가면서 유럽은 미국에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했다. 21세기 전반 북미와 서구의 탈자유주의 동시 혁명에는 미국이 유럽에 ‘성모 마리아상’을 선사하는 것이 아닐까 상상력을 지피는 것이다

가장 놀라운 대목은 이들이 푸틴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호의적이라는 점이다. 터커 칼슨은 직접 푸틴을 찾아가 1:1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키는 쾌거를 선보였다. 나아가 푸틴의 이데올로그라고 평가받았던 알렉산드르 두긴과의 인터뷰도 성공리에 진행했다. 푸틴이야말로 21세기 내내 국외의 글로벌리스트와 국내의 리버럴리스트와 맞서 싸워서 러시아의 주권을 수호해낸 주군이었던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2019년에야 시작되었던 네트콘 운동을 1999년부터 펼쳐온 태두였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또 외교적으로도 국가보수주의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헝가리나 폴란드 등 구 소련권에 속해 있었던 동유럽만이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독일에서도 푸틴과 흡사한 탈자유주의 노선을 표방하는 정치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지세 또한 가파르게 오르는 중이다. CNN부터 BBC까지, 뉴욕타임즈부터 이코노미스트까지 지난 세기를 지배해왔던 영미권의 레거시 미디어만 살펴서는 이러한 동향을 제대로 살필 수가 없다. 그들의 선전선동과는 다르게 탈자유주의 세계질서로의 대반전은 멈춤 없이 중단 없이 유장하게 펼쳐지고 있던 것이다.


(출처: BBC News)

뉴밀레니엄, 뉴노멀의 뉴웨이브를 파악하고자 한다면 역시나 뉴미디어와 소셜미디어가 유용하다. 이 책에서 거론되고 있는 인물들의 X를 팔로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제는 헝가리의 정치인이나 폴란드 지식인의 계정도 AI의 실시간 번역 시스템을 통해 막힘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시대이다. 조금 더 깊은 지식을 추구한다면 드닌이 주도적으로 개설한 postliberalorder.com 사이트를 방문하여 칼럼을 읽거나 팟캐스트 방송을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20세기와는 사뭇 다른 백년을, 또 하나의 PLO(Post Liberal Order)가 전개하는 새로운 문명해방운동의 기운을 찬찬히 음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라디오 방송도 시작되지 않았던 1917년, 러시아혁명의 성공 이래 공산주의 진영이 형성되기 까지는 30년 남짓 소요되었다. 작금의 디지털 환경이라면 3년 안에 여러 정권을 차례차례 접수해 가는 도미노 이론의 세계동시혁명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트럼프 2기 4년이 그 결정적인 시기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3. 탈계몽주의

칼슨보다 먼저 두긴을 만난 이도 있다. 스티븐 배넌이다. 2016년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을 총괄한 장본인이자 초기 행정부의 수석 전략가였던 바로 그 배넌이다. 배넌은 진작부터 두긴의 책들을 애독해왔다. 미국의 복음주의 세력들을 트럼프의 친위세력으로 만드는데도 두긴의 발상이 요긴하게 참조가 되었다. 미국에서 탈자유주의를 선포하는 책들이 우후죽순 쏟아진 2018년, 배넌은 더 대담한 행보를 보인다. 은밀하게 두긴과 접촉하여 직접 얼굴을 맞댄 것이다. 장소는 과연 뉴욕도 모스크바도 아닌 바, 2천년 기독교의 역사가 새겨져 있는 로마였다. 로마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고급 호텔의 스위트 룸에서 푸틴의 브레인과 트럼프의 책사가 조우한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 백년 동서냉전의 이념대결을 넘어서는 회합이었다. 동로마와 서로마, 교회의 대분열 이래 천년 만의 재회를 상징하는 자리였다. 그들은 500년 계몽과 이성의 후예들이 아니라, 2000년 종교와 영성의 계승자들이었다. 세 번째 천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경건하고 겸허하게 준비하고 있는 신전통주의자들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협력하여, 서로마와 동로마가 합작하여 계몽령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유럽을 구제하고 구원하고자 한다. 하루 종일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눈 그들은 서로를 ‘형제’라고 불렀다.   

(출처: BBC News)

피터 틸처럼 스티븐 배넌도 1969년생이다. 그도 틸만큼이나 68선배들을 싫어한다. 대안적 영성을 추구한답시고 설치던 그들의 68혁명이 종교를 오해하고 오독했다고 여긴다. 배넌 또한 해병대에서 근무한 상남자였다. 청년 시절 그는 미 해군을 따라 세계 전역을 돌아다니며 각지의 고대 경전들을 수집하고 섭렵했다. <바가바드 기타> 등 힌두교 텍스트들도 탐독했다. 전통 경전의 대개는 보수적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전사들의 텍스트였기 때문이다. 엄격한 군율을 찬양하는 상무정신으로 차고 넘쳐다. 히피 선배들이 말하는 불교와 힌두교는 철저하게 미국화된 것이다. 말랑말랑한 맥도날드화 된 동양의 정신이었다. 자유주의적 가치로 억지로 우겨 넣은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타락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쿨하고 힙한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로 탈바꿈한 것이야 말로 영성의 세계를 왜곡하는 것이었다. 68세대의 뉴에이지를 끔찍하다고 여겼다.      

다만 오래된 종교적 가르침에 귀의해야 한다는 점은 십분 수긍했다. 자유주의든 사회주의든 난잡하고 난삽한 현대적인 텍스트는 아무리 읽어본 들 더 나은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영혼의 타는 목마름을 해갈해주지는 못했다. 결국 모든 문명과 정치와 제도는 영성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스무 살이 되던 해 공산주의는 무너졌다. 그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는 세계금융위기가 한창이었다. 이제 공산주의에 이어 자유주의도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보았다. 소련이 무너지고 동방정교에 기초한 러시아가 부활한 것처럼, 미국 또한 기독교 가치에 귀의하는 미래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배넌 또한 가톨릭 신자이다. 새로운 영적 혁명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는 듯하였다. 좌파에 맞서려는 것이 아니다. 좌우파 모두 세속화 세력이기 때문이다. 500년을 지속해온 좌우합작의 세속적 기득권에 맞서는 영혼의 혁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즉 보수 버전의 68혁명이, 미국판 문화대혁명이 요청되었다. 수석전략가로서 조언했던 트럼프는 어디까지나 탈계몽주의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러한 신조를 밝히는 배넌이 두긴은 무척이나 비범하다고 여겼다. 두긴이 생각하기에 미국은 황무지, 황폐한 땅이었다. 500년 계몽주의의 유산이 빚어낸 근대성의 암흑이라고 여겼다. 그곳에서는 영성과 신성, 역사와 국토, 거대한 뿌리에 대한 일체감이라고는 일절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미국인이 된다는 것은 전통이 없다는 뜻이다. 혹은 전통을 버린다는 의미이다. 그 뜨내기들이 잡거하는 잡탕 동네가 미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근본 없는 나라에서 스티븐 배넌 같은 존재가 떡하니 등장하여 자신을 찾아오기까지 한 것이다. 경탄스러웠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물질주의의 폐허에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서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두긴은 배넌의 권력 획득을 자유주의 세속 문명을 전복해낼 대반란의 서막으로 여겼다. 고대의 현자들이 예견했으며 20세기 지하의 영성주의자들이 예언했던 바로 그 대반전이 시작된 것이다. 고로 배넌은 일개 개인이 아니었다. 바로 최후의 심판, 종말론의 징조인 것이다. 자유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등 인간의 영적 하향 평준화를 초래했던 말세를 떨쳐내고 마침내 새로운 전통주의자들의 신령스러운 시대가 대서양 양안에서 개막되는 것만 같았다. 푸틴으로 인하여 러시아가 다시 위대해진 것처럼, 미국도 다시 위대해질지 몰았다. 다만 과연 그 주인공이 과연 트럼프일지는 심히 의구심을 가졌을 법하다.  

그러나 세계질서를 영성적으로 재정렬하고자 하는 배넌과 두긴의 지정학적 전망은 한가지 점에서 크게 엇갈렸다. 유럽의 진로만큼은 동일했다. 유럽의 행방을 두고는 미국과 러시아는 동맹이 될 수 있었다. 동일한 영혼과 가치관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서방의 핵심은 공산주의나 자유주의가 아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이다. 그래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신교와 구교도 함께할 수 있다. 전 세계를 획일화 하려는 글로벌리즘과 전 세계인을 동질화 하려는 리버럴리즘에 맞서서 국가주의와 민중주의, 전통주의를 향해서 미국-러시아-유럽이 함께 나아갈 수 있다. 21세기 지정학적 갈등의 핵심은 영성과 이성의 투쟁, 영혼을 둘러싼 경쟁이기 때문이다. 서방은 정신을 개벽함으로써 하나님 아래 다시 하나로 합류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복병이다. 두 사람은 중국을 대하는 관점에서 이견을 노출했다. 배넌은 중국이야말로 세계주의와 물질주의의 정수라고 했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중국제조 2025 등은 모두 물질개벽을 추구하는 정책들이다. 마치 대영제국의 동인도회사처럼 아시아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아메리카로 물질의 네트워크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세계적으로 연결하려 한다. 이제는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새로운 글로벌리즘에 맞서서 유럽도 아시아도 아메리카도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세계화와 팽창주의에 떨쳐 일어나야 한다. 민족주의로 저항하며 문화를 수호하고 국가주의로 주권을 보호해야만 한다. 미국과 러시아가 협동하고 유럽까지 연대하여 이루어야 할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바로 중국의 봉쇄와 억제인 것이다. 인도는 힌두문명으로, 터키도 이슬람문명으로 귀의하고 있지만 오로지 중국만이 공산당이 지배하는 최후의 세속화 세력으로 건재하기 때문이다

배넌은 반중(反中)이야말로 미러합작의 근간이라고 보았으나, 두긴은 성급한 주장이라고 여겼다. 트럼프 정권의 지속을 장담할 수도 없을 뿐더러, 과연 트럼프 이후에도 미국이 탈세속화와 재영성화의 물결에 동참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오히려 탈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건설하는데 중국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중러합작이야말로 구아메리카로부터 벗어난 신유라시아 시대의 중추였던 것이다. 중국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신중국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두긴과 배넌은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물론 이 또한 ‘미국판 푸틴’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밴스가 등장하기 이전의 일이다.

2025년 2월 14일, JD는 뮌헨안보회의에서 연설한다. “유럽에 관한 저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러시아나 중국, 또는 다른 어떤 외부 세력이 아닙니다. 저는 유럽 내부에서 오는 위협을 가장 우려합니다.”라고 발언하여 유럽 국가 정상들을 아연실색케 하였다. 리버럴한 개별 정부들과 글로벌한 EU 모두를 싸잡아 비판한 것이다. 유럽 인민들은 미국 인민들처럼 영성적 계급혁명을 원하고 있건만, 정작 유럽의 세속적 자유주의 엘리트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며 유럽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면전에서 성토한 것이다.

(출처: The National Interest)

시간을 거슬러 2007년 2월 10일, 또 하나의 역사적인 연설이 뮌헨 안보회에서 있었다. 주인공은 푸틴이었다.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는 해체될 것이며, NATO 주도의 안보질서는 유럽을 더욱 위태롭게 할 것이며, 21세기의 세계는 중국, 러시아, 인도 등 브릭스와 글로벌 사우스가 약진하는 다극체제로 전환될 수밖에 없음을 ‘예언’하는 연설이었다. 푸틴은 그 후 20년 간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조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자로 군림했다. 앞으로 20년은 JD 밴스의 몫이 될지도 모른다. 알면 알수록 내 눈에는 밴스가 트럼프보다는 푸틴의 후계자로 보이는 까닭이다.   

실제로 트럼프 정권 2기는 유럽의 세속적이고 세계주의적인 자유주의 정권을 전복하고 해체하는 일련의 작업을 전개  중이다. 젤렌스키와의 정상회담에서 대놓고 면박을 주는 등 부통령 밴스가 외교무대에서 활약한다면, 소통령 머스크는 X를 통하여 영국과 독일, 슬라바키아 등의 선거에 개입하여 레짐체인지를 획책한다. 알렉스 카프는 유럽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팔런티어의 거버넌스 프로그램을 군부와 행정부에 공급하여 패러다임 체인지를 완성하려고 한다. 북미와 서구의 10억 빅데이터로 14억 중국과의 기술패권경쟁에서 승리하는 디지털 십자군을 자처하는 것이다. 마치 20세기 후반 조지 소로스가 유럽 각지에 교육 기관을 세우고 소련에 대적하는 신자유주의를 확산시켜갔던 것처럼, 트럼프 정권 아래 4인방, 틸과 머스크와 카프와 밴스는 역할을 분담하여 탈자유주의적 유럽으로의 개조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문명적으로 대통합된 대서방세계를 재건하려고 한다. ‘MEGA-WEST’이자 ‘META-WEST’로서 북미와 서구를 연합한 새로운 로마제국, 디지털 로마제국을 꿈꾸는 것이다. 디지털 로마제국의 핵심 교리는 응당 수학과 신학, 테크놀로지와 띠올로지일 것이다. 신학으로서 메가 웨스트를 재건하고, 수학으로서 메타 웨스트를 창건하는 것이다. 기왕의 인문사회과학은 전면적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인문학은 주로 농업문명의 텍스트를 다룬다. 사회과학은 대개 산업문명의 매뉴얼이다. 이 기술신학자들, 테크노-띠올리지 세력들이 유독 대학과 언론에 적대적인 까닭이다. 하버드대학부터 뉴욕타임즈까지 언론과 대학이야말로 인쇄술 혁명이 촉발한 올드 웨스트, 자유주의 문명의 보루였기 때문이다. 재차 유럽의 중심은 브뤼셀이 아니라 바티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세속적 세계주의자들이 결집하는 다보스 회의가 아니라, 영성적 전통주의자들이 회합하는 목회가 더욱 번창해야 한다.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 온 누리를 더욱 성스럽게, EU 통합을 노래하는 유로비전의 팝송이 아니라, 성당의 종소리와 그레고리안 찬송가와 CCM(Christian adult contemporary) 음악이 더더욱 높이 울려 퍼져야 한다.

물론 아슬아슬한 지점이 없지 않다. 트럼프 1.0와 트럼프 2.0의 차이이기도 하고, DOGE와 MAGA의 차이이기도 하다. 이미 MAGA 1.0, 레드 마가의 대표선수 스티브 배넌과 MAGA 2.0, 다크 마가의 상징인 일론 머스크는 이민정책을 두고 공개적으로 충돌한 바 있다. 초가속적 기술혁명을 추구하는 테크 세력들과 초월적인 영성혁명을 추진하는 전통세력들 간의 주도권 다툼이 내연하고 있는 것이다. MAGA 2.0 아래 연합하고 있는 TECH파와 TRAD파의 이합집산이 트럼프 2기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이들이 수학으로 지상의 나라를 경영하고, 신학으로 천상의 나라로 상승하는 메가-아메리카와 메타-아메리카를 완성해 낸다면 ‘제2의 건국의 아버지들’로 길이길이 칭송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분과 내란과 내전을 촉발하여 실패를 자초한고 한다면 대당제국을 붕괴시킨 황소의 난(黃巢之亂)처럼 ‘페이팔 마피아의 난’으로 기록될 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다지 길지도 않다. 내년 중간선거는 11월로 예정되어 있다. 민주주의 아래 유권자들은 인내심이 턱없이 부족하다. 장기적 체제전환을 기다리지 못하고, 단기적 처방에 중독되어 있다. 미국의 건국 250주년 기념일은 더 이르다. 2026년 7월 4일로 앞으로 1년 남짓 남은 것이다. 올드 아메리카를 사수하려는 세력과 뉴 아메리카를 창건하려는 세력 간 노선 투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다. 최상의 경우에는 지상의 패권 지속은 물론이요 천상공간과 가상공간도 장악함으로써 디지털 창세기를 주도적으로 개창하는 개벽국가의 수장이 될 수 있다. 반면 최악의 경우에는 사분오열되어 미합중국 자체가 해체될 수도 있다. 계몽파와 기술파와 전통파의 삼파전이자, 데모크라시와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와 테오크라시(Theocracy)의 삼국지이기도 하다.

마지막 글에서는 이 미국판 삼국지의 가상 시나리오를 셋으로 나누어 전망해 보고자 한다. 과학과 신학을 버무린 SF 버전으로 Techno-Theology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려는 것이다. 나로서는 천상(Space X)과 가상(X.com)을 지상과 링크하고자 하는 우주적AI, xAI의 그록(Grok)과 대화하며 써보는 첫 번째 글이 되기도 할 것이다. 다가오는 뉴아메리카의 미래사는, 인류의 미래의 역사는 신과 인간과 AI가 더불어 함께 생성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최후의 심판, 산산이 조각나 부서지는 인류세의 아포칼립시스가 펼쳐질 수도 있고, 경천과 경인과 경물이 조화롭게 삼위일체를 이루는 코스모테크닉스(Cosmotechnics)의 노바세가 눈이 부시게 열릴 수도 있다.








이병한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개벽학은 동학 창도 이래, 이 땅의 자각적 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뜻이다. 동녘의 오래된 유학과 서편의 새로운 서학이 합류한 문명의 융합을 거대한 뿌리로 삼는다. 그러함에도 한국학, 한 나라에 한정되지 않는다. 북구부터 남미까지, 인도양부터 시베리아까지, 지구적 규모로 정보를 수집하고, 지구적 단위로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특히 인간이 창조한 인공의 세계, 인공지구와 인공생명과 인공지능의 도래를 주시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간의 공진화, 생명과 기술과 의식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