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4년 3월 29일
46. 시진핑은 중국의 윤석열일까?
- 습자習子의 미래
(사진 출처: TIME)
1~2년전부터 아내와 함께 아침밥을 먹으면서 일주일에 한두번씩 중국인들의 “땡전뉴스”인 CCTV의 신문연파新聞聯播를 모니터링하는 습관이 있다. 신문연파는 매일 저녁 7시부터 중국의 모든 TV채널에서 30분이상 송출되는데 첫 뉴스는 항상 시진핑 주석의 그날 하루 동정과 발언에 대한 소식 전달과 해설이다.
마침 3월초에 진행됐던 양회兩會의 인민대표자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 등이 입장을 하며 회의의 시작을 알리는 의례가 방송되는데 아내가 얼굴을 붉힌다. “이거 우리 학교다닐 때, 운동회하면 틀어 주는 음악하고 비슷해”. 거의 삼천명에 달하는 참석자 전원이 대회당에서 쿵짝짝 박수를 치면서 듣는 이 음악이 지식인인 아내가 보기에도 너무 “구린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데 어쩐지 작고한 송해 MC가 힘찬 목소리로 시작을 알리던 <전국 노래 자랑>의 오프닝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림1: 인민대표자회의 개막을 알리며 주석단이 입장할 때 참가자들이 ‘쿵짝짝’ 기립 박수를 치고 있다.
이런 “연출된 상황” 혹은 의례에서 누군가 정치 지도자 혹은 연사를 향해서 돌출행동을 취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최근 몇달간 우리에게 익숙해진 “입틀막”이 시전될 것이다. 전북도 행사와 KAIST 졸업식장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한국인들이 특히 분노를 느낀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중국이나 북한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비서구지역에서는 드물게 선취한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 정치체제”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방식으로 “대명천지大明天地”에 벌어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조금 익숙해진 탓인지, 사실 아내가 걱정하는 것처럼 “운동회 쿵짝짝”을 보면서 눈쌀을 찌푸리거나 비웃음을 날리지 않았다. 중국 사회의 정치적 의례와 미디어 환경이라는 나름의 “게임의 룰”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서는 더이상 이런 장면들이 “기괴하게” 혹은 그로테스크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도 국민의 힘 비대위원장인 한동훈씨의 특이한 어투와 행동을 비웃는 사람들이 많은데 철학자 박구용이 매우 정확하게 풀이해줬다. “국민의 힘의 핵심지지자들은 저런 행동을 좋아하고 또 멋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국민의 힘을 반대하거나 중도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겁니다.”
신문연파의 내용들은 정부의 정책에 대한 선전과 그 성과에 대한 일방적인 전달이 많은 데 그래서 재난이나 해외소식을 제외하고는 부정적인 뉴스가 등장하는 경우는 없다. “중국 사람들은 저걸 다 정말이라고 믿는단 말이야?”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지자, 아내가 교정해줬다.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사실의 한쪽 면만을 얘기해 주는 것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후 내가 신문연파의 특성을 더 정확하게 이해한 것은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에리트레아Eritrea 대통령 대표단의 방중과 시진핑을 비롯한 정부 고위 인사들과의 회담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한참 보고 나서였다. 나와 아내는 에리트레아라는 나라가 도대체 어느 구석에 붙어있을까 궁금했다. 나중에 나의 “최애 커피”생산지인 에티오피아의 인접 해안국가가 이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에티오피아는 역사적 이유때문에 내륙국가가 돼버렸고, 가장 효율적인 운송로로 커피를 수출하려면 무조건 에리트레아를 통과해야 하는데, 당연히 상당한 항구 사용료를 지불해야 된다 ). 신문연파는 중국 국민들이 알고 싶어하는 내용이 아니라, 중국의 당-국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전하고 싶은 이미지를 일방적으로 발신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한번 더 확인했다 (소위 제3세계 국가의 원수와 그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할 때, 신문연파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보도하는데, 과거의 천하-조공체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표면적으로는 중국식 PC를 적용하여 철저한 국가간 평등 프로토콜을 유지하지만 어쨌든 중국 국민들에게는 나라의 크기나 규모에 상관없이 중국을 찾아 협력을 구하는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이 매우 많다는 이미지를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 그렇게 “중국의 보통 사람처럼” 생각하고 신문연파를 다시 보니, 내용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 신문연파는 특히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눈여겨 본다고 한다. 중국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서 자기 사업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 연파의 또다른 특성은 연출된 화면과 인터뷰 대상자들의 잘 준비된 멘트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의 명료함과 단순성일 것이다. 특히 정부 정책을 설명할 때, 다양한 방식을 빌어 쉽게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초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렇게 정리해 보자. 신문연파는 학력, 연령, 지역 등 시청자의 배경에 상관없이 중국 국민의 70~90% 이상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부가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이다. 과거 한국 국민들이 극장에서 보던 “대한늬우스”를 떠올려도 되겠다. 평균 이상의 지적 능력을 갖춘 중국 국민들은 그 사실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 만일 굳이 정부가 이야기하는 내용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거나 정부의 주장에 반대하는 의견을 찾아보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정보 채널을 찾아봐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설연휴 기간 방송된 신문연파에서는 평어근인平语近人이라는 프로그램의 시즌3를 방송한다고 선전했다. 2018년, 2021년의 시즌1, 2에 이어서 세번째 시즌이라고 한다. 시진핑习近平이 인용한 고전 문구와 정책방향을 연결해서 해설해 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나는 궁금해서 과거 방송됐던 시즌2의 한 편을 살짝 들여다봤다. 고전을 인용해서 재해석한 마오쩌둥의 두 문장과 이백의 싯귀 한구절을 조합해서 시진핑이 발언한 내용을 당시의 정치 구호였던 ‘중국몽中國夢’을 해설하는데 사용한다. 정책 해설은 중앙당 당교黨校 교수, 고전 해설은 중앙민족대학교 교수가 맡고 있다. 중국몽 실현 사례로는 작고한 쌀박사 유엔롱핑袁隆平 원사가 등장한다. 정치 지도자들의 정책 발언을 해설해 주는 방식이 매우 고전적이라 “정치인이 세속화 돼야 하는 민주정 제도”를 받아들인 국가에서는 당연히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시진핑의 이름을 사용한 프로그램 제목은 중국내에서도 마오毛 이후에는 주석 개인의 우상화 문제 때문에 금기시되던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브랜딩’이 정치적 보수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아이돌 문화 차용인지 애매하게 보이는 측면도 있다고 한다. 아마 둘다일 것 같다. 나는 신문연파의 단골 토픽인 시진핑의 현지시찰에 동원된 현지 주민들이나 현장 직원들이 물개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올리는 걸 보면서, 청나라 건륭제乾隆의 남순南巡을 연상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는 보통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거나 길에 납작 엎드려 황제를 쳐다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현대적 재해석이다.
그림2: 마오쩌둥의 경구와 이백의 시를 인용한 시진핑의 발언을 들어 중국몽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연초 KBS가 제작한 윤석열 대통령과의 신년 대담 프로그램이나 설직전 대통령실이 공개한 일종의 플래쉬 몹 ‘뮤비’ (이때 내가 떠올렸던 것은 2018년 칭화清華대학교의 애국주의 플래쉬몹 연출이다.)를 보면서 나는 계속 다양한 형태의 기시감을 느꼈는데 그래서 윤석열과 시진핑의 공통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됐다. 사실 이런 고민은 2019년 ‘조국사태’가 벌어졌던 시점에서부터 시작됐는데, 나는 윤석열 검찰의 행태를 보면서 ‘검찰당’이라는 어휘를 떠올렸다. 조금 범위를 넓혀 소위 ‘재경부 모피아’를 포함한 엘리트 관료들의 집단과 이들과 결탁한 일부 언론인, 경제인, 정치인들의 카르텔, 그리고 이들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보수적 성향의 국민들 수천만명을 모두 고려한다면 나는 ‘검찰당’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총선을 앞둔 지금은 비유라기보다는 문자 그대로의 현실인지라 많은 언론인이나 평론가들도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2019년에 내가 느낀 기시감은 물론 당시는 국가원수가 아니라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과 시진핑의 관계가 아니라 1949년 건국이래 계속 ‘당-국가party-state’ 체제를 유지해온 중국 공산당과 한국의 ‘검찰당’의 유사점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당시 내가 느꼈던 곤혹스러움은 검찰의 정치적 의도가 너무나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왜 그 의도에 찬동할만한 보수당 지지자들뿐 아니라 중도 혹은 소위 진보세력조차 검찰의 주장에 그렇게까지 쉽게 동조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미 검찰은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여러 비칭으로 불릴만큼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있었고, 2017년 개봉작 영화 “더 킹”에서 묘사된 검찰의 모습이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라고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그 이유를 “동아시아 문화 구조”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문화 구조안에는 여러 요소들이 있겠지만 나는 특히 강력한 중앙집권형 정부를 운영하는 유가儒家관료집단과 이들이 신분을 획득하는 수단인 과거제도, 그리고 이와 밀접하게 연결돼, 이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관료후보를 재생산하는 교육제도, 그리고 이 교육제도를 통해 과거시험에 참여하는 잠재적 관료후보군인 신사士紳계급을 특정한다. 중국 대륙에서는 지금도 이 구조가 그대로 계승되어 ‘당-국가’체제, 대학입시를 포함한 각종 시험과 경쟁제도, 그리고 “체제내體制內 인사”들이라는 다소 변형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오쩌둥 시기 특히 문화대혁명이라는 단절 혹은 신분의 급격한 변동 시기를 제외하고는 그러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현재 상황에 대한 나름의 관찰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이렇게 된 이유는 오히려 추정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 70여년간 대내외적 도전에 맞서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통일 정치 공동체를 이끌면서 현대화시켜야 하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비교적 “명확한 단절”로 규정한, 대약진 운동 시기, 그리고 문화대혁명을 포함한 10여년의 기간 동안 급진적 실험을 행한 결과 수많은 비극과 부작용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이 2천년 넘게 안정되게 운영해봤던 제도를 완전히 폐기하기보다는 ‘현대화’하는데 관심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 예를 들어 대만과 같은 다른 지역의 처지를 떠올리게 됐다. 표면적으로는 식민지 시기를 거친 이후 서방세계의 권유에 의해 민주공화정을 받아들였지만, 심층에 여전히 이런 문화 구조가 작동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게 됐다. 검찰을 싫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과도한 도덕적, 정치적 권능을 부여하려는 한국 사람들의 태도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이지 고민을 하다가 내린 결론이었다.
이제 여기까지 설명했으니 원래 내 질문인 시진핑과 윤석열의 관계에 대해서 한번 답해보자. 혹은 한국 “검찰당”과 중국 공산당의 관계에 대한 답변일 수도 있다. 나는 미디어 등을 통해 드러나는 정치적 소통방식의 유사성이나 내적 문화구조의 동일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은 중국의 윤석열이 아니고, 중국의 공산당은 한국의 ‘검찰당’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집권 정당성 legitimacy이 일정 정도 내외의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의 관찰에 의하면, 여전히 보통, 혹은 대다수의 중국 사람들은 시진핑과 중국 공산당을 매우 안정적으로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보통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왜 시진핑과 중국 공산당을 “매우 안정적으로” 지지하고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보통의 중국 사람들이 크게 영향을 받고 있는 전통적 동아시아의 문화 구조를 거론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전통 동아시아 정치체제(polity)내에서 통용되는 집권 정당성을 검토해 보고 싶다. 나는 정치철학이나 법철학 등에 대해서 문외한이기 때문에 조금 단순한 방식으로 이를 설명하고자 한다. 중국의 전통적 통치체제와 최고 권력자가 그 정당성을 인정 받는 기준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법통法統’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도통道統’이다. 법통은 권력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의미하는데 동일 왕조내에서는 “적장자계승”과 같은 원칙이 대표적이다. 도통은 정치행위의 도덕적, 윤리적 정당성을 따지기 때문에, 권력기관이 아니라 유가지식인들에게 그 심판의 역할이 주어졌다. 그래서 황제가 폐위되거나 왕조가 교체되고 역성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도통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당대에 판단되거나 추후에 해석된다.
그래서 나는 중국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법통과 도통 측면에서 시진핑과 중국 공산당의 집권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기 전에 나는 한국의 정치인, 정치 평론가나 유권자들도 이런 “동아시아의 문화구조”를 여전히 의식속에 내재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하고 싶다. 최소한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의 2030세대를 제외하고는 그렇다. 이것은 내가 지난 석달간 한국의 정치 관련 보도와 유튜브 방송에 다소 과몰입하면서 느끼게 된 소감이다. 이런 과몰입은 당연히 곧 치뤄질 총선 때문인데,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정치테러 사건이었다. 나는 이 사건 자체와 이 사건이 현 정부와 집권당 그리고 레거시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방식에 대해서 엄청난 불안감과 위기 의식, 그리고 불만을 가지게 됐고 그래서 과거에는 잘 들여다보지 않던 정치 관련 유튜브 방송들을 꽤 많이 챙겨 보게 됐다.
왜 이재명 대표가 대선에 실패했고 민주당내에서조차 고립이 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들의 해설을 듣고 나서 이것은 여전히 법통과 도통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상당수 한국의 엘리트들, 특히 야당내 비토 혹은 견제 세력들에게 이재명 대표는 과거의 노무현 이상으로 “족보에 없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가 정당한 절차를 거쳐 대선 후보가 되고, 당대표가 된 것은 그의 반대세력들을 승복시키기에 불충분했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전형적인 ‘법통’에 관한 시비이다. 또, 검찰과 그의 정치적 반대세력이 집요하게 그를 공격하면서 “사법리스크”로 옭아맸던 것은 ‘도통’에 관한 시비로 볼 수 있다. 그는 부도덕한 인물이기때문에 도통을 이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사실 검찰의 일방적인 수사와 기소,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사법리스크”때문에 그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순환논리의 오류인데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를 반대한 것은 그의 ‘도통’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그는, 자신이 보여준 성과와 그가 선출된 절차의 정당성(근대적 정치제도가 보장한)에도 불구하고 법통과 도통(전통사회의 의식구조)의 문제를 들어 그를 비판하던 세력들의 핍박을 견뎌내고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 치명적 테러시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것은 물론 그의 소위 천운天運인지라 좀 더 유권자들의 전통적 의식구조에 의한 지지를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나는 한국 정치인과 정치 평론가들이 자신의 정치 행위와 판단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할 때, “인간된 도리”라는 표현(순 우리말로는 “사람답다”일 터인데 중국어에도 做人이라는 정확하게 상응하는 입말이 있다. 이 말은 “사람 구실을 한다”로 해설될 수도 있다.)을 사용하는 것을 수도 없이 들었다. 나 자신도 이런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내 행동과 선택이 근대사회가 말하는 합리적 이성(rational)이전에, 살아오면서 축적한 수많은 체험과 이에 따라 형성된 감성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레거시 미디어가 이재명 테러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사람답지 않다”고 생각돼 매우 충격을 받았다.
다시 중국의 경우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이어가자.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은 혁명을 통해 1949년 신중국을 수립한 이후 그 ‘법통’을 이어가고 있다.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는 것은 도통의 문제이다. “현대문명”사회에서 정권의 도통을 규정하고 판단하는 것은 민주주의 제도와 기본권의 존중을 포함한 다양한 “현대적 보편 윤리” 그리고 이를 규정한 헌법의 준수 여부이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은 여전히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에 대해서 표리부동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중국특색 사회주의” 혹은 “중국식 현대화”라는 표현은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니라 전통 중화문명을 계승한 중국이라는 국가가 앞으로 자신들에게 적용할 현대문명을 새롭게 규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내가 표리부동하지 않다라고 말한 이유는 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는 것과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비교 관찰과도 관련이 있다. 왕권王權 혹은 신권神權에 가까운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이 스스로를 ‘민주공화국’이라고 호칭하는 것에 비교하자면 중국이 ‘민주’를 빼고 ‘공화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실체에 부합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형식적으로 양회의 인민대표자회의人民代表會議나 정치협상회의政治協商會議라는 제도를 유지하면서 지식인들과 각계 명망가들의 조직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정책 제안을 받아들이고 있고(내가 들은 바로는 연출성과 상징성이 강한 베이징에서의 의례가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이들은 실제로 현장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매우 공들인 의견을 제출한다.), 공산당내에서도 여러 파벌들이 있어서 권력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 국민 14억중 9천만이나 되는 공산당원들의 숫자도 결코 적은 것은 아니다. 중국 공산당을 고전적인 의미의 이념 정당 혹은 엘리트 정당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대중 정당, 혹은 대중적 이념 정당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간단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최소한 이들이 각계 각층 중국 사람들의 여론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국정에 반영하는 것은 동아시아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상서尚書>의 “민유방본民惟邦本 본고방녕本固邦寧”이나 “민위방본民為邦本”(백성이 나라의 근본이고, 뿌리가 튼튼해야 나라가 안녕하다)이 드러내는 “고전적이고 수직적인” 민본주의民本主義에는 부합한다. 이와 같은 중국 당-국가의 표현과 실재의 일치는 윤석열의 경우와 비교하자면 “당대 중국 현실”에서의 도통을 인정받을 정도의 근거로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서약하고 대통령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정체불명의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집권세력의 부당한 행동에 대한 혐의나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 실행에 대해서 택도 없는 거짓말을 일삼고, 왕처럼 군림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표리부동의 극치이다.
그렇다면 이제 시진핑 개인의 문제, 즉 한국의 평론가들, 특히 최근 경제 평론가들이 제기하기 좋아하는 “시진핑 리스크”에 대해서 검토해 보자. 바꿔 말하면 시진핑은 과연 도통에 문제가 없는 지도자냐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제기된 이유는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 사회의 “자유화” 흐름이 퇴행 현상을 보였고, 권력을 주석 개인에게 집중화했고, 결국 헌법까지 개정해서 삼연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권력의 분산과 견제라는 “공화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인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비교적 최근인 2022~23년부터의 상황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2022년 중국 정부는 독성이 약화된 오미크론의 등장 이후 다른 국가들과 달리 코로나 봉쇄 정책을 일년 더 연장했고, 이 과정에서 상하이라는 국제 도시를 강압적으로 봉쇄하는 전대미문의 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로 많은 외국인들이나 자유주의적 성향을 갖는 중국의 엘리트들이 중국을 떠나는 ‘런潤’ 현상을 초래했다. 또 한가지, “공동부유 정책”을 전면에 내걸기 시작하면서 교육, e비즈니스와 게임산업, 문화산업 등에 대한 강력한 통제정책을 실시하고 대주주인 창업자들을 사업 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부동산 산업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줄이면서, 중국의 산업과 금융, 그리고 지방정부의 세수에 대한 구조조정 정책도 실행했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들은 중국이 자본주의의 근간인 사적 소유권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은 의외로 재벌들이 경영권을 자녀에게 상속하는 비율이 낮다고 한다). 그래서 영미권이 주도가 된 서방세계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자”(윤석열의 ‘그것’이 아니라 보다 정상적인 의미의)들에게 큰 반감을 초래했다. 더 중요한 것은 내외의 경제적 악재가 겹치면서 중국 경제가 상당한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중국 현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불경기 상황을 피부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대학에서 조경학을 가르치는 아내의 제자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부동산과 관계된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실직하거나 전직하는 것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그외에도 중국 정부가 손을 본 업종 종사자들 중에 특히 과거 2~3년간 실직자가 크게 늘었다. 오랜 봉쇄기간을 견디지 못해 업장을 폐쇄한 영세 기업의 사업가들이나 실직한 중년의 간부사원들이 중국판 우버인 디디택시 기사로 나서거나 보험판매업을 위주로 한 금융자문 컨설턴트로 전업한 경우도 주위에서 많이 목격했다. 중국과 홍콩의 증시도 상황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사실 정말로 중국에 대해서 화를 내고 싶은 한국 사람들은 이념적 자유주의자라기보다는 투자자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쩌면 실제로 중국 관련 펀드에 투자해서 크게 손해를 본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본 시장을 가라앉게 만든 중국 정부의 정책 기조가 못마땅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나는 이와 관련하여 최근 다수의 경제 관련 프로그램들을 살펴봤다. 중국을 ‘적’으로 명시한 미국을 제외하고 한국의 유튜브 방송뿐 아니라, 독일, 싱가폴, 알자지라AlJazeera, 그리고 중국 내부의 경제전문가들이 어떻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지 비교적 꼼꼼히 들어봤다. 한국의 경제 관련 프로그램들은 공통적으로 중국 경제 전문가들에게 “시진핑 리스크”에 대한 의견을 요구했다 혹은 “강요했다”. 이러한 흐름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시진핑의 삼연임 개헌 이후, 한국 여론은 “중국 전문가”들에게 시진핑이 독재자인지 아닌지를 묻는 방식으로 그들의 사상검증을 하고 있다. 사실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나 자신의 답변이기도 하다. 이 글의 도입부에 설명한 것처럼, 중국의 언론 상황만을 놓고 보자면 분명히 윤석열과 ‘검찰당’ 집권하의 한국의 상황과 중국의 상황은 유사성이 없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제 프로그램과 중국의 내외 상황을 검토해 본 후, 내가 내린 결론은 “잘 모르겠다”이다. 이유는 크게 세가지이다. 첫째, 중국의 정치 권력이 궁극적으로 민간 자본 혹은 상인들보다 우위의 권력을 점해온 것은 중국 전통시대 2천년 역사 기간 동안 일관된 그들 체제의 구조적 특성이었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도입한 이후에도 그 특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국가자본주의”를 선호하는 것은 결코 변칙적이거나 이상한 모습이 아니다.
둘째, 위에서 언급된 여러가지 경제 정책의 변화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민의”를 수렴한 것에 가까울지언정 그 반대의 독단적 결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다수 군중廣大群眾”의 의견을 중시하는 “중국식 포퓰리즘”에 가까울 수도 있다 (글의 도입부에 묘사한 것처럼 아내가 양회 관련 뉴스를 보면서 스스로를 양회 참석자와 구분해서 ‘군중’이라고 지칭하는 표현을 들었다. 나는 ‘군중’을 ‘민중’과 같은 추상적인 표현으로만 이해했는데, 중국에서는 정치 엘리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군중이라고 지칭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대표적인 것이 “사교육 사업에 대한 탄압”이다. 중국 사회는 개혁개방 이후 경제 성장의 과실을 누리는 과정에서 다양한 특권세력들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면서 혁명이전과 같이 계급이 고착화되는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계급 고착화 현상중에 가장 중요한 지점이 바로 현대판 “과거 제도”인 대학입시를 통한 명문대학 진학열과 관계가 있다.
여기서 똑같이 과거제도를 시행했지만, 청나라와 조선의 경우에 차이와 공통점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고싶다. ‘차이’는 중국의 신사士紳계급과 조선의 양반兩班계급 사이의 다른 점이다. 중국은 명청시기를 거치면서 제도적인 계급인 세습귀족이 사라지게 된다. 즉, 소수의 천민을 제외한 농민 남성들은 누구나 과거제도에 응시할 수 있고, 그 가문들은 재산이 있으면 자기 족보를 쓰거나 조상을 기리며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지을 수 있었다. 만일 과거에 합격해서 사대부 관료가 될 수 있다면, 그들은 명예와 권력, 그리고 법적인 특권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자손에게 그 특권을 대물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중국의 부유한 상인들은 위의 첫째 이유에서 언급한대로 중국의 정치권력이 제약하는 자본의 무한 축적을 포기하고 대신 자신의 자식들에게 관료 사대부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사대부의 교양을 쌓고,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것을 도와서 물질적 자본대신, 신분자본을 세습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분 자본 세습은 과거 시험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이권 조직의 확대와 결속을 위해서 단순히 직계 자손이 아니라, 가문 차원에서 이뤄졌다. 경우에 따라서 다른 혈통의 사람을 입적시켜서 자기 카르텔의 신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서 이들은 중국에서는 종족宗族이라 불리는 독특한 혈통 기반의 확대 공동체를 만들게 된다. 종족의 공유재산이 체계적으로 관리됐고, 이 종족은 상공인 업종 협회인 길드(行會), 동네 지역 주민들과 함께 경제적 이해관계와 종교적 신앙 (토착 민간 신앙)을 결합한 복합적인 문화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이들은 또 시진市鎮이라 불리는 장터 읍내 지역에 몰려 살면서 초보적인 도시의 주거 형태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원래 지주나 부유한 농민에 가까왔던 신사와 부유한 상인이나 장인들은 공동의 ‘열린’ 계급을 형성하게 된다.
조선이 오로지 양반의 적자에게만 과거에 응시할 권리를 부여해서 철저한 귀족 계급 사회를 유지했던 것과 비교하자면 상당한 진보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중화왕조 문명 중심지역의 농업과 상업이 크게 발전하여 귀족뿐 아니라 평민들도 일정하게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이뤄진 일이다. 또, 생활세계와 유리된 형이상학적 성격이 과도했던 성리학이 실천을 중시하는 양명학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사상적 진보와도 연관이 있다. 이 모든 변화는 원인과 결과가 따로 없이 상호 영향을 주면서 동시적으로 진행됐다. 문명 중심과의 교류에 지리적 한계가 있고, 잉여 농업 생산량이 제한됐고, 상업의 발전에 한계가 명확했던 환경적 특성상, 조선의 상대적 후진성은 민족성의 우열과는 상관이 없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청나라 사회의 제도화된 진보성은 실제적으로는 신분과 계급 재생산의 구조적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게 된다. 단순히 부패나 입시 부정 등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적 구조의 한계 때문이었다. 과거 합격자는 대부분 소수의 유력한 종족에 의해서 독점됐고 공동체로서의 사대부 가문이 대를 이어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른바 경화세족京華世族의 합격자 집중 문제가 심각해져서 청의 황제들이 일종의 역차별 과거 정책을 실행할 지경에 이르렀다. 조선의 양반 집단에서도 경화세족이 중앙권력을 독점하게 된 경위와 비슷하다.
놀랍게도 당대 중국에서 이러한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 션전 등의 일선 도시를 중심으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부터 명문 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한 사교육 열풍이 극심해졌고, 특히 이들 중 명문 고등학교 출신들이 중국 최고 학부의 정점에 서있는 베이징 대학과 칭화대학을 비롯한 유수의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바로 경제적으로는 중상층 이상이고 고학력 전문직 부모를 둔 가정 출신인 비율이 매우 높다. 이들은 또, 미국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명문대학에 바로 진학해서 나중에 금융, 하이테크 등 골든 컬러 전문직 직장을 얻는 경우도 많다. 중국의 엘리트들이 중국 내부뿐 아니라 글로벌 엘리트 집단의 계급에 편입하고 이를 대물림할 방법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한 대만 출신 인류학자가 베이징 명문 고등학교의 사례를 수년간 추적 연구한 끝에 <공부의 신 學神 Study Gods>이라는 우리에게도 어쩐지 익숙한 제목의 책을 2022년에 출간했다. 몇년전 역시 비슷한 사회적 상황을 묘사해서 크게 성공한 한국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특히 상하이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호평을 얻었던 것과도 무관한 현상이 아니다.
조금 더 옆길로 새어 보자면, 사실 조국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가 앞부분에서 설명했던 “동아시아의 문화적 구조”문제의 또다른 측면을 들춰볼 수 밖에 없다. 검찰의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호응했던 또 다른 이유는 꼭 검찰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기 보다는 이런 구조적 모순에 대한 분노를 조국 개인과 그 일가족에게 강렬하게 투사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좌파와 정치적 중도층들의 민주당에 대한 반대로 이어지기도 했다. 문제의 발단이 된 학생종합부 전형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됐고 이에 따른 수시입학자 수의 대폭 확대도 함께 이뤄졌기 때문에 개인 조국은 몰라도 어쩌면 민주당은 완전히 억울하다고만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이번 총선의 가장 큰 프레임은 물론 ‘정권심판론’이고 “한동훈 vs 조국”의 대결 구도는 “검찰 가해자와 피해자”, “현정부와 전정부”를 상징하지만 그 아래 “강남우파 vs 강남좌파”라는 숨은 그림이 놓인 것도 사실이다. 백낙청 선생이 촛불2기 정부의 주역은 이재명이고 조국은 조연이다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고 있고, 유시민 작가도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의 스핀오프 정당이라고 정리해줬지만, 만일 조국 대표가 차차기를 노리고 싶다면, 자신이 상징하게 된 ‘강남좌파’라는 “계급적 모순”을 해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현상은 중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아내는 도시농업과 커뮤니티 가든, 커뮤니티 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시민 참여 워크샵을 조직하는데, 자원활동이나 과외활동의 점수를 챙겨가기 위해 자녀들 대신 대리 출석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 조국 일가의 판례로 보자면 분명히 “학교의 입시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일들이 이곳 중국에서도 공공연히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원래 미국의 입시사정관 제도를 변형해서 만든 학생종합부 전형은 학업성적과 시험점수 외에 학생의 전인적 측면을 보자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도입됐지만 동아시아에서 왜곡된 형태로 실행되고 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셈인데, 이것은 문화적 토양과 정치 경제 구조가 다른 사회에 함부로 외부의 제도를 이식할 수 없다는 좋은 사례가 된다.
이번 사교육 규제의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기업은 나스닥에 상장돼 있고 그 입지전적 신화가 영화로도 제작됐던 신동방新東方재벌인데, 이 기업의 핵심 사업은 바로 어학교육, 미국대학 입시 컨설팅을 비롯한 유학원 운영이었다. 나는 수 년전 상하이에 거주할 때, 쉐어하우스에 일 년 정도 거주한 적이 있었는데 같은 쉐어하우스 메이트 중에는 이런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도 있었고, 전문적으로 SAT 대리 시험을 쳐주는 중국 청년도 있었다. 이 중국 청년은 거의 매달 해외로 출장을 가서 의뢰인의 자녀 대신 SAT 시험을 치고 왔는데, 당연히 거액의 보수를 챙겼다. 이 청년의 장래 희망은 당시 중국의 1선 도시를 중심으로 붐이 일기 시작하던 스탠드업 코미디언(脱口秀 演員)이 되는 것이었는데, 그는 중국어가 아니라 영어로 연기를 해서 미국으로 진출하고 싶어했다. 중국 정부 사교육 대책의 성공 가능성이나 그 절차적 민주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그것이 도통에 어긋나는 행위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정책의 경우에도 비슷한 설명들이 가능하다. 나는 상하이 봉쇄 사건에 대해서도 작년에 출간된 졸저 <차이나 리터러시>를 통해 내가 추정하는 원인을 설명한 바 있다.
그림3 한국에서는 넷플릭스 드라마 <Beef>로 널리 알려진 화교 미국인 배우 알리 웡 Ali WONG은 원래 유명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중국에서 2017년경 상하이를 비롯한 일선도시에 사는 힙스터 청년들을 중심으로 스탠드업 코미디붐이 크게 일기 시작했을 때, 알리 웡이나 지미 오 양Jimmy O. YANG, 로니 청 Ronny CHIENG과 같은 화교 코미디언들이 롤 모델이 됐다. 지미 오 양은 홍콩에서 태어난 1.5세대이고 조 웡Joe WONG과 같이 대륙 출신으로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코미디언이 된 경우도 있다(그는 조선족 출신이기도 하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크게 유행하던 스탠드업 코미디는 풍자 대상으로 금기를 설정하지 않는 자유분방함과 직설적인 표현 때문에 보수적인 중국의 주류 전통 문화와 크게 상충한다. 2023년 인민해방군과 시주석을 간접적으로 풍자한 베이징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하우스(李昊石)의 연기가 문제가 돼, 중국 내의 스탠드업 코미디신은 정부와 주류 사회의 탄압을 받게 된다. 이러한 미국식 풍자 문화가 상하이 리버럴 엘리트들의 문화적 취향과 유학파 학력자본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우스 사건”은 단순히 중국 위정자들의 심기를 건드려서 생긴 문제라기보다는 중국의 자유주의 엘리트들이 현대 중국의 애국주의 서사에 호응하고 당-국가와 시진핑을 지지하는 중국 주류사회와 대중들의 반감을 사게된 결과로 보인다. 그러니까 한국의 중도층과 서민 계층 출신 국내파 엘리트들이 조국사태를 계기로 ‘강남좌파’에 대해서 내비친 격렬한 반감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더 큰 그림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한다. 이것은 부동산 정책뿐 아니라 더 큰 의미의 미중패권 경쟁과 관련이 있다. 시진핑은 중국을 미국을 능가하는 패권 국가로 만들기 위해서 독재자가 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검토해 보기위한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이나 위안화 국제화 전략, 대만침공 의도 등을 부각하는 것은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는 주장이다. 시진핑이라는 일 개인이 극도로 권력지향적인 인물로서 “영웅주의적 망상에 빠진 빌런”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 주장의 핵심적인 전제이다.
우선 부동산 정책부터 들여다 보자. 중국이 부동산, 건설, 그리고 이와 깊이 연계된 금융, 지방 정부의 세수를 구조 개혁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도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중국의 산업구조 재편, 특히 제조업이나 정보 산업의 고도화, 그리고 3차 산업의 발전에 대한 요구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대두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경제도 같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왔고, 민주당이 매번 선거에서 보수당에 패배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같은 문제에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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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정당한 경제 구조개혁을 “시진핑 리스크”라고 부르는 주장은 적절치 않다는 것에 대한 답변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를 좀 확대해서 위에 언급한대로 더욱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해 보고 싶다. “시진핑 빌런” 주장과 이에 대한 중국의 대항 논리인 “중국식 현대화”라는 프로파간다를 검토해 보기 위한 것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가장 좋은 프레임일지 고민이 적지 않았는데, 최근 이뤄진 백낙청 선생의 오마이 뉴스 인터뷰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게 됐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최근 몇 년간 덮어 뒀던 큰 주제인데, 백낙청 선생은 이를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라는 제목으로 설명한다. 나는 백낙청 TV라는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서 상당히 많은 영상 자료를 검토한 후에, 이것이 적절하다고 결론을 내리게 됐다. 이유는 지난 5년간 큰 실망과 회의를 품게 만든 한국의 “촛불대항쟁”과 19세기의 동학운동으로부터 이어지는 그 역사적 맥락의 중요성을 백낙청 선생이 다시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개벽사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근대의 이중과제”라는 주제는 특히 제목만으로는 대단히 추상적이고 범위가 넓은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백낙청 선생은 좀 더 간명하게 마르크스와 이마누엘 월러스틴의 주장을 종합한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적응과 극복”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만일 “중국식 현대화”가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시진핑 정부의 경제 개혁을 비롯한 각종 정책이 이러한 맥락 위에 놓여 있다면 우리는 “시진핑 빌런” 주장을 일단 유보해야 할 것이다.
월러스틴의 자본주의 세계체제론의 영향하에 있는 미국의 좌파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Michel Hudson의 저서인 <문명의 운명>과 그와 협력관계에 있는 중국의 정치경제학자이자 삼농三農 전문가 원톄쥔 溫鐵軍은 이런 주장을 나름의 논리로 풀어내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현재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통제하에 운영되고 있는데, 중국은 개혁개방이 시작된 40여년전부터 이 체제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즉,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고 심지어 한때는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구원자 역할을 맡기도 했다. 2008년 리만 브러더스 사태 이후, 세계 경제 성장의 엔진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내적 인플레이션 위기를 겪게 된다. 미국이 금융위기를 넘기기 위해 양적완화라는 타이틀을 걸고 찍어낸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여전히 값싼 중국산 물건들을 미국과 전세계에 공급했는데, 축적되는 달러에 상응하는만큼 국내적으로 인민폐를 찍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당시 계속 자본을 축적하고 특히 자급이 불가능한 에너지, 식량, 제조업에 필요한 생산자원, 그리고 선진국이 생산하는 고부가가치 제품과 하이테크 기술 등의 서비스를 수입하기 위해서 지속적인 무역흑자를 거둬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수출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고, 인민폐의 달러 환율도 일정하게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내적으로도 통화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 돈이 가장 수익률이 높은 부동산 시장으로 계속 몰리게 된다. 중국은 1998년 부동산 시장을 자유화한 이후에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이에 따른 건설 경기 붐이 일게 됐는데, 이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한 중국 정부가 다시 규제를 도입하려 했지만 대내외적 환경의 제약으로 계속 실패해왔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부동산 시장과 건설업이 중국의 GDP에서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 금융산업과의 밀접한 연계, 그리고 건설회사에 일회적으로 땅을 팔아 마련하는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 비율 등의 구조적 관계 혹은 체제는 거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공고해졌다.
마이클 허드슨은 중국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금융자본주의하의 세계 체제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본다. 즉, 고전 경제학자들은 산업자본주의를 통해서 대지주 귀족 계급을 물리치고 인류가 고르게 물질적 번영을 누리게 할 것을 꿈꿨으나 금융자본가 계급이 이를 무력화했다는 것이다. 지주와 금융가들이 다시 결탁해서 토지, 자원, 인프라를 사영화의 방식으로 독점하고 보통 사람들이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 사용료를 지불하거나 금융기관에 이자를 지불하는 지대추구 경제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FIRE(Finance, Insurance, Real Estate)섹터라고 부른다. 따라서 중국에서도 부동산과 금융이 긴밀하게 결합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는 뜻이다. 마이클 허드슨은 그래서 “민주적으로 인민에 의해서 통제되는 국가”가 금융과 토지, 자본, 인프라를 우월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자본주의 발전의 오랜 역사를 통해 정치 엘리트들이 금융 자본가들과 한몸이 되어버린 서구사회와 달리 중국은 여전히 국가 권력이 자본가들의 상위에 있다고 보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그래서 중국이 금융자본주의로 폭주하지 않고, 산업자본주의 중심 체제를 유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2008년 이후의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 달러 패권 체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떤 나라도 금융자본주의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다. 특히, 해외에서 식량과 에너지, 자원을 사와야 생존이 가능한 나라들은 예외가 될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는 수출입을 위해서 미국 달러를 필요로 하고, 미국이 자국의 경제 운용 편의를 위해서 달러의 금리와 통화량을 조정하는 것에 따라서, 통화 정책을 포함한 경제 정책을 맞춰나가야 한다. 그래서 주체적이거나 독자적인 경제의 구조 개혁이나 운용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소 달라진다. 여전히 통화주권을 틀어쥐고 있고 식량과 에너지, 자원, 인프라 비즈니스를 국가 자본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 시장 대외 개방의 통제와 속도조절이 가능하다. 거대한 시장과 전후방이 모두 갖춰진 방대한 제조업 생태계 덕분에 이론적으로는 내수시장만으로도 국민 경제의 안정적 운용이 가능하다. 관건은 여전히 필수적인 에너지와 식량, 자원의 수입이다. 이를 위해서 자신만의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일대일로 프로젝트이고, 위안화의 국제화 전략이다.
위안화의 국제화 전략에 대한 큰 오해중 하나는 중국이 위안화를 이용해서 달러패권을 대체할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위안화를 “범용 국제 통화”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미달러처럼 기능하게 하려면 다시 자국경제가 부채를 누적시킬 수 밖에 없는 트리핀triffin 딜레머에 빠지기 때문이다. 또 중국은 미국이 전세계 국가의 국제교역에 달러를 사용하게 하면서 거둬들이는 “보호세”를 받을 만큼 강력한 대양 해군력과 전세계의 교역로 요충에 설치된 군사기지 네트워크도 갖추고 있지 않다. 중국의 위안화 국제전략은 현재의 국제 통화인 미국 달러에 종속되지 않고 필수적인 국제 교역을 수행하는 한도에서 제한적으로 위안화의 역외 거래를 허용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일대일로나 BRICS 경제권이 대표적이다.
그 역외거래마저도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인 디지털 인민폐를 통해 소재를 추적하고 싶어하고, 양국의 통화로 직접 거래하거나, 아주 극단적으로는 과거 미소 냉전시기와 마찬가지로 화폐에 의존하지 않는 물물교환식 국제 교역의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 일대일로에 속하는 스리랑카의 항만 건설문제나, 에쿠아도르 등의 국가에 달러 외채를 빌려주고 석유로 상환하게 하는 것과 같은 문제들은 어쩌면 물물교환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부작용일 수도 있다. 중국이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산업 생태계를 최대한 확장시켜서 필요한 모든 재화와 용역을 공급해줄 터이니, 대신 천연 자원과 교역기지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의도하지 않은 부수적인 결과도 발생하는데, 200년전 중국이 전세계로 가장 많이 수출했던 품목이 다시 등장한다. 바로 사람이다. 중국 노동자와 기술자들이 일대일로 국가로 파견되어서 일을 하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산업과 기층 비즈니스 인력이 이를 따른다. 그런데 이들이 중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현지에 남아서 신세대 화교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는 다른 글에서 이 상황을 자세히 묘사한 적이 있다. 중국은 생산자본, 금융자본의 절대적 과잉 문제에 시달리고 있으며, 네이좐內卷(involution) 현상에 볼 수 있는 상대적 인력자본(특히 중국내에서 배우자를 찾지 못하는 남성 기층 노동자들)의 과잉 문제로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같은 의미에서 중국의 군사패권 확장도 결국 자국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교역로를 보호하기 위한 실력 이상을 키우려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자국의 실력과 생존의 필요를 넘는 공격적 확장 전략이 항상 제국의 붕괴로 이어졌음을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중국의 쌍순환 전략 중, 상하이와 홍콩이 나눠서 맡고 있는 금융시장의 명확한 역할 분담도 이를 잘 설명한다. 상하이는 인민폐 위주 국내 자본시장의 게이트웨이 역할을 한다. 중국 국내에 투자하고 싶은 이들은 상하이로 외국환을 들고 와서 중국은행에서 인민폐로 교환해 투자하라는 것이다. 반면 홍콩은 중국 기업들이 달러 투자를 받고 싶을 때 이용하는 게이트웨이이다. 중국기업들은 여기서 얻은 달러자산을 국내로 유입시키는 대신, 주로 해외에 투자하거나 해외지불에 사용할 것이다. 이곳에서의 인민폐 역외거래는 보조적 역할을 하는 형식에 불과하다. 중국은 대륙에서 가상자산의 채굴과 거래를 매우 엄격하게 금지시키고 있는데 예외적으로 홍콩에서는 거래를 허용하고 있다. 국내의 비트코인 전문가들은 이를 중국의 부패한 권력자들이 해외로 자산을 도피시키기 위한 쥐구멍을 파놓은 것으로 추정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점점 달러의 영향력이 줄어들 경우를 대비해서, 달러를 대체하는 국제통화의 포트폴리오중 선택지를 늘리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된다. 어떤 경우든 홍콩에서의 인민폐 역외 거래는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의 부채가 무한정 증가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하고 있다.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미국이 고립주의 정책으로 돌아서고, 달러 패권 시스템이 급작스럽게 붕괴하거나 최소한 서서히 퇴조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과연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만일 중국이 이렇게 안정된 생존과 번영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극복을 의미할까? 금융자본주의를 적절히 통제하고 산업자본주의를 우위에 놓는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의 극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원톄쥔은 그보다는 그의 “중화 농경 문명 뿌리론”에서 출발하는 생태주의적 대안 경제 체제를 주장하기도 한다. 산업자본주의의 우위를 주장하는 마이클 허드슨보다 더욱 급진적인 그의 면모이다. 위에서 언급한 미소냉전 시기의 국제 물물교환 교역을 포함하는 그가 주장하는 소위 “인민경제”는 향촌과 도시의 융합적이고 균형적 발전, 산업적 농업 생산과 소농 중심의 유기농 생산의 균형을 강조하기 때문에, 그는 중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크게 비판을 받고 있다. 심지어 원톄쥔이나 마이클 허드슨은 성장의 계량 지표로 사용되는 GDP의 사용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과거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을 포함한 수차례의 상산하향上山下鄉 정치 운동, 심지어 천안문 사태 발생의 배경에 시초 자본 축적에 대한 내적 요구와 불안정한 외부적 경제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경제 패러다임을 과거의 계획 경제 시대로 돌리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하기도 한다. 그의 신향촌건설 운동과 이에 호응하는 중국 정부의 향촌진흥전략이 도시화와 공업화, 현대화에 역행하는 반문명주의라고 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그는 비현실적인 서구 사회의 급진적 생태주의자들이나 아나키스트들과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보다는 인간의 욕망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적절한 성장”이 그의 사상적 면모에 더욱 가까울 것이다. 예를 들어 그가 자주 인용하는 향촌진흥 정책의 대표적 정치적 구호는 시진핑이 말한 청산녹수青山綠水 금산은산金山銀山이다. 이 말은 향촌의 생태자원을 무조건 개발하기 보다는 잘 가꾸고 보호해서 관광 자원이나 문화 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이다. 향촌에서 1차, 2차뿐 아니라, 생태 자원을 적절히 활용한 3차 산업을 융합적으로 육성해서 농민들도 잘 살게 해주자는 의미를 갖고 있다. 중국의 연안과 도시지역에 집중된 과잉 생산 자본, 금융 자본을 적절히 향촌과 내륙지역으로 분산시켜서 균형적 발전을 이루고, 과잉된 자본이 붕괴하는 것을 막자는 위기 관리 전략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구체적인 금융정책과 지역 사회의 거버넌스 정책으로도 이어지는데 향촌의 현역縣域 경제권 건설이 바로 그것이다.
향촌의 현역 경제권은 농촌의 중심인 현성縣城이 중소도시 규모 역할을 하면서 그 주위의 향진鄉鎮과 촌락村落을 아우르는 상대적으로 독립된 경제 생태계를 구성한다는 구상이다. 이 현성은 소위 신형성진화新型城鎮化 계획의 성진城鎮을 의미한다. 연안 대도시 중심의 도시화城市化(urbanization)를 적절한 규모에서 제어하고 내륙 지역의 중심이 되는 중소도시들의 성진화城鎮化(townization)를 촉진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해서 현단위의 독립적인 금융 생태계를 만들고 농촌의 생태자원을 금융화, 자본화하되 현 내에서만 거래가 이뤄지도록 제한한다. 이때 생태자원의 소유권은 향촌의 협동조합이 가지고 외부에서 들어 온 금융자본이 이 금융화된 생태자본의 사용, 개발권에 투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 유동화된 권리를 현외 금융 시장으로는 내어 가지 못한다. 현성이나 향진, 농촌에는 다양한 규모의 제조업체도 들어설 수 있는데, 소위 타오바오 마을淘寶村, 타오바오 향진淘寶鎮이라는 작은 산업 클러스터들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져서 오래전부터 중국내 B2C를 통해서 생산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주로 도시 지역의 공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농민공 출신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사업을 일으킨 경우이다. 교통이 편리한 대도시 배후지역 농촌이나 좋은 자연환경 자원을 가진 유명 관광지 등에는 문화와 IT기업 종사자들이 디지털 노마드 형태로 장단기 거주를 하며 소규모 생활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경우도 있다.
나는 2017, 2018년에 그가 한국에 와서 이런 실험적 구상을 설파하는 것을 통역해준 적이 있는데, 한국의 생태주의 연구자들이 생태자원의 금융화와 자본화라는 표현에 반사적으로 눈쌀을 찌푸리던 것을 기억한다. 그들은 이를테면 부탄과 같이 전통시대의 생활 방식을 영위하면서 생태관광산업으로만 먹고사는 작은 나라들을 탈성장 생태주의의 미래나 모델로 삼는 경향이 있다. 이들의 비판에 대해서 원테쥔은 자본주의는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외발 자전거와 같아서 달리면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해야지, 그냥 멈추면 오히려 파국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예를 들어, 만일 일국의 과잉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그대로 방치해서 붕괴가 일어나면, 저절로 수습이 되고 구조조정이 일어나 새롭게 자급자족적이고 생태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IMF사태 이후 발생했던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외국의 금융자본이 그 나라의 중요한 자본을 헐값에 인수하고 지배하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원톄쥔은 순수한 이론 연구자나 이데올로기에 천착하는 활동가가 아니라 현장과 정부 정책의 관계를 잘 이해하는 연구관료 출신 학자이자 사회실천가였기 때문에 그 나름의 급진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정책을 제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톄쥔의 주장은 여전히 중국에서는 급진주의로 비판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또 그는 미중 대결 구도속에서 지정학적 갈등 요인과 상황을 설명하는 가운데 애국주의적인 담론을 펼치기 때문에, 소위 소분홍 팬덤의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마 그의 문명론일 터인데, 그의 문명과 역사를 해석하는 시각은 지나치게 본질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이라는 한계를 보인다. 그의 이런 면모는 당연히 “시진핑 빌런” 시각에 겹쳐 보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는 애국주의 담론에서 살짝 빠져나온 그의 정책 주장이나 사회운동가로서의 실천적 면모는 그에 대한 비판자들의 주장과 적절히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경우가 더 많다. 또, 그와 그의 동조자들도 민간 자본의 역할이나 해외 자본의 역할을 중국의 국가자본이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시 말하자면 국가 자본이 가장 기초적인 공공 영역의 자본을 독점하고, 민간 자본이 성장을 견인하면서, 해외 자본이 틈새를 매우게 한다는 것이 그들의 삼위일체식 자본 역할 분담론이다. 내외적 악재가 겹친 최근의 불황은 중국 경제 성장의 가장 큰 동력으로 작동하던 민간 부문의 활력이 크게 줄어든 것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4~5%대의 성장률을 앞으로도 10년정도는 유지한 후에야 2~3%이하의 선진국형 저성장으로 진입하는 것이 중국의 주요한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미래 예측치에 대한 암묵적인 컨센서스로 보인다. 그 기간 중에 경제 구조의 개혁도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경제 구조 개혁이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적응과 극복이라고 볼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에 성공할 수 있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여하튼 “중국식 현대화”라는 것이 백낙청 교수가 말하는 근대 이중과제의 해결과 상당 부분 겹쳐 보인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 판단이다.
하지만 정치 구조의 근대화 문제는 여전히 또다른 숙제로 남아 있다. 위에서 매우 장황하게 설명했던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적응과 극복은 결코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중국의 당-국가가 안팎의 “시진핑 빌런” 비판을 맞대응하는 논리는 바로 이와 같은 “미션 임파서블”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중국이 민주정 체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은 사분오열될 것이고, 이렇게 쪼개진 지역들은 결국 다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포섭되고 말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과연 비서구국가들중에 성공적으로 민주주정 체제에 안착한 사례가 존재하는가? 특히 같거나 유사한 동아시아적 문화 구조 속에 놓여 있는 한국과 일본 혹은 베트남, 싱가폴, 대만 지역은 어떤가? 하물며 중국과 같이 거대한 제국의 사례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유례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래도 시진핑 체제가 개혁개방후의 다른 지도자들에 비해서 퇴행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당연히 제기된다. 그런데, 이 점은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매우 많다. 중국 공산당의 내부 정치와 그 논리는 외부로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노련한 중국 정치 전문가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실을 비전문가들이 이런 저런 자신의 단편적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단정적인 결론으로 유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예를 들어, 이번 양회에서 리창 총리는 오랜 기간 유지되던 관행을 깨고, 내외신의 질의응답 시간을 갖지 않았는데, 이것을 근거로 리창 총리의 권한과 능력이 부족하다거나 중국이 감추고 싶은 사실이 많아서 소통하지 않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 (윤석열의 도어스테핑 중단을 떠올리는 한국인들이 많겠지만). 홍콩의 사우스모닝포스트지의 주필과 중국 전문 에디터가 이점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 것을 들었는데, 중국 전문 에디터는 모종의 정치적 변화가 있는 것이지, 중국 정부가 정보를 숨기거나 조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소통이 불분명한 것은 분명히 근대적 합리성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 근대 정치에는 소통가능성, 예측 가능성이 요구 되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 중국의 당-국가와 윤석열 정부의 정치가 모두 전근대적으로 보이는 것은 이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의 초반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중국 정부의 입장은 표리부동하지 않고, 또 그들은 중국식 현대화 추진이 현재진행형이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우리는 단정적으로 그들이 옳지 않다고 규정할 수 없다. 특정 사항에 대해서는 가치 판단을 하거나 불만을 표시할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전문가의 답변일 것이다.
싱가폴과 중국의 부동산 정책 사례를 연구하고 있는 한 중국 경제학자가 말하는 “민주정 체제의 전제 조건”도 매우 흥미롭다. 그는 싱가폴과 중국, 또는 홍콩 지역이 민주정 체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로, 국민들이 직접세를 부담할 용의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민주정 체제의 중요한 한 측면은 국민들이 자기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일 지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토론을 하고 결정을 하는 방식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점을 영국 의회 정치를 관찰해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 의회는 특히 지역 유권자들의 생활과 매우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안건을 토의하게 된다. 그런데, 애초에 직접세 부담률이 매우 낮은 이들 국가와 지역에서 유권자들이 민주정 체제의 권리와 의무를 제대로 행사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를 이념보다는 현실적인 사물의 작동원리로 파악하려는 중국인의 ‘프래그마틱’한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
이런 근본적인 정치환경의 차이가 한중 양국민들이 상대방의 정치체제를 편견없이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주로 한국인들이 중국의 상황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현실에서는 중국인들도 한국의 정치체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점 때문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보겠다. 작년 연말부터 중국 사회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던 한국 영화가 있는데, 그것은 <서울의 봄>이다. 많은 중국인들이 이 영화를 보고 상당한 공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지난 50~100년간 쿠테타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던 중국에서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지 나도 좀 궁금하기는 하다. 또 한가지 중국 미디어와 중국인들이 주목하는 뉴스가 있는데 그것은 한국의 의료대란이다. 중국 사회에서 의사들은 엘리트로 여겨지긴 하지만 그 위상은 한국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또, 이런 전문가 직능 집단이 정부의 방침에 맞서 집단 행동에 나서며 노골적으로 도전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사회복리를 강화하고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보건의 공공성 문제는 충분히 관심을 끌 문제라고 생각된다.
굳이 이 두 가지 사안을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자주 모니터링하는 중국의 한국통 언론인들이 만드는 팟캐스트에서 이 두 안건을 대하는 태도에 내가 상당한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중 한 청년 언론인은 한국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대학까지 마친 덕에 매우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중국으로 돌아와 언론인이 된 이후에도 한국 뉴스를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현대사와 당대 한국의 사회 실정에 대해서 깊고 폭넓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기 동년배의 한국인 친구가 많기 때문에, 한국 2030세대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는 분명히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서울의 봄>에 적지 않은 과장이나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중국인 관객들이 너무 주인공들의 행동에 감동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애써 김을 빼려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이들의 태도가 매우 의아했는데, <서울의 봄>에서는 등장인물들 중 “정의롭다”고 느껴질만한 행동을 한 인물은 소수인 반면, 빌런과 비겁하고 무능한 인물들이 절대 다수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정의파”에 속하는 사람들도 “민주공화국”을 수호하려고 애쓴다기보다는 쿠테타를 막아야 한다는 신념, 즉 군인으로서의 직업정신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내게는 보였다. 영화중에서 묘사된 것만 봐도 반란군들의 계획이 생각보다 엉성했기 때문에 그들의 시도를 저지할만한 기회가 많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에 의해 관객들은 크게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책임을 졌어야 할 절대 다수의 인물들이 비겁하고 무능하거나 관료적인 행태를 보이던 상황에서 그런 결과가 빚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고, 그것이 1980년대의 한국의 현실이었다고 나는 판단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광주의 시민을 비롯한 많은 한국의 청년 지식인들이 전두환 정권의 불법적 집권과 독재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에, 끊임없는 저항이 이어졌고, 그 결과 87년 체제를 성취하게 된 것도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다.
의료대란 문제에 대해서도 이들은 한국 의료 상황의 실정과 과거 정부와 의료계간의 갈등에 대해서 매우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또 윤석열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이 문제를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의료 인력 증원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실제로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갑작스럽게 2천명의 인력을 증원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점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윤석열의 의도가 성공해서, 한국 유권자들의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이유는 의료인들이 지나치게 과도한 경제적 보상을 받는 것에 대해서 한국인들이 큰 불만을 품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갈라치기”식 강경 대응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문제들에 대한 이들 판단의 핵심 기준은 첫째 권력이 무력에 기반한다는 믿음이다. 아마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경구를 떠올렸음직하다. 둘째,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공리功利주의적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을 “합리적 경제인”으로만 보는 전형적인 주류경제학의 사고 방식이다. 세번째 판단 기준은 국가가 자신의 대의가 옳다고 판단할 때는, 민주적인 대화와 협상보다 강경한 자세로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믿음이다. 특히, 중국인들이 반중 정책을 노골적으로 실행하는 윤석열에 대해서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불통과 강경한 정책 기조를 매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이들이 중국 사회의 정치적 상황을 한국에 투사해서 현실을 해석하고 있다는 느낌을 나는 받게 됐다. 한국인들이 한국의 정치 상황을 기준으로 중국의 정치를 판단하려는 것과 비슷하다. 아니면 그의 동년배 친구들중 보수성향의 2030 한국 남성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들이 한국의 정치 상황이나 민주정 체제에 대해서 냉소적인 자세를 갖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의 책임도 있다. 윤석열 정부의 행태는 너무나 어이가 없기 때문에 우리조차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과거 비교적 민주정 체제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을 때에도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오만한 자세를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즉,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정치 체제가 우월하다는 생각에 빠져 아시아의 이웃 국가들을 함부로 얕보는 명예백인 행세를 주저하지 않았다. 87년 체제 이후 이어진 한국의 굴곡진 상황을 보더라도 중국과 같이 거대한 국가가 한국의 민주정 체제처럼 다이나믹한 상태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리스크가 클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또, 중국이 아니라 더 작은 규모의 나라라고 해도, 각 나라와 민족의 역사적 맥락과 현재 상황이 우리와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자국 모델을 함부로 투사하는 것은 올바른 관점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점은 중국인들과 우리의 차이가 큰 편인데, 중국인들은 다른 국가들의 당대 정치 체제에 대해서 가치 판단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중국의 현대 정치체제가 다른 나라에도 적용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인들처럼 자기 나라와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경우조차 오지랍 넓게 가치판단을 하고, 말참견을 하려 들지 않는다. 중국인들이 소위 중화주의를 드러낼 때는 주로 이웃 나라들이 전통 시대의 중화문명을 어떻게 수용하고 판단하느냐에 대해서일 뿐이다. 대국주의는 좀 다른 문제이지만, 사실 지구상의 강대국 중, 대국주의를 갖고 있지 않은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걸 얼마나 세련되게 드러낼 수 있느냐 혹은 어떤 강대국의 담론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렇게 정치 체제와 이에 대한 상호간의 인식 차이를 논하다보면, 소위 근대의 이중과제가 나라별로 다른 우선 순위를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규모의 국가들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서 주도적으로 경제 구조의 문제 해결을 하기 힘든 한계를 가지고 있는 반면, 중국과 같이 스케일이 너무나 큰 거대 국가의 경우에는 정치 체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중국과 비슷한 스케일의 인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정 체제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모든 측면에 있어서 인도가 근대의 이중 과제 해결에 있어서 동아시아 국가들보다 나은 처지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또 민주정 체제를 놓고 봤을 때도, 만일 “민중의 자치”라는 그 본령에 비추어 보자면, 한국이 일본보다 더 나은 상황에 있는 지 깊이 따져봐야할 점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실제 삶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중앙의 정치에 대해서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반면, 막상 더 많은 직접 참여가 가능한 지역의 생활 정치에 대해서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일본 사람들의 지역 사회에 대한 참여와 헌신, 애착의 수준이 한국보다 높기 때문에, 풀뿌리 자치 측면에서 일본의 역량이 더 낫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실제로 중국인들이 이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중국 민간사회의 활성화, 즉 “민중의 자치”를 희구하는 많은 중국인 엘리트들은 한국보다 일본의 사례를 더 많이 참고하려고 한다. 중국의 민주정 체제로의 이행이 가능하려고 해도, 중앙보다는 지역과 기층에서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점을 모두가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 전통사회에서도 황제의 권력은 현縣권역 아래로는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이해하는 학자들이 많다. 원톄쥔이 대표적이다. 그러게 따지고 보면, 한중일은 모두 자연스럽게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근대의 이중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긴 글을 마무리지어야 할 시점이 됐다. 얼마 전 중국 역사를 전공하는 연구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현타’가 왔다. 유가를 포함해서 제자백가의 사상들은 그 사상이 태동했던 당시에는 개인의 처세나 왕조 국가를 포함한 조직의 관리를 위한 재간art이나 정책에 더 가까왔다고 한다. 즉, 형이상학이 아니라 형이하학이었다는 것이다. 아니면 의미가 꽤 모호해서 이현령 비현령식으로 해석이 가능한 아포리즘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백년, 수천년이 지나면서 여기 살이 붙고 꽤 번듯한 프레임이 생겨서 지금은 인류문명의 위대한 '사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원시 유가가 샤머니즘에서 유래했다는 것도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가설중 하나이다. 애초에는 신과의 소통을 위해서 만들어진 문자가 인간의 이성적 사고를 증대시키고, 샤머니즘을 점차 탈주술화, 세속화하고, 폭력을 줄이는 과정에서 정교한 유교적 의례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백년후 중국 사상사에는 모자毛子, 등자鄧子, 습자習子가 등장할 수도 있는 것일까? 농담이 아니라 심각하게 그런 의문이 생겼다. 이를테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그 색깔은 상관없고 쥐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貓白貓論와 같은 말들에 주석이 붙고 이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경전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마오이즘과 마오 어록은 이미 당대에 이데올로기와 경전이 되긴 했지만 수준 높은 사상이라기보다는 당대의 역사적 무게를 떠받치는 실천적 강령이었다. 하지만 수백년 후에는 그의 사상이 전혀 다른 수준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앞서 설명한 시진핑의 청산녹수, 금산은산이라는 향촌진흥 정책 구호는 식량 안보와 주권, 체제의 정치적 안정성, 생태자원보호, 도농격차, 지역 균형발전, 기후변화 및 지속가능성 등과 관련된 굉장히 현실적인 정책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매우 이해하기 쉬운 농민의 언어이다. 하지만 이와 함께 거론되는 '생태문명'이라는 거창한 타이틀과 달리, 아직 형이상학적인 현대 혹은 (중국)고전 생태주의 철학과 직접적으로 연계돼 해석되지는 않는다. 심지어 서구 철학자(존 캅 John B. Cobb)나 생태주의 사상가 (슈마허 컬리지Schmacher College의 사티슈 쿠마르Satish Kumar)들과의 협업하에 그런 시도가 다소 있긴 했지만, 현실 정치의 비민주적인 강성 실행 노선이나 내외적 이념 대립의 민감성 때문에 당대에는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수백년후에는 과연 이게 어떻게 해석되고 있을까? 반대로 우리가 수백년전, 수천년전으로 타임슬립을 해서 당시 중화대륙에 있던 사람들이 중국의 고전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사용하고 있었을지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아마도 중국인들의 사상은 늘 이런 식으로 형성돼 온 것이 아닐까? 그래서 거자오광葛兆光 같은 중국 사상사 연구자들은 중국 사상을 서구적 개념의 ‘철학'(우주, 존재, 인식 등에 대해서 처음부터 거창한 맵을 갖는)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중국식 현대화”가 과연 당대에 성취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나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수백년 후에는 인류문명이 지구에 살아남아 있는 한, 미래의 중화문명이 아마도 현대문명, 즉 현재의 서구문명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수천년간 강인한 생존력을 갖고 명맥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그 때 중국의 생태문명이 어떤 구체적인 담론으로 진화해 있을 지도 무척 궁금하다. 한국의 개벽사상도 한반도의 근대이중 과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사용되면서 더 잘 다듬어져서 인류문명에 기여할 수 있는 보편사상으로 발전해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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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民主 民惟邦本,本固邦寧 http://theory.people.com.cn/BIG5/n/2014/0806/c40531-25413381.html
3. 7年亏损近32亿,富二代,真那么好当吗? https://mp.weixin.qq.com/s/ejeP99e_WoRJwoItiAu5Tg
4. Study Gods: How the New Chinese Elite Prepare for Global Competition https://www.youtube.com/watch?v=6VsMIQJM4ys
5.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8ECIY1W74C4fCxt4dFFjsa4fLs3MBVwK
6. Ecuador - A country fights exploitation by China | DW Documentary https://www.youtube.com/watch?v=M6rgh_nJZbs&t=4327s
7. China’s Belt And Road: A Debt Trap For Sri Lanka? | CNA Correspondent https://www.youtube.com/watch?v=Kx9rChH-MmA
8. 经济学家建言2024中国经济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nhpRSU9pPuPut5-2y1U9OYC8m-4p7-td
9. 42. 남양南洋의 한국인과 일대일로 https://thetomorrow.cargo.site/42
10. ‘Two sessions’: China’s economic and diplomatic challenges | Talking Post with Yonden Lhatoohttps://www.youtube.com/watch?v=xs4H4iSlU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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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78 内容or营销:《首尔之春》刺痛了我们的哪根神经?
https://www.xiaoyuzhoufm.com/episode/65e9cb172d96b6aa8067150a?s=eyJ1IjogIjVmNDc3MDNmZTBmNWU3MjNiYmJjMjJiNSJ9
13. 黄宗智、周黎安丨“一体多面”:中华帝制时期的国家—社会关系再研究 https://mp.weixin.qq.com/s/KJOE-_Tvv0cCbvQAkCo9Ow
14. 温铁军对谈卢麒元:全球化危机与中国改革之路 https://www.bilibili.com/cheese/play/ep504071?csource=Share_more&plat_id=362&share_from=lesson&share_medium=iphone&share_plat=ios&share_session_id=57960FF7-A82C-4CD5-9901-845F020A01B7&share_source=GENERIC&share_tag=s_i&spmid=pugv.pugv-video-detail.0.0×tamp=1711520451&unique_k=Dg9IY4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