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4년 9월 25일

52. 뉴라이트와의 동거? No!

- “새로운 민족주의”를 위하여







“왜 한반도와 월남은 중화제국의 일부가 되지 않았을까?”

이것은 2023년 여름 졸저 <차이나 리터러시>의 출간 직후 한 대학에서 열렸던 북토크에서 사용한 슬라이드 중 한장의 제목이었다. 나는 “중화제국의 입장”에서 한반도와 월남을 점령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과 비용의 관계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내가 여러 연구자들의 주장을 공부하고 이해한 바는 다음과 같다. 한족 중심의 중화 문명은 기본적으로 농경제국을 운용하고 있었고, 농경 생산이 가능한 지역으로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갔다. 하지만, 한반도와 월남 지역에 이르렀을 때, 비용 대비 수익의 한계점에 이르렀다. 한반도와 월남의 로컬 엘리트와 보통 사람들은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이민족의 지배를 용납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따라서, 중화제국이 이들 지역을 장기간 점령해서 완전히 복속시키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반면, 그로 인해 얻는 수익은 신통치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들인 비용이 과도해져서 전체 제국 운영의 안정성을 해치거나 존망의 위기에 처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래서 택한 대안은 중화문명이 정초한 “천하체제”의 위계 속에서 문화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동질한 속성을 가진 중앙(중화제국)과 변경(조선과 월남)이 상호존중하며 공존하는 일종의 윈윈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지금의 세계 체제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헤게모니” 즉 패권과도 유사한 생각이다. 변경이 중심의 상위 가치 체계와 제도를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림1: 무심하게 사용했던 슬라이드 키노트가 참석자의 반감을 샀다.

사단이 벌어진 것은 북토크가 끝나고 간단한 회식을 진행할 때였다. 중국 문학을 전공하고 나보다 연배가 높은 한 교수님이 도발적으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표현을 할 수 있죠? 한국 사람이라면 왜 우리는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나?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적지않게 당황했다. 나는 조금 거리를 두고 제3자적 입장에서 (혹은 심지어 중화제국의 입장에서) 설명을 하려 한 것인데, “대학에 몸담고 있는 연구자”가 오히려 나에게 “국적 주체성”을 요청하는 것이 조금 생소하게 느껴졌다. 역시 2023년에 <한국인의 탄생>이라는 저서를 출간했던 홍대선이라는 저자는 나와 비슷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주로 한국인의 “주관적 입장”에서 이를 설명했다고 한다. 아마 질문자는 내게 홍대선씨의 관점과 비슷한 기대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와 홍대선씨는 학계에서 훈련받은 특정 분야의 전문 연구자가 아닌 프리랜서 저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다른 점도 있다. 그것은 아마 내가 “경계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나는 두달전에 썼던 <경계인의 감각>이라는 글에서 이 점을 자세히 설명했는데, 여기서 다시 이를 인용하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경계인은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사실 모든 사람들은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회든 주류에 속하거나 주류 혹은 다수에 속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일 수록 특정한 주류적 정체성을 많이 강조하고, 다른 정체성을 억누르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것은 전혀 이상한 행동이 아니다. 모든 유기체나 유기적 조직은 핵심과 변경, 즉 경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회나 국가, 민족이라는 집단에서도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해서 핵심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한다. 만일 핵심과 경계가 나뉘지 않는다면, 어떤 의도나 방향성, 목표도 갖을 수 없다. 이 물질은 유기체도 아니고, 생명도 아니다. 문자 그대로 엔트로피가 매우 높아진 무질서, 즉 열적 사망 상태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유기체가 자기의 핵심 정체성을 명확히 하려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아주 특수한 조건과 맥락 때문에 자기의도와 무관하게 경계에 놓이고 되고 복합적인 정체성중에서 한쪽을 택하기 어려운 집단들이 존재한다. 대개 이들은 경계인이기도 하고, 소수자이기도 하다. 조선족을 포함한 재외 동포들도 이런 집단에 해당한다. 나는 스스로 선택해서 경계인이 된 경우이긴 한데, 예외적인 사례로 봐도 좋다. 나는 한국인이고 중국에는 결혼 비자로 머물고 있을 뿐이지만 (몇년 후에는 영주권을 취득할 수도 있다), 내 아내가 중국인이기 때문에, 간접적으로나마 중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을 포함해서 누군가가 중국에 대해서 근거가 약한 험담을 늘어 놓으면, 자연스럽게 기분이 언쨚아진다. 물론 중국인이 한국을 욕하면 더욱 기분이 나쁘지만 말이다.



나는 당시에 이런 점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 채, 두가지 근거를 들어서, 그 질문자에게 조금 어설픈 답을 되돌려줬다. 되돌이켜 보면, 공감을 얻기 보다는 반감을 부추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속마음에는 학계에 몸담고 있는 연구자인 질문자가 “민족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 좀 “쿨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생각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내 대답은 아래와 같았다.

“제 아내는 중국인입니다. 만일 저희 부부가 아이를 갖게 된다면, 중국에 계속 거주할 터이니 우선은 중국 국적을 갖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는 이 문제를 어떤 관점으로 보게 될까요? 그리고 그 아이의 아비인 저는 또 어떻게 봐야 할까요?”

나는 아내와 앞으로 태어날 수도 있는 아이의 국적에 대해서 한번도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심 아내가 원한다면 아이의 국적이 중국인이라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 아이를 원하는 것은 아내와 장모님이고, 나는 유보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려에 있어서, 굳이 여성주의적 입장을 취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질문자가 마침 여성이었기 때문에, “아니 어떻게 아이를 중국인으로 남겨두려고 할 수 있죠?”라고 힐난했다면 “아빠가 한국인이라고 해서 아이도 한국 국적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신다면 선생님이야말로 가부장적인 관념에 사로잡히신 것은 아닌가요?”라고 반박할 요량이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질문자의 관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연구 분야와 대상이 아닌 문제에 대해서 주류 한국인 사회의 평범한 성원으로서 역시 한국 국적자인 내게 그런 비판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뭐 어쨌든 여기까지는 나도 최선을 다해서 내 입장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내와 나, 그리고 태어날 수도 있는 자식이, 서로 다른 국적 때문에 가정내에서 갈등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 구체적인 경우를 내가 가진 “모호한 경계인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소재로 삼았다. 위에 인용한 것처럼 깔끔하게 개념적으로 정리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내가 들었던 두번째 근거는 지금 생각해 보니, 질문자의 속을 정말로 뒤집어 놓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서 사려 깊지 못했다는 후회를 한다.

“만일 일본이 1937년에 중일전쟁을 일으키지 않았고, 또 진주만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러니까, 지금의 동북 지역인 만주와 조선, 그리고 대만을 점령한 채, 100년이 흘렀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만주국 사람이든, 조선 반도의 사람이든, 대만 사람이든 우리 모두는 지금 일본인이 되지 않았을까요?”

나는 사실 이런 상상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나는 조선 반도 출신의 일본인이었을 것이고, 100년 넘게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어쩌면 일상에서 별다른 차별을 경험하지 않은 채, 평범하게 일본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출신 지역간의 갈등이나 심리적 서열관계가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겠지만, 외모나 언어로 구별되지 않으니 미국과 유럽 사회내의 인종차별에 비하면 민족간 불화의 강도는 훨씬 낮아졌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살짝 소름이 돋는다. 이거야말로 소위 “뉴라이트적 발상”이 아닌가? 내 페친중에는 실제로 뉴라이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는 항상 민주당과 진보 정당들을 지지해왔기 때문에 이들과 한국 정치에 대한 견해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묘한 공감의 영역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앞서 설명한대로 특유의 경계인의 정체성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을 대하는 관점이 남달랐다. 특히 나는 3년 가까이 일본에 거주하기도 했고 일본어도 능통했기에 일본인과 일본 문화를 바라보는 나의 친화적 시각이 이들의 관심을 끌거나 일정 정도 동의를 이끌었던 것 같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복거일”식의 상상이 그러하다. 나는 실제로 학부생이었던 시절 크게 화제가 됐던 복거일의 가상 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를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림2: 장동건이 주연한 영화 <2009 로스트메모리즈>의 원작은 복거일의 소설 <비명을 찾아서>라고 한다. 이 작품들은 조선이 일본에 완전히 통합돼 조선의 역사와 언어가 사라졌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가상역사에 기반한다.

홍콩, 대만의 민주주의자들과 뉴라이트의 공통점은?

나와 뉴라이트 지지자들의 기묘한 사상적 동거는 아주 특이한 경우가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홍콩과 대만 사람들의 과거의 식민모국, 영국과 일본에 대한 가치관도 이와 관련이 있다. 최근 내가 번역을 진행하고 있는 홍콩출신 인류학자 헬렌 시우 Helen SIU의 중국 광동성 지역과 홍콩에 대한 역사인류학 연구 논총인 <Tracing China>는 매우 흥미있는 사례들과 시사점을 제공한다.

특히, 그가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전후해서 썼던 글을 보면 이러한 점이 명확하다. 그는 당시 홍콩 사회에서 벌어진 진영간 대립과 그들의 이분법적 관점을 비판하고 있다. 이 대립은 홍콩이 영국 식민지 기간 이뤘던 다양한 성취를 찬양하는 “식민주의적 관점”과, 중화민족이 겪은 150년간의 굴욕을 청산하고 통일되고 번영하는 중국을 예찬하는 “민족주의적 관점”을 일컫는다. 이 대립은 홍콩 반환후에도 끊임없이 심화돼 심지어 2014년의 우산운동, 그리고 2019년의 홍콩반송중 사태로 이어졌고, 결국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베이징 정부의 일방적인 의도가 관철되는 파국으로 치닫게 됐다.

헬렌 시우는 홍콩이라는, 제국의 변방에 위치한 특수한 지역이 겪은 특별한 역사적 과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 맥락속에서 홍콩이 거둔 성취, 이의 기반이 된, 홍콩 사회의 특성과 미덕에 주목한다. 그런데 이는 일반적인 민족국가 nation state가 가진 민족주의적 가치관이 품을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홍콩의 문화적 특성과 이를 만들어내기 위한 역사적 과정은 명청조의 500년간 이뤄진 광둥성, 주강 삼각지역의 형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제국이 변방으로 그 영향력과 통치권을 확장하는 과정은 중화제국과 지역민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공모하는 형태를 띄게 된다. 지역민들은 점진적으로 제국의 문화와 제도를 수용하고 이념화하기도 하지만, 근간이 되는 동기는 자기 집단의 이익과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19세기 중반에 영국인들이 제국의 최말단부인 홍콩의 지배권을 얻었을 때, 지역민들은 역시 같은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대영제국과 투쟁하거나 동시에 타협을 하게 된다.

특히 상인과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도한 이 과정은 근면성실한 노동과 비정통적 창의성을 겸비한 것으로, 중화문명과 서구 근대문명의 특성을 잘 혼합한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특히, 홍콩의 지경학적, 지정학적 이점을 최대한 살려서 지역내에서 세계적인 제도를 건설하고, 엄청난 경제적 부를 일궈내게 된다. 그래서 홍콩의 글로벌한 특성과 그 영향력은 단지 비좁은 실제의 물리적 영토로 국한되지 않는다. 또 로컬 엘리트들은 영국 식민주의자들의 차별과 착취에 저항하거나 타협하고 협력하면서, 서서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키우고, 정치적 영향력을 높여 나가게 된다. 홍콩에서는 특이하게도 역사적으로 정치제도로써의 민주정이 실천된 적은 없지만, 민주정이 가진 다양한 긍정적 문화적, 사회적 환경은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문화적, 제도적 환경은 중화권 지식인 사회에도 특별한 공간을 제공하게 된다. 즉, 중국 공산당과 대만 국민당이 자신들의 영토내에서 반대파에게 가한 정치적 탄압에서 안전하고, 이념적 대립에서 자유로운, 다양성 넘치는 언론과 학술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헬렌 시우는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에도 이런 독특한 사회풍토와 제도가 보존되려면, 이분법적 대립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홍콩의 이 불행한 역사적 현실에 대해서 원인을 분석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하지만, 결국 권력투쟁에서 패배하고, 영국으로 이민을 간 20만명의 홍콩 엘리트들, 또, 여전히 홍콩에 남아서 중국 공산당을 저주하는 수백만명의 홍콩인들의 생각을 톺아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이념은 서구식의 리버럴 데모크라시liberal democracy이다. 그들이 결국 베이징 정부를 대리하는 역할에 머물렀던 홍콩 정부와 정치적 타협점을 찾지 못한 것은 리버럴 데모크라시에 대한 신념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홍콩의 행정 수반을 보통 선거로 뽑아야 한다는 민주정 요구를 철회할 수 없었다.

만일 한국 사람들에게, 특히 민주당 혹은 진보 정당 지지자들에게 2019년 베이징과 홍콩 정부에 맞서 싸웠던 홍콩 시민들의 선택의 정당성을 물어 본다면 절대 다수가 홍콩 시민들을 지지한다고 답할 것이다. 소위 진보 성향의 한국인들 대부분도 리버럴 데모크라시를 정치적 신념으로 굳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반대 입장에 섰던 상대 진영의 홍콩 시민들이 영국의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민족주의자”였다고 설명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거의 비슷하게 민진당民進黨과 국민당國民黨KMT이라는 양대 정치 진영이 대립하고 있는 대만의 경우를 살펴 본다면, 이런 대비는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아시다시피 대만의 현재 집권 정당인 민진당과 그 지지자들은 미국의 리버럴 데모크라시 이념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그런데 동시에 그들의 아시아 지역내 가장 든든한 우군은 바로 일본이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군사적 동맹 차원이 아니다. 대만의 민진당 지지자들은 그들을 50년간 식민지배했던 일본국의 제도와 문화를 열렬히 사랑하는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일본의 영원한 집권여당인 자민당, 즉 자유민주당自由民主黨이야말로 문자그대로 리버럴 데모크라시liberal democracy의 수호자인 것이다. 데모크라시를 열망했던 홍콩 시민들이 중국 정부를 대리하는 홍콩 정부의 폭력앞에 영국과 미국의 개입을 요청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데모크라시를 열망하는 대만 시민들은 중국 정부의 무력시위 앞에서 미국과 일본의 개입을 요청하고 있다. 북조선의 무력 시위와 중국의 지역적 패권의 확장전략 앞에서 미국과 일본의 개입을 요청하는 한국의 뉴라이트와 놀랍게도 닮아있지 않은가?

2024년 소위 중국의 국치일이라 불리는 9.18만주사변 기념일에 대만 대남台南시에서 벌어진 일은 더욱 웅변적이다. 이곳에 설치돼있던 위안부 소녀상이 철거됐다. 원래 2018년 국민당 당사 소유지에 설치했었는데, 당사가 매각되면서 새로 설치할 곳을 찾지 못해서, 창고에 보관하기로 했다고 한다. 대만 주류 언론은 이 사실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일본의 눈치가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3: 대만 대남시 국민당 구舊당사 부지에 설치된 위안부상이 불과 며칠전인 만주사변 기념일에 철거됐다. 6년전 설치 당시 마잉지우馬英九 전 총통이 기념 연설을 하는 가운데 일본 기자와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황할 필요 없다. 홍콩, 대만의 민주 시민들은 한국의 민주 시민들과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집단적 정체성안에는 경계인의 감각이 깊숙히 내재돼 있다. 즉, 이들은 베이징과 상하이를 중심으로 하는 중화문명의 핵심 세력, 특히 북방의 정치 중심과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 하지 않는다. 식민주의자들이 이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던 19세기 이 지역의 로컬 엘리트와 보통 사람들이 중화 왕조에 가지고 있던 충성심은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자기 집단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다른 제국과 언제라도 타협할 준비가 돼있었다. 그래서 1949년에 수립된 중국 공산당 정부가 다시 서술한 중화민족국가의 내러티브는 이들중 절반 가까운 이들에게는 위화감을 줄 뿐이다.

민족주의는 사치품이 아니다!

조선반도에서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단일한 민족 정체성을 형성해왔던 한국인들 혹은 북조선 사람들에게 새로운 근대국가의 내러티브가 열렬히 수용됐던 것과는 다른 양상인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제주도 정도를 홍콩, 대만에 비견할만하겠지만 여전히 조선반도와 그 도서의 경계는 중국의 어지간한 성 하나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한반도 로컬 엘리트들 상당수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서 씻을 수 없는 굴욕감을 느꼈고, 일본에 대해 두가지 양가적 감정을 가지게 된다. 이점은 홍콩과 대만의 경우와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모든 현대 한국사회 문제의 근원은 일본 때문이라는 원한과 원망의 감정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일본은 “영원한 넘사벽”이라는 두려움과 “우리는 아무리 해도 안된다”라는 자기비하의 감정이 있다. 하지만,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근대화 과제 수행에 성공함에 따라서 한국인들은 자신감을 회복하고 민족주의도 강화돼왔다. 한국사회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다소간의 비판적 시각이 나타난 것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의 사례를 들어 근대국가의 민족주의 형성 서사를 분석한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베데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상상의 공동체>가 소개된 2천년대 이후이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생각하자면 이 책이 출간된 2002년이 바로 월드컵의 붉은 악마와 함께 한국 민족주의 열기가 절정기를 맞았던 시점이라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제는 국력의 신장에 걸맞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일본에 대한 “원한의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민족주의를 객관화하고 반성적으로 사고하고자 하는 흐름의 한축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주로 자기비하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택한 선택지였다. 그들은 민족주의를 “불필요한 것 혹은 본질적으로 나쁜 것”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서 뉴라이트 지지자들과 명확하게 선을 그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여기서 민족주의라고 표현해도 좋을 유기체의 핵심 정체성은 생명 현상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 아니다. 홍콩이나 대만과 같은 예외적인 경계인과 변경의 정체성의 예를 들어서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 내 아내의 고향은 강서성江西이라는 곳이다. 강서성의 강서라는 표현은 강의 서쪽이라는 설명처럼 들리지만, 실제는 강남江南지역의 서쪽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강남지역은 중국 문화와 경제의 핵심인 장강하류 유역, 즉 상하이를 중심으로 하는 강소성江蘇과 절강성浙江을 의미한다. 이 명칭에서 강서성의 “주변성marginal”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강서성은 광동廣東, 복건福建, 호북湖北, 호남湖南, 안휘安徽, 절강성 등에 둘러싸여 있는데, 중국내 30여개의 성시중에서 존재감이 극도로 약한 지역이다. 지역의 존재감은 대개 경제력과 정치적 영향력에 의해서 결정될 수 밖에 없다. 강서성은 남방의 내륙 지역에 위치한 탓에 1차 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경제가 발전한 다른 성으로 농민공을 대량으로 수출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슷한 처지의 하남河南성이나 사천四川성, 호남湖南성과 비교해보더라도 이런 열세를 부정할 수 없다.

궁금증을 느낀 내가 아내와 대화를 나누면서 깨달았던 것은 강서성에는 핵심 정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강서성의 각 지역은 언어나 음식문화 등에서도, 강서성이라는 단일한 정체성보다는 앞서 서술한 인접한 성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예를 들어 아내의 고향인 구강九江시의 문화적 정체성은 장강 건너에 위치한 호북성 지역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한다. 아내는 중국내의 많은 도시를 다녀봤지만, 강서성의 성도인 난창南昌에는 한번도 여행을 가 본 적이 없다.

산악지대와 습지가 많아 지형이 복잡한 중국의 남방지역은 한 성내에서도 다양한 정체성과 언어, 문화를 갖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신이 속한 성의 정체성만큼이나 고향 지역의 정체성도 중요하다. 하지만, 강서성의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정도로 소속감이 약하다. 강서성 출신들이 자기의 고향에 대해 강한 귀속감을 갖지 못하는 것은 중국이라는 나라 전체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강서성 출신 인재들이 대개 고향을 떠나 다른 대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사회에 기여하고 자신과 가족들의 평화롭고 번영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과 같은 국민 국가의 주류 성원들이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면 큰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특히 정치적 의제나 국제 관계 등에 관심이 덜한 “보통 시민”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들에게 민족 정체성이 없다면 대한민국이 왜 지금 독립 정치체를 이루고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찾기 힘들 것이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 하와이와 같이 뒤늦게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거나 푸에르토리코와 같은 미국의 속방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해도 이를 제대로 반박하기 힘들다.

뉴라이트 지지자들은 한민족 정체성과 소속감이 매우 약한 나머지, 북조선이나 중국의 조선족 동포보다도, 일본인 혹은 미국인들에게 더 큰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럴 수 있다. 다시 얘기하지만 경계인의 정체성은 그 나름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국가와 사회의 핵심과 주류, 다수의 정체성이 제대로 자리 잡혀 있고, 이에 따라서 사회가 안정적으로 운영된 후에 가능한 일이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더 수준높은 사회와 국가로 진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이기도 하다. 그 시점을 기다릴 수 없다거나, 애초에 그 사회의 핵심 정체성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 개인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앙모하는 국가와 사회로 이민을 가면 된다.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사람을 말릴 수 없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도 일본에서의 생활, 특히 1년간 일본 농촌에서의 공동생활을 통해서 개인적으로는 가족같은 친밀감을 느끼던 일본인 친구들이 몇 있다. 반면, 북조선 사람중에는 지인도 없고, 유감스럽게도 조선족 동포중에 아직은 깊은 우정을 나눌 친구를 만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실제 내 주위의 뉴라이트 지지자 혹은 그들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중에는 외국을 전전하며 생활하거나, 아예 이민을 간 사람들도 있다. 그들중 어떤 이는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전근대성”을 비롯한 열등함을 조롱하고 그에 대비하여 자신을 받아들여 준 “선진 국가”와 그 민족의 수월성에 대해서 찬미를 늘어 놓는다. 그가 한국어를 사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보고 나도 가끔식 반감이 생기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자신의 신념에 맞는 선택을 한 사람들을 비난하려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 또다른 경우로 국적은 여전히 한국인이지만 어려서부터 외국에서 자라나서, 주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그 언어 문화권을 중심으로 거주하며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인의 민족주의와 전근대성을 비판하는 그들의 의견도 “경계인의 정체성에 기반한” 주장으로써 수용할만하다. 우리는 그들의 외양이나 민족적 배경 때문에 “한국인”이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가 있나라고 분개하지만 사실 그들이 중시한 비한국인의 정체성의 관점을 이해한다면, 그들이 일부 한국인의 “과도한 민족주의적 행태와 사고방식에” 비판적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내게 질문을 던졌던 중문학 전공 교수님은 아마 나를 위의 두 경우에 가깝게 바라봤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역시 그들보다는 좀 더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그래도 동시에 “경계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나 자신의 입장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그림 4: 2024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U-20여자 월드컵 결승전에서 북한 대표팀이 일본을 1-0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당신은 이 소식을 듣고, 어떤 기분을 느꼈나?

바꿔 말하면 뉴라이트 지지자들은 절대로 대한민국 국가 권력의 핵심에 근접해서는 안된다. 지금 윤석열+김태효 정부에서 벌어지는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여론의 분열이 웅변적으로 그 이유를 말해준다. 뉴라이트 세력은 한국 주류사회와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대한민국의 주권과 국익을 함부로 이웃 국가인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있다. 또 우리의 핵심 정체성에 대한 국가차원의 공식적 정의와 기술을 자기 멋대로 바꿔나가고 있다. 만일 이들의 주장이 우리 사회의 주류 담론이 된다면, 한국의 보통 시민들은 왜 한국이 일본의 일부가 되지 말아야 하는지 제대로 답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현재 뉴라이트의 정치적 입장과는 정반대로 누군가는 한국이 전통사회의 조선과 같은 수준으로 중국의 속방이 돼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내가 관찰하고 경험한 뉴라이트 핵심 지지자들은 이념적 가치보다는 힘과 문화와 제도를 포함해서 자신들이 믿는 “수월성”을 극도로 숭상하는 이들이다. 만일 10년 후 중국의 하드파워가 미국과 대등해지거나 이를 능가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들중 상당수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갈아탈 것이다.

과정으로서의 민족주의, 경계를 품는 민족주의, 오늘을 사는 민족주의

이제 내가 “복거일식 상상”에 대한 변명을 제대로 해야할 시점이 왔다. 간단하다. 그것은 상상일뿐이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랬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민족”자체가 불변의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한민족은 김치를 먹어야 하고, 한복을 입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SNL의 장기 출연자였고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프레드 아미센Fred Armisen이라는 미국의 한 유명한 코미디언은 최근까지도 자신의 할아버지가 일본인이라고 믿어왔다.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 도쿄제국대 출신의 무용가로서 독일에 유학을 가서 독일인 할머니를 만나 그의 아버지를 출생했다. 그런데, 그는 최근 자신의 할아버지가 실은 한국의 울산 지역 양반 가문의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의 할아버지 박영인은 토쿄 유학중에 관동대지진을 겪게 됐고, 신변의 안전을 위해 그때부터 일본인으로 신분을 감춘 채 살아왔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프레드는 갑자기 천지가 개벽한 것처럼 놀라움을 표시한다. “저는 한번도 할아버지나 그의 일본인 가족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일본 문화에 대한 호감이 심지어 생물학적 혈연에서 비롯했다고 믿어 왔어요. 그럼 이제부터 나는 스시보다 김치를 더 좋아해야 하는 것일까요?”.

언어학 유튜버로 유명한 <항문천>에 소개된 테미를란이라는 한 청년의 경우를 보면 더욱 복잡한 심경을 느끼게 된다. 그는 카자흐스탄 사람인데 아버지는 카자흐스탄인, 어머니는 조선인 디아스포라인 고려인 출신이고, 어릴적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났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오랜 기간 소비에트 연방(USSR)의 일원이었고 그의 어머니의 조상들이 연해주에서 이주해 왔기 때문에, 그는 ‘고려말’을 할 수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러시아어를 모어로 구사한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카자흐스탄 말도 배웠다고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여전히 러시아어를 중시하는 것은 마치 일본에서 해방된 한반도 사람들이 일본어를 모어로 구사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한다. 그의 사례를 보면 민족은 어떤 불변의 문화적 본질이나 “정태적 구조structure”가 아니라, “동태적 과정process”에 가깝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우리 민족이 지금과 다른 역사적 과정을 거쳐왔고, 또 이를 서술하는 방식이 지금과 달랐다면, 우리는 한민족에 대해서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 기억 속에 보다 명확하게 남아 있는 가까운 역사적 사실일수록 우리의 삶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마치 빛의 에너지가 거리의 삼제곱에 비례해서 감소하거나 증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역사학자 장지연은 이런 역사적 시간의 거리감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한 사람을 “시간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 민족이 일본인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으로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은 1945년 8월15일에 벌어진 광복 덕이다.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우리 민족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우리가 해방을 맞은 것은 필연일 수도 있고, 우연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그 때 우리 민족과 국가의 성원들은 독립된 국가의 시민으로서 살기로 결심을 했고,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현재에 이르렀다. 그러니 이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뉴라이트 지지자들의 진짜 문제점은 단순히 자기 입맛에 맞게 왜곡시키는 그들의 “비뚤어진 역사관”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생각대로 해석할 수 있는 역사관이나 가치관을 가질 권리가 있다. 뉴라이트 연구자들이 기반하고 있는 유물론적 조선 경제사 분석이나 일본과 조선의 근대 역사, 문학 연구, 또 현실주의 국제 정치관에 따른 지정학적 이론들 자체가 나름의 엄밀한 학술적 연구 성과라면 그 또한 우리는 감정적인 호불호 대신, 학술적인 잣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 문제는 이들이 해방된 우리의 현실과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들은 차라리 한국이 독립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일본인으로 남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국제 외교를 비롯한 현실 정치에 마구 개입하고 있다. 이들은 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보수정치 성향의 유권자를 포함한 대한민국 성원 대다수가 동의할 수 없는 이런 생각을 감추고 정권을 잡은 후에 자신들의 “가상 현실”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5: 미국인 코미디언 프레드 아미센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이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된 후 잠시 맨붕에 빠졌다.

하지만, 이들이 태동한 배경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의 자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과연 “민족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홍콩과 대만에서 벌어졌던 것 같은 식민주의와 민족주의간의 이분법적 사고가 우리의 현실정치에서도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토착왜구” vs “종북좌빨”과 같은 극단적인 상호 멸칭이 이 논쟁과 진영 싸움을 상징한다. 나는 앞서 홍콩과 대만의 경우를 한국에 대입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부작용을 낳는다. 한국의 민족주의도 예외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민족주의가 필요하다는 것과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정의되고 관리돼야하는 지는 다른 문제이다. 홍콩과 대만 시민들의 민주정에 대한 열망을 짓밟는 중국의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는 나쁜 것이고 뉴라이트와 그 추종자 혹은 그들의 “특정한 일부 논리”에 공감하는 “경계인의 정체성”을 갖는 이들을 “그런 말도 꺼내지 말라는 식으로 과도하게 공격하는” 한국의 민족주의는 좋은 것이라고 일도양단해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박유하 교수와 같은 이가 그런 과정에서 “흑화”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공론장에서 합의를 유도하거나 학술현장에서 비판적 논의를 하는데 그쳤어야 할 사항을 법정싸움으로 비화함으로써, 일본의 우익보다는 리버럴에 가까왔던 그를 한국의 뉴라이트와 한통속이 되게 만들어 버렸다.

중국에서는 최근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 소분홍 논쟁이 단순한 인터넷 상의 해프닝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미국인이나 일본인과 같이 중국 정부에 적대적인 국가의 외국인 국적자들이 무차별적으로 물리적 공격을 받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소주蘇州와 심천深圳에서 벌어진 일본인 초등학교 피습사건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계획된 공격이라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 소주의 경우 중국인 직원의 용기있는 개입과 희생으로 일본인 모자가 큰 피해를 모면했지만, 심천에서는 일본인 초등학생이 결국 목숨을 잃는 결과를 낳았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 아이의 모친은 일본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다. 중국 정부는 모방 범죄의 확산을 우려하여, 범인들의 신상과 동기에 대해서 일체 정보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이들이 중국의 다년간에 걸친 애국주의 프로파간다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짐작하는데 고도의 추론이 필요하지 않다.

최근 벌어졌던 소분홍들의 다른 온-오프라인 해프닝은 이런 일이 벌어지는 배경에 대한 짐작도 가능하게 한다. 한 중국인 유튜버가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비석에 소변을 보고 이 동영상을 공개하는 일이 있었다. 또, 다른 유튜버는 베이징의 유명 관광지인 원명원圓明園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을 위협하는 행동을 벌이면서 역시 이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정상적이고 평범한 시민들이 아니라 각각 도박과 강간 전과가 있는 범죄자들 혹은 우범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평범한 시민들이 단순히 민족감정에 휩싸여서 무고한 외국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은 “폭력의 절제”를 문화적 근간의 한 특성으로 삼는 동아시아 사회에서 벌어지기 힘든 일이다. 일상다반사로 벌어지는 미국이나 유럽에서의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혐오 범죄에 비하자면, 여전히 이런 범죄의 발생은 극히 제한적이다. 즉, 중국내에서 갈수록 심각해지는 민족주의와 관련한 범죄는, 범죄자들이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방식으로 이익을 얻기 위해서 불법적인 행위를 저지르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민족주의를 구실로 삼는 것에 가깝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야기한 중국 정부의 “과도한 민족주의적 선동”을 긍정하기는 힘들다.

민족주의가 이런 부작용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는 한국에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유사역사학 논쟁이다. 장지연 교수가 말한 “역사적 시간치”들이 민족주의를 중시하는 사람들 중에 없지않다. 앞서 밝혔듯이 우리의 현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근현대의 역사이고, 길게 봐도 조선이나 고려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힘들다. 그 이전이라면 과연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졌던 민족에 대한 의식이 어떤 식으로 존재했는지 알 수 없고, 지금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하물며, 역사 기록 자체가 극히 드물어서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힘든 고대의 상황을 지금의 현실 인식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무망하기 그지없다. 실은 그런 시도 자체가 오늘 우리의 현실 사회에 대한 인식, 특히 자기인식이 충분히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지금의 자신과 우리 민족에게 그럭 저럭 만족한다면, 왜 굳이 우리 조상들을 과도하게 미화해야 할까? 그리고 조상의 일부가 지금은 우리 영토도 아닌 어떤 지역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필요 이상의 상상적 내러티브로 재구성해야 할까?

개인이나 집단이 판타지를 가지는 것 조차 나무랄 수는 없다. 상상력과 호기심, 열정이 뜻밖의 발견을 유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공론장에서 근거가 부족하거나 진위가 의심되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의 작업을 무시하고 공공의 역사 서술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뉴라이트 만큼이나 사회에 해를 끼치는 행위이다. 이런 비이성적 행위들을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고대사나 역사 이전의 일에 대한 문화적 내러티브를 동원해서 전쟁 범죄를 일으킨 경우가 많이 존재한다. 히틀러의 우생학이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슬라브 민족주의, 그리고 히틀러의 피해자였던 유대인들의 시오니즘이 좋은 사례가 된다. 지금 가자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고 중동에서 세계3차대전으로 확산될 수도 있는 전면전쟁을 부추기는 이스라엘의 반인류적 범죄행위는 어디에서 출발했나? 그들의 조상이 무려 2천년전 떠났던 땅을 되찾아서 근대국가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였다. 과거에는 무수히 많은 세계적 지성을 배출하며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던 유대인들이 만들어낸, 현대의 이 편협한 민족주의 서사에 얼마만큼의 상식적 정당성이 존재하는가?

그림 6: 곁방살이로 슬그머니 팔레스타인에 들어와 국가를 선포한 유대인들이 어느새 안방을 차지했을뿐 아니라 심지어 귀퉁이 땅 쪽방의 가자 지구까지 내어놓을 것을 요구한다. 이들의 유일한 근거는 이 땅이 기원전에 멸망한 고대 유대왕국의 영토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민족주의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민족”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와 제도, 관습에 녹아 있는 그 문화적 결과물은 간단한 것이 아니다. 각 시대의 조건과 실질적인 필요가 낳은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실들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확하게 역사속에서 그 인과관계의 전모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장지연 교수의 설명을 빌자면 “우리의 삶과 사회는 울퉁불퉁하고 역사의 경로도 구불구불하다” 따라서 그가 제시하는 “역사리터러시 규칙”중 하나는 “매끄러운 서사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매끄러운 서사를 선호하는 민족주의라는 이념”의 한계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어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한반도에는 한국말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공동체를 이뤄서 살게 됐다. 그리고 조선왕조 시절인 1443년에는 세종대왕의 주도로 문자가 제정됐다. 그런데 현재의 우리는 세종대왕의 한글 제정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것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워왔던대로 어려운 한자를 배울 수 없는 보통 사람들과 여성들의 의사소통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후대의 연구자들이 추론하는 것처럼 한자의 발음을 정확히 표기하여, 새로운 구조가 들어서고 있던 동아시아의 정치적 질서를 조기에 안정화시키기 위한 목적이 더 컸거나, 아니면 당시의 선진국이었던 중국의 문화와 제도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입하고 번역하여, 널리 보급하기 위했던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현재의 우리가 조상들이 만든 한국말과 한글을 일상에서 사용함으로써 각자의 삶을 잘 꾸려나갈 수 있고, 결과적으로 한민족이라는 공동체가 지속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선택할 수 없는 민족과 고향, 가족과 같은 정체성은 우리 각자에게 우연히 주어진 운명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호불호를 가리고, 가치판단을 하는 것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타민족에 대해서 우월성을 갖는 특별한 자랑스러움의 이유가 될 수도 없고, 그 반대로 자기 비하의 근거의 되어서도 안된다. 그렇게 받아들인 현재의 운명안에서 공동체를 이뤄 성실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민족의 바른 의미”이다. 마치 마음챙김(mindfulness)을 위한 명상과정에서 불필요한 두려움의 감정과 고통을 유발하는 과거나 미래의 스토리텔링보다는 현존(presence)에 집중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끝으로, 우리가 대만과 홍콩의 사례대신 주목해야할 것은 베트남의 경우가 아닌가 한다. 베트남은 중국, 프랑스, 미국, 한국을 비롯해서 자신의 국가를 역사적으로 지배했거나 침략한 경험이 있는 국가들에게도 주도적으로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과거의 부채보다는 호혜적으로 상생하고 번영하는 미래가 더 가치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런 역사와 현실에 대한 자신감은 “어떤 민족주의”에서 비롯한 것일까? 한국인들이 일본이나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가와의 미래 관계 설정을 고민하면서 살펴봐야할 사례라고, 오랜 기간 거주하며 그곳 문화를 경험한 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참고자료와 영상
· https://thetomorrow.cargo.site/50

<Tracing China> “17 Hong Kong, Cultural Kaleidoscope on a World Landscape”, Helen F. SIU, Hong Kong University press, 2016

· 台灣首座慰安婦銅像在台南鬧區  馬英九重申日政府道歉賠償
https://www.youtube.com/watch?v=lcG7Lpl9DIE&t=26s

· 南市慰安婦銅像拆了!藍議員要市府安置 黃偉哲回應了
https://udn.com/news/story/7326/8237692

· 「九一八」當天被移除
https://www.hk01.com/台灣新聞/1058775/台灣唯一慰安婦銅像-九一八-當天被移除 台灣唯一慰安婦銅像 

· 我不是江西人,我是阿卡林省人!
https://mp.weixin.qq.com/s/4ommQdGMTLHahGN8f5H3tQ

· Fred Armisen Discovers He Is Actually Korean | Finding Your Roots | Ancestry®
https://www.youtube.com/watch?v=ye7z3ErM4Dw
https://en.wikipedia.org/wiki/Fred_Armisen

· 고려말, 카자흐어,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고려인 청년
https://www.youtube.com/watch?v=xLAeLQWnwnM


· 길치와 ‘시간치’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409182026005


· 爱国流氓下限越来越低,中共都被吓到了|日本|圆明园|爱国生意|小粉红|民粹|司马南|亚人|王局拍案20240911
https://www.youtube.com/watch?v=Qy4rQpV7frc

·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8조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407242032005


· 정다함 <麗末鮮初의 동아시아 질서와 朝鮮에서의 漢語, 漢吏文, 訓民正音> 한국사학보 36호, 2009, 269~305쪽








김유익글읽고, 영상물 보고, 이곳 저곳 쏘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쓴다. 중국인 아내와 광저우 근교의 오래 된 마을에 살면서 주강 델타의 역사와 현재를 공부하고 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국경을 넘나들며 살아봤던 여러 지역과 동네의 정체성을 가진 채 경계인으로 살고 있다. 이국 땅에 정주하고 있지만 어머니의 고향인 남도의 정체성에도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