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4년 7월 1일
49. 남방의 미식美食 여정에서 시작된 문명의 회심回心
- 서평: 마보용馬伯庸의 <남방으로의 미식여정食南之徒>
광저우의 음식인류학자 차오위曹雨선생으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그의 베스트셀러인 <중국고추식문화 역사中國食辣史> 한국판 서문을 썼는데, 한번 읽어봐달라는 요청이었다. 한국 출판사와 저자인 그를 연결시켜준 인연때문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이 서문을 읽고 혹시 기분 나빠하지 않을지 살펴 봐주세요.”
과연 그의 한국어판 서문은 상당히 도발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한국은 본래 고추를 재배하거나 매운 음식을 먹기에 적절한 기후풍토가 아닌데, 왜 한국인들은 매운 음식을 사랑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나름의 가설을 과감하게 제시했다. 그의 통찰은 같은 동아시아권 국가인 일본과 중국의 주류 음식문화 역사와 비교해서 얻어진 것이다. 특히,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는 지역이나 시대별로 매운 음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게 달라지는데, 그는 이런 지역적, 역사적 특성을 고려하면서 한반도인들의 고추사랑 원인을 나름대로 추정해 본 것이다. 여기서는 이 흥미로운 내용을 밝히지 않고, 티저teaser 광고로 남겨두려고 한다. 그의 책은 이 서문이 아니더라도 본래 내용이 매우 재미있다. 무엇보다 논리적 구조와 진행이 흐르는 물과 같아서, 한번 집중해서 책을 읽고나면 그 논리의 흐름을 잊지 않고 내용을 다른 이에게 설명할 수 있다. 올해 아니면 내년 초에 출간될 예정이니 일독을 권한다!
그림 1: 차오위 광저우 지난暨南대학 교수의 저작 <중국고추식문화사> 중국 대륙판에는 검열로 삭제된 “혁명과 고추”부분이 해외 버전에는 모두 포함돼 있다. 번체, 일본어 한국어판이 이런 해외판에 해당한다.
그는 현재 중국의 발효음식 문화에 대한 저술에 몰두하고 있는데, 나도 아시아의 발효음식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터라, 그에게 한국의 발효음식에 대한 이런 저런 정보를 전달한 일이 있다. 그 덕에 그가 나를 딤섬 브런치 약속에 초대했다. 내가 작년 가을 목포항에 가서 찍은 젓갈의 사진을 책에 싣고자 하는데, 동의를 받고 싶었다고 한다. 흔쾌히 응락했다. 물론, 위에 언급한 한국어판 서문의 피드백을 내게 듣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이 딤섬 브런치는 원래 광저우 방송국의 교양 담당 PD A씨가 그를 초대한 자리였다. 딤섬 약속은 최소 인원이 세명은 돼야 그래도 입맛이라도 다실 수 있는 지라 운좋게 내가 합석을 하게 된 것이다. 딤섬 브런치는 근처 구도심 산책을 포함해서 오후의 커피 한잔으로 이어졌는데 광둥을 비롯한 한중일의 식문화와 사회사에 대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이 글은 그런 연유에서 비롯한 것이다. A씨는 광저우 토박이로서 광둥의 식문화를 비롯한 생활문화일반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강했다. 심지어, 스스로 비용을 들여 친구 몇몇과 함께 광둥 식문화를 소개하는 꽤 수준높은 무크지를 발간하고 있다. 차오위 선생에게 자기들이 만든 성과물을 보여줄 요량이었다. 그밖에도 자신이 기획하고 싶은 대담프로그램 하나를 제안했다. 올봄에 출간된 중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보용의 가상역사 소설을 중심으로 마보용과 차오위, 그리고 광저우에 특별한 식당을 열어 퓨젼 중화요리를 만들고 있는 유명한 미국인 쉐프를 한자리에 모아보려는 의도였다.
나는 과거 마보용의 책 서평과 함께 그를 소개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마보용은 전문적으로 가상역사소설을 저술하는 중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는 냉전시대 서구의 첩보소설의 스타일과 중국 역사를 결합한 내용을 소설화해서 큰 성공을 거뒀다. 현장감 넘치는 화면설정이 탁월한 그의 소설 대부분이 드라마로 만들어졌는데, 이 작품들도 크게 성공했다.
그의 소설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내려 놓기 힘든 흥미진진한 플롯과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내가 그의 소설에 주목한 것은 탁월한 오락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양한 장르적 혼종 시도와 역사 공부, 특히 미시사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흥미로왔다. 그는 1차 사료와 전문 연구자들의 역사학 논문도 깊이 파고들었는데,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명나라(顯微鏡下的大明)>이라는 작품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풍부한 지방지地方誌 기술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지방 물산과 인물에 대한 종합적인 서술 자료들이, 지역 가문의 족보, 비문, 현지 주민들의 구술사 등 다양한 자료와 결합돼, 사회사, 지역사, 역사 인류학, 심지어 지구사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이런 연구 흐름에 착목해, 명나라 시기 상업적으로 발달했던 한 지역에서 세금 책정과 납부를 두고 수십년간 벌어졌던 갈등과 민란을 추적해서 책으로 엮었다. 이 작품은 그의 전작과 달리 건조한 문장으로 기술돼 있어 소설이라기보다는 역사서를 현대적 문장과 서사로 재구성한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그의 탁월한 구성력 덕분인지, 소설 수준의 흡인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재의 극적 성격이 전작들에 비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도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다만 나는 비쥬얼과 액션 연출 등이 작위적으로 강해진 드라마보다 원작의 담백함에 훨씬 더 끌렸다.
그의 최근작들을 볼 기회가 없었는데, A씨의 이야기를 듣고 솔깃해서 바로 책을 구매했다. 반면 차오위 선생은 자신은 마보용의 문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담을 고사했다. 결과적으로 그날 딤섬 회합의 최고 수혜자는 나였던 것 같다.
A씨가 이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광둥지역의 고대사를 배경으로 하면서 지역의 미식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고증에 철저하면서 상상력도 뛰어난 마보용이 사서와 이런 저런 고고학적 기록을 재구성해 진지하면서도 흥미있는 서사를 만들어 냈다고 칭찬했다. 과연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그런데 나는 책의 전반부를 읽다가 금새 “A씨가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이 소설의 숨은 이야기 구조를 발견했다. 사실 A씨뿐 아니라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본 한 서평과 작가 인터뷰도 짐짓 모른 체 한 내용이다. 하지만 중국인이라면 아무래도 이게 무슨 얘기인지 모를 수가 없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이제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해보겠다.
때는 한무제漢武帝 집정기인 기원전 2세기, 주인공 탕멍唐蒙은 한무제가 천조국 한나라의 번속국인 남월국南越國에 무력시위를 하기 위해 파견된 군대의 간부이다. 남월국은 지금의 광둥廣東, 광시廣西, 홍강유역의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베트남 북부 지역에 해당한다. 남월국은 중원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중국대륙의 최남단 지역을 정벌하기 위해 파견한 군대가 진나라의 멸망후 독립을 선언하고 세워진 나라이다. 진나라 군대의 장수 자오투어趙佗가 왕이 됐다. 그의 나라는 남쪽으로 내려온 진나라 병사들과 항복한 재지인들을 구성원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자오투어와 진나라 병사들은 발달한 중원의 문물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이곳 생활에 적합한 현지의 관습을 받아들여 중원과 변방의 문화를 융합했다.
이러한 융합은 현지의 권력 구조에도 영향을 끼쳤다. 즉, 왕실이하 중신과 귀족 관료들은 모두 진나라 출신들과 현지인들이 권력을 분점하는 형태를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남월국의 국왕도 동시에, 백월百越족의 대추장이라는 이중적 신분을 가지고 있다. 이곳 백성과 귀족들은 자연히 현지인들을 중심으로 늘 “한나라의 소위 북인北人들” 그리고 중원의 왕조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 중원의 간섭과 구속을 피할 기회만 생기면 남월국 국왕이 스스로 천자라 칭하고 독립을 선언하길 원한다. 자오투어가 죽은 후, 3년이 지난 시점의 현국왕인 그의 손자 자오모趙昩는 능력도 부족하고, 권력욕도 별로 없다. 하지만, 재지인 좌상左相 청위橙宇 세력의 요구로 독립을 선포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반면 진나라 출신의 후손인 우상右相 뤼자呂嘉와 그의 수하들은 이런 생각을 반대한다. 그들은 굳이 한나라와 맞서서 전쟁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현상태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챙기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라고 생각한다. 남월국의 이런 “불온한” 움직임이 한나라에 전해졌기 때문에, 한무제는 파병을 결정한 것이다.
그림2: 남월국 출토 유물. 옥으로 된 무희 형상. 한나라 여성의 복색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는 약간의 무력시위를 하는 것이 목적일 뿐, 실제로 정예 군대를 파견해서 남월국을 정복할 생각은 없다. 중원에서 남월국으로 가는 길이 높고 험한 남령南嶺(혹은 오령五嶺) 이라 불리는 산악지대로 막혀있기 때문이다(그래서 광둥지역을 영남嶺南지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의 영남이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또, 덥고 습한 산악과 습지로 구성된 밀림 지대인 남월국의 이국적 자연 조건은 건조한 평야지대의 중원인들에게, 알 수 없는 풍토병에 걸리거나 맹수, 독사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보급로를 확보하기도 어려운, 위험천만한 미지의 세계이자 두려움의 대상일뿐이다. 탕멍은 한나라의 최남단인 판양현番陽縣의 현령으로서 (강서江西성의 한 지역), 실제로는 자신이 다스리는 고장에 사는 농민들에 불과한 오합지졸 군대를 거느리고 이곳에 파견된 신세이다. 영리한 그는 애초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적당히 농땡이를 부리다가 자기 병사들이 건강하게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고있다. 그런데, 그는 천성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환경, 지형지물과 인문에 대한 관찰력과 추리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식탐과 미식에 대한 갈망 또한 적지 않았다. 그래서, 시종일관 남월국의 자연이 제공하는 식재료와 음식문화를 탐구하는 것에만 몰두한다.
우연히 그의 부대와 맞닥뜨린 남월의 특공대를 생포하게 되는데, 그들을 심문하여 남월국이 한나라에 공동으로 맞서기 위해 이웃 민월閩越국(지금의 푸젠福建성 지역)에 동맹을 요청한 사실을 알게 된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한나라 조정은 단순한 무력시위가 아니라 남월을 완전히 복속시키거나 점령하기 위해서 수도 장안에서 젊은 야심가 관료인 좡주庄助를 파견하게 된다. 그는 탕멍을 부사로 삼아 한나라의 사신으로 남월국을 방문하기로 한다. 남월국의 도성에 도착한 이들은 우연히 나룻터에서 젓갈과 장류를 파는 소녀 간저甘蔗를 만나게 되는데, 탕멍은 간저가 가져온 구장枸醬이라 불리는 신비한 발효장을 맛보고 이 장의 유래와 제조법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들은 남월국에 들어가 국왕 자오모와 세자를 만나고 남월국의 정치적 상황을 파악하게 되는데 한편 선왕인 자오투어의 죽음에 독살 의혹이 있을뿐 아니라, 간저의 어머니가 당시 궁중요리사였으며, 자오투어의 죽음에 책임을 지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게 된 사실도 알게 된다. 그래서 어린 간저가 고아로 자란 끝에 행상이 된 것이다. 간저는 탕멍에게 어머니의 결백함을 증명해달라고 부탁하는데, 한편 남월국 조정 내부의 정치적 암투의 진상을 파악해 이를 약점삼아 이용하려는 좡주도 탕멍에게 간저를 도울 것을 명한다.
탕멍은 이 과정에서 간저의 아버지가 실은 북쪽에서 온 한나라 상인으로 구장도 실은 원래 이름은 촉구장蜀枸醬으로 남월국이 아니라 서남지역 촉蜀(지금의 쓰촨四川성)으로부터 예랑국夜郎國 (지금의 구이저우貴州성 일대)을 거쳐 수입된 물품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서남지역에서 수운을 이용하여 남월국으로 왕래하는, 한나라 조정과 중원에는 알려지지 않은 경로가 있음도 자연스럽게 파악한다. 원래 한나라의 상인들은 북쪽 산악지대를 통해 남월국을 드나들며 청동기와 철기를 비롯한 중원의 선진문물을 가져오고, 바닷길을 통해 동남아시아와 서역으로부터 들여온 향신료 등을 다시 중원으로 판매하는 무역중개업이 발달해 있었다. 하지만, 십수년전 자오투어가 이를 금지시키면서, 한나라 상인들은 나라 밖으로 쫓겨나게 된다. 이들은 남월국과 한나라의 경계까지만 물품을 배송하고, 남월국의 상인들이 중개무역을 독점하게 됐다. 이를 농단하고 있던 것이 바로 진나라 출신 남월인의 우두머리 격인 우상 뤼자의 세력이었다.
자오투어는 노쇠해지면서 자신과 함께 북쪽으로부터 내려왔던 진나라 출신 병사들이 하나둘 숨을 거두는 가운데, 자신의 후계자인 자오모도 정쟁속에서 나라를 이끌만한 동량이 되지 못함을 깨닫고, 외로움과 향수병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몰래 특사를 파견해 고향(허베이河北성의 성도인 실자좡石家莊 지역)으로부터 특산인 대추나무 묘목을 가져오게 명한다. 이 사실을 알게된 몇몇 노병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생을 마감하게 해줄 것을 청하는데 그 자신도 고향생각에 빠져있긴 하지만, 만일 이를 인정하게 되면, 남월 현지 세력이 진나라 출신들의 정체성을 의심하고 비판하여, 남월국의 권력 균형과 기반이 무너지게 될 것을 염려하였다. 따라서 이들의 청을 물리치고, 한나라 상인들의 남월국 출입도 금지시키게 된 것이다.
탕멍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숨은 능력을 한껏 발휘하지만, 남월국의 양대 정치세력, 특히 청위의 위협과 모함을 받으며 목숨을 잃을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청위는 다양한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현지인들을 선동하고 이들이 한나라 사신들을 위협하는 시위와 집단행동을 벌이게 하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간저 등의 도움을 받아서 자오투어뿐 아니라 당시 현장에 있었거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던 모든 이들이 비밀리에 암살 당했음을 증명했는데, 이들은 자오투어가 사망한 날 현장에 있던 사람중 한명인 청위가 암살 수괴라고 지목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한 공으로 좡주와 탕멍은 남월국의 세자를 인질로 삼아, 장안으로 금의환향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귀경길에 자신들의 최종 결론에 착오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당시 대신들이 남월왕을 암살한 결정적 계기는 자오투어가 다시 한나라 상인들의 남월국 출입을 허락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나라와 각을 세우던 청위뿐 아니라, 이 결정에 의해서 실질적 손해를 보는것은 중개무역 수익을 독점하던 뤼자쪽이었기 때문이다.
탕멍은 출세욕이 없는 인물이기에 당초 남월국에 사신으로 파견되는 것도 마다하였고, 장안으로 좡주를 따라가서 공을 치하 받는 것도 사양하려 했다. 그저 자신이 다스리는 판양현으로 무사히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의 추리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마음을 바꿔 장안에서 황제를 알현할 기회를 얻고자 한다. 그의 목적은 촉구장을 조사하는 동시에, 간저의 아버지를 만나 그녀의 소식을 전해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황제에게는 중원에서 촉과 예랑을 거쳐, 남월국에 이르는 길을 확인하겠으니 자신을 황제의 특명으로 파견해달라는 청을 한다. 황제의 군대가 중원에서 직접 남월국으로 진격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겠다는 핑계였다.
그는 일년에 걸쳐 예랑을 헤맨 끝에 촉구장의 생산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이를 개발한 간저의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뜬 뒤였다. 그리고 촉과 예랑을 거치는 험도는 큰 규모 군대의 진격로로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도 직접 확인하게 된다. 그는 예랑국에서 강을 따라 남월국에 이른 후에, 장안으로 돌아갈 마지막 여정을 계획한다. 하지만, 남월국에 도착했을 때, 뤼자의 음모로 이미 간저가 암살됐음을 알고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뤼자는 자오투어 암살의 마지막 실마리를 쥐고 있던 간저를 살해해 후환을 없애려 한 것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그로부터 23년이 지난후 한무제의 군대가 남월국의 성도로 진입하기 직전의 마지막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군대를 이끄는 사령관은 향도이자 부장으로 따라온 탕멍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지 물어본다. 그는 뤼자를 생포해 포로로 삼을 것과, 간저의 묘역을 파괴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탕멍은 23년전 남월국을 떠나 장안으로 돌아온 후, 황제에게 자신이 탐험한 경과를 보고하며 또다른 청을 올린다. 자신을 다시 촉과 예랑으로 파견해서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아무도 원치 않을 임무를 자청한 그는 20여년만에 임무를 완수하게 된다. 그 결과로 한나라의 군대가 남월국을 직접 공략하고 멸망시키는 결과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림3: 탕멍이 탐험을 하기전 한무제에게 설명하기 위해 그린, 서남지역을 통해 남월로 통하는 길의 개념도
이 소설은 사마천 <사기史記>의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뼈대로 하여, 디테일을 상상하여 만들어 낸 작품이다. 사기의 해당내용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대부분 남월국이 아니라 서남지역의 여러 부족 국가들과 한나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와 남월국의 관계와 한나라가 남월국을 멸망시키게 된 계기가 실제로 촉구장과 촉에서 남월국에 이르는 길을 연 탕멍이라는 인물을 매개로 하고 있음도 기록하고 있다.
중원의 제국, 한나라와 지금의 광둥성에 해당하는 남월국의 관계에 흥미를 가질 한국인 독자들이 많지 않을듯해서 최대한 간단하게 이 소설의 줄거리와 핵심을 설명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몇가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역사적 사실을 알고 보면, 남월국과 한제국의 관계가 남의 일로만 들리지는 않을 수도 있다. 서울대 국사학과의 권오영 교수는 남월국과 위만조선의 역사적 거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바 있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후, 진시황이 남월지역을 평정하는데 성공한 시기에, 진나라에게 멸망당한 연나라의 장수 위만도 만주 지역인 조선 땅으로 도망치게 된다. 자오투어가 남월국을 세웠던 것처럼, 위만과 그와 함께 조선으로 온 군대도 현지인 조선 추장을 쫓아 내고, 위만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된다. 이 두나라는 딱 100년간 명맥을 유지했는데, 한무제가 파견한 군대에 의해 차례로 멸망하고 한무제는 이들 지역을 직접 한나라의 통치령으로 두어 군郡을 설치하게 된다. 지금의 광둥, 광시와 베트남 북부지역에 7개의 군을 설치했고, 지금의 만주와 조선반도 북부에 해당하는 지역에는 4개의 군을 설치했다. 그렇게 보면 신기하게도 지금의 광둥, 광시 지역과 동북삼성, 그리고 베트남 북부와 조선반도의 북부는 중원의 중화제국과의 관계로 볼 때 쌍둥이 같은 역사를 가진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거주하는 곳이 바로 이 남월국의 수도가 위치해 있었으며 2천년 넘게 광둥성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고도古都 광저우廣州지역이다. 이곳에는 남월의 분묘와 궁궐터가 이미 오래전에 발굴되어 문자가 새겨진 죽간을 비롯한 다양한 유적과 유물들이 당시 번성했던 남월국의 현황과 중원과 현지 문화의 융합성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한국의 고고학계에서도 당연히 위만조선의 궁궐터나 분묘가 발굴되기를 기대하겠지만, 중국 둥베이와 북한을 직접 탐사할 수 없는 입장에서는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남월국의 멸망을 목전에 둔 소설의 마지막 순간을 그린 장면이 어쩐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이 소설을 보면서 정말로 등골이 오싹해지거나 큰 불쾌감을 느낄 사람들은 따로 있다. 바로 대만 주민들이다. 이게 앞서 말한 이 소설의 숨은 이야기 구조이다. 이 소설은 현재 중국과 대만의 정치적 관계를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보용은 영리하게도 자오투어를 비롯한 진나라 파병세력을 대만으로 도망쳤던 장개석과 국민당, 그리고 이들을 따라 대만으로 이주했던 대륙출신들인 소위 외성인外省人들에 비유하고 있다. 한때 이들에게 지배당했으나 현재는 정권을 차지한 민진당 세력과 그 지지자들이 바로 현지인인 본성인本省人에 해당한다. 본성인들은 주로 대륙의 푸젠성 출신으로 명나라 말기부터 청나라 시기까지 삼백년에 걸쳐 서서히 대만으로 이주했던 토박이들을 의미한다.
마보용은 현실정치와 관련된 직접적인 표현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현재 양안관계를 빗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몇가지 중요한 키워드들이 이 소설에 등장한다. 첫번째는 한나라 조정이 “실을 양보하고 허를 지킨다는(讓實而守虛)” 천하 경영의 방략이다. 이는 전통시대의 종주국-번속국 관계와 조공무역 체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중국 공산당 정부는 대만과의 관계에서도 같은 정책을 사용해왔다. 특히, 대만에서 국민당의 마잉지우馬英九 정부가 집권하던 시절, 대륙의 시장을 내어주는 방식의 경제 협력과 민간교류를 크게 활성화시켜서 대만에 큰 경제적 이익을 안겨줬다. 대신 대륙과 대만의 민족적, 문화적, 그리고 대외적인 국가와 영토의 일체성 integrity을 확인시키고, 이에 대한 대만인들과 대만 정치권의 동의를 얻는 방식을 취한 것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대만은 현재도 정치적으로 국민투표를 통해서 의회와 행정권력을 선출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내정에 있어서는 중국의 직접적 간섭을 받지 않고 있지만,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독립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를 종주국과 번속국의 관계에 빗대어 볼 수도 있다.
또다른 키워드는 여우도 죽기전에 고향쪽으로 머리를 돌린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이다. 이는 대륙출신 외성인 1, 2세대의 대륙에 대한 향수와 정체성의 혼돈을 의미한다. 반대로 대만에서 출생한 외성인 후대와 본성인들의 관계, 그리고 본성인들의 외성인들에 대한 의구심의 표현도 적확하게 비유하고 있다. 특히 청위 세력이 현지인들을 선동하여 한나라 사신과 북인들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과정이나 진나라 출신들의 정체성과 정치적 충성심의 우선순위가 중원에 있는지 아니면 남월국에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모습에서 대만인들의 정체성 갈등과 이를 기반으로한 정치적 주도권 다툼의 양상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외성인들도 이미 3세 이상의 경우에는 대륙에 대한 감정이 선대와 같지 않기 때문에, 대만의 청년세대들이 이제는 조상의 출신지와 무관하게 대륙에 대해서 문화적, 정치적으로 위화감을 느끼는 현실도 다르지 않다.
한국에 빗대자면 “노회하고 부패한 국민의 힘 원로 정치인”들을 연상시키는 “올드한 스타일의” 국민당 정치인들과 청년 세대와 본성인들의 지지를 받는 민진당의 양당구조가 소설 속 우상 뤼자와 좌상 청위 세력의 정치적 암투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던 대륙이 양보한 소위 실을 챙기던 세력이 바로 국민당 정치인들과 그와 결탁한 경제집단임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즉, 대만의 보통 사람들 보다는 소수의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이나 구세대가 과실을 챙겼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청년 세대가 이런 구 정치세력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정치사와 흥미로운 풍속사를 결합해 현실 정치를 빗댄 마보용은, 하지만 소설의 결론을 통해 자신의 정치관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결정적인 논리적 오류와 패착을 보이는 실수를 범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탕멍의 회심”이 바로 그것이다. 탕멍은 이 소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상사인 좡주와 대립하며 반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데, 어찌보면 장자의 소요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중앙에서 출세를 도모하기보다 자신의 근거지에 안빈낙도하며 자신과 백성들의 생활, 특히 먹거리를 챙기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는다. “음식은 사람을 속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음식앞에서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지요.” 이것이 그의 “실용주의” 혹은 지금으로 치자면 “소극적인 경제중심주의”에 해당할만한 “생활중심주의” 슬로건이다. 그래서 같은 의미로 한과 남월국의 관계에서도 한은 체면과 권위를 지키고, 남월은 실속을 챙기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이런 생각을 품게 된 것은 어린 시절 겪었던 비극적 가족사에서 비롯한다. 탕씨 일족은 중원 지역에서 자신들의 토지와 작은 성채를 보유한 세력이었는데, 기근이 들자 문을 걸어 잠그고 곡식창고를 지키며 버틴다. 성밖의 소농들이 유민遊民화하여 곡식을 약탈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어린 탕멍은 부모의 명을 어기고 어느날 성을 찾아온 유민 남매에게 온정을 베푸는데 이것이 화근이 된다. 탕멍의 부모는 이들 남매가 탕씨 일가가 곡식을 나눠준다는 소문을 퍼뜨릴 것을 염려하여 주변의 세족들과 연합해 이들 남매를 잡아서 없애려한다. 주변의 세족들은 탕씨 일가를 속여 방심한 이들을 학살하고, 식량을 약탈해 간다. 와중에 운좋게 홀로 목숨을 건진 탕멍은 우연히 이들 남매를 다시 조우하게 되는데 그들은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마지막 식량을 탕멍에게 내어주고 엄동설한에 목숨을 잃게 된다. 탕멍은 가까스로 군郡을 다스리는 태수太守를 만나 탕씨일가를 몰살한 지역 세족들의 만행을 고발하고, 기지를 발휘해서 이를 입증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태수는 이들 세족을 치죄할 시에 “대국大局”이 혼란스러워질 것을 염려하여, 탕멍은 원수를 갚는데 실패한다. 어머니의 고향인 남쪽지역 판양으로 내려와서 친족들의 기대대로 지방 현령이 되지만, 그는 대국을 중시하는 중앙 정치에 휩쓸리는 대신 자신의 근거지에서 백성들의 삶을 돌보며 보신하는 것이 최상의 치세술이라 굳게 믿고 이를 실천하며 살아 온 것이다. 사실 탕멍의 이런 태도는 지금도 대부분의 보통 중국인들이 마음속 깊이 간직한 삶의 신조에 가깝다. 자신의 가족과 주위 사람들이 평안과 건강을 유지하기(安康)를 기원하고, 이를 위해 세상이 평화롭기를 기원한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태평천하”적 세계관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가 어찌하다 원치않게 말려든 남월국 사신행에서도, 어느 순간 목숨을 걸고 어린 소녀 간저를 돕게 된 이유는 사실 왕조의 성공과 개인적 양명揚名이라는 “대국大局적 사고”보다는 과거 자신을 구해준 남매를 연상하게 만든 간저에 대한 동정심이라는 “사사로운 정”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또 이런 결정을 안팎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 촉구장에 대한 그의 호기심을 이유로 든다. 한나라가 남월을 정벌하려는 “대국적 야심”에는 여전히 큰 관심이 없지만 촉과 예랑국 경로를 살펴보는 일년간의 모험을 감행한 것은 간저의 아버지의 행방과 촉구장 제조법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남월국에 당도해 간저의 운명을 알게된 그는 결정적 “회심”을 하게 된다. “사사로운 정”으로 원수를 갚기 위해 “대국적 정세”를 이용하려고 결심한 것이다. 여기서 이 작품은 논리적, 정서적 파탄에 이른다. 간저를 희생시킨 뤼자를 징치하기 위해 한나라의 “대국적 야망”을 이용하려 한다는 논리나 이를 위해 20년 세월이 넘는 자신의 청춘과 안위를 희생한다는 생각은 태평천하에 대한 기원도, 실용주의도, 낭만주의도, 국가주의도 아닌 궤변으로 들릴 뿐이다. 또, 그가 한 소녀의 억울한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한제국이 남월국을 멸망시키면서 결과적으로 남월국의 지배층뿐 아니라 도성에 살던 수많은 무고한 백성들이 전쟁의 참화속에 도륙당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굳이 외면하기로 한 판단을 납득할 수 없다.
마보용이 이런 궤변을 옹호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실제 남월국이 한제국에 의해 멸망하게 된 동기와 경위가 기록된 사기의 “역사적 사실”일 터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사기에는 구체적 내용이 없고, 오로지 그의 상상력에 의해 입체적으로 빚어진 탕멍이라는 인물의 성격과 심리가 갑자기 돌변하는 상황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여기서 오히려 마보용의 감춰진 의도가 드러나는 부분은 탕멍이 여행중에 관찰한 지리와 문물을 조정에 보고하기 위해 끊임없이 지도와 기록으로 남겨두는 과정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태어난 마을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생애를 마친 전통사회에서 지도는 일종의 국가급 군사 기밀에 해당하는 정보였다고 한다. 탕멍이 서남지역을 통해 남월국에 이르는 경로와 중원에서 남월국으로 통하는 산악지대에 대한 지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중국 대륙의 지리적 판도가 차츰 고대인들의 심상에 자리잡는 것을 묘사한 대목들이 소설속에서 눈에 띈다. 나는 여기서 마보용의 속내가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바로 중국인들이 진한시대 이래 2천년이 넘는 통일과 분열의 역사를 거듭하며 간직하게 된 일종의 종교적 신념에 가깝다는 “대일통 사상”이다. 마보용이 이런 소설적 서사와 결론을 완성하면서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실제 의도이다.
나는 고대사와 고고학 탐사물, 그리고 작가 자신의 광둥 생활 경험을 토대로한, 꽤 흥미로운 노작임에 틀림없는 이 작품을 소설로서 여전히 추천할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의 전작들처럼 극화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과 비판, 토의가 가능한 것과 달리, 영상물로 제작돼 시청자에게 전달될 경우 그의 굴절된 의도와 논리적 오류가 그대로 주입될 것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이제 이 글의 진짜 주제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것은 왜 젊은 중국 작가가 이렇게 의도적으로 논리적 오류를 범하게 됐는지에 대한 내 나름의 추정이다. 독자들의 예상과 달리 나는 중국인들의 애국주의, 민족주의 정서나 대일통 사상”을 비판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실은 이렇게 외부에서 중국인들을 비판하는 자유주의적 여론과 관점 때문에 중국 작가와 지식인들이 “가스라이팅” 당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마보용은 뉴질랜드에서 수학한 유학파 작가이고, 귀국후에도 다국적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전업 작가가 됐다. 그의 작품도 실제 스타일과 플롯 구성의 상당부분은 중국 고전이 아니라 현대 서구 문학 기법에 의존하고 있다. 그의 출세작인 <장안24시> 소설 원작과 더 크게 성공한 드라마는 미국 액션 드라마 <24시>의 형식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기도 하다. 즉, 서구인들의 관점과 이념에도 꽤 익숙할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는 2019년 홍콩사태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최근 몇년간 양안 갈등을 두고 벌어진 미국을 중심으로한 서구 사회의 중국 정부와 시진핑 비판에 민감한 정서를 갖게 됐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서구사회와 대만 정부는 특히, 중국이 “자유민주주의” 정치체를 가진 대만을 무력으로 위협하고 중국과 대만의 통일을 중국의 최대 국가 과제중 하나로 내세우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다. 통일될 경우, 홍콩의 경우처럼 “일국양제”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대륙의 권위주의 정치제도가 일방적으로 강요될 것이라는 우려가 그 근거가 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를 결정한 독재자 푸틴의 태도가 특히, 중국의 강성 정치 지도자로 알려진 시진핑의 이미지에 겹쳐지면서, 이러한 심리적 불안감을 강화시키고 있고, 시진핑 정부하에서 일정 정도 고무된 대륙의 “애국주의” 이념 열풍이 이 그림을 뒷받침한다.
한국에서도 위와 같은 시나리오와 상황설정을 근거로 양안간 전쟁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는 평론가들이 적지 않게 등장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예측이 상당부분은 미국 정부와 군부의 프로파간다에 의한 여론 조작 결과라고 생각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대륙과 대만 양측의 여론은 모두 여전히 “현상유지status quo”를 지지한다. 즉 남월국과 한제국의 관계처럼 대만은 실을 챙기고, 대륙은 체면을 유지하는 선에서 타협할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이 벌어질 것을 바라지 않는다. 특히, 미국이 여전히 아시아 지역에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전쟁의 발발은 미중 양측 모두 큰 피해를 불러 올 수 있고, 대만이나 중국 연안지역과 또다른 유관 분쟁지역인 한반도에서도 심각한 인명피해와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대만의 새로운 총통으로 취임했던 라이칭더賴清德의 과거 연설을 보면 대만과 중국 양측의 정치적 레토릭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대만은 실질적으로 주권을 유지하고 있는 독립국가이기 때문에, 굳이 외부에 주권 독립을 선언할 필요가 없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야말로 중국과 대만 여론 양측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언설이다. 다만 그는 취임식에서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대만의 독립 주권의지를 강조했는데, 과거의 수위를 넘는 그의 발언에 불만을 품은 중국 정부가 대만을 둘러싼 전면적 군사훈련으로 이에 “화답(?)”했다. 이들이 갖고 있는 현실적 균형감각을 이해하지 못하면 매우 위험한 상황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양측의 민심을 의식한 “짜고치는 고스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림4: 대만의 신임 총통 라이칭더는 대만이 이미 독립주권국가이기 때문에 굳이 다시 이를 외부에 선포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한다. 중국과 대만 모두 당분간은 현재의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현재 중국이 정말로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의 조건이 되는 것은 대만이 공개적으로 대외적 주권 독립 선언을 하고, 미국이나 EU를 비롯한 서방세계에서 중국과의 당초 약속을 어기고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상황뿐이다. 소설속에서 남월국이 스스로 칭제하고 한제국에 독립선언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통해서 대만 정부와 대만 시민들이 얻을 현실적인 이익이 거의 없다. 그냥 독립 주권 선포라는 일종의 “내셔널리즘 뿜뿜”하는 심리적 쾌감이 유일한 소득이다. 대만사람들은 본성인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민족주의를 형성했는데, 따라서 자신들을 더 이상 문화적으로 중국인Chinese이나 화인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월국의 원주민 정치세력이 이런 생각을 품었던 이유는 한나라 천자의 군대가 당시 유일한 통행로로 알려졌던 험준한 남령 산맥을 넘을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 미국이 보장하는 군사적 억지력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은 미국이 예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빠르게 고립주의 정책으로 전환을 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 대만을 침공할 수 없다.
중국은 대일통이라는 민족주의 이념과 별개로 대만을 완전히 독립시켜 줄 수 없는 분명한 지정학적 이유가 있다. 대만은 중국이 남쪽 바다로 나가는 길목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소위 남중국해라 불리는 해상 영토의 상당부분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실질적인 필요에 의해서이든 대국의 영토적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이든 이곳을 미국과 일본 등 적대적 국가의 품안으로 일방적으로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마보용이 굳이 자신의 본심을 감추고 논리적 곡예를 펼쳐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알게 모르게 중국의 청년지식인들이 서구 자유주의의 다양한 가치들을 내면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 자유주의 체제는 “자유민주 대 권위주의”라는 이념적 프레임을 통해서 대만 정치체제가 대륙보다 우월하고 선진적이라고 규정한다. 여기에 시민과 유권자의 정치적 자유, 언론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가치, 강자의 권력보다는 약자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도덕적 가치관을 통해서, 대만 시민의 독립 추구의 자유가 대륙인민들의 역사적 요구, 지정학적 요구보다 우선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마보용은 서구 근대문명 담론에서 만들어진 “권력과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근대 지식인상”에 대한 자의식 때문인지, 중국 국가가 주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민족주의나 지정학적 요구로 서구인들의 자유주의 사상에 의한 비판을 방어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림 5: 중국지식인들은 정부편에 서서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조언하고 개입하는 전통사회 지식인의 역할과 권력과는 거리를 유지하고 독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현대사회 지식인의 입장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한다. 중국의 대표적 지식인인 칭화대학교 왕후이 교수
사실 이런 주장은 일방적인 가치 판단일뿐, 도덕적으로 우월적인 주장이라고 말할 논리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여기서 유일한 보편가치라 할만한 것은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상호간에 “실속과 체면”을 보장하는 것이고, 개별적 차원에서 “실용주의”를 중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만의 민족주의, 대륙의 민족주의, 대일통 사상 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이고,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중시하는 “태평천하”에 대한 염원에 가까운 생각일 수 있다. 마보용은 시종일관 탕멍의 발화를 통해 이런 가치를 중시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갑자기 결론에서 이 가치들을 “대의”로 퉁쳐 버리고, “대일통”의 욕망을 “사사로운 정”으로 포장한 채 서구 자유주의의 방어선을 과감히 돌파하면서 자폭해 버린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런 논리적 왜곡은 서구 사회에서 먼저 도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는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경쟁하는 가치들속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보편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평화를 추구하려는 노력”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가 유일하게 우월한 정치체제”이기 때문에, 대만의 일부 시민이나 정치세력이 요구하는 것과 같이 그들의 주장을 “정의나 선”으로 단정하면서 한편으로는 단지 상대적 강자이자 권위주의 정치체라는 이유 때문에 중국 정부와 정치지도자의 목적과 의도를 무조건 악마화하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만을 통일해야 한다는 그들 나름의 합리적이고 정당한 이유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불합리한 가설은 마치 시진핑 개인의 변덕에 따라서 중국 정부가 대만에 대한 침공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어떤 우연적 사건이 큰 사건의 출발점이 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 필연적인 조건들이 조성된 상태에서 계기가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더우기, 우리가 중국 정부의 태도와 논리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이 대외정책이나 소위 “중대 이익”과 관련한 그들의 메시지와 입장은 일관돼 있었다. 그들이 설정한 “레드라인”도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이 분명하다. 러시아와 푸틴의 사례를 들어 중국의 미래 행동을 예측하려는 것도 논리적인 비약이다. 두 정권은 권위주의 체제라고 퉁치는 것외에 거버넌스에 별다른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현실적인 판단, 혹은 정치적 가치 판단도 아닌 독재자 개인의 심기가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안위를 결정하는 정치적 시스템이라면 당연히 나쁜 정치 체제인데,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 현대통령의 부인이나 그 부부의 어드바이저라는 한 “유사무속인”의 변덕이 지금 한국 사회를 빈대떡 뒤집듯이 혼란으로 몰고 가고 있다. 권위주의 일당독재 국가인 중국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한국의 상황이다.
나는 대만과 중국의 시민들 그리고 그들의 정치지도자들이 내세우는 이유와 가치들이 모두 나름의 합리성과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대외적 주권 독립을 주장하는 근본적 이유인 “대만민족주의”나 이들이 일본의 식민 통치시절 경험을 자신의 새로운 민족문화 구성 요소로 긍정하는 태도조차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만 본성인과 청년들에게 근대적 민족주의 의식이 싹튼 것은 1949년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이주해 온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대만 본성인들 중 일부 엘리트 층이 중원 왕조에 대한 충성심과 일종의 한족 민족주의 의식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대만 사람들중 극소수에만 해당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가치들이 일방적으로 우월성을 보장받아야 할 보편적인 원칙은 없다는 점에서, 한쪽을 편드는 대신 평화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지지할 뿐이다.
홍콩 문제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전 천안문 사태 35주년을 계기로 2019년 홍콩사태를 회고하는 많은 국내외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홍콩에서는 과거에 천안문 사태 추도 기념행사가 허용됐지만, 2019년에 천안문 기념행사가 대규모 시위로 이어지면서 이와 관계된 공개적인 활동은 규모에 상관없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나는 홍콩과 서구 언론의 보도를 특히 눈여겨보고 당시의 상황을 시간순으로 복기하는 내용들을 살펴봤다. 또, 광둥어로 진행되는 친민주 계열과 친중국 계열의 다양한 유튜브 방송을 듣고 비교해 봤다. 이들중 상당수는 이미 영국을 비롯한 서구세계의 홍콩인 이주 지역에서 제작되고 있다.
이중, 가장 인상적인 보도는 3년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사회로 복귀한 홍콩청년들의 후일담이다. 당시 고등학생들이었는데, 이제 생계를 유지하거나 학업을 지속하려는 등 사회로 복귀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으로 이주해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활동가로서 적극적 반중 정치 활동을 벌이고 있는 저항 지도자들의 상황과도 비교가 됐다.
이들의 서로 다른 주장과 과거의 상황을 복기해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홍콩사태와 지금의 상황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일방에 책임을 돌리기 어려운 “역사적 비극”이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마치 대만의 현상태와 마찬가지로 당시 홍콩 사태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은 모두 나름의 정당성을 가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중국 정부의 입장을 살펴보자. 중국 정부는 한번도 홍콩 시민들에게 “민주주의 체제”와 이에 상응하는 수준의 자유를 약속한 적이 없다. “고도 자치”를 보장했을 뿐인데, 그것은 반환 시점의 수준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홍콩사태에서 중국 정부의 역할을 “악”으로 규정하는 관점에는 항상 어떤 전제가 깔려 있다. 즉, “홍콩의 자유화와 민주화가 시범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홍콩의 변화는 중국내의 광둥성 등 인접 지역 혹은 상하이와 같이 대외 개방도가 높은 지역의 변화를 가져 올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언젠가 중국 전체의 자유민주화를 가져오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와 전제를 말한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이래, 우리는 항상 특정 체제를 이상적 모델로 삼아 역사가 발전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홍콩과 중국을 바라보아 왔다. 그래서 그런 기대를 저버리는 시진핑 집권 이후의 중국 정부와 그들의 홍콩 사태에 대한 대책을 대체적으로 부당한 것으로 규정해왔던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중국 사회에서 일정한 자유도의 증가가 필요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공화주의 원칙에 충실한 정치적 분권화와 민주적 주권자 권리 강화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 속도와 폭, 그리고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중국 정부와 그 인민들의 몫이지, 우리가 그것을 일방적으로 지도할 권리는 없다.
그래서 홍콩에서 벌어진 혼란스러운 사태 이후, 중국 정부의 과도한 대응을 현상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보수적 태도 자체를 불의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 2010년 이후 미국이 중국과의 체제 경쟁을 전제로 다양한 압력을 가하기 시작한 상황이나 홍콩이라는 자금 유동의 채널을 두고, 중국 정부 내부권력층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실속에서 중국 정부가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비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다.
두번째는 홍콩시민들의 저항과 그중에서도 일부 청년들의 불법적 행동이다. 특히 후자의 행동과 주장에는 상당한 과격함과 도를 넘는 측면이 있었는데, 나는 청년들의 정치적 열정에 지나친 냉정함과 차분함을 요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행동에 불법성이 있었다고 해도, 사회질서 유지라는 도덕적 잣대와 사회의 큰 변화를 요구하는 젊은이들의 이상주의적이고 치기어린 충동이 부딪힐 때, 절제만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특히, 홍콩 청년들이 학교에서 배운 자유주의 세계의 가치관과 현실의 보수주의 사회제도 사이에서 정신적 아노미에 빠진 것을 온전히 그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홍콩의 “평화적 시위”에는 최대 2백만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들중에는 원래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중국 정부에 반대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이 저항과 시위에 동참한 것은 사실, 홍콩 정부에 대한 불만때문이었다. 그래서 시위대의 다섯가지 요구 중에 홍콩행정 장관을 직접 선거로 선출하게 해달라는 사항이 가장 높은 우선순위로 제시된 것이다. 홍콩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그래서 홍콩 정부 당국에 있다. 그리고 홍콩 정부 당국이 이런 무능함을 보인 이유는 정부를 구성하는 홍콩의 주류 정치엘리트들이 식민지 지배층의 도구 노릇을 하는데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이 홍콩 시민들의 의지와 이익을 대변하는 책임있는 존재들이었다면, 베이징의 입장과 시민들의 요구를 최대한 중재해서 일정한 합의를 이끌어 낼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원래 홍콩시민이 아닌 영국 식민정부의 지시에 우선적으로 귀기울이던 사람들이고, 이제 그 윗선이 베이징으로 바뀌었을뿐이다. 홍콩 시민들의 “고도자치”는 각 계층 정치엘리트들의 자치성에 기반해야 하는데, 홍콩은 한번도 그런 책임감 있고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만큼 경험이 풍부한 상위 엘리트들을 키워낼 기회를 가진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엘리트들을 키워내려면 최소한 한세대, 즉 30년의 경험이 축적돼 있었어야 하는데, 실제 영국 식민 정부가 홍콩에 일부라도 민주적 요소를 도입한 것은 불과 10년도 되지 않았다. 홍콩의 통치 권한은 영국인 총독에게서 베이징으로 바로 넘겨졌으니, 홍콩의 행정장관을 비롯한 최상위 주류 정치 엘리트들이 베이징 정부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래서 홍콩 시민들의 행정 장관을 선출하기 위한 보통 선거 요구는 그들의 맥락과 입장에서는 정당한 것이지만, 베이징 정부의 입장에서는 들어줘야할 정당한 이유가 없고 한편으로는 리스크가 지나치게 높은 요구였던 것이다. 그래서 양측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현상유지가 불가능한 이런 딜레마적 상황”에서 “홍콩의 비극”은 이미 예정됐던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 정부가 “97년 시점의 홍콩 자치 수준”조차 보장하지 못하고 국가 보안법을 도입하는 등 홍콩의 자유도가 급격히 퇴조한 상황은 홍콩 시위대의 규모의 그중 일부 과격파의 행동이나 주장이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특히 이들의 배후에 미국과 서구 정부, 그리고 일부 중국 내부 권력층의 선동과 공작이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에게 있어 홍콩의 역할은 미 달러를 포함한 외국 자본 조달을 위한 금융창구 기능이 있는데, 이는 인민폐를 사용한 대외 교역을 늘리고 달러의존을 줄이려는 정책적 방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국 경제의 존망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이다. 따라서 홍콩이 불안정해지는 것은, 중국 국가의 안정적 운영 측면에서도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판단했을 것이고, 단호한 조치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홍콩 인구의 거의 1/3에 해당하는 2백만이 거리로 나서거나 일부 청년들이 과격하고 급진적인 주장을 펼친 것의 주요한 원인은 외국 정부의 직접적인 공작 때문이라고 보기 힘들다. 구조적 문제로 홍콩 정부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오랜 기간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이먼 청Simon Cheng의 경우이다. 사이먼은 2019년 당시 영국 영사관에 근무하던 홍콩인 직원이다. 그는 중국 자본의 영국 투자 담당업무를 맞고 있었는데, 당시 영국 영사관은 그에게 “색다른” 정보수집 업무를 맡겼다. 홍콩 시위대의 동태와 여론을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의 의사에 의해 시위에 참가하거나 시위대의 SNS에도 참여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알게 된 정보를 영사관에 보고했다. 사이먼은 그후 자신의 투자 상담 업무와 관련해서 션전으로 출장을 갔는데, 이곳에서 중국 정보 당국에 의해 억류당하게 된다. 그는 2주간 실종상태였는데, 나중에 중국 정부가 그의 범죄 사실 자백을 녹화한 비디오와 함께 그의 신원을 공개하고, 영국 정부의 개입하에 석방되게 된다. 중국 정부가 그를 범법사실로 고발한 내용은 홍콩시위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션전에서 업무 시간 후에 안마를 받으러 가서 상습적으로 불법적인 성매매를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를 심문한 내용은 영국 영사관과 홍콩 시위대 정보 수집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석방된 후, 대만으로 피신했다가 (그는 대만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여자 친구도 대만사람이었다.) 영국 정부에 직접 망명을 신청한다. 망명 요구가 받아들여져서 지금은 영국에 거주하면서 다른 홍콩 난민들과 함께 반중정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홍콩 정부는 홍콩 민주파 정치인의 대표격으로 현재 역시 영국에 망명중인 네이썬 로우羅冠聰와 사이먼 청 등을 포함한 여섯명의 인사를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령을 내렸는데, 내가 사이먼 청의 사례를 알게 된 것도 이 뉴스를 통해서이다.
나는 그가 영국 BBC의 대담프로인 하드토크Hard Talk에서 증언을 하는 것을 찾아 봤는데, 진행자는 그에게 자신의 직책상 업무 범위를 벗어난 그와 같은 정보수집 업무가 중국 정부에 의해 스파이 행위로 의심을 받을만한 민감한 행동이었음을 인지하지 못했느냐고 묻자 대답을 머뭇거린다. 내가 판단하기에 그는 그냥 평범하고 고지식한 영사관 직원으로서 그가 정말로 의식적으로 시위대를 선동하는 공작 스파이 활동을 벌였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그의 증언대로 별 생각없이 상사의 지시에 따라 단순한 정보수집 활동에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본인의 의지로 시위대에 참여한 것이지, 대단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지 않다. 만일 그가 정말 심각한 공작 활동을 벌이려는 의도를 가진 스파이였다거나 홍콩 정부의 민주화를 간절히 원하던 열혈 민주투사였다면, 중국 정부가 자신을 감시하거나 위해를 가할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었을 것이고, 션전에 출장을 가서도 안전을 고려하여 훨씬 조심스럽게 행동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가 나중에 망명을 신청하고 지금은 적극적인 반중행동에 나서게 된 것은, 아마도 중국 정보 당국의 공작적 모략에 휘말려들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처지로 내몰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미국과 서방 정부의 공작이 있었다고 믿고 있고, 또 자신들이 혐의를 갖고 있는 인물에게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성매매 사건을 조작해 그를 불법 구금 및 심문했다고 볼 수 있다. 즉, 국가는 경쟁국이나 적국 정부의 공작 행위를 항상 의심하고, 그리고 자신들도 항상 공작을 벌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6: 사이먼 청은 션전에서 일과시간의 업무가 끝난 후 휴식을 취하면서 마사지 샵을 자주 드나들었다. 하지만 안마를 받으러 간 사실 자체가 매매춘행위로 이어졌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션전의 경찰이 제시한 유일한 증거는 그의 자백이지만, 그는 경찰에게 고문을 통해 자백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사건의 핵심 포인트는 그가 중국 정부에게 불법 구금을 당하고 심문을 받은 이유가 안마나 매춘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영국 영사관에 의한 정보수집 때문이라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영국정부도 2019년 반송중 사태의 해외 배후세력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건 중국 정부와 같은 권위주의 정권에 국한된 것이라고 이야기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부의 프로파간다나 여러가지 보안과 관련한 정책 행위를 보면서 이것은 자유주의 혹은 권위주의 정부와 같은 정치체제의 차이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표적인 것이 틱톡과 관련한 미국 정부의 의혹 제기와 매각명령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청소년과 청년을 중심으로한 미국인들의 광범위한 틱톡 사용에 대해서 크게 두가지 측면의 우려를 표명했다. 첫번째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인들의 개인 프로파일과 같은 민감한 정보들이 중국 정부에게 넘어갈 것에 대한 염려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두번째 우려 사항이다. 그것은 중국 정부가 틱톡의 알고리즘에 개입해서 미국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미국 청소년들이 틱톡을 사용하면서 매우 부정적이고 폭력적이며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내용에 노출되면서 정신적, 도덕적 아노미에 빠질 것을 염려하는 지점이었다. 그들은 중국 청소년들에게는 그런 정보가 유포되지 않는 반면, 왜 미국 청소년들에게만 극도로 유해한 정보가 유포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즉, 중국 정보가 틱톡의 알고리즘을 이용해 미국 청(소)년들을 반사회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거의 음모론 수준에 가까운 의혹 제기였다. 이 지점에 대해서는 중국 전문가들이나 심리학자들이 적절한 대답을 내놓았는데, 중국 청소년들에게 과도하게 유해한 정보가 노출되지 않는 이유는 중국 정부가 검열을 통해서 이런 정보를 통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이런 소셜 미디어 앱이나 게임 앱 사용자들의 연령을 등록하게 해서, 미성년자들의 사용시간조차 제한하고 있다. 즉, 중국 정부가 권위주의 체제의 이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반면 자유주의 체제인 미국과 서방 세계는 검열과 통제 규율이 적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유해 정보에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는 것이 문제의 진상이라는 것이었다. 비슷한 수준의 음모론은 중국 정부가 일부러 중국내에서 펜타닐 원료를 많이 제조하고 미국에 유통하는 것을 방치해서 미국민들, 특히 다수의 젊은 층이 펜타닐 중독에 빠지게 하고 미국에 공공보건과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추정이다.
어찌됐든 미국 정부와 정보당국이 틱톡과 같은 앱에 중국 정부의 공작이 개입됐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점이나,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않은 채, 틱톡을 매각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결국 미국 정보 당국도 “상대의 의도를 의심하고 공작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되겠다. 보다 직접적인 공작 사례로는 미국 군부의 유언비어 유포 사실이 최근 로이터 통신의 보도로 밝혀지기도 했다. 필리핀에서 코비드 백신 부족으로 엄청난 수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던 시점에, 중국 정부가 무료로 백신을 제공했지만, 미국 군부가 중국 백신 무용론이나 위해론을 고의적으로 유포함으로써, 백신접종률이 극적으로 낮아진 사례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자국민에게 백신을 보급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아서 필리핀에는 백신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 정부는 필리핀 여론이 친중으로 기울 것을 염려해 이런 공작행위를 펼친 것이었다. 미국 정부가 자신의 이런 행동을 정당화한 근거는, 중국과 러시아 등 경쟁국의 공작이 유효하기 때문에,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맞서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는 정부의 공작행위가 정치 체제의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국가기능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 국가 기능이 발휘되는 것은 그 체제가 심각한 위협(existential threat)을 느끼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부인 중국은 원래 사회적 통제가 많은 편이지만, 2010년 미국의 pivot-to-asia 이후로는 미국 정부의 공작을 의심하고 체제의 위협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시진핑 집권시기인 2012년 이후부터 이를 강화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시민사회 혹은 공민사회 개념과 이를 기반으로한 사회운동조차 일종의 이념적 공작으로 간주한다. 이런 사회 통제는 급기야 2014년 우산운동과 2019년 반송중 사태를 계기로 홍콩에서도 강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제3자적 시각으로 거리를 두고 미중의 프로파간다 공작을 비교하면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2010년대까지는 패권국가 미국의 프로파간다를 자유주의 체제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세계 체제 이론에 의하면 이것이 바로 “패권”의 정의에 해당 한다.) 중국과 달리 미국은 정부주도의 노골적 공작이 필요 없었다. 이제 이런 공작이 필요해진 것은, 코비드를 계기로 미국의 패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이렇게 아무도 미워하거나 책잡을 수 없다고 하면 홍콩사태를 겪으며 트라우마를 갖게 된 사람들은 더욱 상처가 깊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자신들의 행동과 결정에 후회가 없다며 담담한 표정을 짓는 홍콩 청년들을 보면서 희망의 단초를 본다. 누군가는 그들의 행위를 찬미할 수도 있고, 반대로 누군가는 비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완벽하지 않은 청년들이 인생의 어떤 순간에 크게 용기를 내어 행동하고 자신의 이상을 좇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삶은 한걸음 더 진전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여러가지 판단을 할 수 있지만, 그 결과를 책임질 수만 있다면 어떤 경험이든 값진 기억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미국기나 영국기를 흔들던 소위 “매국적 행위”에 대해서도 근대 국민국가와 민족주의 교육을 받으면서 정체성을 형성한 중국인이나 우리들의 관점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개념이 명확한 자기 정체성의 일부가 아닌 이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가치 우월성 중심으로 교육을 받았다면 자연스럽게 취할 수 있는 행동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이 홍콩의 교육과정에 중국인으로서의 국민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도 그래서 부당한 결정이라고 비판할 수 없다. 권위주의 체제이든 자유주의 체제이든 근대국가의 국민 정체성은 필요성을 인정 받는 중립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홍콩의 교육과정에서 국가안보와 관련한 “애매한” 레드라인이 생겨나고 다양한 가치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이 금지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동과 청소년의 학습과 성장은 학교와 교과서뿐 아니라, 사회생활에서의 다양한 관계와 다양한 채널의 정보 습득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나치게 비관적이 될 필요는 없다. 한국의 86세대가 받은 교육은 일제식민지 유산을 물려받은 군사독재 기반의 엄혹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것이었고, 반대로 지금의 MZ세대는 민주화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는 사실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홍콩이 새로운 세대의 성장과정에서 꼭 유지해야 하는 것은 민간을 중심으로 한 광둥어 사용 문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홍콩과 대만을 포함한 중화권과 중국의 남방 사회는 <식남지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수천년 넘게 중원이나 화둥지역과 같은 중국의 주류사회와는 조금씩 다른 문화와 역사 발전의 경로를 밟아왔다. 중국은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외부의 사상과 문화를 자기화해서 수용하는데 대단히 오랜 시간과 공을 들인다. 남과 자기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부수고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본의 루쉰 연구자 타케우치 요시미竹內好가 말하는 “방법으로서의 중국” 즉, 회심回心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것이 한나라, 그리고 주로 당나라 시기에 전해진 불교의 선종화와 불교 세계관을 수용해 신유학을 만들어 낸 사례이다. 당송변혁기만을 따져도 500년이 넘는 세월이다. 더 긴 장기 역사의 시간축으로 바라본다면, 16~19세기 서구적 근대가 중국의 남방지역을 통해서 찾아왔던 충격을 극복하고 물리적으로만 따라잡기 위해서도 백년도 넘는 긴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을 상기해 볼 수 있다. 다시 이 변화의 씨앗을 자기화해서 중국식 현대문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렇다면 홍콩에서 벌어졌던 비극이나 대만과의 긴장관계를 단지 허망하고 헛된 결정론적 역사적 이벤트라고 볼 수 만은 없다.
* 참고 자료와 영상
· 26. 민주주의도 고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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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현대의 나관중, 마작가 미드에 ‘삘받고’ 삼국지를 새로 쓰다
https://thetomorrow.cargo.site/33-2 ****
· 44. 광저우 역사 속의 세 가지 에피소드
https://thetomorrow.cargo.site/44
· 西南夷列传
https://baike.baidu.com/item/西南夷列传/1640597?fr=ge_ala
· 백제 땅 함평서 나온 토기에 왜 백인 얼굴이?
https://www.hani.co.kr/arti/PRINT/876268.html
· 광동성 광주서 출현한 남월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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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賴清德就職演說:兩岸「互不隸屬」- BBC News 中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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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認定「台灣已是主權獨立國家」 賴清德:沒有再宣布獨立之必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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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것 나쁜 것 다 나온 유럽, 38선이 찍 그어진 한국 [지리의 힘] 2부 | 김이재 지리학자 | 알릴레오 북’s 시즌5 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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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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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서평] 《樞紐》 ’허브Hub’로서의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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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ina’s Rebel City: The Hong Kong Prote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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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ng Kong convicts 14 democracy activists in biggest national security case | BBC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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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人案】一片看清・懶人包|回顧1187日還柙118日審訊 被控顛覆國家政權終有判決|01新聞|初選案|國安法|香港|#HK47|法庭|李予信|劉偉聰|何桂藍|鄒家成|黃之鋒|區諾軒|戴耀廷|黃子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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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itain's new Hongkongers - BBC World Service Documenta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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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NO簽證下香港人移民英國,蜜月期過後如何重新上路|走下去|記香港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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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移民外國的理由你聽得多,回流中國的理由你聽過嗎?(上)|沖出黎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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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開台5週年特約:一位大學生對藍色「香港政治社群」的研究|沖出黎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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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Years On: Hong Kong Youth Moving On from Jail to a New Reality after 2019 Prote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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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香港人」還是「中國人」?兩位年輕人的不同身份認同 | 香港主權移交25週年- BBC News 中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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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香港「反送中」運動五週年:留下來的人在社會新現實下的故事- BBC News 中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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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香港对6名潜逃国安犯“上措施”,外交部:捍卫国安的正当必要之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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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mon Cheng on Hong Kong protests, China arrest and the "fight for democracy" - BBC HARD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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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inese police release video of Simon Cheng ‘confession’ after his claim of torture in det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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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羅冠聰BBC專訪:難忍在港家人被威脅 憂英國對中國態度軟弱- BBC News 中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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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香港行會召集人葉劉淑儀專訪:2019年示威者試圖推翻政府- BBC News 中文 | #BBCHARD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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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aun Rein Debates Joshua Wong (full deb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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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kTok fighting to avoid ban in the US | DW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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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nathan Haidt - "The Anxious Generation" | The Daily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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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cial Media Messed Up Our Kids. Now It Is Making Us Ungovernable.
https://www.noemamag.com/social-media-messed-up-our-kids-now-it-is-making-us-ungovernable/
· Pentagon Ran a Secret Anti-Vax Campaign to Undermine China at the Height of the Pandemic: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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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의원들 '中백신 불신조장 공작' 미군 조사 추진
https://www.yna.co.kr/view/AKR20240621163200084
· Hong Kong’s Teachers Are Leaving. Is The National Security Law Behind It? | Insight | Full Episode
https://www.youtube.com/watch?v=bMEAfU05QV4&t=101s
· How Hong Kong Textbooks Changed After 2019: ‘Liberal Studies’ vs ‘Citizenship & Social Development’
https://www.youtube.com/watch?v=incQp4ZLdtE
· Why do Hongkongers care so much about Cantonese?
https://www.youtube.com/watch?v=PaX4LI1JbAA
· 《食南之徒》马伯庸新书馋哭了,读懂美食读透人性!!!
https://mp.weixin.qq.com/s/jfz-CIjoVE2UQIRYT-4fTg
· 马伯庸 历史小说如何写出岭南的独特质感
https://mp.weixin.qq.com/s/VMGMemLKh9U6hjJP-ibEWg